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특집] ② 그린피스 창립자 “종말론적 환경주의, 가짜 재앙과 위협”

이윤정
2022년 08월 5일 오후 8:17 업데이트: 2022년 08월 6일 오후 12:48

지구 기온 주기적 변화…CO₂가 주범 아냐
이산화탄소 증가로 시비효과…지구 푸르러져
지금은 지구 역사상 비교적 춥고 CO₂ 농도 낮은 시기

기후변화 문제는 전 세계적 어젠다이다. 전 세계 매체들은 지구온난화 관련 기후변화의 암울한 모습만을 부각한다. 그러나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늘 존재하는 현상이었다. 지구온난화와 그에 따른 위험성이 부각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와 캐나다 환경학자 패트릭 무어 박사도 “기후대재앙은 없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연구자이다. 에포크타임스는 패트릭 무어 박사와 박석순 교수의 지상(紙上) 대담을 총 3편에 걸쳐 소개한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이유정/에포크타임스), 캐나다 환경학자 패트릭 무어 박사(오른쪽/본인 제공)

-당신은 ‘종말론적 환경주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환경 종말론’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그것은 주로 정치적 권력과 돈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실이 아닌 이야기로 종말을 예견하는 이들에게 항상 잘 속아 넘어갔습니다. 아즈텍(Aztecs) 시대 사람들은 처녀들을 화산에 던졌고, 유럽과 미국에선 200년 동안 여성들을 마녀라고 불태우면서 ‘이렇게 하면 사악한 사람들로부터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군중 심리’ ‘집단 사고’ ‘숭배 행위’ 등으로 불려왔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위계질서가 있어서 공포나 통제를 이용해 높은 지위를 쟁취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오늘날 부강한 국가에서도 우리 후손들이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기후 상황이 그들이 들어온 것처럼 부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전념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종말에 이르고 있다는 예측은 수천 년 동안 계속돼 왔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그 예측이 실현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 우리가 종말에 관한 예측을 믿어야 합니까? 미래는 알 수 없고, 위험과 힘든 결정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인간은 원래부터 미래에 대해 두려워합니다. 저는 이러한 종말론적 운동에는 자기 혐오적 요소가 있다고 봅니다. 젊은 세대들은 인간이 가치 없는 존재이며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고 배우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그들 자신을 부끄럽게 느끼도록 만듭니다.”

-실제로 한국에선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은 짧아지고 있다는 게 기상청 데이터로 증명됐습니다. ‘지구온난화’는 실제 발생하고 있는 일이며, 많은 국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기도 합니다. 국제사회에선 오히려 당신의 의견이 ‘소수 의견’인데 당신의 주장이 과학에 근거한 것이라면 왜 다수가 탄소중립을 외치는 것인가요?

“지구 온난화를 믿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인류가 화석연료를 사용하기 150여 년 전인 약 1700년 이후 지구가 온난화돼 왔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1700년은 소빙하기의 절정으로 매우 추웠기 때문에 흉작과 기아가 발생했습니다. 그 이전의 서기 1000년 무렵은 바이킹족이 그린란드에서 농사를 짓던 중세 온난기였습니다. 그 이전의 서기 500년경은 암흑기였으며, 그 이전의 로마 온난기는 오늘날보다 더 따뜻했고 해수면은 오늘날보다 1~2m나 더 높았습니다. 1950년 무렵까지만 해도 화석연료 사용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오늘날과 비교해 매우 적었습니다. 기온의 이러한 주기적인 변동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이산화탄소가 그 원인이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무어 박사는 “이 논쟁의 핵심은 기온과 이산화탄소의 상관관계”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산화탄소는 눈에 안 보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산화탄소가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지 실제로 볼 수 없습니다. 지구의 기온 역사에 대한 제 의견이 ‘소수(minority)’라면 ‘다수(majority)’라는 사람들은 정치인과 관료들로부터 보수를 받는 과학자들이거나, 특종 뉴스를 찾는 언론, 돈벌이하는 운동가들입니다. 정작 이산화탄소가 어떤 작용을 하는지 실제 볼 수 없는데도 이런 이야기를 믿고 있는 일반 대중들도 다수에 해당합니다.”

무어 박사는 영국 잉글랜드 중부지역에서 1659~2009년까지 350년 동안 연속적으로 측정한 기온 그래프를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만약 이산화탄소가 온난화의 주요 원인이었다면, 이산화탄소 증가 곡선을 따라 기온 상승이 나타나야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라며 “그래프에는 1700년에서 1850년, 심지어 1950년까지도 이산화탄소가 온난화를 유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명백히 나타납니다”라고 설명했다.

