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당국 흠칫했나…베이징대 학생 300명 기숙사 봉쇄에 항의

한동훈
2022년 05월 17일 오후 4:23 업데이트: 2022년 05월 27일 오후 4:37

학생들 잠든 사이 밤새 울타리로 기숙사 봉쇄
교사 구역은 출입 자유, 학생은 음식 배달도 금지

베이징 첫 집단행동…관련 글·영상 온라인서 삭제

중국 베이징대 학생 300여 명이 밤새 기숙사 주변에 울타리를 설치한 학교 측의 방역 조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코로나19 사태후 베이징에서 발생한 첫 집단행동이다.

최고 명문대 학생들이 봉쇄에 항의했다는 소식은 현장을 찍은 영상과 함께 중국 온라인에서 빠르게 퍼져나갔지만, 관련 게시물과 영상은 곧 삭제됐다. 중국 언론도 이번 사건에 침묵했다.

베이징대 학생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학생들이 잠든 사이 학교 측이 밤새 기숙사 주변에 격리벽을 설치해 학교를 학생 구역과 교직원 구역으로 나눴기 때문이다.

교직원 구역은 출입이 자유로웠고 택배물품을 찾을 수 있는 시설과도 연결됐다. 반면 학생 구역은 철제 울타리가 설치된 기숙사 내부로 제한됐다. 음식 배달도 금지됐다.

인터넷에 공개된 영상을 보면, 수백 명의 학생들이 기숙사 밖으로 나와 울타리 철거를 요구하며 항의했다. “학생만 가두는 격리가 실효성이 있느냐”라고 날카롭게 지적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학교 측에서는 천바오젠 베이징대 부총장 겸 베이징대 공산당 위원회 부서기(당 부서기) 등 책임자 2명이 현장에 나와 확성기를 들고 학생들을 상대로 설득에 나섰다. 하지만 학생들은 납득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학생들은 울타리부터 철거하라고 요구했지만 천바오젠 부총장은 이를 거부했다. 그는 “학교는 학생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긴다”며 “나를 믿고 돌아간다면 잘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학생들은 “안 믿는다”고 외쳤다.

이후 천바오젠 부총장 뒤쪽 철제 울타리 일부가 부서지면서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바깥쪽에서 항의하던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고, 잠시 상황을 살피던 천바오젠 총장은 “이제 모두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베이징대를 지켜달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그럼 우리는 누가 지켜주느냐”며 일축했다.

온라인 소식통에 따르면, 이날 밤 11시께 철제 울타리가 철거되면서 학생들은 서서히 해산했다. 학생 대표는 이날 항의 시위에 관련된 학생들을 처벌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천바오젠 부총장 등이 서명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RFI는 천바오젠 부총장이 직접 철제 울타리 철거를 돕기도 했다며 학생들과 끝까지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일단 의견을 수용하는 모양새로 사태를 마무리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15일 중국 베이징대 집단 시위 현장을 공유한 인터넷 게시물 | 화면 캡처

중국 언론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보도하지 않았고, 사건을 다룬 게시물이나 현장을 촬영한 영상은 온라인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삭제 전 영상을 본 적잖은 네티즌들은 소셜미디어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공유했다. 한 네티즌은 “베이징대 학생들답게 존경스럽다. 이러한 체제 아래에서 항거하는 것은 매우 소중한 일”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또 다른 네티즌은 “많은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운 사건으로 보겠지만, 이는 사회가 정한 규칙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불합리한 조치에 항거한 베이징대 학생들의 지성을 높게 평가했다.

AFP에 따르면 시위 다음 날인 16일 베이징대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대해 항의 시위가 아니라 “학생들이 요구를 밝힌 것”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중국에서 집단항의는 당국에 항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편, 캠퍼스에는 교직원들이 현장 사진을 토대로 학생들끼리 고발하도록 독려하고 있으며, 일부는 이미 고발당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