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韓에 ‘화웨이 보이콧’ 동맹 요청…한국의 선택은?

이상숙
2019년 05월 24일 오전 11:52 업데이트: 2020년 04월 21일 오전 11:55

미 정보법 행정명령에 따라 미 상무부가 화웨이를 거래 제한 기업으로 지정하자 구글, 퀄컴 등 미국의 화웨이 협력업체 30곳을 비롯해 영국, 독일, 일본도 잇따라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이 가운데 미국이 한국도 ‘반(反) 화웨이 대열’에 함께 할 것을 요청해 한국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미국이 최근 우리 정부에 ‘반 화웨이 캠페인’에 동참하고 지지해 줄 것을 수차례에 걸쳐 요구한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조선일보 23일자 보도에 의하면 미 국무부 관계자는 최근 우리 외교부 당국자를 만난 자리에서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는 LG유플러스를 지목하며 “이 통신사가 한국 내 민감한 지역에서 서비스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최종적으로는 화웨이를 전부 아웃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6일 미 상무부는 화웨이와 70개 계열사를 거래 제한 리스트에 올렸다. 이들 기업은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미국 기업과 거래할 수 있다. 외국 기업도 미국 부품이 들어간 제품을 리스트에 오른 기업과 거래할 수 없다.

구글 안드로이드 OS 서비스가 중단되고 미국의 반도체 핵심 부품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 화웨이의 생산라인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화웨이는 이에 대비해 자체 OS ‘훙멍(鴻蒙)’을 개발했다며 올가을에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화웨이가 자체 OS를 운영할 준비가 덜 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화웨이는 반도체 자회사 하이실리콘을 통해 핵심 반도체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으나 정작 반도체를 생산하는 대만의 TSMC(반도체 위탁 생산)의 공급 여부가 관건이며, 당장 미국 공급업체를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화웨이, 동남아 지역에 마케팅 공세…막대한 연구비 지원

화웨이는 그동안 서방 국가의 ‘보이콧’에 맞서 동남아 지역에 적극적인 마케팅 공세를 펴 왔다. 동남아는 중국의 신(新)실크로드 정책인 ‘일대일로’의 영향권 아래에 놓여 있는 지역이 많다. 중국의 알리바바, 텐센트, 징둥닷컴과 같은 대형 IT(정보기술) 기업들은 동남아에 데이터센터, R&D(연구‧개발) 센터를 지으면서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태국은 지난 2월 동남아 국가 중 처음 화웨이와 5G 통신망 테스트를 시작했다. 필리핀‧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싱가포르 주요 통신사들도 5G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

한국도 화웨이 제품을 많이 쓰는 편이다. 화웨이 홈페이지에 의하면 한국의 100곳 이상의 기업‧기관들이 화웨이 제품을 쓰고 있다. 현대차‧LG‧CJ‧효성 계열사 등 한국 기업 109곳이 파트너사로 나온다.

한국 이동 통신 3사 중 SK와 KT는 화웨이 장비를 배제한 반면 LG유플러스는 5G 망 구축에 삼성전자, 노키아와 함께 화웨이 장비를 선택했다. 화웨이가 LG유플러스 전체 통신망의 30%를 점할 정도로 비중이 높은 편이다.

국내에서 화웨이는 기업과 은행 등 유선망을 중심으로 사업을 빠르게 확대했다. 화웨이는 지난해 1월 초 NH농협은행의 전국 6000여 지점을 잇는 통신망 사업의 장비 납품 업체로 선정됐으며, 최근 1~2년 사이 진행된 서울 지하철 1~4호선과 7~8호선 노후 통신망 개선 사업에도 파격적인 저가를 제시해 장비 공급 업체로 선정됐다.

미국과 일부 서방국이 화웨이를 경계하는 이유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는 세계 통신 장비 시장 점유율이 31%로 단연 1위다. 화웨이가 전 세계에서 대량의 5G 주문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정부의 재정지원에 힘입은 파격적인 저가 경쟁의 결과이다. 또 화웨이의 기술력은 스파이 활동을 통한 기술 절취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미국과 일부 서방국이 화웨이를 경계하는 이유는 화웨이가 중국 공산당을 등에 업고 저가를 내세워 5G 시장을 점령하고 민중을 감시하는 기술을 해외에 수출하려는 전략을 펼치기 때문에 세계 안보의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올 2월에 미국은 동맹국들에 화웨이 등 중국 회사들의 안보 위협에 동맹국들이 공동 대응할 것을 촉구하면서 화웨이 장비를 쓰는 국가와는 정보공유를 할 수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일본, 호주, 뉴질랜드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 중국 화웨이와 ZTE 장비를 사실상 배제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현재 독자노선을 걷고 있다. 화웨이는 지난달 4월 28일 독일 정부와 ‘노 스파이(NO SPY) 협정’을 체결할 용의가 있다며 어떤 백도어도 설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중문 대기원 샤샤오창 시사평론가는 이는 독일이 화웨이의 스파이 활동을 알고 있다는 것으로 만약 독일이 이 협정에 서명한다면 ‘화웨이의 도둑질을 막기 위해 경비를 화웨이에 맡기는 격’이라고 논평한 바 있다.

한국의 향후 행보는?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7년 한국의 대중국 수출액은 1421억 달러(약 170조 원)로 전체 수출의 24.8%를 차지한다. 그만큼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지난번 사드(THAAD) 보복 때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난처한 입장에 처했던 한국은 2017년 한 해 동안 피해액이 최소 8조5000억 원으로 추산되기도 했다.

미국의 요청을 수용할 경우 중국의 반발을 무시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통신‧IT 업계에 따르면 우리 정부가 미국의 요청에 따라 화웨이 장비 수입을 중단할 경우 기업 피해액이 수십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미국은 화웨이 장비를 배제할 경우 대체재로 삼성을 꼽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와 관련 “미국은 세계 각국에 화웨이 장비 말고 한국 기업 장비 등 대체재를 쓰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 통신 기업 중에는 자체 기술로 5G(5세대 이동통신) 통신망을 구축할 수 있는 회사는 없다. 5G 기술에 있어 화웨이에 대적할 수 있는 회사는 한국 기업으로 특히 미국이 주목하는 기업은 삼성이다. 삼성은 5G 반도체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통신 장비까지 ‘풀 세트’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은 세계 통신 장비 시장 점유율이 5%에 불과하다. 하지만 만약 화웨이가 빠진 자리에 미국의 의도대로 삼성이 대체재로 들어선다면 그 도약은 놀라울 것이다.

급변하는 국제상황과 악재와 호재가 병존하는 주변 정세 속에 한국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담대함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