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5년간 기술유출 83건, 첨단기술 보호 대책 마련 시급

이연재
2022년 08월 31일 오전 6:33 업데이트: 2022년 08월 31일 오전 10:16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 간의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반도체 등 첨단기술의 해외유출 위험이 커지고 있어 우리나라도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30일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국가정보원, 특허청과 함께  ‘경제안보 시대, 첨단기술 보호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좌)과 이인실 특허청장(우) | 에포크타임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 개회사에서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등 첨단산업의 약진으로 무역 규모 8위의 강국이 됐다”며 “민간기업의 연구개발비가 연간 73조 6천억 원에 이르는 만큼 기술과 인재가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보호조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첨단기술 보호는 기술 혁신의 전제조건이자 경제안보의 토대”라고 강조했다.

이인실 특허청장은 “첨단기술 보호는 국가의 명운이 걸린 중요한 가치”라며 “기술 보호의 핵심부처로서 (특허청은)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더욱 정교하고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특허청장은 정부의 기술 유출 지원사업으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핵심 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영업비밀 보호 제도 지원 ▲국가 핵심 연구 분야의 기술 유출 사전 예방 ▲기술 유출 대응을 위한 법률자문 및 컨설팅 등을 제시했다. 이어 “기술 유출 방지는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야만 성과를 낼 수 있는 만큼 두 분야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첨단기술 해외 유출, 반도체·전기전자·디스플레이 등에 집중

국가정보원 산하 산업기밀보호센터(이하 국정원)는 이날 세미나에서 ‘경쟁국의 기술 탈취 실태 및 대응 방안’을 주제로 첨단기술의 해외 유출 현황을 소개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 7월까지 적발된 첨단기술 해외 유출 건수는 모두 83건으로 이 중 33건(39.8%)은 국가안보와 국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 핵심기술 유출 사례였다.

피해 집단별로는 중소기업이 44건으로 가장 많았고 대기업(31건)과 대학·연구소(8건)가 뒤를 이었다. 특히 피해 분야를 보면 반도체·전기전자·디스플레이·자동차·조선·정보통신 등 한국의 주력사업(69건)에 피해가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국정원은 경쟁국의 기술 탈취 수법으로 ▲ 핵심 인력 매수 ▲ 인수합병 활용 ▲ 협력업체 활용 ▲ 리서치 업체를 통한 기술정보 대행 수집 ▲ 공동연구를 가장한 기술 유출 ▲ 인허가 조건부 자료 제출 요구 등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된 기술 탈취 수법은 사람과 기술을 함께 빼돌리는 수법이 가장 흔했다. 경쟁국 기업이 겉으로는 동종업계라고 보이지 않는 회사에 채용하는 형식으로 동종업계 이직 금지 제도를 피해가기도 했다. 보안이 비교적 탄탄한 대기업보다는 핵심 협력사를 통해 기술을 탈취하려는 시도도 다수였다.

미국 내 한국 기업과 외국기업의 특허소송, 2020년 대비 약 33.7% 증가 

전국경제인연합회 제공

김일규 특허청 산업기술보호정책과장은 ‘국내 영업비밀 보호 제도 및 지원 시책’ 제목의 발표를 통해 기술보호를 위해 알아야 하는 영업비밀보호 제도와 침해 발생 시 대응방법, 정부의 지원 시책 등을 소개했다.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내 우리나라 기업과 외국 기업의 특허소송은 총 250건으로 2020년 187건 대비 약 33.7% 증가했다.

김일규 특허청 산업기술보호정책과장이 ‘국내 영업비밀 보호 제도 및 지원 시책’ 이란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에포크타임스

이 중 제조시설 등이 없이 특허소송으로만 수익을 올리는 특허소송 전문기업(NPE)의 공격이 149건(59.6%)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NPE 특허 공격은 2020년부터 2년 연속 증가 추세며, 피소 기업의 대부분은 대기업이었다.

김 과장은 악의적인 특허 공격 및 특허 소송 과정에서 이뤄지는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영업비밀 관리시스템 보급 ▲영업비밀 원본증명 서비스 ▲관리체계 컨설팅 ▲유출 분쟁 법률자문 ▲디지털 포렌식(유출 대응) 및 증거보존(예방) 등 각종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유출 막기 위해 “법·제도 강화 시급”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민간‧학계‧정부 전문가들이 참여해 ▲기술보호를 위한 사전 예방의 중요성 ▲지능화되고 있는 기술 유출 기법에 대응하기 위한 보호체계 개선방안 ▲기술 유출 사범들에 대한 신속·정확한 수사 및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전문인력 양성 ▲기술 유출 수사·재판의 전문성 강화 등 첨단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방향이 논의됐다.

왼쪽부터 김윤희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안성진 성균관대 컴퓨터교육과 교수, 문삼섭 특허청 산업재산보호협력국장, 김인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에포크타임스

문삼섭 특허청 산업재산보호협력국장은 다분야에 걸친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사전 예방조치 ▲유출 시 효과적 대응 ▲재발 방지를 위한 인프라 구축 등 세 박자가 갖춰진 방지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열 포졸이 도둑 하나 못 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보안체계를 아무리 잘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허점은 존재하기 마련”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임직원의 보안의식이며 이를 통한 예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국가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산업 기술 유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양형 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산업 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2019년 8월 개정돼 처벌 수위를 높인 데 맞춰 양형 기준도 함께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현행법상 최고 형량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다. 그러나 법원의 양형기준의 경우 기본 양형 범위가 국외 침해의 경우 1년~3년 6개월, 국내 침해의 경우 8개월~2년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죄질이 나쁠 때 적용되는 가중 영역도 국외 침해는 2~6년, 국내 침해는 1~4년이다. 이마저도 실제 재판 현장에선 여러 감경 사유가 적용돼 집행유예나 벌금형 선고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김윤희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첨단기술이 급변하는 시기에 기술유출 형사사건의 핵심은 신속한 수사로 피해를 조기에 차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술 유출이 적발되더라도 영업비밀 대상 자료의 양이 방대하고 기술도 전문적이고 난해한 경우가 많아, 신속한 수사를 위한 수사기관의 전문성 강화와 협력방안 모색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안성진 성균관대 컴퓨터교육과 교수는 “경제안보가 강조될수록 첨단기술에 대한 다양한 기법의 탈취가 성행할 것으로 본다”며 “지속 가능한 기술 안보를 위해 인적 역량 강화 정책이 가장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또 “연구개발 시작 단계에서부터 사전예방과 보호 시스템을 강화해야 하며, 기업 규모별·수준별 기술 보호 체계를 갖추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디지털 기술이 고도화되는 새로운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영업비밀 보호기반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술·영업비밀 침해 사건에 대한 수사와 재판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형사소송 과정에서의 영업비밀 유출 2차 피해를 방지해야 한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