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경제 석학 “일본은 한국에 뒤졌다” 자성 촉구

최창근
2021년 12월 14일 오후 4:23 업데이트: 2022년 05월 31일 오전 11:36

재무관료 출신 석학 “G7서 일본 빼고 한국 넣어도 할 말 없어”
“일본, 이대로 가다간 경제 규모에서도 한국에 뒤진다” 경고

“만약 선진 주요 7개국(G7) 중 아시아 대표 국가를 일본에서 한국으로 바꿔야 한다는 제안이 들어오고 한국의 비교 우위를 보여주는 지표를 들이밀 때 일본은 과연 어떻게 답할 것인가?”

한 일본 원로 경제학자의 자성(自省)이다. 그는 일본 매체 기고문에서 “한국과 일본은 1990년대 경제 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났고 이것이 현재의 일본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쇠락한 상태’로 내몰았다”고 진단했다.

이어 “어느덧 일본은 G7 퇴출을 우려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고 한탄하면서 “다양한 지표에서 한국은 이미 일본을 앞질렀다”고 단언하며 글을 시작했다. 이어지는 그의 글이다.

“1990년대 후반 경제 위기에 빠졌다는 점에서는 일본과 한국이 동일했지만, 이에 대한 대응에서 일본은 한국에 크게 뒤졌다. 한국은 대학의 내실을 기하고 영어 실력을 높이면서 경쟁력을 향상했다. 반면 일본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

그는 “한국은 일본보다 풍요로운 나라로 변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통계 지표와 각종 국제 순위를 근거로 제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 기준, 지난해인 2020년 평균 임금은 일본 3만 8515달러, 한국 4만 1960달러로 한국이 앞선 상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최근 발표한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도 한국은 23위에 랭크된 데 비하여 일본은 8계단 떨어진 31위로 차이가 난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변화 추이를 보면 암울하기 그지없다”고도 했다. 2020년 기준 1인당 GDP는 일본 4만 146달러, 한국 3만 1496달러로 아직 일본이 높다. 그러나 성장세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본은 2000년 이후 20여 년간 1.02배로 제자리걸음 했다. 한국은 같은 기간 2.56배로 증가했다. 그 결과 2000년 일본의 31%에 불과했던 한국의 1인당 GDP는 현재 78% 수준이 됐다.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의 시가 총액 차이가 현격한 점도 지적했다.

주식 시가총액 기준 세계 100대 기업 중 한국 수위인 삼성전자는 14위(4799억 달러)에 올라있지만, 일본에서 가장 높은 도요타자동차는 36위(2444억)였다. 시가총액 규모 자체가 2배 차이 난다.

그는 “1980년대 말 전 세계 시가총액 상위권은 일본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었다. 미국 기업들보다도 위에 있었다. 일본은 세계 제일이었고 한국 기업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는 거품에 따른 것이었고, 거품이 붕괴한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썼다.

실제 일본 거품 경제가 절정이던 1988년 시가총액 세계 50위 기업 중 33개가 일본 기업, 20위 권 내에는 일본 기업 16개가 포진했다.

시가총액 1위 일본전신전화주식회사(NTT)의 시가총액은 2위 IBM의 3배를 상회했다. 당시 NTT 시가총액은 독일, 홍콩 전체 상장기업 시가총액을 합한 것보다 큰 수준이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업 반열에 들지도 못하는 내수용 가전제품 생산업체에 불과했다. 국내 시장에서는 금성사(LG전자)에도 밀리는 형편이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1988년 9월 발표한 시가총액 기준 세계 100대 기업 순위 중 상위 50개 기업. 표는 매일경제 1988년 9월 24일자에 실린 것이다. | 자료사진

해당 글을 쓴 사람은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 국립 히토쓰바시대(一橋大) 명예교수이다. 1940년생(81세)으로 도쿄대(東京大) 졸업 후 1964년 대장성(大蔵省·현 재무성)에 입성하여 관료로 일했다. 1973년 대장성을 나와 사이타마대·히토쓰바시대·도쿄대·와세다대 등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했다.

노구치 유키오는 12월 12일 일본 최대 출판사 고단샤 발간 경제지 ‘겐다이(現代) 비즈니스’에 기고한 ‘일본은 20년 후 경제 규모에서 한국에 추월당한다: 유감스러운 그 이유는?’ 칼럼에서 한국의 일본 추월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는 “미국이 정보기술(IT) 혁명을 통해 새로운 경제를 이룩했고 중국도 경이로운 발전을 실현했으며 한국도 경쟁력을 키웠지만 일본은 정체를 거듭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인은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를 바꾸려고 어떻게든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물음을 던졌다.

그러고는 “어딘가에서 ‘구원의 신(神)’이 나타날 리 없다. 현재 상황을 바꾸려면 오직 일본인이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일본인은 이제 각성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일본의 자성과 변화를 위한 노력을 촉구하며 글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