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 당(黨)문화]제8장 습관성 당(黨)문화 사유(상)

2007년 9월 14일 업데이트: 2019년 11월 8일

하편:당문화의 구체적인 표현 

【당문화 해체】제8장 습관성 당(黨)문화 사유(상) 


< 목 차 >

1. 사람마다 경계하고 말 속에 투쟁의식 지녀 

2. 당을 벗어나지 못하는 창작습관 


하나의 문화가 형성되자면 통상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공산당은 겨우 몇십 년 내에, 상식을 뛰어넘는 선전 주입, 영혼을 뒤흔드는 피비린내 나는 실천을 통해 중국에 당문화를 건립했다. 그것이 이미 성숙했음을 알려주는 지표는 당문화 사유가 피동적으로 받아들여지던 데에서 결국에는 사람들의 사유습관으로 변화되었다는 점이다. 일단 습관이 되어 자연스럽게 변하면 당(黨)문화는 인간 생명의 일부분으로 되어 외부에서 주입된 것임을 깨닫기란 아주 어렵다. 그리하여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내원한 것으로 믿게 된다. 당문화의 사유는 중국 민족의 “본성”이 되었다. 어떤 민족은 사색을 즐기고, 어떤 민족은 음악을 애호하며, 어떤 민족은 새로운 창조를 좋아한다. 이와 같이 각 민족의 다양한 사유 방식은 천차만별이지만 모두 기본적인 인성에서 나왔다. 그리고 공산당에 의해 강제로 가해진 우리의 “본성” 즉 인성에서 나오지 않은 것을 당성(黨性)이라고 한다. 당문화는 민족을 변이시켜,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에 경계심을 보이고 말 속에는 투쟁의식이 가득하다. 문학과 예술 창작에서도 습관적으로 당을 벗어나지 못한다. 생활 속에서도 당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생각은 위험하다고 느낀다. 습관적으로 당팔고(黨八股)를 말하며, 당과 정부, 당과 국가 그리고 당과 민족의 개념 등을 혼동한다.

이런 당문화 사유는 전 사회에서 자연스레 습관이 되었고, 사유, 언어, 행위 등 여러 방면에 영향을 주는 “습관세력”을 형성했다. 우리는 설령 공산당 조직이 해체될지라도 당문화에서 형성된 “습관적 사유”는 사라지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미래의 중국은 공산당이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공산당의 어두운 그림자를 심각하게 지닌 사회가 될 것이다. 만약 우리의 사유, 언어, 그리고 행위 중에서 당문화 “습관”을 청리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우리의 시비 판단, 정보 분석과 정책 결정에 영향을 끼칠 것이며 우리는 여전히 서로 경계하고, 여전히 자연을 약탈하며 하늘과 싸우고 땅과 투쟁할 것이며, 여전히 국제적으로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반(反) 중국세력의 마음이 죽지 않았다”고 여길 것이다. 이것은 마치 고속으로 달리던 트럭이 설령 시동이 꺼져서도 여전히 관성에 의해 상당히 먼 거리까지 더 진행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때문에 본 시리즈의 마지막 장에서는 당문화 중의 습관적인 사유를 청리하는 것의 중요성을 서술했다.

1. 사람마다 경계하고 말 속에 투쟁의식 지녀

1) 사람마다 경계

중국 사람들은 자고로 순박하고 손님을 환대했다. 공자는 “멀리서 벗이 찾아오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라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에서는 만약 낯선 사람이 당신에게 상냥하게 대한다면 당신은 아마 “이유 없는” 사랑은 없고 그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아이를 데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보면 저 아이는 속임수를 위해 이용하는 “바람잡이”일 거라고 추측한다. 어떤 사람이 길가에서 당신보고 도와 달라고 하면 당신은 그의 패거리들이 부근에 숨어서 바보 같은 사람이 그물에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진 않을까 경각성을 높인다.

이와는 반대로 중국인들이 서양에 와서 받는 가장 큰 감수는 바로 사람들이 우호적이라는 것이다. 길을 걸을 때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당신에게 미소를 보내며 당신을 아는 체한다. 만약 차가 고장 났다면 종종 어떤 사람이 차를 멈추고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본다. 만약 당신이 아이를 데리고 있다면 사람들은 더 잘 도와줄 것이다.

“군자는 공경하여 잃음이 없고 사람들과 공손히 예의를 지킴에 사해가 모두 형제처럼 된다(君子敬而無失,與人恭而有禮,四海之?皆兄弟也).”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선인들의 마음속에 있던 예의의 나라이다. 지금은 무엇 때문에 문명과 예의의 고향인 중국에서 도리어 화목을 볼 수 없고 “사람을 경계하는 마음이 없어선 안 된다”고 하면서 경계심으로 가득한가? 이런 경계심은 낯선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직장 동료, 이웃, 심지어 친한 친구 사이에도 방어하려는 마음이 있다. 술잔이 빈번히 오가는 성대한 연회석에서 “속마음을 털어놓고 진솔히 대화” 한다면서도 배후에서는 세태의 냉담함을 간파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타인을 경계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오늘날 중국인들의 마음속에는 모두 경계가 삼엄한 성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서로간의 경계심은 일종 습관적인 사유가 되었다. 정상사회의 사람들에게도 경계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며, 몰래 숨어서 나쁜 짓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경계하기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현재 중국인들의 경계심은 상대방이 전달하는 정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사람을 보기만 하면 생겨나는 경계심으로, 상대방에게 나쁜 의도가 있다는 가정 하에 올라온 것이다. 사람마다 만나기만 하면 경계하는 마음이 있고 시시각각 남을 방비하는데 이것은 사람의 정상 상태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중국인들이 살기가 아주 힘들다고 말하는데 확실히 그렇다.

