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신문 3개면 짜리 폼페이오 비난 논평

이윤정
2020년 08월 27일 오전 11:21 업데이트: 2020년 08월 27일 오후 12:04

네티즌 “길어서 설득력 없어…덕분에 폼페이오 연설 잘 봤다”
중국 전문가들 “겉으론 증오 표출, 사실은 미국에 대한 공포”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25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연설을 반박하는 장문의 논평을 게재했다.

이 논평은 지난달 23일 폼페이오 장관이 캘리포니아주에서 한 ‘공산주의 중국과 자유 진영 세계의 미래’ 연설에 대해 26개 항목으로 반박한 것으로 신화통신 온라인판에도 전문 그대로 게재됐다.

‘폼페이오의 대중국 연설에 가득 찬 거짓과 실제 진상’이라는 제목의 이 논평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엄청난 분량이었다.

인민일보

종이신문 10면부터 12면까지, 3개 면에 걸쳐 삽화 하나 없이 빼곡하게 약 3만 개의 글자로 채운 압도적인 분량에 수천 개의 댓글과 게시물이 쏟아지며, 중국 온라인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 과정에서 공산당을 비웃는 중국 네티즌과 이들을 비난하는 친공 네티즌, 공산당 댓글부대 ‘우마오당’(五毛黨) 사이에 격렬한 공방이 오가기도 했다.

관영매체의 공식 웨이보 독자후기란에는 “중국 공산당이 미국인 한 명에게 3만 자로 욕한 것은 드문 일이다. 폼페이오 장관한테 정곡을 찔렸나”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군” “전례 없는 대접이다” “너무 길어서 설득력 없다” 등 비꼬는 댓글들이 달렸다.

이런 댓글 아래에는 친공산당 네티즌들이 쓴 것으로 보이는 “배신자”라는 원색적인 비난이 달렸지만, 논평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한 네티즌은 “무려 3만1천여 글자다. 1분에 120자씩 읽으면 폼페이오 장관은 258분, 즉 4시간 넘도록 욕을 듣는 셈이다”라는 댓글로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관영매체 공식 웨이보에 달린 댓글들 | 웨이보 캡처

인민일보가 예상했던 것과 정반대의 반응을 보인 경우도 많았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논평은 폼페이오 연설의 한 대목을 소개한 뒤 그 아래에 반박하는 식으로 작성됐기 때문이었다.

중국 네티즌들은 “폼페이오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있는 통로다. 그것도 불법이 아닌…” “드디어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았다” “편집 잘했네”라며 인민일보를 칭찬(?)했다.

중국 공산당은 한해 수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 내부 온라인을 검열하고, 동시에 해외 사이트와 SNS를 차단하는 대규모 방화벽을 운영하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 네티즌들은 국제사회의 소식을 매우 한정적으로만 받아들이게 된다. 공산당이 해외 소식을 차단해, 내부 여론을 입맛대로 이끄는 것이다. 재미 시사평론가 란수(藍述)는 “관영매체에 실리는 일부 게시물은 중국 공산당이 자국민에게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당의 입장이 이러하니 알아서 따르라는 식”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댓글부대 우마오당과 자발적 친공 네티즌들이 동조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여론을 호도하는 세뇌 활동을 벌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한 셈법이 상당히 빗나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해당 논평을 통해 폼페이오 장관의 연설 내용을 접하고, 이에 동조하는 모습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폼페이오의 팬”을 자처한 한 네티즌은 “인민일보 특집 지면에 올라 전문적인 욕설을 듣는다는 것은 그 대상자의 인품에 대한 최고의 평가”라고 썼다.

인민일보 논평에서 반박한 첫 번째 항목

인민일보가 반박한 폼페이오 장관의 캘리포니아주 연설은 ‘반공 국제연대’ 연설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 연설에서 “중국인은 중국 공산당과 다르다”며 “중국 공산당의 가장 큰 거짓말은 ‘14억 중국인을 위해 말한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그 어떤 외부의 적보다 중국인들의 솔직한 의견표명을 두려워한다”고 했다.

중국 공산당은 인민일보 ‘3만 자 논평’의 첫 번째 항목에서 바로 이 부분을 반박했다. “중미 관계를 해친다”면서 “중국 공산당과 중국 인민 사이를 이간질한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런 인민일보 논평이 중국 공산당의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공세, 자국민의 반공 여론에 대한 두려움이 담겼다는 것이다.

재미 중국학자 거비둥(戈壁東)은 “중공은 지난 두 달 가까이 ‘중미 관계회복을 바란다’는 말로 거세게 압박하는 미국에 속임수를 걸었지만, 미국이 넘어가지 않자 이번에는 욕설을 퍼붓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의 인민일보 논평은 일종의 광기를 띠고 있는데, 폼페이오가 핵심을 찔러 공포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사평론가 탕징위안(唐靖遠)도 “중국 공산당은 논평을 통해 증오를 표현하고 싶은 것 같다. 하지만 두려움만 드러났을 뿐”이라고 평했다.

이어 “폼페이오를 비난하는데 3만 자를 쓰느라 젖 먹던 힘까지 다 쓴 것 같다”며 “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수립한 이후 이런 VIP 대접을 받은 미국 관료는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