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RCEP ‘관세·원산지 혜택’ 내세워 대만기업 유혹

류정엽 객원기자
2022년 01월 13일 오후 1:51 업데이트: 2022년 06월 3일 오후 3:28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이 지난 1일 발효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카드를 꺼내들고 대만 기업과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중국 투자를 유도했다.

12일 주펑롄(朱鳳蓮)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 대변인은 지난 1일 발효된 RCEP이 “현대적이고 자유롭고 질이 높다”며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아 규모가 가장 큰 자유무역협정으로, 발전 잠재력이 가장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협정 참여국의 교역 상품 90% 이상이 점진적으로 관세가 제로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중국에 투자한 대만 기업은 RCEP 회원 우대 관세 및 원산지 규정 혜택을 누릴 수 있어 더 넓은 시장을 확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동시에 중국의 다양한 지역 개발 계획, 기업 지원 정책·조치 및 개혁개방의 가속화로 대만 동포와 대만에 더 많은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라며 “우리는 언제나 대만 기업인과 기업이 중국에서 안정적이고 건전한 발전을 통해 추구하는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강력히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RCEP으로 대만 기업 모시기에 나선 데에는 대만 기업의 대중국 투자 감소가 주 원인으로 분석된다.

경색된 양안 관계가 장기화로 접어든 가운데 미중관계가 격화되면서 대만 기업들이 점점 고립을 자초하고 있는 중국을 대신할 곳을 찾으며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대만 투자심의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2021년 1~11월 대중국 투자액은 47억9천만 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4.5%감소한 것으로 146억 2천만 달러를 기록한 2010년의 30%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만 기업의 아세안 국가에 대한 투자는 53억9천만 대만달러로 100% 이상의 증가세를 기록하며 중국을 앞질렀다.

일각에서는 이를 단기적인 추세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아세안 국가 투자 중 두 건이 전체 투자액의 65%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대만 글로벌크리스탈(環球晶)이 독일 실트론 인수를 위해 싱가포르 자회사에 25억 달러를 출자했다. 또 반도체IC 업체 미디어텍은 싱가포르 자회사에 자본금 10억 달러를 늘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보이는 대만 기업의 수가 늘어나면서 장기적인 추세로 접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중화경제연구원 대만-아세안 연구센터 쉬쭌츠(徐遵慈) 주임은 국경을 넘는 관광이 재개되면 아세안에 대한 대만 기업인들의 투자가 가열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대만 기업들의 사업 다각화 이면에는‘하나의 중국’ 원칙이라는 정치적 요소가 장애물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중국이 꺼내든 RCEP 카드가 강력한 효력을 발휘할지 의문이 든다.

지난해 11월 대만 대기업 위안둥(遠東) 그룹의 중국 자회사 두 곳이 8862위안의 벌금을 맞았다. 당국은 회사가 수차례 규정을 위반해 처분한 것이라고 했지만 중국 대만판공실은 ‘정치적 성향’과 2020년 총통선거 당시 민진당에 기부한 ‘기부금’을 문제 삼았다.

‘하나의 중국’ 원칙은 대만의 식음료 기업에도 예외 없이 적용됐다.

2018년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해외 순방 중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경유하면서 대만 커피전문점 ‘85도씨(85°C)’에 들른 것이 화근이 됐다. 85도씨는 중국으로부터 ‘대만독립세력’이라는 정치적 공격을 받게 됐다.

이에 중국에서 사업을 벌이는 85도씨는 즉각 성명을 통해 ’92공식'(九二共識·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을 지지하며 ‘양안은 한 가족’이라는 중국 정부의 입장에 동의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8월 15일 푸젠성(福建省) 취안저우(泉州)에 위치한 85도씨는 식품안전검사를 받았다. 85도씨는 푸젠성에만 180여 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이에 겁을 먹은 대만 제빵의 명인 우바오춘(吳寶春)은 같은 해 12월 중국 상하이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자발적으로 자신이 ‘중국인’임에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대만을 ‘중국대만’, ‘양안은 한 가족’이란 입장을 변함 없이 견지하겠다며 대만독립 지지자가 아님을 강조했다. 우바오춘은 2008년, 2010년 제빵 월드컵 우승을 차지해 유명세를 탔다.

글로벌 기업에 중국식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부여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 질서와 언론의 자유를 통제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렇기에 대만 기업들은 사업 다각화라는 명분으로 탈(脫)중국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국과 격돌 중인 미국에 대한 대만 기업들의 투자는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대만의 대미 투자는 전년 대비 무려 654% 포인트 증가했다. 투자액은 42억7천만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계 최고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TSMC, 반도체 설비업체 하이윈 등이 견인차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대만 유력지 ‘천하’(天下)에 따르면, 대만–미국 간의 무역 업무를 책임지는 대만 천정치(陳正祺) 경제부 차장은 “대만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바뀌었고 신뢰도가 크게 향상되었다”며 “미국에 대한 대만의 전략적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양국 간의 경제 무역 관계의 방향이 보다 실용적이고 구체적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