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인터폴 ‘적색수배’ 요청 최다국…인권탄압 해외확장 우려

강우찬
2022년 11월 9일 오후 12:37 업데이트: 2022년 11월 9일 오후 12:37

중국, 매년 인터폴 적색수배 최다 요청국
권위주의 정권, 자금 지원으로 영향력 확대

국제형사경찰기구(ICPO·인터폴)의 적색 수배령이 중국의 해외 반체제 인사 탄압에 악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대만 국방부 싱크탱크인 국방안전연구원은 중국 공산당이 그동안 침투공작을 지속하며 인터폴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해왔다며 이같이 밝혔다.

적색 수배는 인터폴의 수배 단계 중 가장 강력한 조치다. 적색 수배령이 내려지면 인터폴 가입국의 사법당국에 수배자 사진, 지문 등 신원정보가 공유되며 신병이 확보되면 수배를 요청한 국가에 강제 압송될 수 있다.

인터폴은 지난달 18~21일 인도 뉴델리에서 연례총회를 열었지만 올해에도 대만의 옵서버 참가를 불허했다. 17일 연차총회 전 가진 기자회견에서 위르겐 스톡 인터폴 사무총장은 “인터폴은 중국을 중국의 유일한 대표이며 대만은 중국의 일부이기 때문에 옵서버 자격을 부여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만 외교부는 18일 “중국의 무지막지한 방해로 대만이 인터폴에 참여하지 못하게 됐다”며 “범죄 퇴치를 위한 경찰 간 글로벌 협력보다 정치적 배려를 우선시한 결정”이라고 유감을 표명했다.

대만 국방안전연구원의 양이쿠이(楊一逵) 연구원은 중국 등 독재정권 국가에서는 자금 지원을 통해 인터폴 내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9년 1월, 인터폴은 바레인 정부의 요청으로 바레인 난민 출신 호주 축구선수 하킴 알 알라이비에 대한 적색 수배령을 내렸고, 알라이비는 태국 여행 도중 현지 경찰 당국에 체포됐다.

호주 정부는 즉각 인터폴에 적색 수배령을 취소하고 태국 당국에 항의했다. 당시 범죄자 신분이 아닌데도 족쇄를 차고 태국에 억류된 알라이비의 모습이 공개되면서 호주 사회는 공분했다.

결국 알라이비는 호주 정부와 축구인들의 구명 노력에 힘입어 석방돼 호주로 귀국할 수 있었으나 이 사건은 인터폴의 적색 수배령이 독재정권의 인권탄압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겨졌다.

양 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에서 인터폴 적색 수배 요청이 가장 많은 국가의 하나이며, 요청 건수는 지난 20년 사이 10배로 증가했다.

2017년 9월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공안부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인터폴에 수사 협조를 요청하는 사건은 매년 3천 건 안팎으로 이 중 500건이 적색 수배 사건이다.

중국이 신청하는 적색 수배 사건 중 상당수는 해외로 도주한 범죄 용의자 추적으로 추정되지만, 적잖은 부분이 정치범이나 양심수, 해외 반체제 인사 탄압에 관련됐을 수 있다는 게 양 연구원의 지적이다.

양 연구원은 적색 수배 외에도 중국이 인터폴을 통해 해외에서 법 집행하는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2020년까지 인터폴 자금 지원 액수 상위 20개국 가운데 국가별 자유도(프리덤 하우스 발표 기준)가 ‘자유’로 판정된 국가는 14개국, ‘약간 자유’는 2개국, ‘비자유’가 4개국(중국, 러시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이었다.

인터폴 자금 지원액을 비교하면, 민주주의 및 자유를 중시하는 국가의 자금이 그렇지 않은 국가보다 많았지만 인터폴 내 의사결정 원칙인 ‘1국1표’에 따라 자유로운 국가의 투표수는 77표로 전체의 40% 수준이다.

프리덤하우스 발표 기준 ‘약간 자유로운’ 국가는 58표, ‘자유롭지 못한’ 국가는 54표로 전체 회원국 192개국 가운데 112표로 과반수를 넘는다.

양 연구원은 “약간 자유로운 국가와 자유롭지 못한 국가가 인터폴 사무총장 선거 등 주요 정책에 관한 표결을 좌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인터폴은 회원국의 의무 분담금과 함께 회원국의 기부금 등을 재원 마련에 활용하고 있다. 인터폴의 활동자금은 연간 1억4500만 유로(약 2천억원)이며 그중 5900만 유로(약 817억원)는 의무 분담금으로 충당한다. 분담금은 미국이 가장 많고 이어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중국 순이다.

나머지 3분의 2는 회원국 기부금으로 마련하는데, 분담금에 비해 투명도가 낮은 기부금 의존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양 연구원은 “권위주의 정권은 각종 프로젝트 협력을 이유로 자금을 지원해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를 얻고 있다”면서 아랍에미리트 출자금으로 설립된 ‘더 안전한 세상을 위한 재단'(INTERPOL Foundation for a Safer World)을 사례로 들었다.

지난해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자의적 구속, 피구속자에 대한 비인도적 대우, 표현의 자유 억압, 사생활 침해 등 심각한 인권 침해를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지난해 인터폴 사무총장 선거에서는 과거 반정부 인사에 대한 고문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아랍에미리트 경찰 간부 아흐메드 나세르 알라이시가 선출됐다. 그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나 지난해 6월 인권단체에 의해 프랑스 법원에 제소됐다.

앞서 2020년에는 인터폴 86차 연례총회 개막식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인터폴의 국제적 활동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듬해 이스탄불에서 열린 87차 총회에서는 중국 공안부의 후빈첸(胡彬郴) 부국장이 아시아 대표 집행위원으로 선출됐다.

양 연구원은 “이는 중국 정부가 인터폴의 조직운영 의사결정 시스템에 침투했으며, 권위주의 국가 정부들이 자금 지원을 통해 인터폴 내에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