(1) 습관적인 경계심은 당문화가 조성한 것 

중국 사람들은 모두 단순했고, 믿었으며, 진심으로 대가를 치렀다. 하지만 한 차례 또 한 차례 밀물처럼 일어난 운동 중에서, 혹은 자신이 남을 괴롭히거나 혹은 남에게 괴롭힘을 당했으며 혹은 오늘은 남을 괴롭히다가 내일은 또 남에게 괴롭힘을 당했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남을 괴롭히는 것을 보았거나 혹은 남이 남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았거나 혹은 어제는 남에게 괴롭힘을 당했으나 오늘은 그를 괴롭히던 사람이 괴롭힘을 당하는 등, 중공의 지난 몇십 년 역사는 바로 사람을 괴롭히는 투쟁의 역사였다.

중국 민간은 대대로 전승되며 종족 자치에 의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중공의 투쟁 철학은 이 관계를 억지로 찢어 버렸고 그것을 대신한 것은 경제, 사회적 지위로 구분한 계급(군체)대립 관계였다. 사람들은 적의에 찬 눈빛으로 주변 사람들을 주시하기 시작했고 공산당의 폭력수단으로 각기 다른 견해의 사람들을 대처했다. 당성, 야만성. 계급성이 인성을 대체했고, 전정(專政)이 관심과 사랑을 대체했으며, 적의가 우호와 선량을 대체했고, 경각성이 신임(信任)을 대체했다. 사람들은 이른바 “원수”의 “잠입”, “공격”과 “반격”을 수시로 방비할 것을 요구 당했다. 이로 말미암아 “원수”를 방비할 의무를 감당하는 동시에 “원수”가 자신의 절실한 이익을 해칠 수 있다고 경각하는 우려도 생겨났다.

도덕을 믿지 않고 신명(神明)을 믿지 않으며 천리(天理)를 믿지 않는 사회에서는 최대의 악의로 남을 추측하고 남을 방비해야만 비로소 조금이나마 안전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장시간 지속된 이런 적대적인 방비심리는 곧 사람들의 잠재의식 가운데 습관적인 생각으로 되었고, 다른 사람을 경계하는 것이 사회의 정상적인 상태가 되었다. 집단적인 경계심은 전통적인 신앙과 도덕을 타파하였는데, 이는 중공이 계급투쟁 관념을 주입한 일종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을 괴롭히는 데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각종 비열한 수단―특무, 고발, 밀고하기, 검거, 적발, 배신, 양면파(兩面派), 담 꼭대기에 난 풀(역주: 담 꼭대기에 날 풀은 이리저리 휩쓸리는 관계로 줏대 없는 사람에 대한 비유로 사용되었다), 경계선 가르기, 대”의”멸친(大”義”滅親 역주: 원래 의미는 큰 의리를 위해 사사로운 육친정을 버린다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공산당을 위해서라면 혈육도 돌보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부부가 반목하고 부자간에 헐뜯으며, 이웃이 원수가 되고, 죽기내기로 서로 투쟁하며, 벽에도 귀가 있는 등을 사용한다. 그리하여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행동하는 것은 사람들이 생존을 도모하는 본능이 되었다.

“나는 당신과 분명한 경계선을 그을래.” : 문화혁명 당시 부모 자식 간에도 서로 비판하고 경계선을 그어야 했다 | 에포크타임스

만약 사람이 사람을 괴롭혀 조성된 경계심에 또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중공 사회는 위에서 아래에 이르는 거짓말로 곧 그 틈을 막는다. 심리학에서 발견한 데 의하면 한 사람이 만약 진심으로 믿었는데 속았다면 정서적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을 수 있다고 한다. 이때 진심으로 믿으면 믿을수록 상처받은 후의 기복이 더 격렬하며 더욱 심한 경계심으로 표현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극단으로 나아가 아무도 믿지 않게 된다. 중국인들은 애초 중공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랐지만 중공의 각종 변덕, 참여자들의 추태, 피해자들의 잔혹한 시달림은 사람들의 마음에 너무나도 많은 상처를 남겼다. 여러 차례 기만과 박해를 당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을 방비하는 태도가 형성되었다. 사람들은 더는 감히 그 어떤 사람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매사에 우선 남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여 자신의 경각성을 높이며 이를 통해 생존의 안전을 도모한다.

경계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고 일체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경계심이 습관으로 된 후 다시 되돌아와 자신을 강화한다. 다시 말해 “불신”이 더욱 커지고 경계심이 더욱 깊어진다.

『열자(列子)』에 “도끼를 잃고 이웃을 의심한다(疑隣竊斧)”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도끼를 잃어버리고는 이웃집 아들이 훔쳐갔을 거라고 의심했다. 그래서 이웃집 아들을 자세히 관찰해보니 그의 걸음걸이, 말하는 모습을 봐도 도끼를 훔쳐간 것 같았고, 얼굴 표정, 행동거지, 모두 다 자기 도끼를 훔친 것 같았다. 나중에 자신의 도끼를 찾은 후, 그때 다시 이웃집 아들을 보니 걸음걸이, 말하는 모습, 표정이 전혀 자기 도끼를 훔친 것 같지 않았다.

중공은 일단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게 만들었고, 그런 다음 다시 이 선입견에 따라 증거를 수집하게 하는 습관적인 사유를 배양했다. 이때 우리는 도끼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다른 사람을 어떻게 볼지라도 모두 믿을 수 없다. 당문화는 일종 의심 문화로 “일체를 의심”하는 것을 사람들의 사유와 교제의 지도사상으로 만들었으며, 사람마다 서로 경계할 것을 제창했다. 마르크스가 자신의 장녀인 예니의 취재를 받을 때 한 대답이야말로 당문화의 삼매(三昧)라고 말할 수 있다. “행복에 대한 이해―투쟁, 좋아하는 색깔―붉은 색, 좋아하는 좌우명―일체를 의심.”

