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기자회, ‘세계미디어 장악’ 꾀하는 中 언론통제 전술 파헤쳐

이혜영
2019년 03월 29일 오후 4:37 업데이트: 2020년 05월 4일 오후 5:04

국경없는기자회(RSF)가 ‘새로운 세계미디어 질서를 추구하는 중국’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징 당국은 특별히 미국의 정치와 기업에 영향을 끼치는 데 초점을 맞춰 전 세계의 언론을 통제하고 또 자국의 언론 통제 모델을 선전·수출까지 하고 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발표된 이 보고서는 ‘중국 언론 모델’을 세계로 수출하려는 공산 정권의 다양한 전술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기자회는 중국 공산당 체제 하의 언론인은 ‘국가 선전 보조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RSF는 베이징 당국이 세계의 미디어를 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중국 국영 미디어의 해외진출 확대 ▲국제 미디어 광고 대량 구입 ▲해외 언론인을 위한 중국에서의 무료 교육 세션 개최 ▲해외 언론인과 학계에 대한 협박과 괴롭힘 등이다.

글로벌 미디어 장악

베이징 당국이 세계 미디어 통제를 위해 쏟아붓는 금액은 연간 100억 위안(약 1조6800억 원)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시작된 이 투자로 인해 중국 관영 매체들은 전 세계에 현저하게 증가했다.

중국 국영 방송사 중앙(CC)TV의 자회사인 중국국제텔레비전(CGTN)이 미국 사법부의 요구로 처음으로 외국인 대리인으로 등록했다. 사진은 중앙CCTV 건물이다. | GOH CHAI HIN/AFP/Getty Images

RSF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국영 방송사 중앙(CC)TV의 자회사인 중국국제텔레비전(CGTN)은 현재 최소 140여 개 나라에서 방송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국영인 중국국제방송(CRI)은 전 세계 70여 개 이상의 나라에서 65개 언어로 방송되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 차이나데일리가 편집한 영자 선전보급 프로그램인 차이나워치는 현재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 데일리텔레그래프 등 전 세계 30여 개 일간지에 삽입돼 있다.

RSF의 세드릭 알비야니(Cédric Alviani) 동아시아 총국장은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베이징의 궁극적인 목적은 미국 정책 입안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는 익명의 미국 언론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주요 매체들이 차이나워치를 신문에 삽입하는 것으로 약 25만 달러(약 2억8000만 원)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계약은 결국 “베이징이 이러한 매체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준다”고 전했다. 즉, 차후 이 매체들이 중국 당국이 좋아하지 않는 내용을 게재할 경우, 그 보조금을 일시에 중단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알비야니는 “특히, 독자들이 중국 공산당의 선전용 보도가 이들 주요 매체에 의해 쓰였거나 승인된 것이라고 속을 수 있다”라고 언급하며 “언론의 자율과 독립에 큰 위협”이라고 말했다.

해외 중국어권 매체에 대한 협박

RSF는 또한 중국 공산당에 의해 조종당하는 해외 중국어권 매체에 대해서도 그 실태를 자세히 보도했다. 알비아니는 “요즘 미국에서는 중국 당국의 통제를 받지 않는 중국어 미디어는 거의 없다”고 말하며 에포크타임스와 자매지 NTD 그리고 뉴스 사이트 차이나 디지털 타임스를 몇 안 되는진정한 독립 언론으로 꼽았다.

2000년 중국어로 창간된 에포크타임스는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현재 23개 이상의 언어로 출판돼 35개국 이상에서 배포·판매되고 있다.

보고서는 중국 공산당에 저항하는 이러한 해외 언론과 언론인들은 협박이나 괴롭힘의 대상이 되거나 광고주들이 갑자기 광고를 중단하는 일을 겪는다며 에포크타임스를 겨냥한 두 건의 괴롭힘과 압박 사건을 인용했다.

2006년 에포크타임스의 최고기술책임자 리위안(Li Yuan)은 애틀랜타 교외 자택에서 괴한들에게 구타를 당했다. 중국 공작원들로 의심되는 이들은 그를 포박하고 테이프로 눈을 가린 뒤 노트북 컴퓨터 2대를 훔쳐갔다.

