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시진핑, 장쩌민의 나쁜 유산 받을까 내칠까

차이나뉴스팀
2022년 12월 21일 오후 9:52 업데이트: 2022년 12월 26일 오전 10:15

뉴스분석

지난 10월 중국 공산당 20차 당 대회로 3연임을 굳힌 시진핑 앞에 11월 말 장쩌민 사망이라는 돌발 변수가 등장했다.

장쩌민이 생전 그리고 사후에도 환영받지 못한 지도자임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 매체 RFA는 장쩌민이 사망한 지난달 30일 기사에서 “장쩌민 사망 소식을 전한 소셜미디어 게시물에 ‘좋아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를 전했다(기사 링크).

중국인들이 장쩌민의 사망 소식에 ‘좋아요’를 누른다는 것은 그의 죽음에 환호하고 있다는 의미다.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들도 장쩌민 사망 소식을 공유하며 ‘부패와 죄악의 아이콘’이 사멸했다며 축하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민심과 달리 중국 공산당 당국은 장쩌민을 추켜세우며 애도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당내에 아직 장쩌민 파벌의 잔존 세력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국가 지도자가 숨지면 대개 그 이후 상황은 두 가지로 나뉜다. 그에 대한 평가(긍정적 의미의) 아니면 단죄다.

시진핑 정권은 장쩌민 추모 분위기를 연출하면서도 미묘한 신호를 발신했다.

시진핑 총서기를 주임위원(위원장)으로 하는 장례위원회는 지난 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장쩌민 동지 추도대회’를 거행하고 조기 게양, 전국민 3분 묵념을 시행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유체고별식을 생략했다는 점이다.

중국 공산당의 관례에 따르면, 영도자급 인사가 사망하면, 영당을 차리고 조문을 받으며, 유체고별식과 추도행사 후 베이징의 바바오산(八寶山·팔보산) 혁명고원 묘지에서 화장해 안장한다.

덩샤오핑 사망 때는 “검소하게 치르라”는 그의 유언에 의해 유체고별식이 생략됐지만, 이번 장쩌민 사망 때는 추도행사는 개최됐지만, 별다른 설명 없이 장례위의 결정에 따라 유체고별식이 생략됐다.

중국 대중의 반응도 시큰둥했다. 수도 베이징 거리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전 국민 3분 묵념 때 묵념하는 이들은 없었다. 경찰은 교통을 통제하지 않았고, 차량이나 행인들도 멈춰 서지 않고 평소처럼 가던 길을 갔다.

시진핑 정권이 추모 분위기를 유도하긴 했지만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발하는 민심을 일시적으로 달래는 수단으로 사용했을 뿐, 일부 절차를 생략하면서 사실상 장쩌민 추모에 그다지 진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 이유에 대해 에포크타임스 홍콩지사의 중국 문제 전문가들은 “장쩌민이 남긴 정치적 유산을 계승하는 대신 청산하려는 시진핑의 의중이 담겼다”면서 “동시에 시진핑에게 유산을 계승하도록 하려는 압력도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장쩌민의 나쁜 유산 1…톈안먼 유혈진압

중국 내에서는 장쩌민을 유혈 진압에 직접 개입하진 않았지만 “톈안먼 사태의 최대 수혜자”로 보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이다.

장쩌민은 덩샤오핑이 승인한 톈안먼 유혈 진압을 적극 옹호하면서 덩샤오핑의 눈에 들어 결국 최고 권좌인 공산당 총서기 자리까지 올랐다.

자기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진 않았더라도 최대 수혜자라는 점에서 광장을 뒤덮은 피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제로 덩샤오핑의 지시에 따라 톈안먼 유혈 진압을 실행한 리펑 당시 총리는 톈안먼 사태 관련 회고록인 ‘리펑의 6·4일기(李鵬六四日記)’에서 장쩌민의 행적을 이렇게 기록했다.