당문화의 핵심을 지적한 마르크스 : 투쟁, 붉은 색, 일체를 의심 | 에포크타임스

투쟁과 거짓말은 다만 표면적으로 경계심을 형성하는 요소일 뿐이다. 당문화의 건립 과정을 깊이 파헤쳐 보면 경계심이 어떻게 조성되었는지 더 분명히 보아낼 수 있다. 중공은 전통적인 신앙을 소멸시켰고, 전통문화를 부정했으며 투쟁철학을 주입하고,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의 위대함을 선전했다. 원래 존재했던 모든 신앙과 중공의 신격화(造神)운동이 파멸된 후, 사람들에게 남겨준 것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 심리적 상처였다. 이 일체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심한 경계심을 조성했다.

(2) 경계심의 전승(傳承)

아마 어떤 사람은 자신은 그런 운동을 겪지 않았고, 지금은 중공도 예전처럼 계급투쟁을 말하지 않는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사람들의 습관적인 경계심을 조성한 사회적 메커니즘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매 사람마다 불가피하게 그 영향을 받고 있다.

중공 매체 중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수시로 “인식을 분명히” 하고, “엄밀히 방비”하며, “고도로 경계”하며, ” 엄격히 타격” 하며, “반(反) 중국세력”, “(반혁명분자들이 공산당을) 죽이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고”, “경계심을 늦추는 사상을 극복”한다는 등의 글자들이 늘 사람들의 투쟁 심태를 격발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지금의 부모들도 자신들이 겪은 정치 운동의 교훈으로 말미암아 젊은 세대들에게 늘 경각성을 높이고 조심하라고 간곡히 가르치는데, 이런 경계심을 대대로 “전승”하고 있다. 친구 사이에도 흔히 “당신은 누구누구를 좀 방비해야 해.”라고 충고하고 일깨워준다. 방비하라는 기억을 수시로 떠올리게 하여 경계심 효과가 생활 곳곳에서 확대되었다.

중공이 주입한 서로 고발하고 적발하는 밀고문화는 지금까지도 없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더욱 정교해졌다. 어린이들은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 밀고행위로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격려 받는다. 대학에서는 입당(入黨)과 좋은 직장 배치를 위해 학생들은 밀고 방식으로 보도원에게 “진보를 요구”하고 좋은 관계를 맺는다. 직장에서는 뒤에서 지도부를 제일 심하게 욕하는 사람이 종종 지도부에서 아랫사람들을 염탐하기 위해 심어놓은 밀정이다.

중공의 당 조직은 없는 곳이 없고 관여하지 않는 것이 없다. 신문 잡지에서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학습, 사업에서 생활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통제하며 사회를 조종한다.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당의 감시 속에 있다. 중공의 6.4 탄압, 상방(上訪) 인원에 대한 체포, 견해가 다른 인사들에 대한 탄압, 신앙 단체에 대한 박해는 중공의 계급투쟁 사상이 여전히 언제 어디서든 진행되고 있음을 설명한다. 더욱이 파룬궁(法輪功)에 대한 탄압 가운데 사용한 천지를 뒤덮을 듯한 대 비판, 전민운동, 사람마다 고비를 넘기고 태도를 표시해야 했는데 이것이 문화혁명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중공 권력계통의 거짓과 부패의 시범 효과는 사회 도덕수준의 전반적인 하락을 크게 강화했고 이런 전 사회적인 도덕 하락은 또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경계하게 만들었다. 사람마다 서로 경계하는 이런 당문화는 국민들의 마음속 깊이 스며들어 사유와 행위에까지 반영되었는데 바로 늘 다른 사람을 방비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억측하며 다른 사람에게 “이용” 당할까 우려하는 것이다. 한 화교 기업인이 몇 년 전 중국에 가서 시찰한 후 돌아와서는 “중국 사회는 이제 아주 복잡한 사회로 변해 버렸다. 사람들에게 신용과 도덕이 없고, 어떠한 사람에게 말해도 무슨 일이나 다 믿지 않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 속이고 빼앗는다. 정부는 인민을 믿지 않고 인민도 정부를 믿지 않으니 법률이 집행되지 않는다.”라고 개탄했다. 이런 사회 상태가 국가적으로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의 습관이 형성되는 과정은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외력이 강제로 가해지는 비자발적인 단계, 두 번째는 끊임없는 강화를 거쳐 조건반사적인 자각단계, 세 번째는 완전히 체화되어 본능적이며 습관적인 반응 단계이다. 중국인들의 전반적인 경계심은 최초에 중공의 강제 주입과 선동을 받았고, 그런 다음 역대의 정치 운동 가운데서 강화되었다. 오늘에 이르러 사람들의 경계심은 이미 충분히 본능화, 자동화되어 감독이 필요 없으며 의지적인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 뿐더러 자연스레 습관적인 사유 상태가 되었다.

