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올림픽 정신은 어디로?…체제 우월성 보여주는 전쟁터로 바꿔놓았다

2021년 08월 18일 사이먼 가오의 '줌인'

안녕하세요, 여러분! ‘Zooming in China’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진행을 맡고 있는 시몬 가오입니다. 올림픽은 깊은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고대 올림픽은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렸고 1896년에 근대올림픽이 시작됐습니다.

14개국 241명의 선수들이 43개 세부 종목에서 부활 이후 첫 올림픽에서 경합을 벌였습니다.

올해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205개국 11,000명 이상의 선수들이 339개 세부 종목에서 경쟁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숫자가 아닙니다.

올림픽의 진짜 이야기는 마음과 정신이 하나가 되는데 그 뜻이 있고 세계 최고의 선수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하나의 꿈, 하나의 순간을 위해 인생의 황금기를 보낸 선수들 간의 단합에 초점을 맞춥니다.

선수들은 자긍심을 갖고 자국을 대표하지만 그 핵심에는 세계를 하나의 공통된 목표로 단합하는 올림픽 본연의 역할이 있습니다.

운동을 통해 인류가 이루는 성취의 정점을 목격하고, 인종·국적·성별을 불문하고, 그 위대함을 축하하는 일입니다.

여기엔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긍정적인 면을 보자면 사람들은 이번에 참가한 ‘난민 올림픽 선수단’이 올림픽 본연의 정신을 대변했다고 믿습니다.

도합 205개국에 하나가 더 해졌던 거죠.

리우데자네이로 올림픽에서 2016년 처음 도입된 이래 ‘올림픽 연대 프로젝트’는 2백만 달러가 넘는 장학금을 제공해 재능은 있지만 나라를 잃은 운동선수들이

미래를 위해 스포츠 선수들이 경력을 이어갈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도쿄 올림픽에서는 11개국 출신 29명의 선수들이 국적은 달라도 진정한 한 팀으로 경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올림픽은 그런 이상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IOC 헌장에서는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인종, 종교, 정치 성별 등으로 한 국가나 개인을 차별하는 데 반대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울러, “세계 시민들의 넓은 마음으로 다른 문화를 용인하고 존중하고 이해하고 배우며” “서로의 강점을 배우고 함께 발전한다”고 합니다.

그런 가치들은 경기 한 번이나 심지어는 올림픽의 규모나 일정만으로 평가될 수 없으며 각 선수가 모국에서 살아갈 평생까지 확대되어 지켜져야 할 가치로 해당 국가들이 세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국민을 대할 때도 지켜져야 할 가치들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대량학살 올림픽이 반복해서 열리는 세계를 목격해 왔습니다.

1936년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가 허용됐던 올림픽에서는 히틀러를 명예로운 지도자로, 나치 독일을 번영하는 국가로 과시하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사실 히틀러는 이미 3년 전인 1933년 3월 22일에 다하우 수용소를 만들어 자신의 강제수용소 체제를 시작했습니다.

2008년, 세계는 다르푸르 대량학살에서 중국이 저지른 일을 고의적으로 외면했고 기독교, 파룬궁, 위구르, 티베트인, 몽골인 그리고 정치적 반체제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중국 내에서의 심각한 인권 침해를 못 본 체했습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정상들은 베이징 올림픽 참가를 선택했고, 당시 벌어진 소규모 시위들에 안주했습니다.

끔찍한 반인도주의 범죄에 연루된 국가에서 올림픽이 개최된다면 우리는 이른바 “올림픽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올림픽 정신 구현의 실패는 대규모 인권 침해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입니다.

국가를 대표하기 위해 선택된 선수들 개개인의 삶과 그 국가들이 떠안고 있는 여러 갈등과 마주치게 되기 때문이죠.

올림픽을 접하는 중국의 자세는 어떤 수를 써서든, 심지어 그 선수를 희생해서라도 이기는 것뿐입니다.

구소련의 모델 위에 효율성을 가미해 다듬어진 중국식 올림픽 선수 육성 프로그램은 2000년부터 시작된 전국에 흩어져 있는 정부 운영의 체육학교에서 매년 복제되고 있습니다.

국가에 의해 선발된 아동들은 보통 열 살이 채 되기 전에 가족들로부터 분리되어 집에 돌아가거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1년 내내 주 6일 동안 혹독한 강제 훈련을 받습니다.

국가를 위해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미명 하에 아이들은 유년기를 박탈당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지 못한 수만 명은 그들 나라에서 평생 고난의 무게를 짊어집니다.