1989년 6월 4일 톈안먼 사태 현장 | 류젠 제공

그는 1989년 6월 3일 자 일기에서 “(덩)샤오핑 동지가 오늘 밤 현장 정리(무력 진압) 방안을 승인했다. 장쩌민 동지는 경호빌딩 4층에서 창밖으로 톈안먼의 동태를 직접 살필 수 있었다”라고 썼다. 장쩌민도 결국 한 패거리였다는 폭로다.

장쩌민은 톈안먼 학살이 벌어진 그해 6월 공산당 총서기에 올라 13년간 중국 최고 권력자로 군림했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장쩌민은 퇴임하면서 후계자인 후진타오에게 톈안먼 사건의 재평가를 금지하는 규정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장쩌민 스스로가 자신을 톈안먼 사건의 핵심 관계자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장쩌민과 그의 파벌은 후진타오가 집권한 10년 내내 실권을 쥐고 있었고 후진타오는 허수아비 지도자에 그쳐야 했다.

그들은 후진타오에 뒤를 이은 시진핑마저 허수아비로 만들려 했지만, 시진핑은 강력한 반부패 캠페인으로 대응하면서 이를 무산시켰다.

장쩌민의 나쁜 유산 2…파룬궁 탄압

파룬궁은 중국의 전통적인 수련 문화에 기반을 둔 심신 수련법이다. 1992년에 일반에 공개돼 도덕성을 강조하는 가르침과 뛰어난 건강증진 효과로 1999년 초까지 7년 만에 수련자가 7천만 명으로 늘었다.

통제가 엄격한 중국에서도 파룬궁은 사회적 마찰 없이 건전하게 확산됐다.

1998년 중국 공산당 인민대표대회 위원장인 차오스(喬石) 등 공산당 원로들은 파룬궁에 대한 면밀한 조사 후 “국가와 인민에 완전히 유익하며 한 가지 해로움도 없다”고 평가하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장쩌민은 이를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공산당보다 더 인기 많은 단체, 공산당 지도자보다 더 존경받는 존재의 등장에 장쩌민은 상실감과 강렬한 시기심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찰이 톈안먼 광장에서 파룬궁 시위자를 억류하고 있다. 2001.10.1. 베이징.ㅣChien-min Chung/AP

이러한 장쩌민의 심리를 꿰뚫어 본 측근 뤄간(羅干) 당시 중앙정법위원회(정법위) 서기가 이를 이용했다. 뤄간은 장쩌민의 마음에 들어 더 큰 권력을 얻기 위해 1995년부터 파룬궁에 대한 비방을 퍼뜨리며 깎아내리기에 들어갔다.

그중 하나가 후베이성 우한의 공영방송인 우한TV를 통한 다큐멘터리 방영이다. 파룬궁을 악의적으로 비방하는 이 다큐에서는 여러 기공 유파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들까지 파룬궁의 소행인 것처럼 뒤집어씌웠다.

이에 정부가 파룬궁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한 수련자들이 베이징의 국무원 민원창구에 몰려들었고, 이를 본 장쩌민은 “단체로 저항한다”며 앙심을 품고 파룬궁을 말살할 결심을 한다.

그는 1999년 7월 20일, “3개월 안에 말살하겠다”며 파룬궁 탄압을 지시했다. 하지만, 탄압은 예상보다 잘 진행되지 않았다. 일반 대중은 물론 당 간부들도 국민 체육활동에 가까운 파룬궁을 탄압하라는 지시를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뤄간은 곧 사람들이 파룬궁을 증오하도록 만들기 위한 작업을 벌였다. 2001년 파룬궁 수련자들이 ‘죽어서 천국에 간다’며 톈안먼 광장에서 분신 자살하는 조작극이 그것이다.

실감 나는 연출에 중국 CCTV 직원들까지 동원됐지만, 조작극은 허점투성이었다. 급조된 가짜 수련자들은 엉성한 자세로 진짜 수련자들과 대조됐다. 분신을 시도한 사람의 품에서 인화물질을 담은 페트병이 멀쩡한 모습으로 영상에 포착됐다.