경계심이 초래한 좋지 못한 결과 

만나는 사람마다 경계하게 하는 당문화 사유는 중국인들의 생활을 아주 우울하게 만들었다. 경계심은 사람에게 일시적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하거나 심지어 좋은 점을 얻을 수도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원래는 솔직하게 사귈 수 있고, 서로 신임하면서 홀가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을 고도의 경계심,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일마다 방비하게 만든다. 사람마다 만나기만 하면 경계하는 마음을 품고 사람마다 적으로 만들었으며 주변에 있는 가장 절친한 사람들마저 감히 완전히 믿고 의지할 수 없게 만들었다. 장기적으로 이렇게 하다 보니 생활의 질이 몹시 떨어져 살아가면서 신뢰와 여유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맛보기 어려우며, 정신질환과 다른 심리적 질환의 비율이 대대적으로 증가했다. 정신병 전문가의 추산 결과, 중국에는 현재 적어도 일억에 달하는 사람들이 각종 정신질환에 걸려있다고 한다.

당문화 사유의 극심한 경계심으로 삶의 질 저하 | 에포크타임스

전쟁터에서 경각성을 유지하는 것은 정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늘 긴장된 상태로 남을 방비한다면 이것은 비정상적인 생활이다. 정상사회에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경계하는”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국가에서는 전체 사회에서 말에 신용을 지키는 품행을 고무격려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 흠집을 들춰내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덕행을 은밀히 수소문하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아주 간단하고 홀가분하다.

경계하는 사유는 중국인들이 잘 협력하지 못하고 모순이 많아지게 했다. 전반 사회를 놓고 말하면 이러한 경계심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비용은 아마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이다.

경계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아무것도 믿지 않게 한다. 물론 중공 체제 이외의 일체를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일의 진실조차 믿으려 하지 않는다. 중공이 덮어 감추고 왜곡한 사실의 진상이 폭로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여전히 의심하고 불신하는 태도를 지닌다. 따라서 아주 큰 범위에서 중공의 거짓 선전, 조종과 민심 기만이 뜻을 이루게 되었다.

경계하는 심리는 중공의 국제 관계에도 어려움을 조성했다. 중공이 선동하는 경계심과 외국을 적대시하는 심리는 다른 나라의 신뢰를 얻지 못하게 할 뿐더러 자신도 진정으로 세계무대에 진입하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 색안경을 끼고 다른 사람들을 모두 “반 중국세력”으로 보고 있으니 어떻게 다른 사람의 정보를 정확히 읽고 세계 각국과 협력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아마 “내가 다른 사람을 방비하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나를 바보로 업신여기지 않겠는가?”라고 여길 것이다. 확실히 그렇다. 누가 자신이 먼저 경계심을 포기하려 하겠는가? 어떤 사람이 발끝을 세우는 것을 예로 들어 이 문제를 설명했다. 사람들이 모두 발꿈치를 들고 공연을 구경한다면 모두 아주 피곤할 것이다. 만약 여러 사람들이 함께 발꿈치를 내린다면 모두 힘들지 않고 구경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서로 믿지 않는 상태에서 내가 발꿈치를 내려도 다른 사람이 내리지 않으면 나만 손해를 보는 셈이다.

당문화 중에서 답안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만나는 사람마다 경계”하는 상태는 바로 당문화가 조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중공이 해체되어야만 경계심을 조성한 큰 환경을 제거할 수 있다. 사람들은 공산당의 공격과 박해가 없어져야만 비로소 신앙 자유가 있을 수 있으며,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등 중국 전통 관념을 점차 회복시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스스로 발꿈치를 내려놓으려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들은 남을 선하게 대할 것이며 성실하게 신용을 지키는 행위는 또 전체 사회도덕의 승화를 이끌 것이며 이를 통해 정상적인 사회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있을 것이다.

2) 언어 속의 투쟁 의식 

2001년 중국의 한 언어학 전문가가 젊은 세대의 유행어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10대 유행어 중에서 “악한 마음”, “백치”, “변태” 등 공격성이 강한 단어들이 상위에 있었고, 그 다음 자리를 차지한 것은 온통 “죽어라” 뿐이었다.

투쟁적인 언어는 단지 청소년들의 문화 속에만 존재할 뿐 아니라 오늘날 중국인들이 생활하는 각 방면에 모두 이런 언어로 가득하다. 예를 든다면, 티셔츠에 “건드리지 마, 귀찮아”라고 쓰고, 노래 가사에 “싸워야 할 때면 싸워라”고 선동한다. 책 제목에서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몇 만에 달하는 축구팬들이 축구장에서 리듬에 맞춰 다음과 같은 욕을 일제히 해댄다. “X 바보”, “병 걸렸니?”, “너 약 잘못 먹었냐?”, “머리에 물 들어갔니?” 이런 식의 말은 도처에서 다 들을 수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모두 다음과 같은 일들을 겪었을 것이다. 문제를 담론할 때 사실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다른 사람의 흠집을 들춰내어 일을 틀어지게 만든다. 말에 가시가 있고 언어가 날카롭고 각박하며, 공격적이며 다른 사람의 감정은 고려하지 않는다. 일에 부닥치면 온화하게 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다른 사람의 견해에 상관없이 먼저 퇴짜를 놓아야 직성이 풀린다. 언어 속에 부지불식간에 드러나는 이런 투쟁의식은 생활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공공장소에서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보면 어느 때 갑자기 나타나 중간에 끼어드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줄을 서라고 말하면 그는 아마 눈을 흘기면서 갑자기 한 마디 내뱉을 것이다. “웬 상관이야! 미쳤나 봐!” 큰 길을 걷다가 그만 다른 사람과 부닥쳐 막 사과하려 하는데 벌써 거친 말이 들려온다. “눈 삐었니?” 두 사람이 다툼이 있어 티격태격할 때 구경하는 사람들은 싸움을 말리는 것이 아니라 “한번 붙어봐!”라고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다. 친구사이에 농담을 해도 “기다려, 죽여 버릴 테다.”라고 말한다.

