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기술 절도하다 무너진 소련…중국은?

린란
2019년 11월 19일 업데이트: 2019년 11월 19일

뉴스 분석

11월 9일 토요일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2년 후 소련이란 오만했던 공산제국이 해체됐다.

주지하다시피 당시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스타워즈’ 계획을 내놓아 소련과 군비 경쟁을 한 것이 소련 경제를 악화시킨 중요한 외부 요인이었다. 하지만 이에 앞서 소련 경제를 궁지로 몰고 간 아주 중요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페어웰(Farewell)’ 사건이다.

여기서는 이 ‘페어웰 문건’ 사건을 오늘날 미중 무역전쟁과 비교해서 설명하려 한다.

‘페어웰 문건’ 사건의 전말

1970년대 말 소련 정보기관 KGB의 블라디미르 베트로프 대령이 소련을 배반하고 프랑스에 협조하기로 했다. 그 후 1981년 초에서 1982년 초 사이에 베트로프는 프랑스에 자신이 몰래 찍은 4천여 건의 KGB 비밀문건을 제공했다.

당시 베트로프의 암호가 ‘페어웰(Farewell)’이었고, 그가 제공한 4천여 건의 문서를 ‘페어웰 문건(Farewell Dossier)’이라고 명명했다.

이 문건의 내용은 전부 KGB가 서방에서 탈취한 과학기술정보들이었다. 원래 소련은 1970년에 KGB 내에 전문적으로 서방의 과학기술을 탈취하는 부서인 ‘T국’을 만들었는데, 정식 명칭은 ‘서방 과학기술정보 작전국(Directorate T)’이었다. 이 부서 관할하에 ‘라인X’라는 비밀조직을 만들었다. 2백여 명의 스파이들이 전문적으로 각종 대표단 멤버로 위장해 서방의 기술정보를 빼돌렸다.

베트로프는 1970년대 초반 T국의 산업스파이로 들어가 라인 X 책임자가 됐다. 따라서 4천여 건에 달하는 서방 기술 문건을 접촉하고 촬영할 수 있었다.

역공작으로 소련에 타격을 가한 미국

페어웰 문건이 프랑스에 제공된 후, 1981년 7월 당시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이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G7 정상회담 기간에 미국 레이건 대통령에게 관련 내용을 알렸고 이어서 이 문건 중 핵심 내용 일부를 미국에 제공했다.

이 정보에 근거해 미국 중앙정보부(CIA)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페어웰 문건에 따르면 소련의 산업스파이들이 미국의 레이더, 컴퓨터, 기계, 반도체 등 하이테크기술을 겨냥하고 있었다. 소련은 또 일련의 ‘중점 필요 목록’을 작성해 그중 3분의 2를 탈취했다.

베트로프가 배반한 원인에 대해서는 주장이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그가 소비에트 체제에 환멸을 느낀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하지만, 그의 전기를 연구한 전문가는 그가 승진하지 못했기 때문에 KGB에 복수할 결심을 했다고 한다. 어쨌든 그가 제공한 문서는 레이건 대통령을 깜짝 놀라게 했고, 이는 곧 냉전 종식의 도화선이 됐다.

1982년 1월 레이건 대통령은 중앙정보국이 제안한 역공작을 승인했다. 이에 앞서 미국은 페어웰 문건을 통해 소련이 미국-캐나다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자동제어 소프트웨어를 훔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련은 이 기술로 천연가스파이프를 만들어 서방에 수출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미국은 이 소프트웨어를 새로 설계해 캐나다 회사에 제공했다. 그 후 과연 KGB 간첩이 이 설계를 훔치는 데 성공했다.

소련은 이 사건의 내막을 알지 못했다. 미국이 새롭게 설계한 소프트웨어는 특별한 상황, 즉 압력이 커지면 폭발하도록 설정돼 있었다. 소련이 이 프로그램을 사용한 후 1982년 6월 시베리아 가스전 대폭발 사건이 발생했다. 비록 사상자는 없었지만, 소련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나토 가맹국, 소련 산업스파이 추방

이 사건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맹국들은 베트로프 문건에 근거해 T국 산하 라인X 소속의 산업스파이들을 추방함으로써 소련의 산업기술 절취 경로를 철저히 차단했다.

