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톈안먼 광장엔 공산당 공포 털어낸 진짜 중국 있었다”

2021년 06월 6일 오후 3:39 업데이트: 2021년 06월 6일 오후 3:39

미국의 대중 강경책을 설계한 중국계 미국인 정책자문이 톈안먼 운동의 의의를 “중국이 공산당의 공포를 잊고 의사 표현의 자유를 누렸던 시기”라고 평가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의 중국 정책 자문을 역임한 마일스 위(余茂春·위마오춘) 미 해군사관학교 교수는 톈안먼 사건 32주년을 앞둔 지난 2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1989년 톈안먼 사건은 인생관을 바꾼 사건”이라고 털어놨다.

위 교수는 재미 중국어 매체인 ‘차이나 뉴스 다이제스트(CND)’에 “1989년 톈안먼 사건 전까지 약 7주간의 시간이 있었다”며 “중국인들에게는 공산당이 들어선 이후 가장 자유롭고 두려움이 없었던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톈안먼 운동의 근간은 바로 자유다.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국민들은 거의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다”며 “한때나마 광장에서 학생과 지식인들이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을 할 수 있었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밝혔다.

위 교수에게 중국인들은 공산주의의 공포에 짓눌린 사람들이다.

그는 “중국인들은 중국에 머물 때는 물론 중국을 벗어난 뒤에도 유형·무형의 공포 속에 살고 있다. 걱정해야 할 게 너무 많다. 여권, 비자, 학교, 직장, 호적, 부모, 친척 등 모든 사물과 사람이 모두 공산당의 통제와 처벌에 노출돼 있다. 톈안먼 운동 때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위 교수는 또 “중국 공산당의 정치, 문화는 당연하고 단순한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고 했다.

예를 들면 오락 프로그램에서 그저 웃음을 위해 연출한 장면을 정권을 풍자했거나 혁명을 비하한 것으로 문제 삼아 처벌하고 규제를 확대하는 것이다. 중국이 외국 콘텐츠 베끼기에 열중하는 한 이유가 창의력을 억압받기 때문이라는 자조적인 분석도 나온다.

위 교수는 “톈안먼 광장에 나온 사람들은 공산당의 공포 통치로 절멸했던 인간성의 부활을 보여줬다”며 “이는 용감한 도전이었고 엄청난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의 정책자문이었던 그는 “처음 국무부에 들어갔을 때, 국무부 내부에서는 미중관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이념적 차원에서 검토하지 않으려는 관료들이 많았다”면서 이 때문에 고위 관리 수십 명이 참석하는 세미나를 여러 차례 개최했다고 했다.

위 교수는 “마르크스·레닌·마오쩌둥·시진핑의 글, 중국 공산당 내부 문서, 조지 캐넌(냉전 시기 ‘봉쇄정책’을 펼쳐 공산주의 확장을 적극적으로 저지했던 미 국무부 외교관)의 글 등을 교재로 삼아 열띤 토론을 펼쳤다. 그렇게 몇 차례 하고 나니 많은 사람들의 견해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즉, 중국 공산당의 모든 정책은 본질적으로 공산주의 강화·확대이라는 이념적 성격을 띠고 있는데, 미 국무부가 이념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고 대응하는 것은 본질을 놓친 대응에 그칠 수밖에 없었으며, 자신이 국무부에 들어간 후 이를 개선했다는 이야기다.

위 교수는 또한 트럼프 전 행정부 고위 관료들의 대중 인식 전환의 계기가 톈안먼 사태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 출발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중 관계에서 많은 경우 문제의 핵심은 정치적, 이념적인 것이며 미중은 많은 문제에서 물과 불처럼 서로 용납할 수 없다”고 한 폼페이오 장관의 반복된 연설을 언급하며 “중국 공산당과 중국인은 다르며, 중국의 정책이 공산당의 것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에 나온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미 국가안보보좌관 역시 공산주의·레닌주의·중국공산당의 이념이 미국에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이 역시 국무부 내부 인식 전환과 관련됐다”고 덧붙였다.

/류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