부모가 아이를 교육할 때 언어는 더 냉혹하고 화약 냄새가 난다. “너한테 전에 알려줬지, 학교에서 돌아오면 첫 번째로 할 일이 숙제하는 거라고. 꼴좋다, 숙제도 하지 않더니 내일 선생님이 어떻게 혼낼지 보자!”, “다른 집 아무개를 봐라, 매번 너보다 잘하잖아.” “울어? 울 줄은 알아가지고! 운다고 누가 널 도와줄 것 같애!” “말을 듣지 않으면 시험이 끝난 후 어디 두고 보자!” “이놈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너를 길들이지 못할 줄 알아?”

대만 사람이 발견한 사실인데, 중국대륙 사람들은 말할 때 흔히 반어법을 사용하는 습관이 있으며 말씨가 아주 충격적이라고 한다. “왜 이것도 몰라 ?” “당신 혼자서는 볼 줄 몰라?” “지금 내가 바쁜 거 보이지 않아?” “누가 그래?” “내가 당신한테 말하지 않았어?” “뭐 하러 일찍 갔어?” “당신 같은 사람이 어디 있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강한 화약 냄새와 남을 책망하는 의미가 들어 있으며 상대방이 “우둔”하고 “비정상”임을 암시하는 것이며 아울러 반어법을 사용함으로써 말투가 더 강해진다.

투쟁적인 언어는 이런 정도까지 보급되었고, 일부 대중 문예 형식도 모두 언어 공격을 중요한 내용으로 한다. 최근에 유행하는 많은 소품(小品)의 주요 내용은 남녀 배우가 서로 공격하는 것으로 떠들썩하고, 허풍을 떨며, 수다스러운 것이 소설,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사랑받는 배역이다. 많은 작가들은 신랄한 것을 깊이가 있는 것으로 여기며 인터넷 논단은 더욱 악랄한 언어 세상이다. 농민, 가난한 사람, 장애인, 못생긴 사람, 지식수준이 낮은 사람 등은 모두 사람들이 공격하고 헐뜯는 대상이 된다.

이렇게 각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중국 대륙에서 한때 풍미했던 “슈퍼여자가수(超級女聲)”심사위원이 젊은 여자 참가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멜로디가 틀렸어, 아가씬 정말 멜로디가 틀린 것도 몰라?” “아가씬 기본적인 음악 소양조차 갖추지 못했어!” “민요를 짓밟았어.” “당신 노래는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워.” “공부를 잘하면 장래가 있겠지만 노래를 한다면 앞길이 없다.” “뒤에 있는 선수들을 놀라게 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은 노래를 부르다 우연히 멜로디가 틀리는데 당신은 우연히 곡조를 맞춰.” “돈을 써가며 음악을 배우는 것은 당신한텐 낭비야.” “당신은 나이도 많지 않은데 꼭 불만 가득한 아줌마 같애.” 이런 말은 직접적으로 사람의 자존심을 공격하는 것으로 사람에 대한 최저한도의 존중마저 없지만 도리어 당당하게 텔레비전을 통해 몇 억 명 관중들에게 방송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일에 습관이 되어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심지어 흥미진진하게 여긴다!

중국인들의 이런 투쟁의식은 전투적인 언어에서 표현될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언어에서도 투쟁의식이 넘쳐난다. 사람들이 문제를 토론할 때면 흔히 건설적인 태도로 일을 잘하기 위한 기점에서 출발하여 긍정적으로 논의하기보다는 이것은 틀렸고 저것은 안 된다며 부정적으로 다루는데, 어쨌든 다른 사람은 자기보다 총명하지 못하다고 여긴다. 그 일에 대해 본인이 어떻게 한다 해도 마찬가지임에도 자신이 “유리한 정세”에 처해 있고 “멀리 내다보며” 남보다 강하다는 것을 과시하려 한다.

기성세대는 당문화에 장기적으로 잠겨 있었고, 젊은이들은 어려서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라났기에 모두들 중국인은 예전부터 이렇게 말해온 것으로 여기면서 이런 말이 어디가 틀렸고 어떻게 나쁜지 깨닫지 못한다. 사실, 예전의 중국인들은 온화하고 품위 있는 예의 교육과 온유하면서도 너그러운 시 교육을 중시했다. 그들이 신봉한 것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란 사람이 되는 준칙이었고 중시한 것은 “온량공검양(溫良恭儉讓)”이란 일처리 태도였기에 말하는 태도와 방식이 오늘날의 사람과는 전혀 달랐다. 서양에서는 언어와 행위가 종교, 도덕, 법률과 직업윤리의 강력한 단속을 받으며, 투쟁적인 언어는 법정이나 선거 후보자들의 유세 등 일부 제한적인 장소에서만 허용된다.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이 겸손하게 양보하면서 말한다면 전반 사회는 아주 평화로운 상태가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사람마다 말속에 전부 투쟁 의식을 지니는 것, 그것도 강렬한 투쟁 의식을 지니는 이런 현상은 중공 당문화의 독특한 산물이라 하겠다.

