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매체 “종전선언, 한미동맹 파괴…유일한 수혜자는 북한”

이윤정
2021년 12월 23일 오후 6:50 업데이트: 2021년 12월 24일 오전 12:20

도널드 커크 “한국 정부 추진 종전 선언, 터무니없고 심각한 결함 지녀”
전 국무부 관리·주한 대사·주한미군 사령관 “종전선언 회의적” 이구동성 

“종전선언은 한반도 긴장만 고조시킬 것이며 북한이 유일한 수혜자가 될 것이다. 한미동맹을 파괴할 게 분명한 종전선언에 문재인 대통령이 왜 그토록 매달리는지 알 수 없다.”

미국 언론인 도널드 커크(Donald Kirk)가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6·25전쟁 종전선언을 비판하는 글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더힐’은 12월 22일(현지 시간) 커크의 ‘한국은 평화 협정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다. 서명해서도 안 된다(South Korea isn’t likely to sign a peace treaty—nor should it)’는 기명 칼럼을 게재했다.

기고문에서 커크는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체결된 6·25전쟁 정전협정이 사실상 종전협정이며 여전히 유효하다”며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 역점 외교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종전선언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문 대통령과 측근들은 종전선언 추진에 집중하고 있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발사가 야기한 미국의 제재를 거두지 않는 한 북한은 어떤 합의에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커크는 북한에 대해 “한국과 일본을 목표로 하는 핵탄두를 탑재한 미사일을 개발 중”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북한은 핵을 폐기하지 않을 것이고 핵 개발 역시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 중단, 유엔군 사령부 해체, 주한미군 철수 등을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커크는 “문 대통령이 역사적인 한미동맹을 훼손할 게 분명한 종전선언에 왜 그토록 매달리는지 알 수 없다”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북한이 종전선언의 유일한 수혜자가 될 것”이라며 향후 북한이 한국을 향한 잠재적 공격을 위해 병력을 증강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커크는 종전선언에 대한 중국의 태도에 대해서도 짚었다. 그는 “아직은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중국은 종전선언을 한·미 동맹 약화의 수단으로 볼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그는 “문 대통령은 남·북·미·중 정상들이 종전선언서에 서명하는 장면을 보고 싶어 하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지으며 “북한은 남한이나 미국과는 대화조차 하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이 압박을 지속할 수는 있겠지만, 종전선언은 너무나 터무니없고 심각한 결함을 지니고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커크는 한반도·동아시아 외교·정치 문제를 주로 다뤄온 60년 경력의 베테랑 기자이자 저술가이다. 북한을 여덟 차례 방문하기도 한 그는 북한 핵 위기, 북한 인권 문제, 남북한 회담 등 북한 관련 보도로 명성을 얻었다. 한국에서는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1987년 민주화 시위 등 격동의 현대사 현장을 취재하기도 했다. 1997년 부터 2003년까지는 인터내셔널 뉴욕 타임스(구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미국 CBS 라디오 등 미국 매체 주한국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미국 조야(朝野)도 종전선언이 평화협정으로 인식되는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종전선언으로 인하여 주한미군 주둔 정당성 문제 제기, 유엔군사령부 지위 문제 등 기존 정전협정하에서 존속해 온 각종 체제가 송두리째 흔들릴지도 모를 상황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전직 주한 미국대사, 전직 주한미군사령관(한미연합사령관)들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종전선언에 대해 회의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2004~2005년 주한 대사를 역임한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도 종전선언의 효과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지난 11월 2일 미국 일간지 워싱턴타임스(WT)와의 화상 대담에서 “종전선언이 한반도 의제의 핵심인 것처럼 비치지만 실제 효과는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힐 전 차관보는 북핵 6자 회담 미국 대표, 국무부 대북정책조정관 등을 역임한 한반도 문제 전문가다.

같은 대담에서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대사(2008~2011년 재임) 역시 “종전선언을 통해 북한을 협상장으로 이끌겠다는 한국 정부의 노력은 한편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종전선언에 따른 결과를 생각하면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고 밝혔다.

기타 미국 전직 한반도 관계자들 의견도 대동소이하다. 지난 9월, 미국의소리(VOA)는 종전선언을 주제로 전직 미국 한반도 담당 외교관들을 집중 취재했다. VOA 취재에서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전쟁의 근본 원인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6·25전쟁 종전선언 제안은 위험한 발상이다. 종전선언이 북한의 비핵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강력 반대한다. 6·25전쟁 종전선언은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의 핵 보유국으로서의 지위만 공고히 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2021년 1월, 이임한 해리 해리스 전 주한대사도 “종전협정서 서명 다음 날 무엇이 달라질지 자문해야 한다. 종전선언을 하더라도 북한의 핵, 미사일, 재래식 무기 역량도 여전히 그대로일 것”이라며 종전선언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해리스 전 대사는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티가 11월 17일 개최한 ‘2021 한국에서의 미국 외교와 안보’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같은 토론회에 참석한 직전 주한미군사령관인 로버트 에이브럼스 예비역 육군 대장도 “종전선언의 추진은 ‘위험(risk)’을 감내하는 수준이 아니라 ‘도박(gamble)’을 벌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우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 종전선언을 시작으로 이루고자 하는 최종상태가 평화협정 체결인지 북한 비핵화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