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배제 위기’ 몰린 中, 네덜란드 찾아가 “소통·협력”

강우찬
2023년 05월 14일 오전 11:12 업데이트: 2023년 05월 14일 오전 11:15

미국의 반도체 고사작전으로 위기에 처한 중국이 네덜란드에 구조를 요청했다.

중국 부주석 한정(韓正)은 10~12일(현지시간) 네덜란드를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미국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에 동참하지 말 것을 우회적으로 촉구했다.

13일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한정 부주석은 네덜란드 방문 기간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만나 ‘공급망 안정’을 강조했다.

한 부주석은 “근년 들어 중국과 네덜란드 양측은 상호 존중과 신뢰의 정신에 입각해, 협력으로 도전에 대응하고 전 세계 산업망과 공급망 안전을 공동으로 확보하는 등 양국과 세계 경제에 공헌했다”고 말했다.

또한 “중국 측은 네덜란드 측과 광범위하게 소통하고 신뢰를 서로 공고히 하며, 공동으로 새로운 정세하에서 어떻게 협력할지를 탐색하기 원한다”고 전했다.

한 부주석은 ‘새로운 정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설명하진 않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 반도체 고사작전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중국을 상대로 반도체 분야 생산장비와 소프트웨어 수출을 제한하고 있으며, 동맹국 등에도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반도체 생산장비 강국인 일본과 네덜란드는 수출 통제에 동참하겠다는 약속을 미국에 전달한 바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실제로 2019년 자국의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인 ASML에 최첨단 EUV 노광장비의 대중 수출을 금지했다. 최첨단 반도체 생산의 싹을 자른 셈이다.

이어 올해 3월 네덜란드 대외무역개발부는 “특정 반도체 생산 장비에 대한 기존 수출 통제 규정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정 반도체 생산 장비’는 노광장비를, ‘기존 수출 통제’는 대중 수출 규제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네덜란드는 이전 세대인 심자외선(DUV) 노광장비에 대해서는 대중 수출을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마저도 앞으로는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대중국 디커플링 요구를 수용하려는 움직임으로도 해석된다.

중국 공산당은 이같은 네덜란드의 행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지난 3월 네덜란드 대외무역부 발표 직후,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을 통해 “네덜란드가 행정 수단으로 (자국 기업과) 중국 기업과의 정상적인 무역 왕래를 제한하고 간섭하는 것에 대해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강경한 어조를 동원해 반대할 만큼 타격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 것이다.

한 부주석은 이번 네덜란드 총리와 회담에서 중국 경제의 회복세를 강조하기도 했다.

한 부주석은 “현재 중국 경제의 안정적인 회복세는 예상치를 상회하고 있으며, 이는 글로벌 경기 회복에 반드시 조력하게 될 것이고, 중국과 네덜란드의 실질적 협력에 더 광활한 공간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경제의 회복세에 대해서는 평가와 전망이 엇갈린다.

올해 4월 초 중국 공산당 관영 경제연구소인 중국은행연구원은 1분기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4.1% 안팎으로 추산했다. 2분기 중국 국내 소비 회복을 기반으로 제조업 성장, 부동산 안정, 수출 반등을 전망했다.

게다가 4월 중순,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실제 성장률은 이보다 높은 4.5%로 시장을 흥분시켰다.

하지만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의 경제회복이 불균형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청년 실업률은 사상 최고치에 육박했으며 올해 5~6월에는 사상 최대규모인 1158만명의 대졸자가 취업전선에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 투자도 위축됐고, 중국의 민간투자는 1분기 전년동기대비 0.6% 증가에 그쳐 2년 만에 가장 느린 속도를 나타냈다. 베이징 당국의 민간기업 규제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국문제 전문가 리닝은 “미국의 압력 속에서 동맹을 찾아가 중국 경제의 매력을 어필하고, 소통과 협력을 호소한 한정 부주석의 모습은 전형적인 통일전선 공작 행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