1959~2009년 영국 잉글랜드 중부지역 기온과 이산화탄소 배출량 | 무어 박사 제공

“이산화탄소는 지구 모든 생명체의 기본이며, 이산화탄소를 악마화하는 것은 완전히 터무니없는 짓입니다. 인간에 의한 이산화탄소 배출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생명체가 존재했던 대부분의 시기보다 낮습니다. 인간이 화석연료를 사용함으로써 증가한 이산화탄소는 식물 성장에 시비효과(거름을 주는 효과)로 나타나면서 ‘지구의 녹색화’를 일으켰습니다.”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와 호주국립대학교(ANU)는 위성 관측 결과 1982~2015년 사이에 호주, 북미 등에서 조사한 일부 건조 지역에서 이산화탄소 시비효과로 초목의 분포면적이 11%가량 증가한 것을 발견했다. | 무어 박사 제공

“기후 위기론자들은 1850년대 이후의 기후에 관해서만 논의하기를 선호합니다. 그들은 그 이전 시기를 ‘산업화 이전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 ‘산업화 이전 시대’는 지구에 생명체가 존재하고, 빙하기, 불가마 시기, 그리고 소행성 충돌로 인한 것이거나 그 외의 다른 요인으로 인한 대멸종 등을 포함해 수많은 기후 변화가 있었던 30억 년도 넘는 기간입니다. 오늘날의 지구는 약 260만 년 전에 시작된 홍적세(Pleistocene Ice Age) 빙하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홍적세 빙하기에 나타난 최소 40번의 주요 빙하 현상에 따른 간빙기 가운데 한 시기에 있습니다. 최근의 빙하 현상은 2만 년 전에 절정에 달했으며, 이는 빙하기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기후 위기론자들이 이를 부인하건 말건 우리는 여전히 홍적세 빙하기에 살고 있습니다.”

무어 박사는 지금이 지구 역사에서 비교적 춥고, 이산화탄소 농도도 낮은 시기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금의 기후 공포에서 참 아이러니한 것은 오늘날의 지구는 홍적세 빙하기가 시작되기 전 2억5000만 년 동안보다 더 춥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구 역사의 95%가 넘는 기간보다도 이산화탄소 농도가 더 낮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지구는 생명체가 살기에는 조만간 너무 뜨거워질 것이고,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구 역사에서 나타난 것보다 더 높아질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이득을 취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온실 작물 재배 농가에서 작물 수확량을 최대 60%가량 늘리기 위해 온실에 주입할 이산화탄소를 구매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저는 한국의 상공을 비행하면서 골짜기마다 수많은 온실이 있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제가 사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처럼 한국도 산이 많고 평평하고 비옥한 농지가 적습니다. 저는 한국의 온실 재배 농가들이 오늘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2~3배까지 온실에 주입하고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는 자연 대기 조건에서 성장하는 거의 모든 식물이 이산화탄소에 굶주려있고, 이 때문에 식물의 빠른 성장이 제한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좀 더 자세히 이해하고 싶다면 저의 책(종말론적 환경주의) 제3장 ‘모든 생명의 원천이 파멸의 악마로 변했다’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파리기후협약을 필두로 ‘탄소중립’은 전 세계적 어젠다이자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습니다. 내연기관차가 뿜어내는 매연이나 중국 공장 때문에 한국 국민이 받는 미세먼지 피해 등을 생각하면 탄소중립은 생태계 파괴를 막고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탄소 중립’이라는 단어는 정치적 용어이지, 과학적 용어가 아닙니다. 이산화탄소를 ‘탄소’라고 부르는 것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탄소는 다이아몬드, 흑연, 검댕 등을 구성하는 원소입니다. 이산화탄소는 탄소와 산소를 함유하는 분자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가스이며 모든 생명체의 주요한 먹이입니다. 엔진에서 배출되는 매연은 이산화탄소가 아닌 다른 물질입니다. 이산화탄소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습니다. 먼지도 이산화탄소가 아닙니다. 매연은 검댕으로, 현대 기술력으로 관리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석탄 발전소는 20년 전에 건설된 것보다 훨씬 깨끗합니다.”

