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의 굴기 원인을 말하다

2016년 10월 25일 오전 10:22 업데이트: 2019년 11월 11일 오후 2:51

1971년 어느 날, 독일 뮌헨에 거주하는 폴 운슐트 씨의 아파트 단지 도어벨이 울렸다. 문을 연 운슐트 씨는 한 젊은 남성과 마주쳤다. 남성은 간단한 영어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CIA(미국 중앙정보국)에서 나온 제임스 퀸이라고 합니다. 침술의 군사적 활용에 대해 알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폴 운슐트 씨는 서양 학자로서는 드물게 체계적으로 그리고 진지한 태도로 중국 전통 의학을 연구한 독일 학자다. 중국 문명에 관한 그의 설명은 단순히 현대 의학 속에서 중의학의 역할을 설명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고대 중국의 위대한 중의학 저서를 원문 그대로 꼼꼼하게 번역했는데, 그 번역의 엄밀성은 한학자(漢學者)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운슐트 박사가 소장하고 있는 친필 중의학 원고 1,100개 속에 포함된 4만 여개의 처방은 중의학이 약초를 통해 질병을 치료하는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문헌이다. 이들 문서 및 그가 수집해온 우수한 중국 의학자들의 조각상은 모두 독일에 현재 건설 중인 비(非)유럽문화 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운슐트 박사의 집념과 직설적인 태도, 그리고 중의학에 대한 독자적인 견해는 종종 서양 과학계에서 논쟁과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사람들은 중의학을 단지 산업화와 서양의학 보급 이후 대두된 대안적 치료방법으로만 여긴다. 또한 어떤 이들은 중의학이 가끔 효과를 나타내더라도 이는 다만 플라시보 효과로 인한 것이거나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두 종류의 의견에 대해 운슐트 박사는 모두 직설적으로 반박해왔다.

지난 28년간 중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저작인 <황제내경>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진력해온 운슐트 박사는 최근 그 중 주요 내용 세 가지를 완성, 캘리포니아대 출판사에서 출판할 예정이다.

다수 서양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는 중의학 교과서와 달리, 운슐트 박사의 영문 번역은 ‘에너지’ 같은 현대의학 용어나 ‘병원체’ 같이 자주 사용되는 서양의학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운슐트 박사는 이러한 용어를 사용할 경우 고대 중국의 중의들과 그들의 세계관을 공정하게 전달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천여 년의 역사를 가진 중의학에 대한 그의 존경심과, 원문에 충실하기 위한 영문 번역어들은 비록 무척 선구적이기는 하지만 서양 과학을 신봉하는 업계 종사자들에게 있어서는 읽기가 쉽지 않다.

중의학을 가르치는 중의사인 로젠버그는 이렇게 말한다. “운슐트 박사는 초심자들을 겁먹도록 합니다. ‘학습자들은 중의학 원전에 나오는 용어를 이해해야만 한다’고 책에 쓰고 있으니까요.”

운슐트 박사에 따르면 중의학이 서양에서 관심을 받게 된 경위는 냉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1971년인데, 당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제임스 레스턴은 자신이 중국 체류 중 급성 맹장염에 걸린 후 침술과 쑥으로 치료받은 이야기를 보도했다.

당시는 마침 미국이 중국과 관계를 유화하고자 시도하던 시점이자 중국 측이 대외 개방 의사를 가지고 있던 시점이었다. 외부 세계와 중국 간의 접촉이 갈수록 빈번해짐에 따라 중의학 역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고, 서양 국가들에서는 중의학을 가르치는 과정이 개설되었으며 동양에서 온 중의학 서적들이 다수 영역되어 출판됐다.

운슐트 박사는 의학자 집안 출신으로, 그의 가족들은 증조부 대에서부터 모두 의학 분야에 종사해왔다. 젊은 시절 그는 뮌헨에서 약학과 중문학 분야 학위를 취득하는 한편 아내를 만나게 됐다. 1년간 중국어를 배울 요량으로 1969년 아내와 함께 대만으로 건너갔으나 그 곳에서 중의사들을 다수 만나게 됐다.

이 시절의 경험은 그가 박사 논문을 완성하고 중의학 전문가가 되는 데 도움이 됐다. 이후 20년간 그는 뮌헨 대학에서 의학역사연구소를 이끌었다.

중국 정부는 순수 학술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운슐트 박사를 곱게 보지 않는다. 그의 중의학 지식 및 중의학 서적을 영문으로 번역하는 능력은 널리 인정받고 있지만, 중의학을 중국의 소프트 파워로 홍보하려는 중국 정부에 협력하기를 꺼렸기 때문이다.

대륙에서 출판한 중의학 번역서적들이 “완전히 사기”라며 비난하는 그는 이들 서적의 편역자들이 오직 정치적 목적만 염두에 두고 성의없이 번역했다고 말한다.

운슐트 박사에게 있어서 보다 의미 있는 것은 중의학 이론을 사용해 중국인의 정신세계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황제(黃帝)’ 같은 중국 역사상의 유명 인물들은 중국인의 뿌리 깊은 실용주의 정신을 보여 준다. 질병과 마음 간에 관계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  2천여 년 전 중국 서적들은 ‘질병에 걸리는 것은 자신의 행위 때문이며, 치료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르네상스 운동과 무척 닮아 있습니다.” 운슐트 박사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중국에는 ‘내 운명은 나에게 달려 있지 하늘에 달린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의학과 정치가 서로 유사성을 띠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타인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책망하는 것이 그것이지요. ‘내가 뭘 잘못했을까?’ ‘내가 이렇게 쉽게 공격당한 것은 왜일까?’

‘어떻게 해야 할까?’ 등의 반성적 사고는 (고대) 중국이 굴기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