페어웰 문건이 나타난 시기가 아주 절묘했다. 1980년대는 소련 경제의 성장 속도가 심각하게 둔화되는 시기였고, 소련은 KGB가 훔쳐낸 산업정보를 경제 회생의 동력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 경로가 철저히 차단당하자 미소 간의 경쟁에서 저울추가 급격히 기울었고, 이는 소련 경제의 엔진이 꺼진 중요한 요인이 됐다.

소련이 기술 절도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산업 혁신을 이룰 수는 없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소련은 과학기술을 중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소련의 과학기술자와 엔지니어는 수적(數的)으로는 서방에 비해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소련의 과학기술이 서방과의 격차가 점점 커졌고 하이테크 분야에서는 거의 한 세대 이상 뒤처지기 시작했다.

계획경제하에서는 ‘하이테크 과학기술 혁신’ 불가능

그 원인은 무엇일까?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정책 결정 방식에 있다.  기술 혁신, 특히 2차 대전 이후 시작된 정보기술 혁명과 같은 새로운 혁신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소련의 계획경제 모델에서는 개발 방향과 정책 결정은 관료 주도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관료들의 정책 결정의 특징은 ‘예측 가능’과 ‘위험 회피’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관료 계층의 정책은 ‘약간 고치고 보수하는’ 개량식 혁신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따라서 인류 역사상 한 시대를 풍미한 획기적인 혁신이 관료 주도하에 실현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당시 소련에서 있었던 실례(實例)가 이를 뒷받침한다. 1970년대 소련의 컴퓨터공학자 빅터 글루스코프(Viktor Glushkov)는 소련 정치국 위원에게 ‘전자사회주의’를 추진하는 웅대한 계획을 제출했다. 이른바 ‘연방전체자동화시스템’이 그것인데, 컴퓨터 모델을 이용해 전면적으로 정부의 경제 정책 효율을 높이는 프로젝트다. 그는 심지어 전자화폐 구상까지 제출했다.

1970년대에 이렇게 대담한 구상을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의 제안은 소련 재무부장관의 반대로 부결됐다.

재무부장관은 이 계획이 너무 방대해서 실현하기가 쉽지 않고 소련에는 이런 선진적인 컴퓨터 네트워크가 필요 없다고 보았다. 다만 양계장에 빛을 조절해 계란 생산을 자극할 초보적인 컴퓨터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경직되고 구태의연한 관료 기구는 활력이 충만한 정보기술 분야에서 소련이 뒤처질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달가울 리 없는 소련은 이 시기에 기술을 훔치는 T국을 설립했다. 결국 기술 탈취의 길이 페어웰 문건 사건으로 차단됐고, 소련 경제의 엔진이 서서히 꺼지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일이 됐다.

중국 공산당, ‘중국제조 2025’ 위해 기술 절도

소련이 해체된 후 중공이 공산주의 법통을 이어받아 사회주의 진영의 우두머리가 됐다. 그렇다면 KGB T국이 과거에 사용했던 방식도 중국 공산당이 물려받았을까?

중국 공산당 국가안전부 산하의 제3국, 즉 ‘정경정보국(政經情報局)’은 각국의 정치·경제·과학기술 정보를 수집하는 업무를 주관한다. 자료에 따르면 이 기관이 국가안전부 6국의 ‘업무지도국’과 합작해 각 성급의 청(廳)과 국(局)에 업무 지도를 한다.

2018년 4월 장쑤성 국가안전청 6국 부처장 쉬옌쥔(徐延軍)이 벨기에에서 체포돼 10월 미국으로 신병이 인도됐다. 그는 2013년부터 위장 신분으로 미국 최첨단 우주항공기업 전문가와 접촉해 관련 산업 기밀 여러 건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2018년 12월 미국은 또 중공 해커조직 APT10의 멤버를 기소했다. 이들은 미국 기업 45곳과 정부기구에 침투해 기밀정보를 빼낸 혐의를 받고 있다. ‘인트루젼 트루스’(Intrusion Truth)라는 한 조직은 APT10 멤버들의 각종 이메일을 추적해 한 멤버가 우버에 탑승할 때 탑승 장소가 톈진시 국가안전국 본부임을 발견했다.

