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민주당, 정부 부채한도 상향안 단독 통과…“3000조원 더”

한동훈
2021년 12월 15일 오전 10:51 업데이트: 2021년 12월 15일 오후 5:47

막판까지 공화당 참여 요구…결국 단독 통과
내년 선거 앞두고 정부부채 늘렸다는 부담↑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나라빚 3000조원을 더 당겨서 쓸 수 있게 됐다. 의회가 시한 만료를 하루 앞두고 연방정부 부채한도 상향 안건을 통과시켰다.

14일(현지 시각) 상원 민주당과 공화당은 수개월에 걸친 정치적 공방을 마무리 짓고, 연방정부 부채한도를 현행 28조9천억 달러에서 31조4천억 달러로 상향 조정하는 안건을 가결했다.

50석씩 나눠 가진 양당은 이날 당론 표결을 예고했지만, 카멜라 해리스 부통령(상원의장 겸직)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기회는 없었다. 공화당 소속 신시아 루미스 의원이 투표에 불참하면서 찬성 50대 반대 49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지난 수개월 동안 미국 정부가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질 경우, 경제 대참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상원의 신속한 합의를 촉구해왔다.

그러나 공화당은 민주당이 통제력을 잃고 재정지출을 마구 늘리고 있다며 비판해왔으며, 필리버스터(무기한 토론)를 통해 민주당의 정부 부채한도 상향 안건을 저지해왔다.

필리버스터를 우회하려면 일반적인 법안 통과 기준인 과반수보다 높은 60명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현재 의석 구도에서는 공화당 의원 10명이 민주당을 지지해야 하므로 가능성이 낮다.

이에 민주당 척 슈머 원내대표는 공화당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와 합의해, 정부 부채한도 상향 안건을 단순과반수 찬성으로 통과시킬 수 있도록 허용한 법안을 지난 10일 통과시켰다.

시한 만료일까지 한도 상향이 이뤄지지 않아 정부가 채무불이행에 빠질 경우 빚어질 대혼란에 대해 공화당 역시 의회 구성원으로 책임을 나눠 진 셈이다.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은 국가부채를 3천조원 늘렸다는 정치적 부담을 지게 됐지만, 일단 국가 부도사태를 막아 숨통이 트였다. 야당인 공화당은 부도사태 저지에 협조하면서도 한도상향에는 반대했다는 명분을 지킬 수 있게 됐다.

그동안 공화당은 민주당이 부도사태를 막고 싶다면 얼마든지 자력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미국 의회에는 ‘예산 조정(budget reconciliation)’이라는 입법 절차를 통해 특정 예산안에 한해 필리버스터를 우회하고 단순과반수 찬성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마련돼 있다.

실제로 민주당은 올해 초 1조9천억 달러의 부양책인 ‘미국 구조 계획(American Rescue Plan)’을 단순과반수로 통과시키는 등 예산 조정 절차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그러면서도 부채한도 상향에 있어서는 공화당이 협조하지 않아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됐다며 공세를 펼쳐왔다는 게 공화당 의원들의 지적이다.

반면, 민주당은 예산 조정 절차의 세부 규정들이 너무 복잡해 위험하다며 정부 부채한도 상향 안건 통과에 이를 적용하는 방안을 거부해왔다.

일각에서는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표심’을 고려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 부채한도 상향은 미국 역사상 지금까지 79차례 이뤄질 정도로 드문 것은 아니지만, 여론조사에 따르면 다수의 국민들이 한도 상향에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 선거 때 “민주당이 정부 부채한도를 늘렸다”는 비난 여론을 피하고자, 민주당은 정부 채무불이행 사태 직전까지 공화당이 찬성표를 던지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역사적으로 돌이켜 볼 때, 정부 부채한도 상향 안건이 초당파적으로 통과됐다는 점을 언급하며 공화당이 이번 안건을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2006년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민주당은 정부 부채한도 상향 안건에 거의 전원이 반대했다. 국정 운영 방향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반대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 중에는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바이든 대통령과 슈머 원내대표도 있었다.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반대표를 행사하면서도 “국가부도를 원한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부 방향성에 반대한다는 상징적 의미”라고 항변했다.

또한 예산 조정 절차를 통해 공화당이 민주당 협조 없이 단독으로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다고 했다. 현재 공화당과 완전히 같은 주장을 펼쳤다.

한편, 미국의 법안은 상원과 하원을 모두 통과한 뒤 대통령이 서명해야 효력을 발휘한다. 하원도 같은 날 법안 표결을 마치고 안건을 신속하게 대통령에게 넘길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