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네덜란드에 “美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 무시해달라” 요구

김태영
2022년 11월 17일 오전 10:48 업데이트: 2022년 11월 19일 오후 10:18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 회담에서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를 만나 “중국에 대한 미국의 반도체 칩 무역 규제에 동참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ASML 장비 공급 않을 경우 中 ‘반도체 굴기’ 불가능

중국 국영방송 CCTV에 따르면 이날 시진핑 주석은 뤼터 총리에게 “우리는 경제 및 무역 문제가 정치화되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며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중국과 협력을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시진핑 주석이 G20 정상 회담에서 네덜란드 총리에게 이 같은 당부를 한 이유로는 두 가지가 꼽힌다.

첫 번째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기업 ASML이 네덜란드에 있기 때문이다. 극자외선 노광장비는 반도체 생산 필수장비다. 중국은 ASML사의 반도체 기술 지원과 장비를 조달받지 못할 경우 반도체 산업발전 계획을 포기해야 한다.

두 번째는 최근 미국이 대중무역 강경책으로 중국으로 첨단 반도체 수출을 금지하고, 우방국들에 대중 무역 규제에 동참하도록 촉구하면서 시진핑이 강한 압박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미국은 지난 10월 초 우방국들에 첨단 반도체 및 반도체 칩 제조 장비를 중국에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제에 동참해달라고 촉구한 바 있다. 지나 레이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지난 11월 3일(현지시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첨단 반도체가 중국 군사력 증강의 기반이 되고 있다”며 “중국으로 수출되는 첨단 반도체 기술을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네덜란드 정부 “美의 대중무역 기조 함께할 것”

중국 국영 매체들은 반도체 수요 가운데 중국의 비중이 큰 만큼 미국의 우방국들이 경제적 타격 등을 이유로 규제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현실은 반도체 산업 선도국가인 네덜란드와 일본이 경제적 손실을 감안하면서 미국의 대중무역 기조를 따르고 있어 오히려 중국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네덜란드 뤼터 총리는 “ASML사의 구형 반도체 장비도 중국에 팔지 말아 달라”는 미국의 요청에 대한 블룸버그의 질문에 “최첨단 EUV 장비가 중국으로 넘어가는 일을 막기 위한 조치는 이미 시행하고 있다”며 “현재 네덜란드 정부는 ASML사 장비가 중국에 수출되지 않도록 선적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뤼터 총리는 “네덜란드는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 일본, 미국과 협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미국과의 공조를 바탕으로 중국에 대한 엄격한 수출 규제를 시행해 왔다. 일본 외무성은 미국의 대중 반도체 무역 규제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의 규제 동향을 고려해 적절한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ASML “韓과 반도체 산업 분야 협력 강화할 것”…화성시 클러스터 설립에 2400억 원 투자

첨단 반도체 기술을 두고 갈수록 첨예해지는 미중 갈등이 한국에는 오히려 호재로 작용했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은 2024 말까지 경기도 화성시에 2400억 원을 투자해 1만 6000㎡ 규모의 반도체 장비 유지보수를 위한 재()제조센터 등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16일 기공식을 마친 이번 화성 반도체 클러스터뉴 캠퍼스에는 심자외선(DUV)·극자외선(EUV) 노광장비와 관련한 부품 등의 재()제조센터와 첨단기술을 전수하기 위한 트레이닝 센터, 체험관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날 기공식에 참석차 방한한 ASML 피터 베닝크 CEO는 서울 강남구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한국의 주요 고객사와 인접해 확장의 필요성을 계속 느껴 왔다한국은 첨단 기술을 보유한 협력사가 많은 만큼 부품 조달 등 현지 기업들과의 시너지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17일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반도체 산업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방한해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재계 등에 따르면 이날 ASML 피터 베닝크 CEO 또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만나 반도체 협력 강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글로벌 반도체 산업계에서는 미국의 대중 무역 제재로 인해 중국의 대안 투자처로 한국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의 반도체 산업 발전이 더욱 가속화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