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대중 강경책 격상하며 동북아서 존재감 부각”

강우찬
2023년 04월 11일 오후 5:29 업데이트: 2023년 05월 25일 오후 3:47

뉴스 분석

‘친중파’ 기시다 내각, 출범 후 대중정책 전환
반도체 경쟁, 군사적 협력서 미국에 바짝 밀착
中 공산당, 日에 관계 개선 제스처…‘절박감’ 노출

일본이 전례 없는 대중 강경책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중 대결 국면에서 중국 공산당의 구애를 뿌리치고 미일 관계를 확고히 한 것이 기반이 됐다.

중국 문제 전문가 왕샤는 최근 칼럼에서 일본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대중 강경 정책의 수위를 한 단계 끌어올리며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서 중국을 봉쇄하는 확실한 파트너로 격상됐다고 평가했다.

왕샤에 따르면 일본은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관계 안정을 추구하고 있다.

지난 1~2일 일본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의 방중이 대표적 사례다. 3년 4년 만에 중국을 찾은 일본 외무상은 2일 친강 중국 외교부장과 만나 4시간 동안 동중국해, 대만해협 등 양국 현안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하야시 외무상은 이어 시진핑의 총애를 받는 리창 국무원 총리와도 회담했으며, 중국 공산당의 외교사령탑인 왕이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과도 만찬을 가졌다. 중국 공산당의 ‘이례적 환대’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산하 환구시보는 이번 일본 외무상 방중을 두고 악화된 양국 관계에 미약하나마 개선의 여지가 포착됐다고 평가했다.

환구시보는 3일 사설을 통해 “중국을 향한 일본의 적대적 입장이나 중일 관계는 획기적으로 개선되기 어렵다”면서 “일본이 도발하지 않는다면 양국 관계는 최소한 ‘냉랭한 평화’의 마지노선을 지킬 수 있다”고 논평했다.

중국 공산당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불리는 후시진 전 환구시보 편집장은 중국이 성의껏 대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후시진은 이날 자신의 SNS에 “중국은 방중한 하야시 외무상에 성의와 진정성을 보여줬다”며 “양국 관계가 악화하고 있지만 양국은 모두 상호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고 썼다.

중국 문제 전문가 왕샤는 이러한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반응을 두고 “지난 수년간 일본이 맹렬한 대중 강경 외교를 취해 중국 공산당을 골치 아프게 만들었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환구시보와 후시진이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지만, 실제로는 중국 공산당이 일본 외무상에게 상당히 극진한 대접을 했다는 것이다.

중국 측 전문가들도 이번 일본 외무상의 방중을 놓고 일본이 중국과의 양국 관계 안정을 원하고 있다는 관측을 내놓으며 화해 분위기를 띄웠다.

상하이국제문제연구원의 천유진 교수는 “일본이 일부 문제와 관련해 중국과 협상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으며 양국 외교 채널이 원활해지기를 희망하고 있음을 설명한다”고 해석했다.

中 국방부, 외무상 방중 맞춰 日과 ‘핫라인 설치’ 발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강조하려는 중국 공산당의 의중은 중국 국방부의 ‘중일 핫라인 설치 ‘ 발표에서도 읽힌다는 게 왕샤의 분석이다.

중국 국방부는 지난달 31일 양국 국방부가 최근 핫라인을 설치했으며 이를 가동하기 위해 소통을 유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왕샤는 “일본 외무상의 방중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중국 국방부가 일본과의 핫라인 설치를 발표한 것은 정치적 제스처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일 핫라인은 2007년부터 논의를 시작해 2017년 ‘해공 연락 기제’ 설치안 합의로 1차 결실을 맺었다. 센카쿠 열도 주변에서 우발적인 충돌을 막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이후에도 별 진전이 없다가 2022년 11월 17일 방콩 중일 정상회담서 급진전을 이뤘다. 10년 이상 끌던 사안이 불과 수개월 만에 해결된 것은 중국 공산당의 태도 변화에 기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대중 근접 정찰을 실시하고 미일이 연합 군사훈련을 강화하자, 중국 공산당으로서는 핫라인 설치가 절실해진 것”이라고 평했다.

