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으로 시선을 향하다, 베르메르 ‘저울을 든 여인’

류시화
2022년 12월 2일 오후 1:06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5:32

창문으로 빛이 들어옵니다.

그 빛을 받으며 홀로 서 있는 여인은 하얀 후드가 달린 파란 벨벳 재킷을 입고 있습니다.

그녀는 테이블 앞에 서서 손에 들고 있는 양팔 저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저울은 너무 섬세하고 미묘하게 그려져 있어서 그녀가 그것을 들고 있다는 것 조차 알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테이블 위에는 금 사슬과 진주 목걸이가 걸쳐져 있는 보석함이 놓여 있고, 테이블의 끝에는 동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파란 천이 무심한 듯 걸쳐져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황금시대인 17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는 맑고 부드러운 빛과 색의 조화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작품을 그려왔습니다. 살아생전에는 크게 명성을 얻지 못했던 그는 1675년에 사망한 후 150년의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그의 그림 중 하나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널리 알려지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습니다.

베르메르의 그림 ‘저울을 든 여인’은 가치와 판단, 그리고 순수함과 고결함을 담아낸 상징적인 작품입니다.

그림 속 여인의 뒤편 벽에는 ‘최후의 심판’의 한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 걸려있습니다. 노랗게 후광으로 둘러싸인 인물이 팔을 든 채 공중에 떠 있고, 다른 인물들은 그를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서 그를 경외하듯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그들은 여인의 머리 양쪽에 마치 양팔 저울처럼 배치되어 있습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물건들은 여인이 부유층임을 나타냅니다. 고운 천, 금, 진주, 그녀가 입은 옷에 달린 털과 고급 재질을 통해 그녀가 어떤 수준의 삶을 영위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귀중품들이 아닌 ‘다른 것’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은 저울은 귀중품의 가치나 무게가 아닌, 그것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올려두고 그 무게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부유한 배경과 사물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를 판단하기 위해 시선을 내면에 향하도록 눈을 감고 있습니다.

저울질의 결과로 물건이 버려지거나 다른 것으로 바뀌진 않습니다. 그녀가 저울 위에 올려둔 것은 사물이 아닌 자신의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신에게 닿기 위해선 현실의 물질이 아닌 영혼의 태도가 중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림 속 여인이 입은 옷을 바탕으로 그녀의 영혼이 천국으로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가 입은 치마의 노란색은 신에 대한 그녀의 믿음을 상징하고, 그녀가 입은 재킷의 파란색은 성모 마리아와 연관되어 진리와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쓴 후드의 하얀색은 순수함을 상징합니다.

그녀가 사물에 가치를 두는 것이 아닌, 자신 내면의 영혼과 마음가짐을 중요시하며 내면을 돌아보려는 노력을 한다는 사실은 그녀와 그녀 뒤에 걸린 그림의 배치를 통해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림 속 아래편에 위치한 인물들은 그림 위편의 천국에 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머리 양쪽에 어지러이 있는 인물들 사이에서 그녀는 혼란 속에서 순수함을 나타내는 하얀 후드를 쓰고 꿋꿋이 고결하고 의연하게 눈앞의 것이 아닌 내면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은 그녀를 지켜보듯 그녀 머리 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베르메르는 한 여인이 사물이 아닌 고결한 가치를 저울에 올려놓고 내면을 돌아보는 장면을 목격하고 아름답게 묘사했습니다.

따스한 빛 아래에서 현실의 반짝이는 물질이 아닌 내면을 들여다보는 여인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고 평화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