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공산당, 서방 제재 틈타 중·러와 국제사회 갈라치기”

한동훈
2022년 03월 13일 오후 5:54 업데이트: 2022년 03월 14일 오전 8:53

중국 공산당(중공)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미국·서방진영 주도의 국제질서를 재편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중공 사이에서 ‘균형외교’로 중공과 거리를 좁혀온 한국으로서는 양측의 무게추가 하중이 커져 균형 잡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러시아는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서방의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다. 미국·유럽 등 서방진영은 러시아 금융거래를 전 세계적으로 차단했다. 미국은 러시아산 원유·가스·석탄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다. 전쟁 개시 2주 만에 러시아는 국가부도 위기에 몰리고 있다.

이렇게 막대한 대가를 감수하면서 진행 중인 전쟁은 전황이 신통치 않다. 우크라이나는 예상외로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고, 러시아군의 진격은 더디기만 하다. 병력 피해도 늘고 있다. 장성 3명이 사망했다. 러시아군 사망자를 우크라이나는 1만2천 명, 미국은 6천 명으로 추산했다.

서방의 러시아 제재는 정부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예일대 경영대 조사에 따르면, 금융·무역·과학기술·문화 분야에서 지금까지 330개가 넘는 외국 기업이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했다.

곤경에 처한 러시아에 중공이 손을 내밀고 있다. 중공 외교부는 “어떤 불법적인 일방적 제재도 단호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히며 서방의 러시아 제재를 비판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공 총서기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쟁 전 가진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에서 “핵심 이익, 국가 주권, 영토 보전을 지키기 위해 상호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중·러 양국의 전략적 협력에는 “상한선이 없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회담 전후로 실질적 경제 협력도 이뤄졌다. 러시아는 중국에 1175억달러(145조원) 규모의 천연가스·원유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고, 중국은 러시아산 밀 수입 제한을 철폐했다.

중국은 러시아의 최대 교역시장이다. 중공 세관총서에 따르면, 양국 교역은 지난해 1470억 달러로 같은 해 러시아 전체 교역의 18%를 차지했다. 증가율은 전년 대비 36%나 됐다.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외교적 편들기도 이어졌다. 표면적인 지지는 없었지만, 비난을 미국에 돌리며 전쟁의 책임을 미국에 덮어씌우는 모습을 보였다.

먼저 침공 전, 중공 외교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우려하는 미국에 대해 “거짓 정보를 퍼뜨린다”고 비난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일주일 전인 지난달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을 거론하는 미국에 대한 입장을 질문받자 “거짓 정보를 퍼뜨려 긴장을 조장한다”고 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가 미국·유럽 정보당국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중공은 러시아에 베이징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만 우크라이나 침공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중공이 사전에 침공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이 거짓 정보를 퍼뜨린다고 한 중공의 발언이 거짓이었다.

침공 이후 중공 외교부는 논평을 거부하거나 질문을 받으면 말을 돌리며 침공에 대한 비난을 회피했다. 관영매체는 오히려 미국으로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공산당 나팔수’로 비판받는 환구시보는 자국 싱크탱크 연구원의 입을 빌려 미국이 중·러 간 갈등을 조장하려 한다고 탓했다. 다른 언론들도 반서방 정서를 부추기며 오히려 침공당한 우크라이나를 폄훼했다.

중국, 러시아군에 식량·보급품 제공…전략적 협력

중공은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표면적으로는 러시아를 지지하지 않고 있으며 중립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뒤에서는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안훙빙(袁红冰) 전 베이징대 법학과 교수는 “중공은 러시아를 크게 지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을 떠나지 않고 비판적 문학운동와 정치 평론을 이어가고 있는 법학자인 위안훙빙은 공산당이 대만을 상대로 ‘문화·사상’ 통일전선을 벌이고 있다는 비판으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위안훙빙은 “(중공이) 러시아군의 식량 일부를 공급하고 있다”며 “러시아 전선의 많은 부대가 중국 업체와 연계돼 있다. 이들 업체는 중국 내에서 군수품을 제조하고 군량미를 조달하고 있다. 러시아군 식량 대부분이 중국 동북지역에서 생산, 수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방의 러시아 금융 제재가 러시아와 중공을 더 밀착하게 할 것이라며 “러시아 루블화와 중국 위안화가 더 긴밀해질 것이며, 마지막에는 미국의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물물교환 방식의 거래까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위안훙빙에 따르면, 러시아와 중국은 경제적으로 상호보완적이다. 러시아는 중국의 경공업 제품 수요가 크고 중국은 러시아의 에너지와 밀 등 식량자원이 필요하다.