왕샤는 일본의 대중 강경책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도 상당한 타격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31일 일본 정부는 23개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에 대한 수출 규제를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외국환 및 대외무역법’ 개정안을 오는 7월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중국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네덜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과의 반도체 전쟁에 참전을 선포한 것으로 이해된다.

닛케이 아시아에 따르면, 2022년 10월 7일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 이후 지난 4분기 일본의 대중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액은 16%, 네덜란드는 44%, 미국은 50% 감소했다.

같은 기간,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로의 수출액은 일본이 26%, 미국이 10% 증가했다.

반면, 중국의 반도체 제조장비 수입액은 2022년 한해 14% 감소한 347억 달러로 3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12월 수입액은 전년 동기 대비 21% 감소하는 등 감소세가 2023년에도 이어지고 있다.

왕샤는 “중국 공산당은 미국과의 무역전쟁, 과학기술 경쟁이 벌어지자 한때 일본에 기대를 걸었다. 일본은 중국 공산당이 미국으로부터 얻고 싶은 기술의 80%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미일이 협력을 강화하면서 기술 이전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중국 공산당의 대일정책은 미일 관계에 틈을 만들어 미국의 봉쇄망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했다.

친중파 기시다 내각, 중국 위협에 정책 선회

왕샤는 “일본은 이러한 중국 공산당의 의중을 파악하고 미일 관계 강화로 맞서고 있다. 기시다 내각의 변화가 바로 그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 정계에서도 중국에 가까운 ‘지중파(知中派)’로 알려져 있었으며, 2021년에는 친중파로 분류되는 하야시 의원을 외무상으로 임명했다.

당시 미중 갈등 상황에서의 외교 정책을 질문받은 하야시 외무상은 “일본의 경제·안보 이익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향후 ‘상당히 어려운’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왕샤는 “이후 기시다 내각의 외교정책에 대해서는 당내 지중파와 대중 강경파를 조율하며 미중 사이에서 정교한 균형 외교를 펼치려 한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중국 공산당이 늑대처럼 사나운 전랑(戰狼)외교를 펼치면서 일본은 물론 국제 사회에서 반발을 사고, 미중 갈등이 가파르게 고조되면서 기시다 내각의 대중 정책은 갈수록 강경해지고 있다”고 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021년 미·일 외교·국방장관 ‘2+2’ 회담 성명과 관련해 “미일 야합”, “일본이 미국에 전략적으로 종속”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격렬히 비난했다.

왕샤는 “이런 거친 언사로 중국은 주변국의 반감을 샀고 일본과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또한 2022년 8월 중국이 대만 포위훈련 기간 중 발사한 탄도미사일 9발 중 5발이 일본이 정한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떨어지면서 일본의 위기감을 자극했다”고 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은 기시다 총리에게 미국과의 적극적 협력을 통해 중국 공산당의 국제전략 환경을 재구성하는 대중 전략을 수립하도록 촉구하는 작용을 일으켰다고 왕샤는 설명했다.

왕샤는 “기시다 내각의 대중 정책 전환 속도는 상상 밖으로 빠르다”면서 기시다 총리가 주일 중국대사의 이임 인사를 거절한 일을 사례로 들었다.

교도통신은 지난달 25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이 지난 1월 쿵쉬안유 당시 주일 중국대사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기시다 총리 측에 접견 의사를 타진했지만, 기시다 총리가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역대 주일 중국대사들이 임기를 끝내고 귀국하기 전 일본 총리와 만나 이임 인사를 한 것에 비하면 매우 이례적 사건이었다.

왕샤는 “이는 일본의 대중 정책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며 일본의 2023년 외교청서는 중국의 군사 동향을 ‘일본과 국제사회의 심각한 관심사’로 규정하고 법치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강화하는 데 있어 ‘전대미문의 최대 전략적 도전’이라고 평가한 점을 언급했다.

앞서 2022년 판에서는 중국의 군사동향을 ‘안보상 강한 관심의 대상’이라고 규정했던 것에 비해 한층 표현이 강해진 것이다.

왕샤는 “중국 공산당의 군사적 위협이 커지면서 일본은 방어에서 적 기지 공격 능력을 갖추는 방향으로 국가 안보전략을 전환하면서 미일동맹, 미·일·유럽의 3각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동북아 정세가 급박하게 변하면서 세력 재편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