2001년 1월 2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발생한 ‘톈안먼 분신자살’ 사건 현장을 촬영한 CCTV 화면. 훗날 장쩌민 측의 지시로 만들어진 날조극으로 밝혀졌다. | 동영상 캡처

결국 영상을 정밀 분석한 국제단체에 의해 조작극임이 드러났지만, 이러한 사실은 나중에야 밝혀졌다. 당시 중국인들은 TV와 신문, 라디오에서 연일 보도하는 분신자살 사건이 허위 조작극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알 수도 없었다.

톈안먼 광장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에 ‘우연히’ 포착됐다는 분신자살 장면은 하루에도 수차례 TV 뉴스를 통해 방영되며 중국인들의 뇌리에 파룬궁에 대한 증오심을 각인하는 작용을 일으켰다.

그제야 중국 공산당의 파룬궁 탄압은 급물살을 탈 수 있었다. 중국인들은 파룬궁을 증오했고 경찰과 공안의 체포작전은 수월하게 진행됐다. 중국 전역의 구치소, 교도소, 수용소 심지어 정신병원에는 붙잡혀온 파룬궁 수련자들로 가득했다.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해고, 퇴학, 재산 몰수, 폭력, 괴롭힘이 일상이 됐고 파룬궁 수련자라는 이유만으로 수년의 징역형이 선고됐다. 제대로 된 재판 없이 바로 형이 집행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살아있는 수련자들의 심장, 간, 폐, 안구 등을 적출해 이식수술용으로 팔아먹는 극악한 범죄가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된다는 폭로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만행은 현재 위구르인, 티베트인 등 소수민족이나 반체제 인사, 심지어 일반인에게까지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쩌민의 나쁜 유산 3….사회의 마피아화

중국 공산당의 체포작전으로 파룬궁 수련자들이 대거 실종되는 가운데, 2006년 3월 전직 간호사 출신 여성 애니(가명)가 미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 장기적출’을 폭로했다.

중국에서 살아있는 파룬궁 수련자들의 장기를 적출해 팔아먹는 범죄가 수년간 만연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 폭로를 계기로 당시 중국에서 급증하던 장기이식 수술에 국제사회의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몇 개월 걸리는 장기이식이 중국에만 가면 몇 주 심지어 며칠 만에 가능하다는 믿기 힘든 사실에 관한 설명이 가능해졌다.

국제단체에서 중국 병원 수백 곳을 조사하고 공개자료를 분석한 결과, 연간 6만~10만 건의 장기이식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당국이 발표한 연간 1만 건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였다.

정체를 숨긴 조사원과의 전화통화에서 대놓고 “우리 병원에서 쓰는 장기는 파룬궁 수련자의 것이라 건강하다”고 자랑하는 병원 관계자들까지 있었다.

일부 지역에서의 일탈적 행위가 아니었다. 중국 공산당 고위층까지 연루된 대규모 사건이었다.

파룬궁 수련자들이 미국 워싱턴DC에서 중국에서 벌어지는 강제 장기적출 범죄를 폭로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JIM WATSON/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는 한 전화통화에서 “(장기적출은) 장쩌민 주석이 지시했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중국 공산당은 파룬궁 수련자들에 대한 검진을 실시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수련자들에게는 “건강검진”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장기이식을 위한 목적이었다.

정권이 주도한 조직적 장기 적출에 중국의 군병원, 공안병원, 무장경찰병원, 지방병원 최소 891곳과 의사 9519명이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후 국제사회에서 논란이 일고 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노골적인 장기이식 광고는 자취를 감췄지만, 강제 장기적출은 지금도 진행 중이며 그 대상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는 최근 수년간 길거리의 거지와 노숙자들이 급감한 데 이어 대학생과 아이들의 실종 사건이 줄 잇고 있다. 파룬궁 탄압에 사용된 장기적출 시스템이 또 다른 대상을 희생시키며 돈벌이에 이용되고 있다는 추측이 제기된다.

