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해경법 시행 1년…한국 해상 권익·안보 문제 없나

이윤정
2022년 03월 1일 오후 5:21 업데이트: 2022년 05월 31일 오후 2:27

中 해경법, ‘무기사용’ 허용…역내 긴장 고조
한중 간 ‘서해’ 경계 미확정…갈등 극대화 우려
국방연구원 “한국, 해상 권익·안보 위한 방안 마련해야”

중국이 지난해 2월, ‘무기사용’이 포함된 중국 해경의 임무와 권한을 명시한 ‘해경법’을 시행하면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일본, 베트남, 필리핀이 반발하는 등 역내 긴장이 고조돼왔다. 우리나라도 중국 해경법의 영향으로부터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은 지난 2월 25일 ‘중국 해경법과 해상교통안전법 제·개정의 해양안보적 함의’를 주제로 화상 세미나를 개최했다.

2003년 한국 최초의 국가관리 및 통치 관련 교책연구기관으로 설립된 국가관리연구원은 정치·경제·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진들이 한국사회의 선진화와 민주주의 발전을 목표로 연구·정책개발·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발표자로 나선 김현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국 해경법과 해상교통안전법은 중국의 국내법이지만 ‘해양’ 관련 국내 입법과 집행은 해양 안보에 영향을 준다”며 해당 법은 여러 국가가 이해관계를 가지는 국제적 사안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해당 법의 해양안보적 함의는 국제 해양 규범과의 합치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中, ‘해양강국’ 건설 천명…“중국몽 위한 핵심”

중국은 2012년, ‘해양강국 건설’을 천명했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그해 제18차 당대회를 통해 “해양자원개발 능력 제고, 해양경제 발전, 국가 해양 권익 수호를 위한 해양강국 건설이 중국몽(中國夢) 실현을 위한 핵심적인 국정 과제”라고 선언했다.

이듬해 중국은 해양 권익 수호를 명분으로 국무원 산하 국가해양국의 해양법 집행기관 4개(해양감시대, 어업관리국, 해상밀수방지군, 국경방어해안경비대)를 통폐합해 중국해안경비대(CCG·China Coast Guard)를 창설했다. 이후 CCG는 2018년 조직 개편을 거쳐 중앙군사위원회 산하 인민무장경찰부대 소속이 됐다.

2020년 11월, 중국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총 80조항으로 이뤄진 해경법 초안을 발표했다. 초안은 2021년 1월 22일, 개정 조항과 함께 통과돼 지난해 2월 1일 발효됐다. 중국은 새 해경법에 이어 지난해 4월 28일, 외국 국적 선박이 중국 내수(內水)와 영해의 안전을 위협하면 퇴거 조치를 할 수 있는 ‘해상교통안전법’까지 통과시켜 지난해 9월 1일부터 시행 중이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해군 의장대를 사열하는 모습 | 연합

김현정 교수는 중국의 해양 관련 국내법 제·개정을 두고 ‘법률전 전략’으로 간파했다. 법률전이란 법률을 무기로 삼은 전쟁을 말한다. 중국은 2003년 개정된 ‘중국인민해방군 정치 공작 조례’에 따른 ‘삼전(三戰: 법률전·심리전·여론전)’을 규정하면서 법률전을 가장 중시했다.

김 교수는 시진핑 총서기가 2020년, “입법, 법 집행, 사법 투쟁 방식으로 중국의 국가 주권과 핵심 이익을 수호하겠다”고 언급한 것을 인용했다. 분쟁 해역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한 여러 해양 관련 법을 제정함으로써 중국은 분쟁 수역 및 도서에 대한 자국 정부의 행동에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다른 권리 주장국에 대한 강압적 조치를 정당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현정 교수는 중국 해경법과 해상교통안전법 관련 주요 쟁점으로 ▲관할 해역 ▲항행에 대한 제한 ▲해상 법집행을 꼽았다.

쟁점 1 관할해역

김 교수는 해경법에 명기된 ‘관할해역’이라는 용어에 대해 “법에 정의되어 있지 않고 전략적 모호성을 지닌다”라고 지적했다.

중국 해경법 제3조는 해경법의 적용 범위를 ‘중국의 관할해역 및 그 상공’으로 명시했다.

그러나 법에 관할해역에 대한 정의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중국이 주장하는 일부 관할해역은 국제법이 인정하지 않는 ‘역사적 권리’를 주장하고 있으며 이는 주변국과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변국과의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남중국해 분쟁이 대표적 사례다. 특히 중국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남해 9단선(九段線) 문제는 국제법적 측면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9단선은 중국이 남중국해 해상경계선이라 주장하며 그은 U자 형태의 9개 선으로 남중국해 전체 해역의 90%를 중국의 수역으로 설정하고 있다. 중국은 이 9단선이 역사적으로 형성돼 1982년 채택된 유엔 해양법협약(UNCLOS)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필리핀은 중국을 상대로 지난 2013년 1월 22일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제소했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남중국해 분쟁에 대한 3년 6개월간의 심리 끝에 “중국이 (남중국해의) 남해 9단선 안에 있는 해역의 자원에 대한 역사적 권리를 주장할 법적 근거는 없다”고 판결했다.

