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무기 법제화 천명…국제사회 “평화·안보 위협” 한목소리

이윤정
2022년 09월 10일 오후 3:56 업데이트: 2022년 09월 11일 오후 1:34

김정은 “핵 포기 절대 없다”
美 백악관 “외교적 해법 유지” 고수
전문가들 “北 비핵화 점점 더 어려워져”

북한이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핵무기 법제화에 나서자 국제사회가 일제히 우려를 나타냈다.

9월 9일 북한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날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의 목적이 북한 핵 자체를 제거해 버리자는데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핵을 내려놓게 하고 자위권 행사력까지 포기 또는 열세하게 만들어 정권을 붕괴시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제재로 핵을 포기할 것이란 생각은 오판이고 오산”이라며 “언제 어떤 핵무기를 쓸지 등에 대한 핵 무력 정책을 법제화했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 등은 “핵 무력 정책 법령은 1항~11항까지 번호를 붙여 차례로 핵 무력의 사명과 구성, 핵 무력에 대한 지휘통제, 핵무기 사용 결정의 집행, 핵무기의 사용 원칙, 핵무기의 사용 조건 등을 담았다”고 보도했다.

특히 ‘핵 무력에 대한 지휘통제’를 다룬 3항은 “핵 무력은 국무위원장의 유일적 지휘에 복종한다. 국무위원장은 핵무기와 관련한 모든 결정권을 가진다”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절대적 권한을 명시했다.

이에 국제사회가 잇따라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9일(현지 시간) 북한이 ‘비핵화는 없다’며 핵 무력 정책을 법제화한 것을 두고 “깊이 우려한다”고 논평했다. 스테판 뒤자리크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안보 독트린에서 핵무기의 역할과 중요성을 늘린다는 것은 핵 위험을 줄이고 없애기 위한 국제사회의 수십 년 노력과 반대되는 일”이라며 이같이 전했다. 이어 “북한은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한 미사일 개발을 포함해 핵무기 프로그램을 추구함으로써 그런 활동을 중단하라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계속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 연합뉴스

AFP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외무부도 이날 성명을 내고 북한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국제사회와 지역사회의 평화와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북한의 더욱 공격적인 선언을 깊이 우려한다”고 밝혔다.

미국 백악관은 외교와 대화를 통해 비핵화를 달성한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카린 장 피에르 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김 위원장 연설 관련 질문을 받고 “미국은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의도가 없다. 우리는 외교적 해법을 추구하고 있고 북한을 조건 없이 만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모든 방어 수단을 가용해 한국을 방어하겠다는 우리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 비핵화가 점점 더 어려운 목표가 돼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9일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미국이 북한 비핵화의 대원칙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미국은 계속 외교와 억지, 제재와 법 집행 등 모든 도구를 사용하려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관측했다. 하지만 “미국이 그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앤드류 여 한국 석좌는 “김 위원장의 선언과 북한의 핵 무력 정책 법령에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북한이 핵 무력 정책 법령 서문에서 주권을 지키고 전쟁을 억제하기 위한 핵무기 사용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핵보유국으로서 점점 더 자신감과 원숙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에반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VOA에 “향후 미국의 대북 정책이 ‘비핵화’에서 ‘핵 위기관리’로 방향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며 “특히 워싱턴에서는 핵무기 선제 사용 의도를 밝힌 북한과의 충돌 가능성을 다루는 데 있어 위협 관리가 정책의 주안점이 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성윤 미국 터프츠대 교수는 “김 위원장의 선언이 7차 핵실험의 전조일 수 있다”고 말했다고 VOA는 전했다. 이 교수는 “주요 선언이 나온 후에는 이를 지원하는 증거나 행동이 뒤따른다”면서 “김 위원장이 곧 이번 위협을 핵 도발, 핵실험, 그리고 한국에 대한 선제 핵 공격 위협으로 뒷받침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전직 주한미국대사들도 우려를 표명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미국대사는 9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의 핵 무력 법제화는 향후 미북 혹은 남북 간 대화가 재개되면 비핵화는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신호를 분명히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북한 핵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한 재래식 미사일 및 탄도미사일 방어력 강화 등 북한의 위협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조언했다.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대사도 북한의 핵 무력 법제화는 놀랄 일이 아니라면서 “북한이 기꺼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것이란 생각은 순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미 동맹은 북한의 어떤 위협에도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한반도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 즉 사드(THAAD)를 계속 배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국민의힘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북한은 여전히 국제정세를 오판한 채 고립을 자초하고 스스로 제재를 초래하고 있다”며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화의 문은 늘 열어두지만, 무력도발에는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