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달라” 네덜란드 지자체, 中과 자매결연 줄줄이 취소

한동훈
2023년 05월 15일 오후 8:17 업데이트: 2023년 05월 15일 오후 8:34

2년간 8개 도시, 2개주 중국과 관계 끊어
전문가 “네덜란드-중국 간 디커플링 신호”
“자매결연·우호도시…통일전선 공작 수단”

중국이 반도체 장비 강국 네덜란드의 탈중국 행보를 저지하려 애쓰는 가운데, 네덜란드 지방자체단체들이 중국과 맺었던 자매결연을 줄줄이 종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는 지정학적 상황 변화, 양국 간 가치관 차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제적 효과 등에 따른 것으로 네덜란드와 공산 중국 간 디커플링(decoupling·관계단절)의 징후라고 보고 있다.

자매결연, 우호도시 체결이 통일전선 공작의 주된 수단이라는 점에서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 침투 전략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네덜란드 일간 NRC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최소 8개 시(市) 단위 지방자치단체와 2개 주가 중국과 맺은 자매결연 및 우호도시 협약을 중단하고 관계 단절을 천명했다.

신문은 또한 다수의 네덜란드 지자체들이 중국과의 관계 청산을 검토 중이며, 단절을 선언하진 않더라도 더 이상 협력사업을 진행하지 않는 등 관계를 유명무실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뉴스는 중국 한정 부주석의 네덜란드 방문(11~13일)을 불과 나흘 앞두고 터져나왔으며, NL 타임스 등 다수 현지 언론에 인용 보도됐다.

일본과 함께 반도체 생산장비 강국인 네덜란드와의 협력은 중국 반도체 산업의 사활이 걸린 사안이다. 한정 부주석은 네덜란드의 협력 약속을 이끌어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방문했으나, 현지 언론이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네덜란드 지자체들은 중국 도시와의 관계 단절 이유로 중국 공산당의 인권탄압을 꼽고 있다.

남서부 노르트브라반트주의 브레다(Breda)는 지난 3월 중국 장쑤성 양저우시와 유지했던 13년간의 우호도시 관계를 종료했다.

이웃 도시인 틸뷔르흐(Tilburg) 역시 장쑤성 창저우시와 26년간 유지해온 우호도시 협약을 끝냈다.

거스 히딩크 감독과 박지성 선수의 친정 구단으로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축구팀 PSV 아인트호벤(에인트호벤)의 연고지인 아인트호벤도 지난해 11월 말 난징시와 1985년 체결한 자매결연을 끝냈다.

네덜란드에서는 중국 신장 지역 위구르족 100만 명 이상이 수용소에 갇혀 탄압받고 있다는 2018년 유엔 보고서 발표 이후 관계 단절이 시작됐다.

아인트호벤 시의회 의원들은 지난해 정파를 초월해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소수민족을 상대로 대량 학살을 자행하는 정부의 도시와 우정을 나눈다는 것은 비도덕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녹색좌파정당의 닐스 투르노이 의원은 “난징시와의 관계 단절은 아인트호벤의 시의원으로서 대량 학살에 맞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며 “인권이 존중되지 않는다면 그에 걸맞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21년 우한시와 우호도시 관계를 끝낸 네덜란드 아넘시의 아메드 마르쿠치 시장은 “우리는 민주·법치 원칙, 언론·표현의 자유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며 “중국 도시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이런 원칙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적 이익이 예상에 미치지 못해 관계를 끊기로 했다는 도시들도 있었다. 네덜란드 베이르트와 카펠레 안 덴 에이솔시는 중국과의 관계가 시에 거의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관계 연구기관인 클링헨달 연구소(Clingendael Institute)의 중국문제 전문가 티스 담스 연구원은 “자매도시 관계 종료는 서방과 중국 간의 큰 변화의 작은 사례”라며 “이는 디커플링 신호”라고 말했다.

담스 연구원은 네덜란드 지자체들은 자매도시 체결을 통해 지역의 기업가들에게 중국과의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하려 했고, 중국은 지정학적 이점을 노렸다”며 “자매도시 체결은 중국의 목표에 기여하고 더 많은 정보, 기술, 지식을 얻는 데 사용됐다”고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우호도시 체결은 지자체 차원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중국은 더 높은 상위기관에서 조직적으로 우호도시 체결을 추진하고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은 지난 2020년 9월 위스콘신 주의회 연설을 통해 “미 국무부는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의 2대 조직 활동을 추적하고 있다”며 해당 조직으로 ‘중국평화통일촉진회’와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를 지목했다.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는 중국의 대표적 민간외교기구로 알려져 있으나, 폼페이오 장관은 통일전선 기관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 협회는 2년마다 국제우호도시대회를 공동주최해 중국 지방정부들이 한국, 일본을 포함한 세계 각국과 활발한 교류를 맺도록 장려하고 있다.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은 “마오쩌둥은 3대 마법병기로 통일전선, 무장투쟁, 당조직 건설을 제시했다”며 지방의회 의원들과 지방정부 관리들에게 자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최전선에 서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