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환경조사서에 ‘부모 직업·이혼 여부·기초생활수급자’ 항목 넣었다가 사과한 선생님들

이서현
2020년 06월 5일 오후 5:29 업데이트: 2022년 12월 14일 오후 3:22

경기도 평택의 한 여자중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세세한 가정사를 묻는 조사서를 배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4일 교육계에 따르면 평택 A여중 2학년생은 지난 3일 첫 등교 후 담임 교사에게 ‘학생기초자료 조사서’를 받았다.

조사서 내용 중 ‘지금 저희 집의 경제적 형편은 이렇습니다’라는 항목에는 기초생활 대상자인지, 부모가 이혼이나 별거를 했는지 등을 솔직히 적어달라는 설명이 첨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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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 질문으로 ‘가정의 경제수입은 누가 해 오시는지?’라는 내용도 추가됐다.

또 ‘부모님을 소개합니다’ 항목에는 부모의 직업을 적는 칸과 함께 ‘부모님이 안 계시는 경우 안 계심, 돌아가심, 이혼 등으로 써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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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교육지원청이 이날 오전 해당 학교를 현장 조사한 결과 2학년 10개 반 중 4개 반에서 이와 유사한 조사서가 학생들에게 배부됐다.

문제가 된 조사서는 학교 차원에서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평택교육청 관계자는 “새로 부임한 담임 교사가 학생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의도에서 전에 가지고 있던 문서를 프린트해 배부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다른 3개반 교사들 역시 해당 교사가 이런 조사를 하자 문서를 전달받아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반은 학교에서 사용하는 공통 양식의 간략한 조사서를 이용해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조사서 내용이 문제가 되자 4개반 담임은 곧바로 학생들에게 사과했다.

학부모에게도 문자메시지를 통해 사과한 뒤 배부한 조사서는 가정에서 폐기해달라고 안내했다.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담당은 “학생 입장에선 이런 조사서를 작성하는 것 자체에서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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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환경조사서는 학생지도와 장학금 지급 등을 위해 매년 학기 초에 실시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인권침해 가능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해와 올해 3월 일선 학교에 부모의 수입과 직위 등 인권침해 가능성이 있는 조사항목을 삭제할 것을 권고하는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학교장 재량 사항이라 권고는 할 수 있어도 강제적으로 규제할 수 없다.

문제가 된 A여중의 가정환경조사서를 두고 누리꾼들의 의견은 팽팽히 갈렸다.

찬성하는 누리꾼들은 “당연히 알고 있어야 각종 혜택 필요할 때 받을 수 있도록 신경 써 줄 수 있다” “나중에 사고 나면 담임은 그것도 모르고 뭘 했냐는 소리 들어요” “내용상 좀 무리한 부분이 있지만 알아두면 훨씬 도움이 된다” “손드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나눠주고 받는 것도 문제인가” 등의 의견을 냈다.

반면 일부 누리꾼은 “부모 학력이나 재력이 애들 학교 다니는데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기초는 안 물어 봐도 다 아는데 담임이 굳이 학생편으로 조사할 이유는 없지” “벌써 상처 받은 애들 있을 텐데” 등의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