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법원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 명령은 권한 남용”…폐지 판결

한상아
2022년 04월 20일 오전 11:46 업데이트: 2022년 04월 20일 오후 10:36

“여론 수렴 없이 명령…법적 권한 넘어선 행위”

미국 법원이 항공기, 버스 등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을 명령한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조치에 대해 ‘권한 남용’이라며 폐지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미국 내 모든 대중교통과 관련 시설 실내 구간에 내려졌던 마스크 착용 명령이 즉각 무효 처리됐다.

플로리다 중부 지방연방법원 캐스핀 킴벌 미젤 판사는 18일 CDC의 대중교통 마스크 강제 착용 명령에 대해 “강제 집행을 여론 수렴 기간 없이 통보해 행정법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미젤 판사는 요약문에서 “정부가 ‘따르지 않으면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해 국민의 선택과 행동을 제약하려 할 때, 반드시 공개적인 여론 수렴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시 코로나19는 이미 1년째 지속되고 있었고 확진자수는 감소하고 있었다”며 “이 같은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30일간 여론 수렴을 거치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하고, 대중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CDC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미젤 판사는 CDC가 관련법을 잘못 해석해 권한을 남용했다는 점도 명시했다.

그녀는 “CDC는 1944년 공중보건서비스법에 근거해 여행객을 규제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 법은 ‘해외에서 미국으로 입국하는 개인이나 입국 단계에서 전염병에 감염됐다고 합리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개인’에 한해 직접 규제할 권한을 부여한다”고 밝혔다.

전염병에 감염됐다고 합리적으로 추측할 수 없는 국내 여행객을 CDC가 마음대로 규제하는 것은 법적 권한 밖이라는 점을 분명히 명시한 것이다.

법원 판결로 미국 내 대중교통 마스크 강제 착용 명령은 즉각 무효 처리됐다.

CDC는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법원 명령에 따라 2022년 4월 18일부터 대중교통과 관련 시설에서 마스크를 요구하는 CDC의 2021년 1월 29일 명령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공지했다.

미 교통 안전국 역시 이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 의무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바이든 정부가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법무부는 성명을 내고 “CDC가 항소를 권고하면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미 식품의약국(FDA)도 같은 날 별도 성명을 내고 “정부와 CDC는 법원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항소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다만, 항소 여부를 결정지을 CDC의 입장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CDC를 관할하는 보건복지부의 자비에 베세라 장관은 “현재 내부 논의 중”이라며 “판결에 항소할 가능성이 높지만 좀 더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항공업계는 이번 판결을 환영했다.

앞서 이달 초 아메리칸, 유나이티드, 델타, 사우스웨스트 등 미국 주요 항공사 최고경영자(CEO)들은 바이든 정부에 기내 마스크 착용 강제 명령 해제를 탄원했었다.

항공사 CEO들은 백악관에 보낸 이 서한에서 “현재 코로나19 감염 감소 추세와 전국적인 규제 해제 움직임에 업계가 고무됐다”며 “때늦은 감이 있지만, 코로나 시대에 도입한 대중교통 규제를 풀어달라”고 촉구했다.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이 해제되면 감염이 더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텍사스 법대 스티브 블라덱 교수는 “코로나19 확산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기 위해서, CDC는 공항과 교통 중심지를 규제할 법적 권한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

블라덱 교수는 “이번 판결은 터무니없고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CDC의 법적 권한 발동은 주(州) 간 이동에 따른 전염성 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것이다. 전염병 확산은 공항과 교통 중심지에서 주로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 감염이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그동안 방역 규제 철폐를 주장해온 공화당뿐만 아니라 민주당에서도 마스크 강제 착용와 백신여권 도입 명령 철회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다만, 필라델피아는 시(市) 당국이 마스크 강제 착용을 다시 명령해 현지 기업가들로부터 소송이 제기됐다.

한편, CDC와 백악관은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 판결에 대한 바이든 정부 반응을 업데이트 했다.

* 이 기사는 잭 필립스 기자가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