‘무기 사용’을 허용한 중국 해경법에 항의하는 필리핀 활동가들 | 연합

당초 해경법 초안 제74조 2항에서는 중국 관할 해역을 “중국 내수, 접속 수역, 배타적 경제 수역(EEZ), 대륙붕 및 기타 중국 관할 수역”으로 정의했다. 이에 따라 중국이 관할권을 주장하는 모든 수역에 이 법이 적용되며, 남중국해 9단선 내 수역, 센카쿠 열도 앞바다 등 지역 내 국가들과의 분쟁 해역에 대해서도 적용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최종 해경법에서 이 정의 규정은 삭제됐다. 이를 두고 김 교수는 “중국이 기존의 관할해역의 범위가 해양법적으로 논란이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쟁점 2 항행에 대한 제한

중국의 해상교통안전법 제54조는 중국 영해를 통과하는 특정 종류의 외국 선박에 대해 진입 전 사전 통보와 관련 증명서 소지, 특별예방 조치 등의 의무를 부과했다. 의무 부과 대상은 “잠수함, 핵추진선박, 방사성 물질 또는 그 밖의 유독·유해물질을 실은 선박, 법률·행정 법규 또는 중국 국무원이 규정한 해상교통안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그 밖의 선박”으로 규정했다.

김 교수는 “중국 영해를 출입하는 특정 외국 선박에 대해 ‘사전 통보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무해통항권 제한을 예외적,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국제법 원칙에 위배된다”며 “연안국의 항행 제한 금지 조치는 다른 국가의 무해통항(영해), 항행의 자유(배타적 경제수역 등)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의하면 무해통항(無害通航·외국 선박이 연안국의 권리를 저해하거나 연안국의 평화·질서·안전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외국 영해를 단순 통항하는 것)의 기준은 선박의 영해 내 행위로 판단하며 선박의 종류, 특성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김 교수는 “중국의 판단 재량권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설정돼 항행의 자유에 대한 중국의 제한 조치가 남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쟁점 3 해상 법집행

해경의 ‘무기 사용’ 권한을 인정한 해경법 제22조는 주변국들의 가장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심지어 긴급 상황 시 경고  없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 국제사회의 염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이 조항은 중일 간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외국 어선이 중국의 관할수역에서 조업하기 위해 진입하는 경우에도 총기 사용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일본 내 전문가들은 이 조항을 두고 일본이 실효 지배하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첫 타깃으로 한다고 보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 일부 | 연합

김 교수는 해경법 제21조 역시 논란이 많은 규정으로 지목했다. 해경법 제21조에 따르면 외국 군함(외국군용 선박)과 비상업용 정부 선박이 중국 관할해역에서 중국 법령을 위반하면 중국 해경은 이를 제지하거나 즉각 퇴거 명령을 할 수 있다. 만약 상대 선박이 불응하거나 엄중한 위협을 초래할 경우 강제 퇴거 및 강제 견인 조치를 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이 조항 역시 UNCLOS에 명시된 군함 및 정부 선박의 무해 통항 및 주권 면제의 권리에 모순된다”며 “경계가 확정되지 않은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집행될 경우 우리나라와도 마찰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이 밖에도 해경법 제20조는 자국 관할수역 내에 설치된 시설 및 구조물 등을 필요에 따라 철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과 배타적 경제수역 주장이 중첩되는 해역에 한국이 건설한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의 경우 ‘중국 관할 당국의 승인 없이’ 건설된 것으로 간주돼 이 조항이 적용될 수 있다.

“해경법, 한국 안보와 무관치 않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중국과 해양 분쟁은 없지만, 한중 간 경계 획정이 안 된 서해에서 중국이 해경법을 집행하면 마찰이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는 지난해 5월 발간한 ‘중국 해경법의 주요 내용 및 안보적 함의’ 보고서에서 “(해경법은) 도서 영유권을 비롯한 해양 분쟁 사안에 대해 중국의 주권 실현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이라며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해경을 전략적 강압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대중국 견제 노선의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안보와도 무관하지 않다”며 “한중 간에는 서해상의 해양경계선이 확정되어 있지 않아 갈등의 소지가 있으며 역내 해상 갈등의 영향으로부터도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향후 중국이 해경법에 따라 실제 무기 사용 조치를 강행한다면 서해 해상에서 한중 간 갈등이 극단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 정부는 서해상에서의 위기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고 위기 발생 시에 한국의 해상권익과 안보를 실현할 수 있도록 대비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해양전략연구소 김석균 선임연구위원(전 한국해양경찰청장)은 지난해 5월, 정책보고서를 통해 “(한국이) 일본과 그 외 중국과의 해양 분쟁 당사국만큼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 보인다”며 중국 해경법에 대한 한국의 다소 모호한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은 분쟁 수역에서의 ‘항행의 자유 작전(FONOP)’이나 합동 해군 훈련 등 미국 주도의 대중 전략에 동참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며 “미 정부가 추구하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FOIP)’ 등 중국 견제 전략에 외교적 지지를 보내면서도 중국 해경법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침묵하기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