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베이징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공식화…韓 ‘종전선언’ 구상 차질 예상

이윤정
2021년 12월 7일 오후 5:34 업데이트: 2021년 12월 7일 오후 11:27

美, 12월 9~10일 ‘민주주의 정상회의’ 앞두고 中 인권 문제 부각
민주 회의에 대만 초청…이춘근 박사 “미국, 대만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 의미”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의 인권 탄압에 항의하는 뜻으로 내년 2월 열리는 베이징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외교적 보이콧’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에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는 가운데 한국 정부의 ‘남·북·미·중 4자 정상회담을 통한 종전선언 채택’ 구상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12월 6일(현지 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에 어떤 외교사절이나 공식 정부 대표를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 정부의 지속적인 집단 학살과 신장위구르족자치구 내에서 자행되는 반인도적 범죄, 기타 인권 탄압을 고려한 것”이라며 대표단을 보내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외교적 보이콧’이란 올림픽 개·폐회식에 선수단은 참가 시키되 정부나 정치권 인사 등으로 구성된 공식 사절단은 보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조치에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스포츠 정치화를 그만두고 외교적 보이콧을 중지해야 한다. 미국이 독단적으로 행동한다면 중국은 반드시 반격하는 조치를 결연하게 취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자오리젠 대변인은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 선언이 공식 발표된 이후 “그들(미국 대표단)이 오든 안 오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며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미중 간 외교 갈등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정치학자 이춘근 박사(이춘근 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는 현재의 미중 관계에 대해 “미중 관계 전반이 돌이킬 수 없는 갈등 관계로 돌아섰다”며 다음 분석을 내놨다. “미국은 중국 경제가 발전하면 중국도 민주화로 이행하고 지구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활동할 것으로 기대하고 중국을 키워 준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잘살게 되면 미국과 비슷한 국가로 변하고 세계적으로도 좋은 일일 것이라는 기대는 완전한 오판이었다는 것을 시진핑 정권 들어서고 나서야 확인한 것이다. 베이징동계올림픽을 보이콧해서 미중 관계가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미중 관계가 나빠졌기 때문에 미국이 중국이 더 이상 영향력을 확대하지 못 하게 하고, 중국의 행동을 바꾸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이춘근 박사는 “미국이 전면 보이콧을 하는 것이 아닌 외교 사절단을 보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중국에 확실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번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미국 선수단의 성적까지 좋으면 자유민주주의 국가 선수들은 국가에서 외교사절단을 보내지 않더라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일이라 중국에는 더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베이징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은 예고된 수순이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 첫 정상회담을 한 지 사흘 만인 지난 11월 18일, 베이징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중국의 신장(新疆)위구르족자치구 내 소수 민족(위구르족) 말살 정책과 홍콩 사태 등 인권 침해 문제 등을 이유로 베이징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 제기돼 왔다. 이춘근 박사는 이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공식 발표는 오늘 나왔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오래 전부터 중국 정부의 위구르족자치구에서의 잔학 행위를 집단 학살이라고 규정하는 등 인권 탄압을 문제 삼아 보이콧 가능성을 시사해왔다. 민주당 출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나 공화당 소속 니키 헤일리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를 비롯해 여야 구분 없이 베이징동계올림픽 참가를 반대해왔다. 여기에는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이 많이 동참할 것이다.”

실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지난 5월 18일, 화상으로 진행된 의회 상하원 합동 청문회에서 베이징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을 제안했다. 당시 펠로시는 “중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참석하는 각국 정상들은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낼 도덕적 권위를 잃게 될 것이다.  각국 정상들이 올림픽 경기장을 방문하는 동안에도 (신장·위구르 지역에서의) 대학살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한 공화당 소속 니키 헤일리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는 지난 2월 28일(현지 시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우리는 중국에서 열리는 2022년 동계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 선수들에게는 끔찍한 손실이겠지만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제노사이드(인종학살)를 묵인하고, 중국 공산당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앞으로 더 큰 공포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썼다. 헤일리 전 대사는 최근에도 “미국은 자국민을 상대로 집단 학살을 저지르고 있는 데다 세계를 위협하는 나라를 미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을 보이콧하자는 주장은 줄곧 제기돼왔다. 올해 들어 전 세계 180개 인권단체 연합이 중국의 인권 지수 기록을 근거로 세계 정상들에게 베이징동계올림픽 불참을 촉구하는 공개 서한을 발표하기도 했다. 유럽의회 역시 지난 11월 28일 홍콩, 티베트, 신장위구르족자치구 인권 침해 등을 이유로 유럽연합(EU) 산하 기구 및 회원국에 외교적 보이콧을 촉구한 상태다. 실제 미국에 이어 영국과 캐나다, 호주 등 앵글로색슨 계열 국가들도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의 베이징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발표가 바이든 대통령이 오는 12월 9~10일 110개국을 초대해 화상으로 개최하는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뤄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은 이 회의에 한국을 비롯한 110개국을 초대했으나 중국과 러시아 등은 제외됐다. 민주주의 동맹국들을 결집해 중국을 더욱 견제하는 양상이다.

민주주의 정상 회의 개최는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바이든은 대선 후보 시절 “대통령에 당선되면 권위주의 체제에 맞서 민주주의 국가들을 연대하고 민주주의를 강화하겠다”고 공약했었다. 이는 사실상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선거 공약 실현이기도 한 이번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는 ‘권위주의에 대한 대응·부패 척결·인권 존중 증진’ 등이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서 이춘근 박사는 미국이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중국은 빼고 대만을 초청한 것에 주목했다. “미국이 대만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겠다는 의미다. 미국은 독재 정권을 정당한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을 초청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이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한다고 했는데 이번에 대만을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불렀다는 것은 대만을 하나의 국가로 본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대만을 정통 중국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에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한국 정부는 이번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남·북·미·중 4자 정상회담을 통한 종전선언 채택을 추진해왔다. 미국의 보이콧 선언을 두고 한국 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한국 정부는 베이징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에 이어 ‘올림픽 평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걸어왔다. 하지만 미국이 올림픽 외교적 불참을 선언함에 따라 내년 2월 열리는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남·북·미·중 4자 정상회담을 통해 종전선언에 합의할 가능성은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징계 조치로 인하여 선수단을 파견할 수 없게 됐다.

한편, 한국 정부는 “미국의 베이징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은 우리 정부가 구상 중인 종전선언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애초에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종전선언을 할 것이라는 것은 언론의 추측이었을 뿐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종전선언은 이미 당사국 간의 합의가 돼 있기 때문에 여건만 갖춰진다면 종전선언은 언제든지 급물살을 탈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춘근 박사는 정부가 추진해온 종전선언과 관련해 “미국이 찬성하지 않으면 종전선언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현 정부가 추진하는 종전선언은 허상에 불과하다. 원래 성립될 수 없는 것을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전선언은 미국과 중국이 반드시 합의해야 한다.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유엔군사령부 해체 가능성,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 및 한미동맹 폐기를 주장할 가능성 등을 걱정하고 있다. 종전선언에 대하여 미국과 중국의 입장은 180도 다르다. 중국은 미군이 한반도에서 미군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미국은 절대 나갈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 입장에서도 북핵 문제 해결 없이 미군 철수는 절대 안 된다. 정부는 그럴듯한 판을 만들어 보려고 했겠지만 가장 핵심 인물인 바이든 대통령이 불참을 선언하면서 계획이 무산될 수밖에 없다.”

/ 취재본부 이윤정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