2017년 후반, 애플은 더 에포크타임스의 호주판과 독립적 중국어 매체인 비전 차이나 타임스에 광고를 중단했다. 베이징의 정치적 압력 때문이었다.

해외 언론 매체 회유

2018년 6월 10일 중국 산동성 청도에서 열린 상하이 협력기구 정상 회담에서 한 기자가 중국 지도자 시진핑의 방송화면을 자신의 휴대 전화를 사용해 생방송 영상을 송출하는 모습. | Wang Zhao/AFP/Getty Images

베이징은 전 세계 언론 매체의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6월, 베이징과 연계된 투자회사 H&H 그룹이 멕시코 라디오 방송국 XEWW 690을 사들였다.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둔 중국어 라디오 방송 사운드 오브 오리엔털 엔드 웨스트 헤리티지의 윈스턴 샤아(Winston Xia) 사장은 당시 XEWW가 캘리포니아 남부 대부분 지역으로 방송되는 것을 감안할 때 “중국은 XEWW를 통해 미국 공중파에 대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이징은 또한 외국 기자들을 중국의 세미나에 참석시키기 위해 모든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는 호화로운 연수를 제공하고 있다. 잠비아, 그레나다, 케냐, 터키, 이집트, 파키스탄과 같은 나라 출신의 언론인들은 이 중국 세미나에 모두 참석했다. 이중에는 매월 5000위안(약 845만 원)의 월급을 받는 외국 기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언론인을 극진히 대접하는 이벤트 이면에는 베이징 당국의 교활한 ‘속셈’이 도사리고 있다.

보고서는 “언론인들은 ‘중국에 대해 우호적인 보도를 할 것’을 약속해야 하며 심지어 권위주의적 정권을 민주주의와 국제 평화 중재자로 묘사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체제 선전기구 지도자들에게 “중국의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중국의 목소리를 적절히 전파하라”고 거듭 지시했다고 한다.

언론 통제 모델 수출

시진핑의 중국은 모든 면에서 점점 전체주의화 되어가고 있다. 보고서는 “시진핑은 전례 없는 수준의 검열과 감시를 위해 새로운 기술을 동원하고 있다”라며 “(게다가) 중국 공산당은 정보 검열 시스템, 인터넷 감시 체계를 세계로 수출까지 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의 욕망은 아시아에서 여러 추종자를 낳고 있다”며 중국의 추락하는 언론의 자유와 그 유해한 파급에 대해 지적했다.

RSF의 지난해 12월 발표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언론자유 지수에서 전체 180개 국가 중 176위에 머물렀다. 중국의 뒤에는 북한, 투르크메니스탄, 시리아, 에리트리아가 있을 뿐이다. 또한 2018년 교도소에 수감된 언론인 348명 중 절반 이상이 중국·이란·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터키 등 5개 국가에 붙잡혀 있다. 특히 중국은 60명의 언론인을 억류하고 있다.

언론자유 지수가 꼴찌에 이르고 있지만, 중국 공산당는 오히려 자신들의 검색엔진인 바이두와 인스턴트 메시지 플랫폼 위챗 등 인터넷 상의 감시 도구가 될 수 있는 수단을 해외로 수출 중이다. 권위주의 국가들이 중국 공산당처럼 권위주의적인 규제를 하도록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는 동남아시아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면밀하고 추가적인 조사 필요

알비야니는 각국 정부와 언론인은 중국 공산당이 외국 자유 언론을 간섭하는 것에 대한 면밀하고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국가들이 자신들의 언론 속에 침투한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을 깨닫고 위험을 감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다소 순진했고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며 이제 중국 공산당을 경계하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세계 언론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지배는 훨씬 광범위하다고 말하며 그것은 ‘새로운 세계 미디어 질서’라고 평가했다. “중국의 언론 통제 방식이 20년 또는 30년 안에 전 세계의 지배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우려가 기우에 그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