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법원, 기독교 깃발 거부한 보스턴시에 “부당한 검열” 위헌 판결

한동훈
2022년 05월 3일 오후 1:00 업데이트: 2022년 05월 3일 오후 5:42

기독교 상징이 들어간 깃발 게양을 거부한 보스턴시에 위헌 판결이 내려졌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2일(현지시각) 역사적 전투 깃발, 성소수자 깃발 등의 게양을 허용하면서 기독교 상징 깃발만 게양을 거부한 보스턴시의 결정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1조를 위반했다며 만장일치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번 재판은 보스턴 시민 해롤드 셔틀레프가 보스턴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미국 역사·헌법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셔틀레프는 지난 2017년 시청 앞 게양대에 십자가 등 기독교 상징 문양이 들어간 깃발을 걸게 해달라고 보스턴시에 신청서를 냈다. “미국 헌법의 천재성은 기독교와 유대교 유산에서 기원한다”는 신청 사유도 밝혔다.

보스턴시는 국가와 종교를 분리하도록 한 헌법 원칙에 어긋난다며 거부했다. 시 관계자는 “기독교 십자가가 들어간 깃발을 시청 앞에 걸면 시(市)가 특정 종교를 홍보한다는 공적인 표현이 된다”며 “시는 종교성(non-secular)을 띤 깃발 게양을 정중히 거절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보스턴시는 시청 청사 앞 게양대 3개 중 2개에 매사추세츠 주기(州旗)와 보스턴 시기(市旗)를 게양하고 나머지 하나에는 다양한 깃발을 걸어왔다. 역사적 사건이나 참전용사를 기리거나, 터키·중국 등 외국 국기를 걸었다. 신청을 받아 성소수자 공동체나 범죄 피해자를 추모하는 깃발을 걸어주기도 했다.

이번 재판에서도 보스턴시는 시청 청사 앞에 게양한 깃발은 시(市)의 입장을 나타내는 공적 연설(speech)의 한 형태라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보스턴시는 지금까지 민간 단체의 깃발을 게양하면서 이를 정부의 공적 연설의 형태로 운영하지 않았다”며 이번 깃발 게양 거부가 종교적 표현에 대한 검열이라고 판단했다.

판결문에서는 또한 “수정헌법 제1조에서는 정부가 다양한 표현을 장려할 때, 예를 들어 토론의 장을 만들 때 정부 관점에 따라 화자를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며 “2017년 셔틀레프의 기독교 깃발 게양 신청을 거부하기 전까지, 보스턴시는 수년 동안 민간 단체의 신청 수백 건을 허용하며 단 한 건도 거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 측 맷 스타버 변호사는 “대법원의 9대 0 판결은 공적 담론에 있어서 표현의 자유에 승리를 가져다 줬다”며 이번 판결을 환영했다.

공익 로펌 리버티 카운슬 대표인 스타버 변호사는 성명을 통해 “이 사건은 단순히 깃발을 내리고 올리는 문제가 아니다. 보스턴시는 모든 신청자에 깃대를 개방했지만, 기독교 관련 단체에서 신청했을 때만은 이를 거부해 차별적 태도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고 말했다.

보스턴은 원고 측 요청을 거부한 사유에 대해 “그가 기독교 깃발을 올려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라고 시인했다.

한편, 이번 대법원 판결문은 올해 은퇴하는 스티븐 브레이어(83) 판사가 작성했다. 후임으로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대법관 탄생이 예고된 케탄지 브라운 잭슨 판사가 확정됐다.

* 이 기사는 매튜 밴덤 기자가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