(1) 언어 중에 투쟁의식이 형성된 원인 

“만나는 사람마다 경계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 중에 투쟁의식을 지니는 것” 역시 중공의 투쟁 철학과 투쟁을 실천한 산물이다. 중공의 눈에 폭력이란 긍정할 만한 품격으로 보인다. 중공의 투쟁철학은 교과서, 영화와 텔레비전 작품, 문예 프로그램, 가곡, 그림책 등을 통해 은연중에 각 세대 중국인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사람의 행위를 결정하는 것은 사상이다. 만약 사상 가운데 주입된 것이 온통 폭력이나 증오와 같은 것들이라면 사람의 언어와 행위에 반영되어 나오는 것도 필연적으로 폭력과 증오일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인들의 언어 중에 나타나는 투쟁 의식은 중공의 폭력철학, 폭력문화와 폭력 실천이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형성한 본능적인 반응이라 하겠다. 몇십 년에 가까운 생활과 교육 중에서 사상이나 행동 면에서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투쟁의 영향을 받아왔다. 그러니 그 후유증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7, 8년에 한 차례씩 일어나는 정치운동 가운데 폭력적인 언어는 도처에 가득 찼다. 중공 매체에서 사람들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비판”, “투쟁”, “타도”, “때려 부수다”, “쓸어버리다”, “잡귀신” 등 공격성이 아주 강한 언어들이다. 이런 폭력적인 언어는 신문 사설, 평론, 비판 문장에서 더욱 많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무슨 “누구누구의 마귀 발톱을 잘라버리자”, “누가 감히 사회주의를 반대한다면 우리는 그의 척추를 부숴버릴 테다.”, “누구누구에게는 절대로 좋은 결말이 없을 것이다.”, “기름에 튀기고, 껍질을 발라내며 힘줄을 뽑아내자”,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게 하자.” 등등, 모두가 폭력, 위협, 공갈, 화약 냄새로 충만한 그런 명사들이다. 이런 폭력적인 언어들은 독재자들이 대중을 협박하고, 공포 분위기를 만들며, 순한 백성으로 길들이기 위한 필요에 따른 것으로, 매체, 문건, 교과서, 문예작품에 가득한데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침투되어 중국인들이 말하는 방식을 몹시 크게 개변시켰다.

중공이 발동한 잔혹한 정치투쟁 중에서 사람들이 투쟁하는 좋지 못한 습관이 충분히 발동되었다. 가장 악독하고 수단을 가리지 않으며 남을 공격하고 남을 모욕하고 모함하는 사람, 남의 죄명을 잘 날조해 검토 비판하며 배후에서 더러운 물을 쏟아 붓는 그런 사람들은 흔히 지도자와 “조직”의 중용을 받아 벼락출세를 하지만 모욕을 받고 공격을 받아도 해명할 방법이 없는 그런 사람들의 결말은 흔히 비참하다. 이렇게 수동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말재주를 다듬는데 힘을 기울였고 자신을 말 주변이 뛰어나 언제라도 신속하게 남을 반격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모시켰다. 오늘에 이르러 이치에 어긋나도 트집을 잡고, 목소리가 큰 것이 바로 재간이란 생각이 이미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서 본능적인 반응이 되었다.

언어 중의 투쟁의식은 당문화 중에서 사람들의 심각한 불안전감을 반영한다. 정상적인 인류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신봉한다. 다른 사람에 대해 나쁜 마음을 지니지 않으며, 시시각각 다른 사람을 방비할 필요도 없고, 마음이 침착하고 착실하여 다른 사람과 말로 싸울 필요가 더욱 없다. 하지만 당문화는 사람들을 시시각각 업신여김을 당하고 손해를 볼까 봐 걱정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때문에 실제상 혹은 언어로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을 통해 안전감을 획득하려 한다. 중공은 약육강식의 “사회적 다윈주의”를 선전한다. 약자는 먹이사슬에서 낮은 쪽에 있으므로 다른 동물에게 잡아먹힐 수밖에 없다. 먹이사슬의 높은 곳에 있는 강자야말로 가장 안전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상은 원래 화목했던 사람 관계를 투쟁관계로 변화시켰고, 투쟁 가운데서 승리할 수 있는가 여부가 사람들이 스스로 안전감을 평가하는 데에서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 이리하여 오늘날 생활 중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반응이 민첩하고 총명하여 상대방을 능가한다는 말만 들어도 자신은 고상한 사람이며 남보다 강자라고 여기면서 속으로 기뻐서 우쭐거린다.

(2) 계속 이어지는 투쟁의식 

많은 사람들이 투쟁의 역사는 이미 지나갔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사유방식은 일단 형성되기만 하면 고치기가 아주 어렵다. 다른 한편으로는 언어 체계는 안정적인 특징이 있다. 언어체계는 젊은 세대의 언어 습득을 통해 그들의 언어습관이 된다. 바꾸어 말하자면 어린이가 말을 배우는 과정이 바로 언어 방식을 배우는 과정이며 동시에 또한 사유 방식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학부모, 교사와 전 사회가 장기적으로 정치투쟁에서 형성된 투쟁 심태 속에 있다면 다른 일종의 변형이 젊은 세대들의 몸에 나타날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재물을 비교하고, 가난한 사람을 깔보며, 질투심이 강한데 이 모두는 일종 투쟁심의 표현이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면 “언어 중의 투쟁의식”은 지난 몇십 년 동안 중공 통치 속에서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투쟁언어는 대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힘을 믿고 약자를 괴롭히는 형

사례 1 : “최근에 좌파, 우파가 출현하여 동시에 반란을 일으킨다고 외치는 괴상한 일이 나타났는데 이상할 것 없다. 너희들에게 솔직히 알려준다. 진주와 동태 눈깔은 한데 뒤섞지 못한다. 우리는 좌파가 반란하는 것을 허용하지 우파가 반란하는 것은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너희들이 감히 반란을 일으킨다면 우리는 즉각 탄압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논리이다. 어쨌든 국가기구는 우리 손에 있다.” (청화대학 부속중학 홍위병 대자보, 1966년)

사례 2 : “나는 공무원이다. 그를 좀 때린 것이 어떻단 말인가. 때려서 다쳤다면 10만 위안을 주고 죽었다면 20만 위안을 주면 그만이다.” [2004년 충칭(重慶) 완저우(滿州)에서 수만 명 민중들의 대규모 충돌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원인은 공무원을 자칭하는 사람이 한 민공(民工)이 부주의하여 자신의 아내에게 부딪쳤다는 이유로 폭행했다. 이 말은 구경하던 많은 사람들을 자극해 대규모 충돌을 일으키는 중요한 도화선이 되었다.]

