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에서 도발 그만하라” 美 국무부 중국에 경고

최창근
2023년 05월 1일 오전 11:32 업데이트: 2023년 05월 1일 오전 11:32

미국이 중국과 필리핀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공격할 경우 필리핀을 방어할 것을 천명하며 중국에 경고했다. 미국은 필리핀 대통령을 워싱턴으로 초청하는 등 양국 관계를 더 밀접하게 만들며 중국 견제에 나섰다.

4월 29일, 미국 행정부는 국무부 성명에서 “중국 해안경비대가 남중국해에서 지속적으로 ‘항행의 자유’를 침해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필리핀과 함께한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은 규범에 기반한 국제 해양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동맹국 필리핀과 함께하며, 남중국해를 포함한 태평양에서 필리핀 해양경비대를 포함한 필리핀 군함, 공공 선박, 항공기에 대한 무력 공격은 1951년 체결된 ‘미·필리핀 상호방위조약’ 제4조가 명시한 상호방위공약을 발동시킨다는 점을 재확인한다.”고 강조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 명의로 발표된 이 성명에서는 “최근 언론 보도 사진과 영상은 중국이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정기 순찰을 하는 필리핀 선박을 괴롭히고 위협했다는 극명한 사례이다.”라고 덧붙였다. 매슈 밀러 대변인은 “중국 정부는 도발적이고 위험한 행동을 그만하기를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필리핀 측은 “지난 4월 22일, 필리핀 해역인 세컨드 토머스 암초(Second Thomas Shoal·중국명 ‘런아이자오(仁愛礁)’) 일대에서 중국 중국인민무장경찰부대해경총대(해안경비대) 소속 경비함 2척이 순찰 중인 필리핀 해안 경비정을 상대로 위협을 가했다.”고 밝혔다.

중국 해안경비대 소속 함정 2척은 세컨드 토머스 암초로 향하던 필리핀 해안경비정의 항로를 가로막으며 45m 거리까지 근접하는 등 충돌 직전의 위험한 상황까지 치달았다. 특히 중국 경비함과 필리핀 경비정의 ‘함급’ 차이를 고려하면, 충돌했을 경우 작은 크기의 필리핀 경비정은 침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필리핀 외교부는 성명을 발표하여 “중국 함정은 상시적인 해상 순찰을 방해했다.”며 중국의 행동 자제를 촉구했다. 이에 중국 외교부는 “필리핀은 중국의 영토 주권과 해상에서의 권리를 존중하라.”라고 맞받았다.

해당 해역에서는 지난 2월에도 중국 함정이 필리핀 해양경비정에 군사용 레이저를 투사하기도 했다. 중국 함정은 세컨드 토머스 암초 지역에서 음식과 군용 물자 보급 작업을 지원하던 필리핀 선박을 향해 군사용 레이저를 쐈고 이로 인해 일부 필리핀 선원들이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었다. 사건 발생 후 필리핀 대통령이 직접 주필리핀 중국 대사를 초치해 항의하는 등 양국 간 갈등이 고조됐다.

중국은 이른바 ‘남해9단선(南海九段線)’을 그어 놓고 남중국해의 90%가 자국 해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남해9단선이 당사국 간 협의도 없이 1940년대 일방적으로 발표한 분계선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해역(海域) 분쟁은 필연적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4년 차인 1953년, 중국 정부는 새로운 지도를 반포하면서 남중국해상에 남해9단선을 제시했다.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난사군도(南沙群島)를 포함해 남쪽 끝으로는 싱가포르 해역 일대까지 중국의 내해로 표기돼 있다.

문제는 중국이 남해9단선을 선포할 당시, 인접 동남아시아 국가들 대부분이 서구 식민지였다는 점이다. 베트남은 1954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고, 미국령이던 필리핀은 1945년, 영국 식민지이던 말레이시아는 1957년,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로 부터 1949년 독립했다.

또 다른 문제는 동아시아 지역은 근대 시기 이전에는 ‘해양영토’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역사상 한 번도 해당 당사국들끼리 해양영토 문제로 협상해보거나 해양영토를 놓고 전쟁을 겪은 일이 없다. 이 속에서 중국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남해9단선은 주변 국가들과 끊임없는 영토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06년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유엔해양법협약상 강제 절차에 따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유엔해양법협약 제298조는 해양경계획정이나 근거에 관한 분쟁에 대해서는 당사국이 강제 절차에 따르지 않을 것을 선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협약은 또한 해양경계획정이나 영유권, 군사활동, 안보리 결의 관련 사항 등에 대해서는 강제중재절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다.

이에 필리핀은 지난 2013년 중국을 중재재판에 회부했다. 중국이 주장하는 영유권 문제를 직접 건드리는 대신 영유권 주장의 근거를 허물기 위한 법적 판단을 받기로 한 것이다. 필리핀이 제소한 ▲중국이 설정한 구단선(중국이 남중국해 주변을 따라 U자형으로 그은 9개의 선,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의 법률적 효력 ▲중국이 EEZ의 기준으로 삼은 섬들이 섬인지 암초인지 여부 ▲주변 해양의 환경오염 여부 등은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의 근거로 삼고 있으면서도 유엔해양법협약상 제소할 수 있는 항목들이다.

중국은 이런 주장을 기각한 2016년 국제상설재판소(PCA) 판결에도 불구하고 계속 영유권을 고집하면서 필리핀 등 인근 국가와 마찰을 빚고 있다. 이 속에서 양국  어선, 해안경비정 간 충돌이 일상화됐다.

이러한 형편 속에서 미국은 필리핀의 입장에 서서 중국의 위협에 맞서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과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5월 1일, 워싱턴DC에서 열리는 회담에서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등 중국의 도전에 공동 대응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은 2022년 6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취임 후 친미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필리핀 내 4곳의 미군기지 사용에도 합의했다. AP통신에 따르면, 필리핀 정부는 루손섬 최북단 카가얀주에 있는 카밀로 오아시스 해군기지, 랄로 국제공항, 북부 이사벨라주의 멜초 델라 크루즈 육군기지, 팔라완섬 서부 발라바크섬이 미군이 추가로 확보한 군사기지라고 밝혔다.

지난 4월 11일부터 필리핀군은 미군, 호주군과 더불어 연례 합동 군사훈련 ‘발리카탄’도 진행했다. 올해는 약 1만 8000여 명이 참여하는 역대 최대 규모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