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살림 비상인데 또 빚내서 추경…“재정 건전성 확보해야”

이윤정
2022년 02월 24일 오후 5:27 업데이트: 2022년 02월 24일 오후 5:27

정부 재정 수십조 마이너스…무역수지도 적자
韓 국가부채 증가 폭 OECD 국가 중 1위
재정적자 만성화 우려…재정 건전화 정책 필수
재원 확보 방안 없는 공약 난무…차기 정부도 빚잔치 예고

나라 살림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가 코로나19 피해 지원을 위해 재정 지출을 크게 늘리면서 지난 2년간 정부 재정 적자 규모는 100조 원을 넘어섰다. 국가채무도 240조 원이나 늘어 1인당 갚아야 할 나랏빚이 2000만 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나라 곳간은 비어가는데 여야 대선 후보들은 천문학적 재원이 필요한 ‘현금 복지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증세’나 지출 조정 관련 공약은 보이지 않고 재정 악화를 제어할 ‘재정 준칙’ 논의는 여전히 뒷전이다.

지속 가능한 재정 유지를 위해서는 엄격한 재정통제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과 함께 국민적 합의 없는 포퓰리즘 정책이 현실화하면 우리 경제는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 재정, 4년째 수십조 원 적자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부터 지난 2년간 우리나라의 통합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최소 100조 원을 넘어서게 됐다.

2020년 정부 총수입은 478조8000억 원으로 전년(2019)보다 5조7000억 원 증가했다. 하지만 총지출은 549조9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64조8천억 원 급증하면서 71조2000억 원의 재정 적자를 기록했다.

2021년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30조 원대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지난 2월 17일 기획재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총수입은 570조 원, 총지출은 600조 원으로 추계됐다.

나라 살림을 가늠하는 지표인 정부 ‘통합재정수지’는 4년째 적자를 기록 중이다. 행정안전부의 ‘e-나라지표’ 및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발간한 ‘한국 통합재정수지’ 등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흑자를 기록하던 통합재정수지는 2019년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적자 규모는 2019년 12조 원에서 2020년 71조2000억 원으로, 1년 만에 대폭 증가했다.

기획재정부는 올해도 재정적자가 68조1000억 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가 올해 1차 추경안과 함께 국회에 제출한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의하면 당초 본예산에서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54조1000억 원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 1월 21일 추가경정예산(추경)으로 14조 원을 편성하면서 적자 예상 금액이 그만큼 더 늘어났다.

통합재정수지 적자 흐름은 2025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적자 규모도 2023년 64조5000억 원, 2024년 69조4000억 원, 2025년 72조6000억 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여 2019~2025년까지 7년 연속 높은 수준의 적자가 지속할 것으로 관측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총지출은 매년 큰 폭으로 증가했다. 본예산 기준으로 2018년 7.1%(428조8000억 원), 2019년 9.5%(469조6000억 원), 2020년 9.1%(512조3000억 원), 2021년 8.9%(558조 원), 2022년 8.9%(607조7000억 원) 증가했다. 출범 직전인 2017년 3.7%(400조5000억 원)와 비교하면 올해 총지출은 50%가량 늘어난 액수다.

기획재정부 | 연합뉴스

국가채무 급증…1인당 2083만 원 갚아야

최근 수년간 정부의 확대 재정 기조가 반복되면서 국가채무도 전례 없이 빠르게 늘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해결과 피해 지원을 명분으로 2020년 4차례에 걸쳐 66조8000억 원, 2021년 2차례에 걸쳐 49조8000억 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했다. 이 여파로 국가 채무는 지난해 말 기준 939조1000억 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팬데믹 이전의 699조 원과 비교하면 2년 새 나랏빚이 240조1000억 원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올해도 14조 원 상당의 추경을 편성했다. 국회는 지난 21일, 본회의를 열고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범위를 확대하면서 기존 정부안보다 2조 9000억 원이 더 늘어난 16조9000억 원 규모의 추경안을 확정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올해 14조 원 규모의 1차 추경안을 편성하면서 이 중 11조3000억 원은 적자국채를 발행하기로 한 것이다. 추경 재원을 마련하고자 또 빚을 내겠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올해 1월까지 총 10차례 추경을 실시하면서 적자국채 규모가 237조 원까지 늘어났다. 이에 따라 국가채무도 덩달아 커졌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660조2000억 원에서 2018년 680조5000억 원, 2019년 723조2000억 원, 2020년 846조6000억 원, 2021년 965조3000억 원으로 불어났다. 나랏빚이 4년 만에 305조 원(46.2%) 불어난 것이다.

올해 국가채무는 당초 1064조4000억 원(본예산)으로 예상됐으나 이번 추경을 위해 발행하는 적자국채(11조3000억 원)를 더하면 1075조 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지난해 본예산 편성 때(956조 원)와 비교하면 올해 나랏빚은 119조7000억 원 증가하는 셈이다. 이를 우리나라 주민등록인구 5163만8809명(2021년 12월 기준)으로 나누면 1인당 갚아야 할 나랏빚은 2083만 원이다.

특히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50.1%까지 상승했다. GDP의 절반이 나랏빚이라는 의미다.

빚더미에 앉은 건 가계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은 2월 23일 “지난해 12월 말 기준 가계부채와 판매신용을 합한 가계 빚은 총 1862조653억 원으로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2분기 말(1387조7571억 원)보다 약 474조3082억 원(34.1%) 증가했다”고 밝혔다.

