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웨이보, 댓글 작성자 ‘접속 위치’ 공개 파장 확산

남창희
2022년 05월 3일 오후 5:47 업데이트: 2022년 05월 4일 오전 8:16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가 지난달 28일부터 댓글 작성자의 접속 위치를 공개하면서 웃지 못할 일이 속출하고 있다.

그동안 강성 발언으로 지지층을 모았던 유명 애국주의 인터넷 논객들이 사실은 해외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나의 중국’을 외치며 대만 독립 반대 활동을 위해 만리방화벽(중국 공산당의 인터넷 차단 시스템)을 넘나들고 있다고 자화자찬하던 애국주의 커뮤니티 띠빠(帝吧)의 웨이보 공식계정은 접속 위치가 대만이었다.

미국과 일본을 자주 비난하며 “만약 내가 일본에 가면 독살당할 것”이라고 하던 애국 칼럼니스트 롄웨(連岳)는 접속 위치가 일본이었다. 한 네티즌이 “중국이 그렇게 좋다더니 왜 일본에 갔냐”고 따지자, 롄웨가 “여행도 못 가냐”고 대꾸했다.

그러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롄웨는 이어 “의료 비자로 일본에 있다. 치료를 받고 곧 귀국하겠다”며 수습에 나섰지만 ‘내로남불’이라는 비난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애국주의를 자극한 영화 ‘잔랑(戰狼·잔랑)2’로 중국에서 전례 없는 흥행을 거둔 감독 겸 배우 우징(吴京·오경)은 접속 위치가 태국이었다. 배우가 해외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상당수 중국인이 코로나19 봉쇄로 고통받는 사이, 우징이 느긋하게 태국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은 네티즌의 배신감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공산주의 중국의 반일애국 칼럼니스트 롄웨(連岳·좌)와 그가 한 네티즌과 웨이보에서 나눈 대화. “중국이 그렇게 좋다더니 왜 일본에 갔냐”는 질문에 롄웨는 “여행도 안 되냐”고 응수했다. 화면 상단에 접속 위치가 일본으로 표시된다. | 웨이보 캡처

웨이보, 사전공지 없이 강제로 접속 위치 공개

웨이보는 지난달 28일부터 이용자 계정 정보와 댓글에 ‘IP 주소’라는 이름으로 접속 지역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IP 주소는 인터넷에 연결되는 컴퓨터 혹은 기타 기기에 배정되는 고유한 번호다. 국가와 지역마다 고유한 번호가 배정돼 있어 IP 주소를 알면 어디서 접속했는지 사용자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웨이보는 대략적인 지역까지만 공개하고 있다. 중국 내 이용자는 성(省) 또는 성급 시(市)까지 공개됐고, 해외 이용자는 거주 국가가 공개됐다. 상세한 주소는 아니지만, 거주지는 민감한 개인 정보일 수 있다. 웨이보는 이런 중대한 변경 조치를 취하면서 이용자에게 사전 동의를 얻거나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 동의 없이 강제로 이용자의 접속 위치를 노출한 것이다.

웨이보는 ‘선조치 후통보’했다. 공지를 통해 당사자 사칭, 악의적인 날조, 트래픽 비정상적 증가 등 불량 행위를 줄이고, 콘텐츠의 진실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이 공지는 당일 조회수 1억7천만 건을 기록하며 네티즌의 높은 관심도를 나타냈다. 동시에 열렬한 찬반 논란을 일으켰다. 일부 이용자들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나 허위 정보를 가려낼 수 있어 유용할 것이라고 반겼다. 중국 이용자와 해외 이용자를 구분할 수 있어, 여론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나타냈다.

반면, 또 하나의 통제 수단일 뿐이며 가짜 뉴스나 악성 루머 추방에는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반응도 많았다. 일부 유명인의 웨이보 계정은 본인이 아니라 마케팅 업체와 소셜미디어 관리업체가 따로 관리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실제로 이날 중국 네티즌이 알아본 결과 빌 게이츠의 공식 웨이보 계정은 접속 위치(IP주소)가 중국 허난성으로 나타났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의 공식 웨이보 계정은 접속 위치가 상하이였다.

빌 게이츠의 공식 웨이보 계정에 지난 4월 28일 올라온 게시물. 접속 위치가 중국 허난성으로 나타났다. | 웨이보 화면 캡처

웨이보 접속 위치 공개, 대만 지지자 색출 작업?

일부 네티즌들은 이번 조치가 대만 차이잉원 정부의 지지층을 색출하거나 소셜미디어에서 몰아내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중국 온라인에서는 중국 공산당이나 정부를 비판하면 ’50w’으로 몰린다. 50w은 중국인으로 위장한 간첩 혹은 배후에 외국 세력을 둔 불온 집단을 의미한다.

50w는 50만 위안이라는 뜻이다. 숫자 뒤에 붙은 더블유(w)는 한자 ‘만'(萬·1만)의 중국어 발음 ‘완'(wan)을 나타낸다. 2017년 베이징 당국이 최대 50만 위안(약 9400만원)의 간첩신고 포상금을 내건 일에서 유래됐다.

댓글 옆에 작성자의 접속 위치가 공개되면, 대만에서 접속한 이른바 ’50w’들은 더는 중국인인 것처럼 신분을 속일 수 없게 된다는 게 시행 초기 네티즌들의 예상이었다.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신분이 들통난 것은 누구보다 애국자를 자처하던 인터넷 논객들이었다. 이들은 중국에서 있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알고 보니 해외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미국, 프랑스, 한국 등 현지에 머무는 중국인이라며 현지 소식을 알리던 이들은 오히려 접속 위치가 중국이었다. 업체의 마케팅 계정으로 추정되지만 부정확한 정보로 해당 국가를 보는 중국인들의 시선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한국, 프랑스, 일본, 인도 현지에 거주하는 중국인이라며 운영 중인 웨이보 공식 계정들. 화면 하단에 접속 위치가 모두 중국 허난(河南)성으로 표시된 것을 중국 네티즌이 발견해 온라인에 공유했다. | 웨이보 캡처

주소 공개에도 차별이 있다…일부는 예외

이번 웨이보 주소 공개가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란 점도 눈길을 끈다.

‘중국 공산당의 나팔수’로 불리던 후시진(胡錫進·호석진) 전 ‘환구시보’ 편집장의 웨이보 계정은 접속주소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웨이보 이용자들은 웨이보가 후시진을 비롯한 몇몇 유력 인사에게만 접속 위치 표시를 스스로 켜고 끌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 것이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이번 접속 위치 공개 조치는 실명 인증된 개인에게만 적용되며 중국 공산당과 산하 기관, 중국 정부, 관영매체 등의 계정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한편, 웨이보만 탓할 일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중국 공산당은 ‘제로 코로나’에 대한 국민의 불만 여론이 높아지자 인터넷 여론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 규제당국은 웨이보를 비롯해 사회적 영향력이 큰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플랫폼 18개 업체를 1차 심사 대상에 포함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현행법상 ‘민감한 콘텐츠’를 검토 없이 내보낸 소셜미디어는 서비스 임시 중단 혹은 경제적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웨이보는 지난 2021년 규제당국으로부터 민감한 콘텐츠 노출로 여러 차례 징계를 받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