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동남아 순방 마무리…미중일과 회담·경제협력 다변화 시동

이윤정
2022년 11월 16일 오후 5:10 업데이트: 2022년 11월 16일 오후 5:34

한미·한미일·한일·한중 정상회담 성과
한미일 대북 공조 재확인, 첫 포괄적 공동성명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 발표
‘한·아세안 연대 구상’…전기차·배터리·디지털 협력 강화

윤석열 대통령이 캄보디아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와 인도네시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등 4박 6일간의 동남아 순방을 마치고 16일 귀국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미국·일본·중국 등 국익과 직결된 주요국 정상과의 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를 비롯해 주요 외교 현안들을 다루고 경제 안보 협력을 강화했다. 아세안 지역과도 경제·외교 관계를 한 단계 격상하고 세일즈 외교를 재개하면서 경제협력 다변화의 첫걸음을 내딛고 우리 기업의 아세안 활로를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층 진전된 다자외교 성과

윤 대통령은 지난 11월 11일(현지 시간) 동남아 순방 첫 방문지인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 모두발언에서 자유·평화·번영을 3대 비전으로 하는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다. 이는 우리 정부 차원의 독자적인 첫 지역외교 구상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은 “역내 자유, 인권, 법치와 같은 핵심 가치가 존중되어야 하며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은 결코 용인되어선 안 된다”며 ‘보편가치에 기초한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 원칙을 제시했다. 아울러 핵 비확산, 대테러, 해양·사이버·보건 안보 분야에서 역내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 방침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중국과 동남아 국가 간 분쟁 요소인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제법 위반이자 우크라이나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규탄하고 “남중국해는 규칙 기반의 해양 질서를 수호하는 평화와 번영의 바다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짧은 순방 일정 속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된 한·미, 한·중·일, 한·일, 한·중 정상회담은 가장 두드러진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마주한 한미일 3국의 키워드는 ‘북핵’이었다. 3국 정상은 최근 북한의 연이은 탄도미사일 도발과 7차 핵실험 준비 정황 등을 규탄하고, 이에 대응한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 공약 및 3자 간 협력을 재확인했다.

3국은 회담 후 사상 처음으로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에서 효력이 정지됐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정상화하고 한층 높은 차원의 정보 교류가 이뤄질 전망이다.

3국 정상은 경제안보대화체 신설에도 합의했다. 한미일 공동 성명에는 러시아의 침공에 대항해 우크라이나와 연대하고, 대만해협의 평화·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며, 각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이행 과정에 협력하는 등의 내용도 담겼다.

한미·한일·한중 정상회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13일(현지 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것도 이번 순방의 성과로 평가된다. 앞서 지난 9월 미국 뉴욕 방문에서 우리 측이 시도했었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일정이 변경되면서 한미회담이 불발된 바 있다.

양국 정상은 북한의 전례 없는 도발에 대응한 연합방위태세 강화에 공감하면서 어떤 형태로든 북한이 핵을 사용한다면 양국은 ‘모든 가용 수단을 활용해 압도적인 힘으로 대응한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두 정상이 경제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한국산 전기차에 보조금을 제외하는 미국의 ‘인플레감축법(IRA)’에 대해서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 기업들이 자동차, 전기 배터리 등의 분야에서 미국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면서 “이러한 점을 고려해 IRA의 이행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열린 한일 회담에선 양국 간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방식을 놓고 양측 간 이견이 존재해 여전히 세부 논의가 과제로 남아 있지만, 양국은 일본 강제징용 피고 기업 자산이 강제적으로 현금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안 마련에는 공감했다. 윤석열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 의지에 따라 실무진들 간 협의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대통령실은 16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회담에서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자는 취지로 긍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했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대응하는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응과 한·미·일 안보 협력과 군사 공조 체계 강화에 뜻을 모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3일(현지 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취임 후 처음 이뤄진 한중정상회담 역시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3월 이후 3년 만에 이뤄진 한중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양국의 소통을 강화하자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윤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의 회담에서 “우리 정부의 외교 목표는 동아시아와 국제 사회의 자유, 평화 번영을 주도하고 기여하는 것”이라며 “그 수단과 방식은 보편적 가치와 국제 규범에 기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중국의 역할도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양국 정상이 한중관계 발전 방향과 한반도 문제, 역내·글로벌 정세 등 상호 관심사에 대해 논의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순방에서 한미일 3국 공조가 강화되면서 북중러 3국과의 대립 구도가 뚜렷해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아세안 연대구상…경제협력 다변화 시동

역내 국가 정상과 잇달아 정상회담을 갖고 세일즈외교를 재개한 것도 성과였다.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을 발전시키면서 해당 지역에서 수요가 높은 전기차·배터리·디지털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아세안 지역은 인구 중 젊은 층의 비중이 높고 경제 수준도 향상되고 있어 수요를 확보하면서도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광물 등을 확보할 수 있다. 한-아세안은 오는 2024년 대화 관계 수립 35주년을 맞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구체화 방안도 모색하기로 했다.

필리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원전·방산·인프라 협력에 관해 대화했고, 캄보디아 훈센 총리와는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경제교류 방안을 논의했다.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와의 회담에서 양국은 전기차 등 첨단 부문 공급망 안정에 대해 논의하고 양국 협력 계획을 담은 ‘2022~2027 한·태국 공동행동계획’을 채택했다.

한국 기업인들과 기념 촬영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조코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오른쪽에서 다섯번째) | 연합뉴스

특히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는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을 계기로 공급망 연계 강화와 경제 네트워크 고도화 및 관계 발전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앞서 윤 대통령이 밝힌 ‘한-아세안 연대구상’ 관련 첫 경제 협력 행보로 주목된다.

이날 양측 정부 및 경제계 인사 총 50여 명이 참석한 한-인니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양국은 ▲투자 분야 고위급 대화 출범 ▲한-인니 경협 2.0(디지털 파트너십) ▲핵심 광물 협력 ▲녹색 전환 이니셔티브 ▲인프라 개발 협력(신수도·중전철·해양교통 등) 등 총 10건의 정부·민간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이번 한-인니 경제협력의 키워드로 △아시아 경제 협력의 다변화의 시작 △인프라 건설의 세일즈 외교 △핵심광물 공급망 강화 △디지털과 녹색 파트너십 기반 구축을 꼽았다.

B20 서밋서 ‘디지털 전환 통한 공급 혁신’ 강조

윤 대통령은 14일(현지 시간) 발리의 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B20 서밋’에 참석해 글로벌 복합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으로 ‘디지털 전환을 통한 공급 혁신’을 제시했다. 이는 지난 9월 윤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 당시 발표한 디지털 혁신 비전인 ‘뉴욕 구상’ 실천 의지를 재차 강조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특히 G20 회원국 주요 경제계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이 디지털 선도 국가로서 전 세계 디지털 질서 재편에 앞장서겠다”고 역설했다.

윤 대통령은 순방 마지막 날인 1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식량·에너지 분야에서 과도한 보호주의를 자제할 것”을 제언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식량·에너지안보’를 다룬 1세션에서 가격 안정을 저해하는 불합리한 수출·생산 조치가 없도록 G20 회원국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혁신 기술 공유도 거론하며 “대한민국은 더 큰 책임감을 갖고 녹색 농업, 에너지 분야에서 축적된 경험과 기술을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윤 대통령은 서울에서 다시 외교 행보를 이어간다. 오는 17일엔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18일에는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와 각각 정상회담을 진행한다. 방한을 앞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의 회담도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