교육도 받지 못하고 망가진 몸으로 직업 훈련도 받지 못한 채 그들은 다른 선택권 없이 버려지고 정부로부터 지원도 받지 못합니다.

반면 올림픽 대표로 선발된 선수들은 기대라는 부담을 짊어지게 됩니다.

중국의 경우에는 금메달에 대한 기대를 뜻하죠.

은메달, 동메달은 실패로 여겨집니다.

2020년 도쿄 올림픽 개최 직전에 중국 올림픽위원회 위원장 거우종원은 “우리는 금메달 획득수 1위를 확실히 달성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 태도는 중국의 국가주의자들(小粉紅)이 소셜 미디어에서 자국 선수들과 라이벌 국가들을 공격하는 모습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들에게 올림픽 메달 순위는 국가의 기량과 국가의 자부심에 대한 실시간 척도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외국 선수를 상대로 패한 선수는 국가를 실망시키고 나아가 배신한 걸로 간주된다”

네덜란드에 있는 라이든 아시아 센터의 플로렌 슈나이더 박사의 지적입니다.

자신보다 국가를 위에 둬야 한다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대표선수들은 눈물을 흘리며 사과합니다.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중국 탁구 혼합복식팀 쉬신·류스원 조는 중국의 미즈타니 준·이토 미마조에 3:4로 아쉽게 졌습니다.

올림픽에서 세계 2위를 차지한 엄청난 업적을 축하하는 대신 두 선수는 “중국팀 전체가 이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며 울면서 사과했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건 중국의 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명 일본 선수들의 SNS 계정은 분노한 중국인들의 욕설과 위협으로 도배되어 두 선수는 자신들 계정의 댓글 기능을 꺼둬야만 했습니다.

이런 대응은 스포츠의 경쟁에 대한 국가주의적 접근에서 비롯됩니다.

금메달에 대한 중국 정부의 집착은 1949년 중국 건국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마오쩌둥이 초기에 쓴 글을 보면 중국이 “아시아의 병자”라는 인식을 극복하고 국력을 길러야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중공의 눈에는 금메달만이 국제사회에서의 힘을 과시하고 다른 국가들의 패배를 의미합니다.

금메달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겁니다.

특히 개최국 일본을 상대로 한 경기에서 그렇습니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양국은 2차 중일전쟁(1937~1945)으로 이어진 1931년 있었던 일본의 만주 점령(滿洲事變)이라는 복잡한 역사로 갈라져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76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중국의 국가주의자들은 여전히 탁구 혼합복식 경기를 운동 경기가 아닌 “중·일간 대치”로 봤던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중국인들이 스포츠 경기에서 그런 국가주의적 관점을 지지하는 건 아닙니다.

‘웨이보’의 한 사용자는 댓글을 통해 복식 경기가 “훌륭했다”면서 “양 팀이 모두 강했고 서로에 대해 대단히 겸손하고 정중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심지어 국영 ‘신화통신’도 게시물을 통해 “시청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금메달과 승패에 대해 이성적인 관점을 확립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말과 행동이 꼭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 아이오와 주립대의 정치학 전문가 조너선 해시드 박사는 “중공은 온라인 국가주의를 자신들의 목적으로 활용하려 하지만” “이런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건 중국인들이 분노를 보일 경우” “국가는 그 감정을 통제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이라고 지적합니다.

국가가 지도자들의 신념에 대해 어떤 반대도 억누르고 엄격한 충성과 복종을 요구하면 이는 국가주의를 낳고 올림픽의 이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국가주의는 국민보다 국가를 앞세우고 인권 침해보다 올림픽의 웅장함을 앞세웁니다.

우리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위해 독일의 수용소들을 외면하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우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있었던 소규모 시위들이 올림픽에서의 경쟁을 훼손하지 않고 대량학살에 영향을 미칠 거라고 착각했습니다.

우리는 잘못했습니다. 그리고 올림픽 정신 뿐아니라 인도주의를 보여주는 데도 실패했습니다. 수많은 목숨이 그 때문에 희생됐기 때문입니다.

내년에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미국이 보이콧해야 하는지에 대한 CNBC의 질문에 익명을 요구한 전직 재무부 고위 관료는 “가서 이기는 편이 낫다”고 답했습니다.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신장의 수용소에 잡혀있는 이들과 연대해야 하고 자국민에게 고문을 가하는 국가에 지지를 거부해야 합니다.

체육에서의 우위를 위해 인간성을 무시하기보다는 그 기저에 있는 가치들을 받들어야 합니다.

인종청소 올림픽은 용납돼서는 안 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시몬 가오였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