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최고법원, 英명품구두에 상표권 승소 판결…“왜 이 시점에?”

강우찬
2022년 07월 21일 오후 6:02 업데이트: 2022년 07월 21일 오후 6:02

영국 고가품 구두 브랜드가 중국에서 22년에 걸친 상표권 소송 끝에 승소한 가운데, 이번 판결이 외국 자본 이탈을 막으려는 중국 정부의 술책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0일(현지시각) BBC 등에 따르면 영국에 본사를 둔 구두 제조사 ‘마놀로 블라닉’은 최근 22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중국에서 상표권 소송에 승소했다.

중화인민공화국(중공) 대법원인 최고인민법원은 광저우의 중국인 사업가 팡위저우(方宇舟)가 등록한 마놀로 블라닉 상표권을 말소했다.

마놀로 블라닉은 1971년 신발 디자이너 겸 창업자 마놀로 블라닉(Manolo Blahnik)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회사이자 브랜드명이다. 1980년대 미국 시장에 진출했고 2000년대 초 미국 TV 드라마의 영향으로 세계적 지명도를 얻었다.

하지만 마놀로 블라닉은 2000년대 들어 중국 시장 진출을 검토하던 중 비슷한 이름의 상표가 등록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팡위저우가 1999년 ‘마놀로 앤드 블라닉(Manolo & Blahnik)’으로 중국에서 5건의 상표권을 등록한 것이다.

이 때문에 마놀로 블라닉은 중국 시장에 ‘신발’ 제품으로 자신의 상표를 등록할 수 없게 됐다. 이미 등록된 상표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마놀로 블라닉은 해당 상표 등록을 철회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이후 22년간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이번에 승소의 기쁨을 누리게 됐다.

이번 승소 판결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해외 브랜드가 중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상표권을 둘러싸고 중국 기업과 갈등을 빚는 사례는 흔하다. 그러나 대부분 소송에서 중국 기업이 승소해왔다.

2012년 프랑스 고가품 브랜드 ‘에르메스(HERMES)’가 중국 기업이 등록한 ‘아이마스(愛馬仕·에르메스의 중국어 표기)’ 가 상표권을 침해했다며 이를 철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짝퉁 브랜드’를 등록한 중국 기업이 원조 브랜드 소유 업체에 소송을 걸어 승소하는 적반하장식 사건도 있었다.

중국 기업의 ‘무인양품’ 매장. 일본의 원조 무인양품이 아닌 유사 브랜드다. 상표 역시 첫글자만 다르지만, 중국 법원은 중국 기업 승소 판결을 내리고, 일본 기업에 배상을 명령했다. | 웨이보

앞서 2019년에는 중국 기업 ‘베이징 무인양품(北京 印良品)’이 일본의 무인양품(印良品) 제조사인 ‘양품계획(良品計画)’을 상대로 상표권 침해 소송을 걸어 승소했다.

베이징 고급인민법원(고등법원 격)은 같은 해 12월, 일본 기업에 총 62만6천 위안(약 1억2천만원)의 배상을 명령하며 중국 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중국 기업이 상표권을 먼저 등록했으며 중국에서 쓰는 한자인 간체와 한국·일본에서 쓰는 정체가 다르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일본 무인양품은 이후 영문명인 무지(Muji)를 사용하게 됐다.

일부 외신들은 이번 마놀로 블라닉의 승소 사례가 중국에서 중국 기업들과 상표권 분쟁을 벌이는 외국 기업에 희소식이 될 것으로 전하고 있다.

중국 현지언론 역시 비슷한 논조를 보이고 있다. 중국 경제매체인 신랑재경(新浪財經)은 지난 20일 이번 소식을 전하며 2019년 상표법 개정으로 “중국의 상표권 보호 분야 발전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신랑재경은 마놀로 블라닉이 올해 1월 상고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상고부터 판결까지의 짧은 시간은 해외 브랜드 상표권 보호에 관한 새 상표법의 힘을 보여줬다”고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가 중국이 진정으로 외국 기업의 상표권을 존중해서가 아니라 경기 침체와 외국 자본 이탈이라는 불리한 상황에 떠밀린 결과라는 비판도 나온다.

중국 평론가 탕칭(唐青)은 에포크타임스에 2019년 개정된 상표법의 효과라고 보기에는 뒤늦은 감이 있다며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예상치를 훨씬 밑도는 시점에서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은 너무나도 공교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탕칭은 “중국 정권은 지금 경기 악화, 실업자 급증, 서방과의 관계 악화 등 안팎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외국 자본의 이탈을 막기 위해 마놀로 블라닉의 주장을 인정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