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북한혼란시 ‘軍 파병설’ 내막

이지성
2011년 12월 28일 오후 5:31 업데이트: 2019년 07월 24일 오전 11:58

“국제 비난 감수하고 ‘무리수’ 두기 어려울 것” 전망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속담이 있다. 가까운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망하면 다른 사람도 그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오늘날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이와 입술’의 관계처럼 매우 밀접하다. 그동안 북한은 중국의 입술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중국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은 김 위원장 사망소식이 전해진 바로 다음날 후진타오 주석이 북한 대사관을 방문해 조문하는 등 신속하게 움직였다.

또한 한·미·일·러 4개국과 외교장관 간 전화통화를 통해, 그리고 4개국 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북한 내부는 안정돼있으니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북한체제 안정에 대한 걱정을 넘어 ‘후견인’이라도 되는 듯한 모습이다.

물론 중국이 동북아 평화를 위해 권력 전환기에 놓인 북한의 안정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특히 최대 후원국으로서 북한에 대한 기득권 혹은 영향력을 세계에 과시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계산된 행태를 보인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중국이 북한을 제쳐놓고 다른 나라들에 북한과 관련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은 그 이상의 저의가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中, 북한 ‘변방화’ 하려는 속셈 있어

우선 중국에게 있어 북한은 ‘완충전략’의 주요 요소다. 미국 전략정보분석 전문업체인 ‘스트래트포(STRATFOR)’는 ‘중국의 잠재적 역할과 정책 우선순위’라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은 북한에 정치ㆍ경제적 영향력 행사를 위해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이용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즉, 중국은 북한의 고립을 이용해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다자회담에서 중재자로서 이익을 확보하려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중국에 있어 존재만으로도 많은 혜택을 가져다주는 훌륭한 파트너다. 북한이 고립될수록 중국은 좋은 카드를 손에 쥐게 되는 것이고, 북한이 개혁?개방이나 한반도 통일을 통해 국제사회에 참여하게 된다면 그 카드를 잃게 되는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결코 ‘북한 카드’를 잃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최근 미국과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에 맞서는 ‘방파제’로서 북한의 중국 ‘변방화’를 이용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의 보수 성향 잡지인 내셔널리뷰온라인(NRO)은 최근 기사에서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중국은 북한을 종속시키는 방향으로 체제를 개편하려고 할 것”이라면서 “향후 2∼3년 안에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이, 북쪽에는 중국군이 주둔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관측통들은 중국이 북한에 개입을 시도할 경우 두 가지 양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북한에서 급격한 정치 혼란이 발생하면 중국군이 북한으로 진출해 ‘한반도 평화유지 작전’을 구실로 북한지역에 직접 통제를 실시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중국이 이런 위기가 다가오기 전에 미리 비밀 작전으로 평양 지도부 내 친 중국 종파를 도와주고 그들을 적극 지원하며 정권유지를 지원해주는 것이다.

중국은 과거부터 북한 내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중조(中朝)우호조약’을 내세워 왔다. 이 조약은 1961년 7월11일 김일성과 마오쩌둥이 체결한 조약으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中은 ‘원조’ 빌미로 자동개입 가능성

중조우호조약 제2조는 “체약 쌍방 중 어느 일방에 대한 어떠한 국가로부터의 침략이라도 이를 방지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공동으로 취할 의무를 지닌다. 체약 일방이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 체약 상대방은 모든 힘을 다해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처럼 계약 당사국 쌍방에 급변사태와 같은 준전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자동개입’은 물론 국가적 자원을 총동원해 서로를 원조할 것을 밝히고 있다. 만약 김정은 체제 하에서 북한 내부에 급격한 혼란상태가 오면 이러한 이를 빌미로 중국은 ‘합법적’으로 북한에 진입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중국의 이러한 의도는 현실적으로 성사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북한 내부의 문제는 이미 중국과 북한뿐 아니라 주변국과의 이해관계도 첨예하게 연결돼 있는 만큼 중국의 이러한 시도는 시작부터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더군다나 국제사회의 엄청난 비난과 위험을 감수하고 ‘무리수’를 두기에는 지금 중국의 대외적 위상은 너무나 낮게 추락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또 북한은 만약 중국군이 파병할 경우 그동안 고수해온 ‘주체사상’을 스스로 부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동안 북한은 주체사상을 앞세워 어려운 국내 상황에도 핵무기 개발을 비롯한 독자 노선을 걸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히 존재한다. 중국과 북한은 구소련의 붕괴로 무너진 공산주의 진영의 몇 안 되는 보루다. 인접한 두 나라는 그동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김일성은 중국의 모택동과 같은 혁명세대로 유대감이 짙었고, 김정일은 장쩌민을 ‘삼촌’이라고 부를 정도로 중국 수뇌부와 가까웠다고 한다. 그동안 김일성, 김정일 2대에 걸쳐 북한과 중국은 공산주의 진영이라는 강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서로 협력해 왔다.

북한은 스스로 ‘주체사상’ 부정해야 할 것

문제는 여기에 있다. 김 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은 김정은에게 중국과 강한 유대관계를 만들 기회를 주지 못했고, 김정은이 나이가 어려 경험도 없다보니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을 더 이상 동등한 지위, 동지로 바라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만약 중국 공산주의 진영이 북한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북한을 흡수하는 행태로 나아갈 경우 한국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은 긴급한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북한이 중국에 흡수 된다면 그 다음으로 한국 역시 같은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일각에서는 제기된다. 현재도 중국은 한국의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왜곡시키는 ‘동북공정’을 여전히 진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중 외교에 있어서도 한국을 속국으로 보는 듯한 무례한 태도로 일관해 오고 있다.

이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처는 여전히 굴욕적인 수준이다. 중국이 경제논리를 앞세워 북한의 정치, 외교, 경제 등 주요 현안에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이렇다 할 조치도 없이 지금의 상황을 방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그동안 이명박 정부 들어 얼어붙은 남북관계와 중국에 대한 ‘눈치 외교’가 김 위원장 사망에 대한 한국정부의 유연한 대처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앞으로 북한은 원하든 원치 않든 중국에 매우 깊이 의존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북한이 ‘중국군 주둔’을 체제 보장을 위한 장치로 선택할 경우 상황은 점점 악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이 ‘중국군 주둔’이라는 최악의 카드를 꺼내들기 전에 한국정부의 당당한 대중(對中)외교력과 전략적 대처, 그리고 남북 간 갈등 조정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지금 한반도는 대격변을 마주하고 있으며 한국정부의 지혜로운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