호주로 이민한 중국 역사학자인 리위안화(李元华) 베이징 수도사범대 전 부교수는 에포크타임스에 “만주 지역에서 러시아로 보내는 물류가 24시간 가동되고 있다”며 “중공은 겉으론 안 그런 척하지만, 러시아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중공은 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을 리스크를 감수하며 러시아를 편들까. 위안훙빙은 “중공은 아직 서방과 직접 맞설 실력이 안 된다”며 “그래서 러시아를 내세워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위안훙빙은 “중공은 미국과 패권을 다투려는 유일한 국가”라며 “이 때문에 적잖은 이들이 미국에 대한 반감 혹은 좌파 이념 등의 영향으로 중국을 지지한다. 그러나 당신이 지지하는 것은 중국이라는 국가가 아니라 중공이라는 집권 세력이라는 점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중공은 공산 전체주의 정권이며, 이를 전 세계로 확대해 현재 국제경찰 역할을 하는 미국을 밀어내고 국제법을 자기 입맛에 맞게 갈아치우고 국제질서를 새로 주도하는 세력이 되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진핑은 인류운명공동체를 내세운다. 사람들은 기후변화, 에너지 문제 공동대응을 위한 범국가적 협력체 정도로 착각하고 있다. 이번 동계올림픽을 보라. 세계 평화와 화합을 위한 자리였었나? 운명공동체 주장에 기후변화 대응 같은 논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고 질타했다.

위안훙빙은 “그 본질은 공산주의 문화, 가치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제질서 수립 전략이며, 중국 공산당이 국제질서를 좌지우지하겠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이어 “혼자 힘으로 서방 진영을 꺾을 실력이 안 되니까, 범인류적 과제를 내던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손잡자는 것인데, 공산당이 늘 써먹는 기만술인 ‘통일전선 전술’을 요즘 시대상황에 맞춰 껍데기만 바꾼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중공, 러시아-우크라 전쟁 계기로 맞대결 본격화

위안훙빙은 과거에는 서방의 단합된 대응에 불발됐을 전략이지만, 현재 미국이 쇠락하면서 중공의 전략이 성공할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시진핑은 중국이 부상하고 미국이 쇠락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바이든 정부를 완전히 무시한다. 시진핑의 최측근 싱크탱크 중 한 명인 리수레이(李書磊·58)는 최근 공산당 고위급 내부 토론에서 ‘바이든은 병상에서 늙어죽을지언정 필드에서 전사할 엄두는 못 내는 인물”이라며 약해빠진 노인네로 혹평했다고 전했다.

리수레이는 중공의 공직자 감찰기관인 중앙기율위원회(중기위) 부서기이며, 시진핑 집권 후 승승장구해온 인물이다. 해박한 문화, 역사 지식을 바탕으로 시진핑의 연설문 작성을 전담해왔으며, 차세대 지도부 유력인물로 손꼽힌다.

위안훙빙은 “중공 지도부는 바이든 집권으로 재도약의 기회를 맞았다고 보고 있다. 이번에 국제사회의 비판 속에서도 러시아를 지원하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다”라며 “서방과 직접 대결을 피해오던 중공은 이제 러시아를 내세워, 명확한 대립구도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20년 국제통화기금 조사결과에 따르면, 러시아는 한국(10위)에 이어 국내총생산(GDP) 순위 11위다. 경제적으로 쇠퇴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이자, 강력한 공군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더 중요한 것은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풍부한 석유·천연가스·석탄 등 에너지 자원과 농산물이다. 중공은 전략 비축물자가 부족하다.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해 러시아를 에너지 보급고로 쓰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가 수출한 석유의 20%를 중국이 가져갔다.

위안훙빙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중공은 이미 지하 석유저장고를 대규모로 확대 건설하기 시작했다. 향후 대만을 상대로 한 군사작전을 펼칠 때, 국제사회의 제재로 해상 원유수송이 끊기는 것에 대비한 전략적 에너지 비축 프로젝트다”라고 말했다.

* 이 기사는 뤄야, 청징 기자가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