사례 3 : “불행히도 누가 당신에게 중국에 태어나라고 했는가?” (2005년 허쭤슈가 중국에서 탄광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문제에 관해 취재 받을 때 한 말.)

이 외에도 “대만을 초토화 하겠다”는 등이 포함된다. 이런 말들은 힘을 믿고 약자를 괴롭히는 심태를 전형적으로 반영하는 것들이다.

▶질투심에 불타오르는 형

예를 들면, “무산계급이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이다.”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 이 말은 룸펜프롤레타리아의 심태를 전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세계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무산자”만이 벼락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기타 예들 : “뭐가 대단해?”(대단할 게 없다는 의미) “얼마나 신선한데?”(조금도 신선하지 않다는 의미) “설날 물만두를 먹지 않는 집이 어디 있어?”(다른 사람이 좋은 일을 만나거나 혹은 좋은 성적을 내면 설을 쇠는 것처럼 평범한 일로써 부럽지 않다는 의미) “당신이니까 된 거야!”(우쭐거리지 말라는 것으로 “사실 나는 당신보다 더욱 능력이 있다”는 의미 )

▶날카롭게 맞서는 형

예를 들면 : “당신이 그를 타도하지 않으면 그는 넘어지지 않아.” “동풍(東風)이 불고 전고(戰鼓)가 울리니 이 세상에 누가 누구를 두려워할쏘냐?” “난 그 계집애와 죽기내기로 부딪쳤다.” “나하고 해보자고? 좋은 끝장이 없을 텐데!” 등이다.

▶스스로 자신을 폄하하는 형(악한 자들은 수비를 공격으로 삼는다)

이런 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혹은 모든 사람)을 하찮게 말하고는 상대방을 공격한다. 이런 전략이 묘한 점은 말하는 사람이 도덕을 낮추면서도 도리어 발언권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세상의 보편적인 도덕 준칙으로 중공을 비판할 때면 중공은 흔히 다음과 같이 변명한다. “계급사회에서는 도덕이 통치계급을 위해 봉사한다.” 그 숨겨진 뜻은, “자본주의 국가의 도덕, 인권, 종교 신앙, 신문자유는 모두 “허위적”인 것으로 “자산계급”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모두 허위적인 이상 중공의 이른바 “사회주의 도덕”, “중국 특색의 신문 자유”가 모두 공산당 통치를 위해 봉사한다는 것도 탓할 바가 못된다.”

또 한 가지 예는 “내가 깡패인데 누구를 두려워할쏘냐?”이다.

▶너 죽고 나 죽기 형

공산당의 투쟁철학이 극한에까지 발전한 후 일종 “죽을 물고기가 그물을 뚫고” “함께 멸망하자”는 병태적 심리가 생겨났다.

예 1 : “원자탄(전쟁)은 아직 경험이 없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지 모른다. 가장 좋기는 절반이 남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3분의 1이 남으면 29억 인구 중에서 9억이 남는다. 몇 차례 5개년 계획으로 발전하는 것과 자본주의를 전부 소멸시키는 것을 맞바꿔 영원한 평화를 얻는다면 이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마오쩌둥)

예 2 : “어쨌든, 우리 중국 공산당은 역사 무대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차라리 이 전 세계, 심지어 전체 지구가 우리 당과 생사를 같이 하더라도 역사 무대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무슨 ‘핵굴레’라는 이론이 있지 않는가? 바로 핵무기가 전 세계의 안전을 한데로 묶어놓아 죽으면 모두 함께 죽어야 한다는 이론이다. 나는 사실상 다른 한 종류의 굴레가 또 있는 것을 보았는데, 우리 당의 운명과 전 세계의 운명은 함께 묶여있기에 우리 공산당이 끝장나면 중국은 끝장이고 세계도 끝장난다. (츠하오톈 《전쟁은 멀지 않고 그것은 중화 세기의 산파이다》 중에서)

이 외에도 “내가 잘 살지 못하면 너도 잘 살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내가 죽으면 너도 살지 못하게 할 것이다” 등이 있다.

▶쪽박을 부수는 형

이런 투쟁적인 언어는 지극히 비이성적이며 자신을 괴롭히는 심태를 나타낸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맹목적인 투쟁’ 의식의 지배를 받아 견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견지하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착오적이며 의의가 없든지 상관하지 않으며 벽에 머리를 부딪치지 않는 한 돌아서지 않고, 관을 보지 않으면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이리하여 표현되는 것은 지극히 비이성적이며 자신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태도이다.

예 1 : “아무리 큰 곤란이 있다 해도 두려울 게 무언가. 봉쇄하라, 십년이고 팔년이고 봉쇄하는 사이에 중국의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될 것이다. 중국인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그래 곤란을 두려워하겠는가?” (마오쩌둥)

이 외에도 많은 예가 있다. “난 원래 이래.”, “당신이 날 어쩔 수 있겠는가?” 등이다.

위의 이런 예들을 통해 우리는 비록 공산당 통치전략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말하는 방식에 각기 다른 면모가 나타나긴 했지만 그러나 그 속에 들어 있는 ‘투쟁의식’은 줄곧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강조할 것은 진솔한 언어 속에는 투쟁의식이 없다는 점이다. 속담에 “충고하는 말은 듣기 거북하지만 행동에는 이롭다”는 말이 있듯이 선의적인 언어는 처음 들을 때는 귀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문제의 관건은 사람들이 말할 때 선량한 태도로 말하는가 아니면 기회를 보아 타도하고 도발하며, 아무렇게나 남을 공격하며 남을 깎아내리고 자신을 높이려고 하는가에 달렸다.

