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건양대 교수 “딜레마에 빠진 한국 외교…동맹 중심의 전략적 선택 필요”

이윤정
2020년 08월 24일 오전 9:32 업데이트: 2020년 08월 24일 오후 7:43

중국 외교 정책을 총괄하는 양제츠 중국 공산당(중공) 정치국원이 1박 2일 일정으로 지난 21일 한국을 방문한 뒤 22일 귀국했다.

양 정치국원의 방한은 2018년 이후 2년여 만으로, 신종 코로나(중공 바이러스) 사태 이후 한중 고위급 인사 간 첫 대면 외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양 정치국원은 21일 국제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해 22일 오전 부산의 한 호텔에서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만나 회담을 했다.

이틀간 일정으로 진행된 이번 방한에서 양국은 코로나 대응과 한반도 정세, 시진핑 총서기 방한 문제 등 각종 한중 관계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에포크타임스는 지난 20일 김태우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를 만나 이번 양제츠 방한의 의미와 한국 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김 교수는 양 정치국원의 갑작스러운 방한에 대해 ”최후통첩성 발언을 할 것”이라며 “미중간 신냉전 구도에서 한국을 중국 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기고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 연맹에서 멀어지도록 하는 것이 주목적이라고 추측한다”고 말했다.

그는 양 정치국원이 부산을 방문한 것에 대해서도 “서울에 오면 대통령을 만나야 하는데 대통령에게 통첩성, 겁박성 발언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이 중국 편에 서겠다는 입장을 확인하고 시진핑의 방한을 결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미·중 제로섬 게임, 딜레마에 빠진 한국

김 교수는 “미국과 중국이 협력관계라면 한국이 이런 딜레마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제로섬 게임”이라고 표현했다. 한쪽과 동맹을 맺으면 다른 쪽과는 그만큼 반비례해서 관계가 나빠진다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에 인도·태평양 전략과 경제번영네트워크(EPN) 참여, 화웨이 제재 등 반중 연맹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당연히 동참해야 한다. 중국은 한미간 군사적 결속과 동맹을 이완시키기 위해 한국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하지 말 것을 여러 번 요구했고 한국은 중국에 ‘3불(不) 정책'(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 편입,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 동맹 등 불가)을 표명함으로써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언질을 중국에 준 상태다.”

“미국은 이에 대해 한미 동맹의 공조를 통해서 한국이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한국을 초청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포위망을 만들어나가는데 한국도 가담하라는 것이다. 한국이 이에 응한다면 동맹을 단절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우리의 외교적 위상도 높일 수 있다.”

—일본이 한국의 G7 참여 구상에 반대했다는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진출하려는 대국답지 못한 행보다. 그러나 어찌 보면 당연한 처사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일본에 어떻게 했나? 한국에서는 한일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하면 친일파로 몰아붙인다. 역사상 일본이 한국에 자행했던 나쁜 일들도 있지만 지금 이런 안보 환경에서 한국이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서 어떤 나라들과 협력해야 하느냐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얘기하는 것 아닌가.”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 시도에 대한 우리 정부의 명확한 입장을 요구할 수도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미국이 한국에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한다고 하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반대입장이다. 지금 우리 정부 핵심 인사들의 출신성분과 성향을 생각하면 (미사일 배치는) 꿈도 못 꾸는 일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는 공격무기가 아니라 북한 미사일에 대비한 방어용 미사일인데도 사드 배치 때 중국이 한국을 얼마나 심하게 겁박했나. 한반도에 미국의 군사력이 강화되는 게 싫다는 것이다.”

“또 사드 배치의 원인 제공은 북한이 했는데 중국은 북한 편을 들면서 한국을 때렸다. 미국이 공격 무기에 해당하는 중거리 미사일을 한반도 근처에 배치한다면 중국이 어떻게 나올 것 같은가.”

“입장바꿔 생각하면 정부가 바뀔 때마다 대북, 대중, 안보 정책 기조가 180도 바뀌는 나라에 자국의 중요한 핵무기를 배치하겠나. 미국으로서도 그렇게 시원하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중국은 고체연료 제한을 푼 한미 미사일 개정지침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지 않을까.

“그렇게 큰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내심으로는 굉장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는 ‘사거리 800km’ 제약도 풀려야 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조와 우리 정부의 입장을 보면 풀릴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저렇게 주변국들을 겁박해도 괜찮고 우리는 일방적으로 머리를 조아리고 굴종해야 하나. 독립국, 주권국의 의미가 뭔가.”

미국은 1979년 지침을 만들어 한국이 지나친 미사일 역량을 갖는 것을 제한해왔다. 지난달 ‘제4차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을 통해 미국은 한국의 우주발사체에 고체연료 사용을 전면 허용했고 800㎞로 정해진 탄도미사일의 사거리 연장에도 유연한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 바 있다. 사거리 연장은 한국이 직접 중국 베이징을 타격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한국을 위해서 풀어주는 게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처럼 신고립주의를 유지한다면 ‘각국 문제와 지역 안보는 알아서 하라’는 입장에서 풀어주기 쉽다고 본다.”

—현재 한미관계를 진단한다면.

“한미 동맹은 70년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해방 후 미국이 안보 방패와 안정성을 제공한 덕분에 한국이 공산화되는 걸 막았고 경제 기적을 이뤘다.”

