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말로 발언권을 쟁취하라’ 中 늑대전사 외교 내러티브

2021년 05월 22일 오후 1:39 업데이트: 2021년 05월 22일 오후 3:38

중국 공산정권은 일반적인 외교 상식을 벗어난 전랑(늑대전사) 외교로 각국의 반발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에서 발언권을 얻기 위한 목적이다. 거칠고 사나운 언행으로 시선을 끌면서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며 미국에 반발하는 세력들을 규합하려 시도한다.

이와 함께 중국 공산당은 서방에서 유래된 어휘들을 재정의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내러티브를 써 내려가고 있다. ‘인류 운명공동체’ ‘중국 특색의 대국외교’ 등이 그것이다.

국방대학원의 류동원 교수는 2018년 ‘중국의 외교 내러티브 연구’ 논문에서 “중국이 강대국 역할에 적합한 자신의 전략적 내러티브(Strategic Narrative) 혹은 이야기(story)를 형성해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가치관’과 ‘이익’을 투사함으로써 ‘영향력’을 유지·확대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현재 중국이 어휘 재정의를 통해 전략적 내러티브를 강화하려는 주요 무대 중 한 곳은 세계연합(UN) 산하 국제기구들이다.

중국은 UN 기구들을 하나하나 장악해나가며 미국·유럽에 맞서 ‘인권’ ‘민주’ ‘국제질서’ 분야에서 어휘를 재정의하며 치열한 발언권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UN 기구들이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세워진 것을 생각하면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민주, 인권 등의 어휘는 서방 정치 시스템에서 기원했다. 선전 공작을 모든 정치 공세의 최우선 과제로 삼는 중국 공산당은 이러한 단어에 대해서 시기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발언하곤 했다.

1990년대 초 중국 공산당은 “생존권과 발전권이 제일 중요한 인권”이라고 주장했다.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는 인권을 제쳐놓겠다는 주장을 “생존권이 인권”이라는 말로 포장한 구호에 서방 지식인들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이러한 구호는 중국 공산당이 참혹한 인권사를 세탁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중국 공산당은 1949년 정권 수립 후 지금까지 아프리카와 동남아 등 제3세계 국가들의 고위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매수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이들 국가는 하나하나로 따지면 영향력이 없지만 UN에서 주요 표결에 있어 중국에 지지표를 던질 수 있다.

중국은 2001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WTO에 가입하면서 경제적 역량이 많이 증가했다. 이때부터 제3세계 국가들 상당수가 중국 공산당을 추종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중국은 지속해서 친중 국가의 인사들을 UN 각 기구 고위직에 앉히는 노력을 기울였고 정치적·경제적 역량을 이용해 여러 국가를 압박했다. UN 인권이사회는 오랜 기간 공산주의 중국의 인권 상황을 비난하는 안건을 채택하지 않았다.

‘인권’ 개념 바꾸기로 발언권 확대

“생존·발전권이 인권”이라던 중국 공산당의 주장에 변화 기류가 포착된 것은 2017년이다.

중국 공산당은 세계 각국은 “독립된 인권”을 가지고 있다며 “세계 모든 곳에 들어맞는 기준이 없으며, 각국 인권 발전 노선은 하나만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과거 인권 문제에 대해 변명하는 방어적 입장에서 ‘중국의 인권은 다른 국가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식의 공세적 태도로 전환한 것이다.

중국은 3년 뒤인 2020년 3월 UN 인권 조사관 선발 권한을 지닌 UN 인권이사회의 핵심 자문위원회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같은 해 코로나19(중국 공산당 바이러스 감염증)가 확산되자 중국은 공산주의 시스템 특유의 인권을 무시하는 통제 방식이 바이러스 확산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선전 공세를 펼쳤다.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중국의 인권 억압은 더 노골화됐다.

인권의 개념을 “국가마다 다르다” “중국의 인권 개념은 전염병 예방에 효과적이었다”며 재정의한 중국 공산당은 이제 ‘인권’이라는 단어를 서구 진영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작년 9월 시진핑 중국 주석은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EU 순회 의장국인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가진 화상 정상회의에서 인권 문제를 지적받자 “내정 간섭에 반대한다”며 “중국은 인권교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이중 잣대에도 반대한다”고 반론을 펼쳤다.

시 주석이 말한 ‘이중 잣대’는 자국 인권은 살피지 않고 상대방 인권을 비난한다는 의미다. 중국의 열악한 인권상황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실인데도 시 주석은 오히려 3명의 EU 정상을 향해 “당신들 인권이나 살펴라”라고 응수한 것이다.

