내일 중국공산당 3차 역사결의…1·2차 무엇을 담았나

2021년 11월 10일 오후 5:58 업데이트: 2021년 11월 10일 오후 5:58

1945년 1차, 마오 ‘핵심지위’ 부각…1인 독재 발판
1981년 2차, 문혁 비판…집단지도체제 당위성 부각

11일 중국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6중 전회) 최종일 회의에서 중국 공산당의 3번째 ‘역사 결의(정식명칭: 당의 100년 분투 중대 성취와 역사경험에 관한 중공 중앙의 결의)’가 채택될 예정인 가운데 1,2차 결의의 내용에 관심이 쏠린다.

이번 역사 결의 채택은 내년 가을 제20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3연임(총 집권기간 15년으로 연장)을 결정하기 앞서 사상적 측면에서 사전 정지작업 의미를 지닌다는 관측통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공산당 100년사를 총정리하면서 시 주석을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과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에 이은 공산당 100년사 3대(大) 지도자 반열에 올리는 한편, 왜 그의 집권이 연장돼야 하는지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설명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각각 마오와 덩이 당의 영도자로 있던 시절 도출된 1,2차 역사 결의는 당의 과거 오류를 지적하고 넘어감으로써 현직 최고 지도자의 정치적 지위를 공고히 했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결의의 용도는 ‘1인 독재 강화’와 ‘집단지도체제 공고화’로 엇갈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첫번째 역사 결의는 1945년 4월 20일 공산당 제6기 7중 전회에서 채택된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다.

이 결의에는 당시 공산당 중앙정치국 주석이었던 마오쩌둥에 대해 당 중앙 핵심이자 전(全)당의 핵심 지위를 부여하는데 대해 의견일치를 봤다는 내용이 담겼다.

공산당 창당 초기 옌안 주둔 시절 마오쩌둥 | 웨이보

결의는 마오쩌둥이 중국 무산계급과 인민을 대표한다고 규정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중국화한 마오쩌둥 사상 체계를 부각시켰다. 마오쩌둥 사상이 농민이 많고 제국주의 및 봉건주의와의 투쟁이라는 과제가 있는 중국의 특수 상황을 감안한 ‘중국식 사회주의 사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토지의 철저한 균분화를 위한 ‘토지 혁명 투쟁’을 당시 공산당의 최대 성취로 강조했다.

그런 반면 결의는 1921년 창당 이래 당의 과오도 정리했다.

특히 1930년대 마오쩌둥의 주된 당내 경쟁자였던 소련 유학파 왕밍(王明·1904∼1974)으로 대표되는 교조주의적 좌편향 노선이 ‘착오’였음을 명시하는 한편 마르크스-레닌 주의의 기본 이론을 활용해 중국 혁명의 구체적 문제를 해결한 마오의 공헌을 높이 평가했다.

2번째 역사 결의는 1981년 6월 27일 열린 공산당 제11기 6중 전회에서 통과된 것으로 정식 명칭은 ‘건국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다.

’10년 대환란’으로 불리는 문화대혁명(문혁·1966∼1976)의 악몽이 끝나고 중국이 개혁·개방의 초입에 들어섰을 때 채택된 이 결의는 덩샤오핑 리더십 하에서 개혁·개방을 심화하기에 앞서 전임 지도자인 마오의 공과 과를 정리하고 넘어가는 의미가 있었다.

결의는 우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역사를 마오쩌둥 사상 지도하에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에 큰 성과를 거둔 역사로 정리했다.

그러면서 마오 사상이 오랜 기간 당의 지도사상으로서 가진 의의를 긍정하는 한편 마오를 위대한 무산계급 혁명가이자 전략가 겸 이론가로 높이 평가했다.

또 마오쩌둥 사상을 마르크스-레닌 주의를 중국에 응용·발전시킨 공산당 집단 지혜의 결정체로 규정했다.

덩샤오핑 | 자료사진

그러나 문혁은 철저히 부정하고 넘어갔다. 문혁이 “당과 국가, 인민에게 건국이래 가장 엄중한 좌절과 손실을 겪게 했다”고 평가하고 “문혁은 마오쩌둥 동지가 발동하고 영도했다”며 마오의 주된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전체적으로 마오의 공적이 첫째라면 과오는 둘째라고 규정하면서 마오의 과오를 ‘마오쩌둥 사상’과 구별했다. 그와 더불어 문혁의 또 다른 주역인 ‘4인방(왕훙원·장춘차오·장칭·야오원위안)’의 권력 탈취 야심을 좌절시킨 마오의 공로도 적시했다.

눈에 띄는 부분은 “마오쩌둥 동지의 독단적 스타일이 당의 민주집중제에 점차 손해를 끼쳤으며 개인숭배 현상이 점차 발전했다”고 지적하고 “문화대혁명의 교훈과 당의 현 상황을 근거로 반드시 건전한 민주집중제의 당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문혁과 같은 1인자의 재앙적 독주를 막기 위한 집단지도체제의 당위성을 부각한 대목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