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역서 임신지원센터·교회 피습…극좌단체 ‘좌표찍기’

한동훈
2022년 06월 30일 오후 1:11 업데이트: 2022년 06월 30일 오후 1:14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낙태권을 인정한 과거 판례를 ‘위헌’이라고 파기한 가운데, 여성 임신출산지원단체와 교회가 잇따라 공격받고 있다.

지난주에는 콜로라도주 덴버 북부 롱몬트의 여성 임신·출산 지원기관은 건물 일부가 불타고 “내 몸에 대한 나의 권리를 막지 마라”, “낙태가 위협받는다면 너희도 마찬가지다” 등의 낙서로 뒤덮였다.

센터를 공격한 이들은 미국 내 급진적인 낙태 찬성 활동가들로 추정된다. 이들은 낙태권을 지지하는 교수들이 만든 ‘임신위기센터(the Crisis Pregnancy Center) 지도’를 보고 목표를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신위기센터’는 위기에 처한 여성들에게 상담서비스를 지원하고, 낙태 대신 다른 선택지와 돌봄을 제공하는 곳이다. 생명권 존중을 표방하는 기독교단체 ‘라이프 초이스(Life Choices)’가 지역 주민들의 후원을 받아 미국 전역에 2500여 곳에 운영 중이다.

낙태에 찬성하는 미국 조지아주 교수들이 제작한 ‘미국 전국 임신위기센터’ 지도 | 화면 캡처

급진좌파 활동가들의 ‘임신위기센터’ 공격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 전역의 센터들은 대법원에서 낙태권 인정 판례 파기를 결정하기 몇 주 전부터 크고 작은 공격을 받아왔다. 활동가들이 불을 지르고 달아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센터의 위치는 누구나 알 수 있도록 공개된 정보다. 하지만 찾아보기 쉽게 시각적으로 정리한 ‘전국 임신위기센터 지도’가 만들어지자 좌파 활동가들의 공격이 더 조직적이고 더 위협적으로 변했다.

지도 제작자인 조지아 대학 생물통계학과 안드레아 슈왈첸드루버 교수와 다니엘르 램버트 교수는 “미국 내 모든 위기임신센터에 대한 위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제작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지도가 실린 웹사이트에는 “(임신위기센터는) 낙태 방지를 주된 목적으로 한 가짜 여성 건강센터”라는 언급이 있다. 즉, 임신과 출산을 돕는 클리닉은 여성 건강센터가 아니라는 게 지도 제작자들의 주장이다.

슈왈첸드루버 교수는 “임신위기센터가 처음 알려진 2018년에는 센터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센터가 어떤 곳이며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할 수도 있었다”며 이 센터가 낙태를 예방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리려 지도를 만들었다고 했다.

폭스뉴스는 급진좌파 활동가들이 폭력을 대놓고 지시하진 않지만 이 지도를 ‘좌표찍기’용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급진좌파 활동가들의 공격 대상은 임신위기센터에만 그치지 않는다. 교회도 포함된다.

워싱턴주에 기반을 둔 급진적 무정부주의 단체인 ‘퓨젯(Puget) 사운드 아나키스트’는 워싱턴주의 임신위기센터 파손을 축하하는 게시물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는데, 이 단체는 지난 5월 이 센터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워싱턴주에 있는 교회 4곳을 공격한 바 있다.

이 단체는 소셜미디어 게시물에서 임신위기센터를 “가짜 임신 중절(낙태) 병원”이라고 불렀다. 지도 제작자들과 마찬가지로 낙태 시술을 해야 여성 클리닉이라는 것이다.

낙태와 관련성이 없는 좌파 단체들도 가담하고 있다. 미네소타주의 경찰 반대 좌익단체 ‘트윈시티 인캠프먼트 리스판더(Twin Cities Encampment Responders)’는 대법원의 낙태권 위헌 판결 직후 이 지도의 링크를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다.

이 링크가 담긴 게시물은 회원들에 의해 수백번 이상 다시 공유됐는데, 게시물에서는 이 임신위기센터를 “낙태에 반대하는 가짜 클리닉”이라고 비난했다. ‘여성 클리닉=낙태 시술기관’이라는 자신들의 ‘상식’과 어긋난다며 깎아내린 것이다.

보수 인사와 우파 단체를 스토킹해 개인정보를 공개한다고 협박하는 행위(doxxing·독싱)로 유명한 단체인 ‘콜로라도 스프링스 안티파(Colorado Springs Antifa)’도 “오늘도 올빼미족(night owls)을 위해”라며 이 지도를 공유했다.

이어 “오늘 밤 당신 지역의 임신위기센터”라며 “마스크를 쓰고 전투 모드로 대기하라”고 했다. 밤늦도록 잠을 안 자는 회원이나 추종자들에게 ‘좌표찍기’를 한 셈이다.

임신위기센터를 운영하는 라이프 초이스의 캐시 로버츠 사무총장은 성명을 내고 “무서운 기물 파손 행위로 센터가 타격을 받아 폐허처럼 변했다”고 밝혔다.

로버츠 사무총장은 “라이프 초이스에 대한 공격이 정당이나 정치활동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는 점을 시위대가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공격은 기저귀, 임신 테스트기, 태아 초음파 검사, 아기옷, 육아 비용과 육아 교육이 필요한,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 대한 공격”이자 “여성, 남성, 가족들에게 안전한 쉼터가 되는 공간에 대한 공격”이라고 덧붙였다.

전날(25일) 낙태 지지 시위대의 공격을 받은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모녀교육센터 건물. 깨진 유리창이 판자로 덮여 있다. 간판에는 스프레이 페인트로 욕설이 적혀 있다. 2022.6.26| JOHN RUDOFF/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한편 미국 전국에서 교회, 임신위기센터, 생명권 존중 단체에 대한 공격이 수십 건 이상 보고된 가운데, 미 의회에서는 연방수사국(FBI)과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척 그래슬리 상원의원(아이오와·공화당)은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에게 이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요구하고, 극단적 폭력과 테러 행위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FBI 대변인실은 이번 사건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조사하고 있다며 폭력행위를 목격했거나 관련 정보를 획득한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제보해줄 것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