올해 3월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첫 미·중 양국 고위급 회담에서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 양제츠는 ‘블랙라이브스매터’(BLM·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을 언급하며 미국의 인권 상황을 비난했다.

양제츠는 “미국이 인권 부분에서 직면한 도전은 그 뿌리가 깊다”며 “미국이 인권 문제에서 더욱 훌륭한 자세를 보여주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양제츠가 지적한 미국의 인권 문제는 인종차별 문제다. 인종차별은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에 기인하는 것으로, 홍콩, 신장, 티베트, 파룬궁 등 중국 공산당이 정권 차원에서 가하는 인권 문제와는 그 성질과 차원이 다르다.

미국에서 흑인이나 아시아계에 대해 부당한 시선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 신장에서처럼 대규모 강제노역소에 가두거나 불임시술을 하거나 재산을 몰수하고 직장과 학교에서 쫓아내며 심지어 강제 장기 적출을 하는 수준은 아니다.

중국 공산당이 말하는 민주(주의) 역시 일반적인 국가에서의 민주와는 크게 다르다. 중국 공산당의 민주는 중국 특색의 민주로서 공산당의 통치와 강압하에서 이뤄지는 민주주의를 뜻한다. 북한의 정식 국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 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중국 공산당은 어휘의 개념을 자신의 처지에 유리하도록 지속해서 재정의하면서 발언권을 확대하는 전술을 펼치고 있다.

중국의 외교적 공세에 기능 상실한 UN 인권이사회

중국 공산당의 발언권 확대 전술에는 아프리카나 중남미의 중국 우방들의 지원도 포함된다.

최근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은 중공이 신장 위구르에서 ‘종족말살’을 자행하고 있다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지난 3월 UN 인권이사회 제46회 회의에서 쿠바는 64개국을 대표하는 공동성명을 통해 중국의 인권 성과를 높게 평가하며 “서방이 인권 문제를 가지고 중국의 내정에 간섭한다”고 비난했다. ‘인권 문제 비난은 내정간섭’이라는 중국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이다.

UN 헌장 등 국제협약에서는 인권 문제를 한 국가의 내정 이상의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UN 헌장에서는 “전 세계 인류의 인권 및 기본 자유에 대한 보편적 존중과 준수는 인종, 성별, 언어, 종교를 가리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모든 가입국에 이에 대한 준수를 요구한다.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 등 국제인권 협약에서는 국제사회가 인권 침해 문제에 적합한 행동을 취할 권리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즉, 인권 침해 문제에 관해서는 타국의 내정에 간섭할 수 있다는 게 UN 헌장과 국제협약에 담긴 생각이다.

따라서 쿠바 등 64개국이 내놓은 성명은 UN 헌장의 정신에 위배된다. 이 같은 주장이 공공연하게 제시되는 상황은 이미 UN 인권이사회가 원래 구상된 기능을 잃었음을 시사한다.

트럼프 정부가 2018년 UN 인권이사회에서 탈퇴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펜스 미국 부통령은 “수년간 UN 인권 이사회는 반미주의와 반이스라엘주의에 기반해 악독한 욕설을 해왔다”고 말했다.

중국이 욕설보다 더 즐겨 사용하는 수법은 언어를 이용한 기만이다.

지난 3월 신장 선전부 부부장은 신장 지역에서의 강압적 정책을 “테러 및 극단화 예방을 위한 작업”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4년간 폭력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자평했다. 백만 명 이상을 수용시설에 잡아 가둬 가혹행위를 가한 사실을 정당화하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늑대전사 외교로 불거진 중국에 대한 반감과 경계심은 국제사회를 행동에 나서게 만드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

같은 달 미국과 영국, EU, 캐나다는 신장 인권탄압에 연루된 중국 관리와 기업을 제재했다. 특히 EU는 톈안먼 사태 이후 32년 만에 처음 중국 관리들을 제재하며 이번 사안을 가볍게 보지 않고 있음을 시사했다.

중국은 유럽의회 의원들과 EU 관리, 학자들에 대한 중국 입국을 금지하는 제재를 가하며 보복했지만, 유럽의회 의원들은 ‘EU-중국 포괄적 투자협정’ 동결이라는 강력한 조치로 한발 더 앞으로 나서며 대중 압박 수위를 높였다.

중국이 늑대전사 외교로 발언권을 쟁취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늘어난 발언권만큼이나 국제적 고립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한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