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8층 높이 쑹칭링상(像) 건립 논란

이지성
2011년 11월 10일 오전 12:37 업데이트: 2019년 07월 22일 오후 9:34


중국 허난성 정저우시에 건설 중인 쑹칭링상. 이달 말 완공 예정이다.


 


중국에서 신해혁명(辛亥革命)을 주도한 쑨원(孫文)의 부인 쑹칭링(宋慶齡)의 대형 석상이 건립돼 논란이 일고 있다.



허난(河南)성 쑹칭링기금회는 현재 정저우(鄭州)시에 8층 건물 높이의 대형 쑹칭링 석상을 세우고 있다.


 


신해혁명 100주년(10월 10일)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 중인 이 석상은 부지 면적 800㎡에 높이 21.4m에 달하며 내부는 6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회의실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 사업을 둘러싼 대중의 시선은 곱지 않다. 한 누리꾼은 최근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이 석상 사진을 공개하자 “신해혁명 100주년을 기리는 사업이 고작 이런 것이냐”며 “대형 석상 건립은 평생 중국의 앞날을 염려했던 쑹 여사를 오히려 욕되게 하는 것”이라는 비판댓글이 쇄도했다.


 


이러한 논란은 중국정부의 안일한 역사인식 때문이다.



신해혁명은 1911년(辛亥年)에 일어난 중국의 민주주의 혁명으로 중국에서 2000여 년간 이어져 오던 군주전제정치를 종결시켰으며, 더 나아가 아시아 최초로 공화제를 실현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신해혁명의 진정한 의의를 외면한 채 ‘중화민족 부흥’이라는 엉뚱한 논리로 신해혁명의 정신을 왜곡, 해석했다. 이에 대해 언론과 체제 내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비판이 일면서 논쟁으로 번졌다.



대만 정치대학 역사학과 탕치화 교수는 중국 내 유력주간지인 ‘남풍창’의 ‘편협한 민족주의와 외교정책’이라는 제목의 대담기사에서 “신해혁명에 대한 기존평가와 해석은 지나치게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권력의 필요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중국은 반드시 혁명외교와 고별해야 한다. 과거 근 100년 동안 (중국)외교는 내부 투쟁과 정치선전의 도구가 되었다. 인민에게 ‘열강이 중국을 괴롭혔기 때문에 반드시 복수해 설욕해야 한다’고 가르쳤다”며 “이런 주입은 균형 있는 세계관과 민족성을 형성할 수 없고, 민족주의는 애국심을 유발할 수 있지만 편협한 민족주의는 중국의 전진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중국은 굴기(掘起)해야 하지만 반드시 혁명외교와는 고별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신해혁명에 대한 기존 해석과 평가를 뒤집는 대담기사를 내보낸 ‘남풍창’의 편집장은 결국 직위해제 되는 변을 당해 중국정부가 이 사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한편, 중국의 유명한 역사학자인 위안스웨이는 지난 10월 9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누가 신해혁명을 망쳤는가’라는 글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황제가 있고 없고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말로 전제제도가 끝났는지 여부다. 신해혁명이 이런 역사적 임무를 완성하지 못한 것만은 분명하다”며 은연 중에 중국이 여전히 공산당 전제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중국 사회과학원의 청조 연구가인 사학자 마용 역시 지난 5월 출간된 ‘1911년 중국혁명’이라는 책을 통해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나라의 좋은 제도를 받아들여 배운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달리 중국은 민주제도 같은 다른 선진국의 좋은 것은 배우지 않고 독재와 전제제도만 배웠다”며 공산당과 정부를 겨냥해 강한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의 논지는 중국 공산당이 청 왕조처럼 부패한 전제정치를 계속한다면 결국 몰락의 절차를 밟게 될 것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경고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내부적인 불만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상황개선 노력 없이 당국이 쑹칭링의 대형 석상에만 공을 들이자 ‘형식적인 겉치레’일 뿐이라는 여론이 쇄도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부정적 여론이 고조되자 이 기금회는 “석상은 쑹칭링이 아니라 황허(黃河)의 여신”이라고 해명했으나 이 석상 제작에 참석한 광저우(廣州) 미술학원이 즉각 반박하고 나서 더욱 궁지에 몰렸다.



광저우미술학원 조각과 장젠타오(蔣劍韜) 부주임은 “지난해 허난성 쑹칭링기금회의 요청에 따라 제작을 추진했던 쑹 여사의 동상이 맞다”며 “당시 축소판까지 제작했으나 이견이 생겨 기금회 측이 계약을 해지하면서 석상 건립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쑹칭링(宋慶齡, 1892.1.27~1981.5.29)


중국 근대사의 최고명문가인 쑹자수(宋嘉樹) 가문의 세 자매 중 둘째. 쑨원의 아내이자 혁명가로서 ‘중국을 사랑한 여인’으로 불리며 지금까지도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