돈으로 자신의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타인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일이 오늘날 중국에서 벌어진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동시에 파룬궁 탄압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정상적으로 가동해야 할 사법 시스템과 의료 시스템 상당 부분이 장기 적출로 돈벌이하는 마피아 조직으로 변질되면서 중국 사회를 급속히 왜곡·붕괴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장쩌민의 나쁜 유산 4…부정부패 만연

장쩌민은 파룬궁 말살을 정권의 최대 역점 과제로 삼았다.

그로 인해 1999년부터 그가 최고 실권인 중앙군사위 주석직에서 물러난 2004년 9월까지 그리고 여전히 막후 실세로 군림한, 후진타오 집권 기간 내내 중국은 기형적인 기준으로 관리가 승진하는 국가로 변질됐다.

파룬궁 탄압에 적극적인 간부는 승진하고 탄압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인 관리들은 물러나는 식이었다. 온건한 지도자였던 주룽지 전 총리, 리루이환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은 자리에서 밀려났다.

장쩌민 세력은 후진타오와 원자바오까지 퇴임시킬 수는 없었지만, 그 대신 두 사람을 허수아비 지도자로 전락시켰다.

탄압을 지지하고 주도한 뤄간, 쩡칭훙, 저우융캉, 보시라이 등은 승진하고 권세를 누렸다. 최고위층에서 말단까지 중국 전역에서 이러한 현상이 퍼졌다.

장쩌민은 집권 초기부터 자기 측근들의 부패를 방관했다. 그 자신이 권력을 부정축재 수단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가 집권한 13년과 막후 실세로 암약한 7년을 더해 20년 동안, 중국은 부패의 온상이 됐다.

중국 공산당 관리들은 열렬한 자산 도피자이기도 했다. 이들은 부패로 쌓은 재물을 가족과 함께 해외로 빼돌렸다. 공산당 고위층이 해외로 유출한 자산은1999년 238억 달러, 2000년 480억 달러, 2001년 540억 달러, 2002년 700억 달러로 알려졌다.

2003년 사스가 창궐하던 3월 말에서 4월 초에도 20여 일 동안 총 200억 달러가 해외로 유출됐다. 중국 사정당국은 이후 이런 통계 수치를 더 이상 공개하지 않았다.

시진핑, 장쩌민의 나쁜 유산 승계할까

시진핑은 집권 초부터 장쩌민 세력과의 단절 의사를 나타냈다.

그는 취임 직후 중국의 노동교양 제도를 폐지했다. 노동교양소는 범죄자를 교육해 노동의 보람을 알게 하고 사회 복귀를 돕다는 취지를 내세웠지만, 장쩌민 집권 시절부터 시작해 파룬궁 수련자 탄압 소굴로 악명이 높았다.

시진핑은 파룬궁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찬성하지도 않았지만 반대하거나 탄압을 지시한다는 발언도 없었다. 다만, 반부패 개혁을 시행해 많은 부패 관리를 몰아냈다. 이들은 대부분 파룬궁 탄압에 가담한 장쩌민 파벌 소속이었다.

현 최고 지도자의 지시가 없음에도 파룬궁 탄압이 지속 중인 것은 장쩌민 파벌의 탄압 의사가 여전하고 이들이 구축한 탄압 체제가 계속 가동 중이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집권 3기를 확정 지었지만, 남은 장쩌민 파벌 잔당의 위협과 저항은 여전하다. 이들은 최대 치부인 파룬궁 탄압을 포함해, 장쩌민이 남긴 나쁜 유산에 대한 청산을 거부하고 저지하려 한다. 자신들의 명줄이 달려 있어서다.

이들과 손잡고 권력 안정을 꾀하는 대신 장쩌민이 남긴 나쁜 유산을 그대로 짊어질 것인지, 아니면 이를 청산하고 장쩌민 파벌과의 악연을 깨끗이 털어낼 것인지 시진핑은 기로에 서 있다.

집권 초반부터 내디딘 행보와 장쩌민 사망 후 수습 과정에 비춰볼 때 청산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지만, 제로 코로나 이후 계속되는 혼란과 국제 정세, 중국 경제의 침체로 인한 압력 속에서 고민하고 있을 시간은 길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