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아름다움을 위한 용기 : ‘용기, 불안, 그리고 절망. 전투를 지켜보다’

류시화
2022년 12월 9일 오후 1:21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5:32

서양 미술사에서 계속 다뤄진 주제 중 하나인 ‘미의 세 여신’, 즉 3미신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세 명의 여신을 의미합니다. 각각 정결, 아름다움, 사랑을 의미하는 이 여신들은 많은 예술작품과 그리스 신화 속에서 사랑과 아름다움의 신이자 우리에게는 ‘비너스’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아프로디테와 동행하며 아름다움의 상징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3미신은 사랑과 아름다움에 관한 문제들을 다뤘지만, 인간계는 그와 반대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제임스 산트의 그림 ‘용기, 불안, 그리고 절망 : 전투를 지켜보다’는 그 세 가지에 대한 작품입니다.

영국의 화가 제임스 산트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했습니다. 주로 초상화를 그렸던 그는 50세가 될 무렵 빅토리아 여왕과 왕실의 공식 초상화가로 임명되었습니다. 94세까지 왕립 아카데미 소속으로 약 250개의 작품을 그린 그는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용기, 불안, 그리고 절망 : 전투를 지켜보다’

산트의 그림 ‘용기, 불안 그리고 절망 : 전투를 지켜보다’는 큰 바위 뒤에 숨어있는 세 명의 여성을 그린 작품입니다.

그림 속에서 가장 왼쪽의 여성은 ‘용기’입니다. 그녀는 다급히 몸을 앞으로 내밀고 우리에겐 보이지 않는 전투의 현장을 집중해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칼이 쥐어져 있습니다.

그녀의 목에는 가리비 껍데기로 만든 목걸이가 걸려있습니다. 이는 그리스 신화 속 아프로디테는 바다에서 태어나 가리비 껍데기에 실려 나왔기에 그녀와 아프로디테가 연관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가리비 껍데기는 기독교에서 세례 의식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구원’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용기’는 한쪽 팔로 그림 속 가장 오른편에 위치한 여성, ‘절망’을 먼 곳으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절망은 눈을 감은 채 슬픈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다른 두 여인이 전투 현장을 지켜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절망의 몸은 그 현장과 먼 방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용기와 절망 사이에는 짙은 어둠에 몸을 숨긴 불안이 있습니다. 바위 뒤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전투 현장을 지켜보는 그녀는 살짝 벌어진 입술 틈 사이에서 근심의 말이 새어 나올까 봐 자신을 진정시키듯 손으로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투 현장을 볼 수 없습니다. 이 세 여성이 무엇을 지켜보며 걱정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전투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전투를 지켜보고 거기에 대응하는 우리의 반응입니다.

산트가 의도적으로 그림 속에서 전투에 대한 묘사를 뺀 것은 그림을 보는 이로 하여금 각자가 살아가며 처한 ‘전투’의 상황을 그림 속 전투에 대입해 용기가 필요하거나 불안과 절망을 야기하는 것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절망은 다가올 전투를 이길 의지 없이 패배를 받아들이며 체념한 듯 눈을 감아버립니다. 불안은 전투를 두려워하며 그저 지켜만 볼 뿐 뒤로 물러나며 입술을 달싹거립니다.

불안과 절망. 이 둘이 앞장서면 전투는 시작하지도 못한 채 무기력하게 상대를 받아들이고 패배하게 됩니다. 그러나 용기는 전투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한 신념과 굳은 의지로 한 손에 무기를 꼭 쥐고 전투 현장을 주의 깊게 바라봅니다.

‘용기’, 그녀의 목걸이 : 구원, 사랑, 그리고 아름다움

용기의 목에 걸린 목걸이는 3미신의 정결과 사랑,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동시에 앞의 세 가지 가치를 따라 도덕적인 삶을 유지할 때 함께 올 ‘구원’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용기는 절망을 멀리 뒤편으로 밀어 넣고, 불안을 그늘 속에 머물게 합니다. 그리고 전선에서 전투를 지켜보며 숨을 고르며 언제든 싸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우리 내면과 바깥에서 일어나는 모든 전투에서 도덕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맞서 싸울 용기를 의미합니다.

생전에 수많은 작품을 남긴 제임스 산트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아름다움과 사랑의 가치와, 옳지 않음에 맞서 싸우며 도덕적 가치를 따를 수 있는 ‘용기’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