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독일 반도체 공장 인수로 美 봉쇄망 돌파 시도

강우찬
2022년 11월 2일 오후 8:26 업데이트: 2022년 11월 2일 오후 8:52

자국 정보기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독일 정부가 중국 기업의 자국 반도체 공장 인수를 승인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독일 경제 일간지 ‘헨델스블라트(Handelsblatt)’는 최근 올라프 숄츠 정부가 독일 반도체 회사 ‘엘모스(Elmos)’ 소유의 생산공장을 중국계 기업에 넘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인수는 표면상 스웨덴 기업 질렉스가 추진하고 있으나, 이 회사는 중국 IT 기업 ‘사이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그룹’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사실상 중국계 기업이다.

신문은 독일 연방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질렉스가 8500만 유로(약 1200억원)에 인수를 추진하고 있으며, 독일 정부가 이를 승인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종 결론은 한두 달 이내에 내려질 예정이다.

독일 정보기관인 연방헌법수호청은 이 같은 움직임에 반대하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할 상황에서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숄츠 총리는 중국 국영 해운사인 ‘중국원양운수그룹(COSCO)’의 독일 함부르크 항만 지분 25% 인수를 승인하고 오는 4일 대기업 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하기로 하는 등 중국 공산당에 이익이 되는 행보로 연립정부 내에서 연일 비판을 받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티에리 브르통 위원은 “유럽 정부와 기업은 중국이 경쟁자임을 알아야 한다”며 “중국 투자를 승인할 때마다 순진해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는 숄츠 총리의 중국 방문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됐다.

EU는 2019년부터 중국을 경제적·체계적 경쟁자로 규정했으며 최근에는 중국을 ‘전면적 경쟁자’로 경계단계를 더 높여야 한다는 내부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아직 이러한 제안이 채택되진 않았으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중국 간 정치적 갈등이 깊어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은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 반도체 산업이 성장을 저지하는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견제를 돌파해 반도체 자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타격이 가해지면서, 중국의 독일 내 반도체 공장 인수는 한층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엘모스는 독일 뮌헨에 본사를 둔 자동차용 반도체 제조 회사로 생산량 90%가 자동차 산업에 투입된다. 이 분야 세계 최대 업체인 인피니온보다는 한 수 낮은 등급의 회사로 평가된다.

현재 엘모스는 자체 반도체 생산공정을 매각하고 다른 업체로부터 반가공된 제품을 구매, 가공하는 방식으로 영업이윤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 숄츠 정부는 엘모스의 기술이 한 세대 뒤져 있어 중국 기업에 인수되더라도 중국의 반도체 기술 개발에 별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지 매체는 다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엘모스 공장 인수가 중국의 반도체 생산 능력을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만은 틀림없다는 점에서 독일 정부의 승인 움직임은 이해할 수 없는 행위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 연방정보국과 헌법수호청은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반도체 기술·장비·인력 수출 제한 조치를 단행하면서 서방 기술자와 기업이 중국과 결별하는 가운데, 중국이 반도체 분야 외국 기업 인수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일단 외국 기업을 인수한 후 다른 국가에 다양한 압력을 행사해, 기술개발 및 제조능력 유지를 꾀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계 스웨덴 기업 질렉스는 이미 자동차 분야 반도체 외에도 의료 장비, 가전, 통신 등 여러 산업 분야로 제품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만약 질렉스가 엘모스의 생산공장을 인수하게 되면 더 많은 분야의 주문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미국의 중국 문제 전문가인 프랭크 셰 사우스캐롤라이나-에이켄대학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의 반도체 분야 수출통제로 중국이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더라도 반도체 분야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셰 교수는 “반도체 산업은 여러 서방 국가들의 다양한 산업적 뒷받침이 필요한 복합적인 대규모 첨단산업이기 때문”이라며 “그렇기에 중국 공산당은 어떻게든 외국 기업으로 손을 뻗어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셰 교수는 중국이 반도체 산업의 명맥을 이어갈 수는 있겠지만 첨단 기술을 경쟁하는 일은 이제 거의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도체 에칭(식각) 및 리소그라피(회로현상) 분야 선도업체인 네덜란드 ASML은 자사 제품 중 첨단 반도체 장비는 중국에 전혀 수출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는 중국에 대한 모든 제품의 수출을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공산당이 레이저광학장비, 정밀제조설비, 첨단소재 등 수십 종류의 첨단 분야에서 각각 선도적인 위치에 있는 국가들을 모두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