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나토 회의 참석에 숨죽인 中 ‘익명 전문가’ 내세워 반대

남창희
2022년 06월 28일 오후 6:50 업데이트: 2022년 06월 28일 오후 6:52

중국이 한국 윤석열 대통령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 외교부가 침묵하는 가운데 관영매체가 전문가들의 발언을 인용하는 형태로 간접 비판하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 글로벌타임스는 28일 “아시아 지역의 ‘외교적 독립성’을 해치고 중국과의 관계가 약화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경고를 한 인물은 뤼차오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한국학 센터장과 익명의 전문가다. 한반도 전문가로 소개되는 뤼차오는 최근 수년간 글로벌타임스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뤼차오는 지난 2017년에는 한미 연합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에이스 훈련’을 겨냥해 ” 군사 충돌 가능성을 키우며 한반도 악순환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훈련은 한·미 공군이 매년 연말 시행하는 훈련이었다.

당시 글로벌타임스는 관변학자들을 총동원해 “한반도 무력 충돌”을 집중 부각하며 한미 군사훈련을 맹비난했다.

공교롭게도 문재인 정부 시절이었던 2018년과 2019년에는 이 훈련이 열리지 않았다. 한국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군사적 차원에서 뒷받침하기 위해 내려진 결정”으로,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뤼차오는 2020년 11월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장관)이 방한해 문재인 당시 대통령 등을 접견하자 “한층 가까워진 한중관계를 보여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의 신북방정책과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이 서로 통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일대일로는 상대국에 거액의 인프라 투자를 제공하지만, 부채 리스크를 증가시키고, 투자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항만 등 주요 시설 사용권을 대신 받아내는 악랄한 사업으로 비판받고 있다. 이러한 ‘채무 함정’으로 불리는 사업이 문재인 정부의 외교전략인 ‘신북방정책’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게 뤼차오의 분석이었다.

뤼차오는 2021년 대만 장관을 초청했다가 돌연 취소한 한국 정부 기구의 결정에 대해 “이성적 태도”라고 높게 평가했다.

2021년 12월 한국 대통령 직속 기구인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세계 각국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 기업인 등을 초대해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그러나 4차산업위원회는 예정됐던 대만 행정원 디지털 담당 정무위원(장관급) 탕펑(唐鳳)의 연설을 당일 새벽 취소했다. 글로벌타임스는 뤼차오를 인용해 “양국관계가 한층 성숙한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추켜세웠다.

외국의 장관급 인사를 초대했다가 중국 눈치를 보며 일방적으로 취소한 한국 대통령 직속기구의 행위를 뤼차오는 “성숙했다”고 표현했다.

뤼차오는 올해 3월 한국 대선 결과가 확정되고 윤석열 후보가 당선인이 되자, 윤 당선인의 ‘사드 추가 배치’ 공약을 물고 늘어졌다.

그는 글로벌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윤 당선인의 정치적 결정은 낙관적 기류가 흐르는 양국의 문화교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한한령’ 해제 움직임과 관련, “모든 것은 차기 윤석열 행정부의 대중 정책에 달렸다”고 위협했다.

이어 지난 5월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한국이 참여할 것으로 전망되자, 뤼차오는 “동남아 국가들의 관심 부족” 등을 이유로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뤼차오의 예상과 달리 한국, 일본과 아세안 7개국을 포함한 13개국이 IPEF를 참여하며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적, 지정학적 대중 포위망에 가세했다.

뤼차오는 관변학자답게 학술적 접근보다는 중국 공산당의 입장이나 바람을 대신 밝히는 쪽에 기우는 행보를 보여왔다. 그가 중국 공산당의 비공식적 대변인으로 불리는 글로벌타임스에 한반도 문제 전문가로 자주 인용되는 것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글로벌타임스는 한국과 일본을 갈라놓으려는 희망 사항도 드러냈다.

이 신문은 이날 뤼차오를 인용해 “반중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본에 비교하면 한국은 자제하는 편이다. 그러나 나토의 아시아 지역 확장을 위해 (한국이) 미·일과 협력한다면 평화와 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뤼 연구원은 한국이 아태 지역에서 중국의 이익을 해치는 미국과 나토의 간섭에 협력한다면 중국은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중국 공산당 정권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뤼차오 입을 통해 쏟아내는 모습이다.

글로벌타임스 기사에서는 중국의 초조함도 엿보인다. 신문은 뤼차오 외에 ‘익명의 전문가’를 인용해 “한·미·일 정상회담은 나토의 아태 지역 확장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미국을 무조건 존중하는 정책을 채택해왔다”며 “한국의 새 정부는 국제무대에서 미국과 교류해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싶어 하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국익을 해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 관영매체가 한국을 직접 거론하면서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비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익명의 전문가’를 인용하는 형식을 취해 발언 수위를 상당히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동맹을 “지난 69년에 걸친 역내 평화·번영의 핵심축”으로 강조하는 윤석열 행정부의 확고한 방침에 오히려 중국이 한풀 꺾인 태도로 나오고 있다.

에포크타임스의 중국 문제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중국 공산당은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는 잔혹하게 군다며 “중국에 저자세 외교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아왔다. 한국 새 정부의 외교가 가져올 한중관계의 변화에 시선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