“그러나 한국은 동맹을 확실하게 지지하지 않고 중국 눈치를 계속 봐 왔다. 6·25전쟁에서 같이 싸운 양국 군대 간에 동맹 신뢰는 아직 살아있지만, 이것마저 흔들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정부 공식관계에서는 이념적 상이성 때문에 대화에 신뢰와 진심을 담고 있지 않다고 본다. 얘기가 겉돌 수 밖에 없다.”

“우리 정부가 친중, 친북, 반일 기조를 계속 보여왔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도 이를 무한정 지켜보지는 않을 거다. 한국과의 동맹을 종료할 수도 있다.”

대중 의존도 낮추고 주권 침해에는 강력 대응해야

—일각에서는 이번 방한이 사드 배치 이후 얼어붙은 한중관계 복원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그런 기대를 하고 올 거다. 우리 정부가 어떤 답을 하느냐에 달렸다.”

—한국은 3불 합의를 잘 지키는데 중국은 사드 보복을 철회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재인 정부가 대중 관계 세팅을 아주 잘못했다. 당당하게 주장하고 맞서야 할 부분에서까지 다 굴종하고 양보하는 자세를 취하니까 중국은 한국을 아주 만만한 상대로 본다.”

김 교수는 베트남을 예로 들어 쓴소리를 이어갔다. “1975년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베트남이 공산화됐다. 중국의 친구가 된 건데 베트남이 독립성을 강력하게 주장하니까 중국은 1979년 베트남을 침공했다. 베트남이 전 국민에게 총동원령을 내리고 강력하게 대응하는 바람에 중국은 어마어마하게 큰 피해를 입고 후퇴했다. 지난 2014년에는 석유탐사 문제로 중국과 베트남이 충돌했는데 베트남 전역에서 반중 시위가 일어났다. 그런데 오늘날 베트남과 중국 관계가 나쁜가? 아니다. 무조건 굴종하는 것이 두 나라 관계를 좋게 만들 것이라는 가설은 성립하지 않는다.”

—대중 관계에서 흔히들 대중 무역의 경제적 중요성을 말한다.

“우리 수출의 4분의 1이 중국으로 가기 때문에 중국을 멀리하면 우리 경제가 큰 타격을 입는다는 논리는 당장은 맞을 수도 있지만 좀 더 멀리 보면 근거가 미약하고, 틀린 것이다. 우리 젊은이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대중 경제의존도를 대폭 줄이고 다변화해야 한다.”

—바람직한 대중 정책은.

“중국이 군사적, 경제적 강대국이라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인접국으로서 언제든지 우리를 위협할 수 있어서 중국과 적대관계로 돌아서는 것은 이롭지 않다.”

“그러나 중국이 우리의 주권이나 독립성을 침해할 때는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이 대한민국을 막 찔러대고 있고 우리 정부는 정신을 못 차리는 형국이 벌어졌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9단선을 설정하고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 물동량 절반, 석유 수입선 대부분이 그 바다를 통과한다. 중국이 우리 서해를 야금야금 중국 내해로 만들어가는 데도 한국은 아무 대응을 안 하고 있다.”

외교정책, 전략적 선택 필요

김 교수는 신냉전으로 표현되는 미중간 첨예한 대립은 홍콩보안법, 대만 문제, 화웨이 문제를 비롯해 기술전쟁, 무역 전쟁, 정보 전쟁 등 전면전이라며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어중간한 이중외교를 계속한다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핀란다이제이션(finlandization·약소국이 독립을 유지하면서 인접 강대국에 묵종(默從)적 자세를 취하는 것)’이 걱정된다고 했다. 핀란드는 과거 소련과 나치 독일 사이에서 양쪽 눈치를 보고 어느 한쪽에 가담하지 않는 정책을 펴다가 양쪽 모두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렸다. 그 후 2차 대전 발발하자 소련은 핀란드를 침공했고 핀란드는 영토의 일부를 소련에 할양하고 항복했다.

—한국이 취해야 할 외교 대응 방안은.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군사적, 정치적, 이념적으로는 당연히 동맹으로 가야 하고 중국과는 비적대적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지금 중화 패권 의식에 젖어서 주변국들을 겁박하고 제재하면서 세력을 팽창하고 있다. 종교와 언론의 자유가 없고 공산당 일당 독재를 하는 나라다. 이런 나라와 공생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중국과 밀착한다는 건 동맹을 버린다는 것이다. 지금은 한미동맹 때문에 중국이 한국을 함부로 못하지만, 미국과의 동맹이 없으면 우리는 독립성이 침해되고 굉장히 비극적인 말로를 맞을 수도 있다.”

“미국의 동맹정책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걱정이다. 그러나 적어도 미국은 청교도 정신에 입각해서 세워졌고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삼아 전 세계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희생해온 나라다. 같은 값이면 그런 나라와 가치를 공유하고 사는 것이 우리 후손들의 행복 지수를 높일 수 있다고 본다.”

김태우 교수는 뉴욕주립대(SUNY Buffalo)에서 핵전략을 전공하고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에서 정년퇴임 후 통일연구원장을 역임했다. 건양대 군사학과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국방 문제 전문가,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 전략위원장,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