2019년 7월 인트루전 트루스는 또 다른 해커조직 APT17을 추적했는데, 그는 국가안전부 지난(濟南)국 책임자였다. APT17은 미국 국방기업, 로펌, 정부 에이전트 및 과학기술 자료들에 대한 해킹을 맡고 있다.

2017년에는 인트루젼 투루스와 사이버 보안기업 리코디드 퓨처(Recorded Future)가 해커조직 APT3를 확인해보니 중공 국안부의 광둥 하청업체였다.

이 외에도 해커조직 ‘APT40’, ‘APT41’ 등의 배후에도 중국 정부의 그림자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들 해커들의 공격 목표는 거의 전부 ‘중국제조 2025’ 프로젝트의 핵심 분야다. 예를 들면 우주항공, 바이오의약 분야 등이다. 독일 내무부의 한 관리에 따르면 중국제조 2025의 핵심 분야는 항상 중공 정보기관의 해킹 목표가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중공은 기밀을 훔쳐내 특정 산업을 강화하려 한다.

미국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은 국가안전부의 직업적인 스파이 외에 아르바이트 스파이도 이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학생이나 학자들이 미국의 과학기술 기밀을 훔치거나 ‘천인계획'(千人計劃) 프로그램에 미국 학자를 초빙해 기밀을 제공하게 하거나 중국 시장 진출을 미끼로 미국 기업에 자발적으로 산업기술과 산업기밀 등을 넘기게 하는 등이다.

미국, 중국 공산당의 산업정보 탈취 루트 차단

이에 대해 미국도 반격에 나섰다. 한편으로는 무역협상을 통해 중국 공산당의 해커 침투 행위 중단, 지적재산권 보호, 강제 기술 이전 중단 등을 확약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스스로 적극적으로 방첩 활동을 펼쳐 중공의 산업정보 절취 경로를 차단하고 있다.

이런 조치들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 어떤 사람은 현재 중국은 이미 해외에서 귀국한 많은 최첨단 과학자들이 있어 미국 기술을 훔치지 않아도 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이 점에 대해 필자는 뭐라 단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적어도 중국 공산당이 더는 공짜를 즐길 수 없고 반드시 자신이 원하는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 대량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하고 실패 위험을 감내하면서 여러 세대에 걸친 혁신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반드시 미국과 공정하게 경쟁 선에 서야 하며 더는 과학기술 정보를 훔쳐서 신속하게 ‘코너에서 추월’하는 편법을 쓸 수 없다.

중국 공산당이 과연 이런 시간과 자금을 투자할 의향이 있을까? 아마 아닐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기다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거처럼 ‘세계의 공장’ 방식에 의존해서는 이미 지속할 수 없으며 인터넷 경제 역시 포화상태고 심지어 경제학자들은 다음 10년에 인터넷 거품이 꺼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중국 공산당은 새로운 경제 성장점으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고용을 안정시킬 긴박한 요구가 있고, 그 경제 성장점이 바로 ‘중국제조 2025’와 관련된 첨단산업이다.

현재 중국 경제의 하락세는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따라서 중국 공산당은 ‘2025’를 발전시키려는 바람은 갈수록 간절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방금 언급했다시피 과학기술 혁신은 고도의 예측 불가능성을 띤다. 그렇다면 기다릴 여유가 없는 중국 공산당은 어떻게 할까? 오직 계속해서 훔치는 수밖에는 없다. 그러나 미국은 현재 반격할 결심을 내렸고, 이는 과거에 레이건이 내린 결심 못지않게 단호하다.

결론

그러므로 큰 틀에서 보자면 한쪽은 어쩔 수 없이 계속 훔칠 수밖에 없고 다른 한쪽은 계속 막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중국 공산당이 구조개혁을 담보하는 무역협상에 동의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설사 무역협상에 합의하더라도 엄격하게 이행하지 않을 것이며 미중 관계 역시 갈수록 경쟁이 격화되거나 심지어 대립하는 추세로 나아갈 것이다.

총결하자면, 소련 스파이의 배신이 소련 경제에 끼친 영향을 통해 오늘날 중국 공산당이 유사한 국면에 처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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