국내 한 석탄화력발전소 모습 | 연합뉴스

무어 박사에 따르면, 염화나트륨(NaCl·식용 소금)에 염소(Cl: chlorine)가 들어있다고 해서 NaCl(소금)을 염소(chlorine)라고 부르는 것 역시 잘못된 표현이다. 원소(원자)들이 서로 결합해 다른 화합물(분자)을 형성하게 되면 그 화합물은 본래 구성된 원소들과는 매우 다른 속성을 갖게 된다. 그는 “넷제로(Net-Zero) 역시 과학자가 아닌 운동가들이 만들어낸 정치적 용어이며 앨 고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레타 툰베리 등 넷제로 운동에 앞장서는 이들 가운데 과학자는 한 명도 없다”고 지적한다.

“러시아, 중국, 인도는 세계 인구의 40%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들 국가는 화석연료 사용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브라질, 인도네시아와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까지 합치면 세계 전체 인구의 대부분은 기후 광신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심각한 아이러니는 캐나다, 스웨덴, 독일, 영국과 같이 가장 추운 기후 지역의 여러 나라가 온난화에 대해 제일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캐나다의 연평균 기온은 -5.35℃입니다.”

-당신 책의 원제는 ‘보이지 않는 가짜 재앙과 종말의 위협’입니다. 당신 말대로 환경에 대한 여러 우려가 ‘가짜 재앙’이라면 이런 선동은 왜 발생하며, 양심 있는 과학자나 환경단체는 왜 여기에 맞서지 않는 것인가요?

“사람들에게 세상이 곧 멸망하진 않을 것이니 마음껏 삶을 누리라고 말하면 정치적 권력이나 돈이 생기지 않습니다. 위기론자들이 우리에게 자신 있게 종말을 주장했다면 그것을 증명하는 것도 그들의 몫입니다. 저는 책에서 이러한 가짜 재앙은 조작된 것임을 증명했고, 그들이 지금까지 종말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이산화탄소나 방사선 같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것, 북극곰이나 산호초 등 아주 멀리 있는 것들을 이용해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뿐입니다. 유전자변형 식품(GMO)의 경우를 보세요. 그들은 GMO에 우리 몸에 해로운 것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무엇이 어떻게 나쁜지 보여주지 못합니다. 모든 물질은 이름과 화학식이 있는데 그것은 이름이나 화학식조차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GMO에는 해로운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당신이 ‘환경 탈레반’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들은 스스로 ‘녹색(Green·친환경)’이라고 주장하지만, 친환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권력에 굶주린 좌파 정치인들입니다. 오늘날 좌파는 그들이 기술적으로는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문명에 매우 파괴적일 수 있는 정책안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유럽과 영국에서 서서히 나타나는 에너지 위기만 보더라도 그들 스스로 천연자원 개발은 하지 않고, 원자력 에너지는 반대하면서 화석연료 사용은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해 벌인 정책으로 인한 자업자득입니다.”

-당신의 책을 보면, 폐플라스틱 문제에 대해 크게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세플라스틱이 몸속으로 들어가거나, 썩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것은 사실 아닌가요?

“플라스틱은 독성 물질이 아닙니다. 그래서 음식물이 오염되지 않도록 우리가 플라스틱으로 음식을 포장하거나 그 속에 담는 것입니다. 플라스틱이 바다로 간다고 해서 독성 물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들은 한편으로 플라스틱은 절대 분해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다른 한편으로 플라스틱이 빠르게 ‘미세플라스틱’으로 분해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연히 이런 것들은 눈으로 쉽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이것을 직접 관찰하거나 검증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소화계는 음식물과 플라스틱 혹은 미세한 모래 입자의 차이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인체는 모래 입자가 아무리 미세해도 혈관으로 빨아들이지 않습니다. 바다에 떠다니는 플라스틱은 떠다니는 작은 암초나 나무와 같습니다. 플라스틱은 해양 생물들이 알을 낳고, 서식하며, 표면에 붙어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합니다. 오염물질은 일반적으로 독성이 있거나 생명체에 해를 줍니다. 플라스틱은 그저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와 같습니다. 플라스틱은 어떤 것도 해치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버려진 어망들입니다. 이유는 어망이 플라스틱이기 때문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도록 만들어진 모양 때문입니다. 환경 공동체는 어업계와 협력해 재활용, 폐기물 에너지화 등을 통해 손상된 어망을 바다에 버리지 않도록 하거나 안전하게 폐기하도록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