“재정 적자, 코로나 이후에도 지속” 우려

정부는 연초부터 추경 편성에 나선 것도 모자라 35조원까지 추경을 늘리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대선 이후 공약 이행을 위한 대규모 추경 편성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

나라 전체가 빚더미에 올라앉은 상황에서 적자국채까지 발행하는 이른바 ‘추경 만능주의’는 재정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위기 극복 이후에도 재정수지 적자는 상당 기간 이어지며 만성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10월 12일 발표한 ‘재정점검보고서(Fiscal Monitor)’에 의하면 2026년 말 한국의 일반정부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66.7%를 기록할 전망이다.

IMF는 이 기간 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 채무 비율 상승 폭은 IMF가 선진국(Advanced Economies)으로 분류한 35개국 중 가장 클 것으로 추산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도 이와 비슷한 전망을 내놨다. 한경연은 2월 17일 “2020~2026년 비기축통화국의 재정 건전성 전망을 분석한 결과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의 증가 폭은 18.8%p로, OECD 비기축통화국 17개국 중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

한경연은 “급속한 고령화와 높은 공기업 부채 등 리스크 요인도 산적해 있어 장기적인 재정 건전성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한국은 화폐 발권력을 가지지 못한 비기축통화국이어서 재정 건전성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며 “재정 준칙 법제화와 적극적인 세출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국가채무 증가가 초래하는 재정 위험에 대해 평가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최근 발간한 ‘중장기 재정건전성 유지 방안’ 보고서에서 “코로나19 경제 위기 극복 과정에서 팽창한 재정 지출과 수지 불균형 만성화에 따른 재정적자를 방치하면 다음 5년 동안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약 20%p 증가할 수 있다”며 “국가채무비율이 이처럼 높아지면 그동안 비축한 재정 여력이 급속히 소진돼 건전 재정의 기반이 약화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현재의 재정 운용으로 발생한 큰 재정수지 적자가 앞으로도 크게 줄지 않고 지속한다는 점”이라며 “외환위기와 같은 비상상황에 한해 잠시 등장했던 높은 수준의 재정 적자가 코로나19 이후 만성화된다는 것은 우리나라 재정구조가 크게 바뀐다는 것을 뜻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재정관리 실패는 정권의 붕괴도 초래할 수 있다는 교훈을 역사에서 배웠다면 코로나19 이후 증세를 통한 세입 확충과 합리적인 세출 구조조정 같은 재정 건전화 정책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지속 가능한 재정 유지를 위해서는 재정준칙 도입을 통해 엄격한 재정통제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무역수지도 2개월 넘게 적자

국제신용평가사 피치(Fitch) | 연합뉴스

설상가상으로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던 무역수지마저 3개월 연속 적자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무역수지 적자는 수출로 번 돈보다 수입이 많다는 의미다. 재정수지에 이어 경상수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무역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서면서 재정수지·경상수지가 모두 적자를 기록하는 ‘쌍둥이 적자’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무역수지는 지난 1월 48억9000만 달러(약 5조8400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월간 기준 사상 최대 규모의 무역적자다.

무역수지는 지난해 12월 4억5200만 달러(약 5400억 원) 적자를 보이며 2020년 4월 이후 20개월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2개월 연속 무역 수지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발생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이번 달도 적자가 예상된다. 관세청이 집계한 통관기준 수출입 현황을 보면 2월 1~10일 무역수지도 35억 달러(약 4조1800억 원) 적자를 냈다.

수출 실적은 좋은 편이나 수입액이 더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갈등 등으로 원유·가스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조기 기준금리 인상을 추진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재정 건전성이 급격히 악화하는 상황에서 그동안 이어온 무역 흑자마저 무너지면서 국가 신인도마저 하락할 위험에 직면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Fitch)는 지난 1월 한국의 국가 신용 등급을 AA-로 유지하면서도 “한국은 단기적으로는 국가 채무 증가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채무비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어 중기적 관점에서는 신용 등급 강등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나라 곳간 비는데 수백조 원대 공약 난무

국가 재정 여건이 날로 악화하는 속에서 대선 후보들은 수백조 원대 재정이 소요되는 공약을 내놨다. 4년 연속 정부 재정이 수십조 원대 적자를 기록했지만 대선 후보들은 재원 조달에 대한 명확한 해결 방안 없이 앞다퉈 대규모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공개한 ‘주요 후보 정책공약 질의서 답변’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국정 공약 270여 개를 이행하는 데 300조 원 이상의 재원이 소요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국정 공약 200개 이행을 위해 266조 원 규모의 재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답변했다. 다만 후보들은 대다수 공약의 재원 조달 방안은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재정을 고려하지 않고 남발하는 선심성 공약들이 고스란히 나랏빚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김인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 2월 10~11일 열린 ‘2022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치열해지는 대선 정국에서 정치권이 재정 제약이 없는 것처럼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며 “한쪽이 선심성 정책을 들고나오면 다른 한쪽은 더 큰 선심성 정책을 내거는 포퓰리즘 정책은 커다란 장기 부작용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공약 실천에 비용이 얼마나 들지, 경제에 어떤 충격을 줄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며 “국민적 합의 없는 포퓰리즘 정책이 현실화하면 우리 경제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같은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