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친중매체 기자 “정저우 터널 인근에 계엄령”…논란 일자 삭제

2021년 7월 26일
업데이트: 2021년 7월 26일

폭우로 침수돼 사망자가 발생한 중국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시의 터널 일대에 계엄령이 내려졌다는 발언이 나왔다.

홍콩 봉황위성TV의 프로그램 진행자 겸 기자 후링(胡玲)은 지난 23일 오전 10시께 자신의 웨이보에 “우리 기자가 하룻밤을 현장에서 대기해야 했다. 정저우 징광(京廣) 일대에 계엄령이 내려졌다. 사진 촬영이 금지됐다. 경찰, 구조차량, 대형버스… 어쨌든 피해자 숫자는 오늘 업데이트해야 하는데…”라고 썼다.

후링의 발언은 이날 정저우 터널 침수와 관련해 새로운 보도를 해야 하지만, 전날 현장에 계엄령이 내려져 파견 나간 기자가 전혀 취재하지 못했으며 이 때문에 전할 내용이 없어 난감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후링이 이 같은 소식을 웨이보에 올리자, 중국 온라인에서는 극단적 공산당 옹호 네티즌인 샤오펀훙(小粉紅)들의 격렬한 반발이 이어졌다. 그녀의 웨이보에는 “거짓말” “헛소리” “특종을 내려고 사망자가 나오기만을 기다린다”는 댓글이 달렸다. 현재 이 게시물은 삭제된 상태다.

홍콩 봉황위성TV 진행자 후링의 웨이보 게시물. 폭우 피해가 발생한 허난성 정저우의 침수 터널 일대에 계엄이 내려졌다고 전했다. | 웨이보 캡처

중국 당국이 징광터널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인민일보나 신화통신, CCTV 등 관영매체나 현지 언론에서도 계엄령 선포에 관한 보도는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이날 ‘중국청년보’는 중국 공산당 산하 인민해방군 제83집단군 병력이 정저우에 도착해 징광터널 북부 구간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23일 오전 군 병력이 도착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던 민간인들을 전부 철수시켰으며 현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주민들의 접근을 엄격하게 차단했다.

당국은 “군 병력 파견은 구조와 현장 수습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시민들 사이에서는 ‘정부와 공산당을 비난하는 시위가 일어나는 것을 억누르기 위한 병력’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중국 SNS에는 현장 주변에서 지켜보는 시민들을 공안이 과격하게 몰아내는 장면과 인근에 집결한 수십여 대의 병력 수송 차량 등을 촬영한 사진과 영상이 공유됐다.

한 시민은 “공안과 군인들이 주변에 촘촘히 배치돼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사진 촬영을 못 하게 하고 있다”며 “실종자 가족조차 접근이 어렵다”는 글을 남겼다.

홍콩 봉황위성TV 리포터 겸 진행자 후링(胡玲) | 화면 캡처

봉황위성TV 기자 “계엄령” 발언과 중국 당국의 입단속

홍콩 봉황위성TV는 ‘홍콩판 CCTV’로 불릴 정도로 중국 정부와 공산당에 친밀한 성향을 나타내는 방송사다.

‘계엄령이 내려졌다’는 글을 쓴 리포터 후링은 웨이보가 인증한 공식 계정을 가진 봉황위성TV의 선임 기자다. 한 마디로 중국 정부가 ‘우리 편’으로 인증한 인물이다.

따라서 후링이 중국 정부를 비난하려 일부러 “계엄령 선포”라는 거짓말을 꾸며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재 중국 당국은 ‘입단속’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공간에 공유된 허난성 각 정부 부처에 하달된 통지에 따르면, 모든 정부 기관은 폭우 피해복구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허가 없이 사망자 수를 발표해서는 안 되고, 비통한 분위기를 나타내지 말아야 한다.

또한 과거의 재난 사례를 언급하면 안 되며, 인명·재산 피해는 엄정하고 권위 있는 정보 출처를 인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정하고 권위 있는 정보 출처는 관영매체나 상급 기관으로 추측된다.

 

허난성 정부부처와 일선 기관에 하달된 것으로 알려진 문자 메시지. 부정적인 소식을 전하지 않도록 입단속하라는 게 주된 골자다. | 화면 캡처

징광 터널 주변 일선 행정기관에도 ‘긴급 통지’가 내려졌다는 제보가 있었다. 누군가 캡처해서 올린 메신저 화면에는 “주민들이 사적으로 외신 취재에 응하지 않도록 하라”며 “문자로 통보하지 말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구두로 통보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중국의 자유파 언론인들이 당국의 권고를 받았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베이징의 유명 인권변호사 류샤오위안(劉曉原)은 자신의 트위터에 “베이징의 한 언론인에게서 받았다”며 “허난성의 정부 기관과 시 당국에서 3통의 전화와 4건의 메시지가 왔다. 허난성의 폭우와 홍수, 정저우 구조작업에 대해 ‘칭찬하라. 질문을 던지지는 말라’는 내용이었다”고 밝혔다.

류 변호사는 “이 언론인은 격노했다”면서 “그는 이렇게 큰 사건, 이렇게 많은 사망이 발생했는데도 최고지도부는 여전히 감추려고 한다. 게다가 ‘좋아요’까지 누르라고 했다. 죽은 원혼과 유족들의 고통을 생각해봤는지 그들에게 묻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지난 24일 허난성 위기관리청은 징광 터널 북부 구간 1.8km 구간의 물을 빼냈으며 차량 265대를 발견했고 이 중 사망자 4명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사망자 확인 소식을 전하는 중국 주요 관영매체들의 보도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유족들의 반응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만, 베이징에서 발행하는 관영매체 ‘신경보’는 터널 인근 상가 입주민들을 인용해 “의료진이 시신을 회색 포대에 담아 이동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가족들은 터널 옆 흙탕물에 엎드려 통곡했다”고 보도했다.

/한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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