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역사를 무기로 삼는 사람들 – 미군은 점령군인가?

김은구/ 트루스포럼 대표
2021년 07월 8일 오후 1:20 업데이트: 2023년 08월 26일 오후 10:45

일본의 항복 이후 38선 이남에 진주한 미군은 점령군인가? 이에 대한 논란이 대권 후보들 사이에 오가고 있다. 대략적인 진행은 이렇다.

김원웅 광복회 회장은 지난 5월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영상 강연에서 “소련은 해방군이었고, 미군은 점령군이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한편, 지난 1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고향인 안동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의 정부 수립 단계와는 달라 친일청산을 못 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다시 그 지배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윤석렬 전 검찰총장은 4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 지사가)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김원웅 광복회 회장의 망언을 이어받았다며 비난했다.

광복회는 5일 보도자료를 통해 “친일세력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 체제를 그때 유지했다’는 이재명 지사의 말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역사적 진실”이라며 이 지사를 옹호했다. 하지만 정작 이 지사는 “북한 진주 소련군이 해방군이라 표현한 적 없다”며 거리를 뒀다. 광복회의 5일 자 보도자료는 현재 홈페이지에서 삭제된 상태다.

일련의 소동을 보니 오히려 반가운 마음이 든다. 미군은 점령군이며 소련은 해방군이라는 주장은 운동권의 단골 소재였다. 엉터리 주장을 마치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억압받고 가려진 진실인 양 포장했다.

운동권은 포고문에 사용된 ‘점령’이라는 단어와 번역문의 어투를 과장해 순진한 대학생들에게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조장하고 소련을 통해 설립된 북한의 민족적 정당성을 강변해 왔다.

진행 중인 논란이 반가운 것은 거짓은 해 아래 드러날 때 정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포고문과 포고문이 발표된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진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미군이 점령한 것은 일본이다. 보다 정확히는 일제가 강점하고 있던 ‘38선 이남의 조선’이다. 미군의 점령은 일본의 무장을 해제하고 조선에 해방을 가져다준 점령이었다. 이는 43년 11월, 카이로 선언에서 천명한 대로 조선이 새로운 나라로 독립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1945년 9월 7일 선포된 맥아더 사령부 포고문 제1호도 이를 명확히 하고 있다. 미군이 일제 치하의 조선을 점령하지 않았다면 조선의 해방과 대한민국의 건국은 없다. 미군정은 약속대로 대한민국이 설립된 3년 뒤 모든 권한을 대한민국 정부에 넘기고 해체됐다.

맥아더 사령부 포고문 제1호 (1945. 9. 7)

조선 주민에 포고함. 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관으로서 다음과 같이 포고함. 일본국 천황과 정부, 대본영을 대표하여 서명한 항복문서 조항에 의하여 본관 휘하의 군대는 오늘 북위 삼십팔도 이남의 조선 지역을 점령함.

오랫동안 조선인의 노예화된 사실과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독립시킬 결정을 고려한 결과 조선 점령의 목적이 항복문서 조항 이행과 조선인의 인권과 종교상의 권리를 보호함에 있음을 조선인은 인식할 줄로 확신하고 이 목적을 위하여 적극적 원조와 협력을 요구함.

본관은 본관에게 부여된 태평양미국육군최고지휘관의 권한을 가지고 이로부터 조선 북위 삼십팔도 이남의 지역과 이 지역의 주민에 대하여 군정을 설립함. 따라서 점령에 관한 조건을 다음과 같이 포고함(하략).

소련군은 스스로를 해방군이라 칭하며 38선 이북의 조선을 점령했다. 국제법상 소련군과 미군은 모두 점령군이다.

일본의 하와이 침공을 상호 묵인한다는 일소중립조약까지 체결했던 소련은 일본이 항복할 기미를 보이자 항복 1주일 전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 뒤 재빠르게 38선 이북의 조선을 점령했다. 그리고 소련군 대위 김성주를 김일성으로 내세워 하수인 삼았다.

해방을 운운함은 낯뜨거운 거짓말이다. 그들이 말하는 해방은 곧 점령이다. 해방이라는 사탕 발린 표현 뒤엔 공산주의 압제가 숨어있었다. 소련이 해방했다는 북한은 김일성 3대 세습을 통해 인류 최악의 반인도범죄국으로 남아있다.

인륜에 반하는 극악무도한 범죄, 반인도범죄가 북한 정권에 의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북한 전 지역에서 지금도 자행되고 있다. 이것이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의 결론이다. 북한 주민들은 소련이 세운 김일성의 압제 가운데 아직도 해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소련군 사령관 치스차코프 대장의 포고문 (1945.8.25.) | 자료 사진

소련군 사령관 치스차코프 대장의 포고문 (1945.8.25.)

조선 인민들에게! 조선 인민들이여! 붉은군대와 연합국 군대들은 조선에서 일본 약탈자들을 구축(驅逐)하였다. (중략) 왜놈들이 고대광실에서 호의호식하며 조선사람들을 멸시하며 조선의 풍속과 문화를 모욕한 것을 당신들이 잘 안다. 이런 노예적 과거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진저리나는 악몽과 같은 그 과거는 영원히 없어져 버렸다. 조선사람들이여! 기억하라! 행복은 당신들의 수중에 있다. 당신들은 자유와 독립을 찾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죄다 당신들에게 달렸다. 붉은군대는 조선 인민이 자유롭게 창조적 노력에 착수할 만한 모든 조건을 지어주었다.(중략)

붉은군대는 무슨 목적으로 조선에 왔는가? (중략) 전반적 평화의 회복을 촉진하기 위하여 소련은 일본과의 전쟁에 들어섰다. (중략) 위대한 스탈린 대원수는 그들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목적은 그 인민들의 해방투쟁에 있어서 그들을 방조하며 다음에는 그들이 자기 소원대로 자기 땅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스탈린의 이 말씀은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 벌써 실천되었다. 이 말씀이 조선에 있어서도 원만하게 실천되고 있다. (중략) 1945년 8월에 붉은군대는 조선 인민을 일본 침략가들의 압제에서 해방하고 그에게 자유와 독립을 찾아 주었다. (하략)

그들에게 역사는 무기다. 스탈린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 과거를 마음대로 조작했다. 오늘날 중국에게도 역사란 현재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일 뿐이다. 티베트와 신장의 역사를 중국의 것으로 포장하는 서남공정과 서북공정 그리고 고조선과 부여, 발해까지도 중국사로 편입하는 동북공정을 통해 사회주의자들의 역사무기화 전략을 절감하게 된다.

그나마 다행은 삐뚤어진 역사 인식을 완장처럼 여기며 진실을 왜곡해 온 파렴치한 좌익민족주의 사관의 밑천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20대 청년들이 깨어나고 있는 것은 특별히 고무적이다. 어쩌면 이것이 현 정권의 가장 큰 공이 아닐까 싶다.

/김은구·트루스포럼 대표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