(3) 투쟁적인 언어가 초래한 나쁜 결과

투쟁적인 언어는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중국 속담에 “말은 마음을 열게 하는 열쇠”라는 말이 있다. 투쟁의식이 가득 찬 언어는 사람의 마음에 심각한 상처를 줄 수 있으며, 사람 사이의 관계에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언어는 마음을 열게 하는 열쇠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풀지 못할 많은 매듭을 맺게 한다. 2006년 북경에서 발표된 한 연구 보고를 보면 교원의 폭력적인 언어사용은 보편적인 일이라고 한다. 조사 학생들 72%가 선생님이 사용한 비문명적인 언어가 학생들에게 심리적인 상처를 조성했다고 표시했다. 또 다른 보고는 81.45%에 달하는 초등학생들이 학교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언어폭력’을 꼽았다.

언어폭력은 일정한 때에 이르면 행동의 폭력으로 넘어가기 쉽다. 왜냐하면 말싸움은 사람 사이에 없었던 다툼을 있게 만들며, 작은 문제를 큰 문제로 만들기 때문이다. 2005년, 북경의 한 경찰이 산시(山西) 타이위안(太原)에 갔다가 신호등 앞에서 타이위안의 경찰과 몇 마디 말다툼을 했다. 이 타이위안 경찰은 화를 가라앉힐 수 없어 사람들을 데려와 북경의 경찰을 때려 죽였다. 산둥(山東) 지닝(濟寧)시의 14살 난 소년이 단지 한 네티즌의 아이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터넷으로 욕지거리를 했다. 나중에 상대방은 여자 아이디를 이용해 그와 채팅하는 가운데 인터넷 접속장소를 찾아낸 후 그를 찾아가 칼로 찔러 죽였다.

투쟁적인 언어는 사람들을 투쟁철학의 시각에서 문제를 대하도록 유도한다. 언어는 사유의 도구로써 습관적인 투쟁의식을 지닌 언어는 사람들을 유도하여 ‘투쟁’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게 한다. 이는 마치 한 사람이 원래 대패로 목수 일을 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도끼밖에 찾을 수 없자 나무를 팰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오늘날 중국 사회에서 사람 사이의 아귀다툼은 언어 속에 잠재한 투쟁의식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를 들면 지도자는 부하직원을 마음대로 부리면서 툭하면 “내가 당신을 다스리지 못할 것 같아?”라고 한다. 부하직원은 불복하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너 따위가 날 어쩔 수 있겠어?” 뒤따라오는 것은 서로간의 싸움이다.

“만약 아직도 파룬궁을 수련하겠다고 하면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게 만들어주마.” : 중공의 사주를 받은 정신병원에서 멀쩡한 파룬궁 수련생들을 감금하고 신경을 파괴하는 약물을 대량으로 투입하는 장면 | 에포크타임스

정치와 외교의 장에서 이런 투쟁의식은 더욱 뚜렷하게 반영되며 결과도 더욱 나쁘다. 2003년 5월 19일 세계보건기구 회의장 밖에서 대만 매체가 질문했다. “당신은 2천만 대만 사람들(대만은 당시 세계보건기구에 가입했다)의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들었습니까?” 그러자 유엔 주재 중국 대표 사쭈캉(沙祖康)은 경멸하는 투로 대답했다. “진즉에 거절했다!” 아울러 오만한 어투로 말했다. “누가 당신들을 거들떠볼 줄 아는가!” 이 사쭈캉은 또 왜 파룬궁 수련생들을 정신병원에 수감하고 신경을 파괴하는 주사를 놓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조금도 서슴없이 “그들은 당해도 싸다.”라고 대답했다.

‘홍위병 외무부장’으로 불리는 리자오싱(李肇星)은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할 때 무지막지하고 무례하기로 소문이 났다. 한 번은 한 서양 기자가 덩샤오핑의 건강 상황을 묻자 ”그분은 아주 건강합니다.”라고 했다. 기자가 또 물었다. ”덩샤오핑이 건강하다면 집에 있나요, 아니면 병원에 있나요?” 그러자 리자오싱이 대답했다.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신체가 건강한 사람이 마땅히 어디에 살아야 할지 알고 있다. 당신은 신체가 건강할 때도 병원에 입원하는가.” 기자의 질문은 무슨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며 완전히 긍정적으로 외교적인 답변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리자오싱 부장의 투쟁의식은 뿌리가 깊어 아무 때건 나타날 수 있었다. 또 예를 든다면 덩샤오핑이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기관총 하나면 즉시 해결할 수 있다.”라고 했다. 장쩌민은 “나는 공산당이 파룬궁을 싸워 이기지 못하리라고는 믿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 모두는 공산당의 투쟁, 폭력, 탄압하는 습관적인 사유가 언어로 반영된 것이다.

투쟁적인 언어 습관은 사람으로 하여금 평온한 마음으로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며 이성적이고 공평하게 문제를 탐구할 수 없게 하여 토론할 때 오직 상대방을 말로 압도할 것만 추구하게 만들어 남의 권고를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잘못을 알아도 고칠 만한 아량은 더욱 없다.

투쟁적인 언어방식이 일단 시작되기만 하면 필연적으로 그침 없이 악화되게 마련이다. 마치 사람들이 냄새가 지독한 음식을 늘 먹으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입맛도 점점 나쁘게 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장기간 강렬한 언어를 쓰면 사람들은 이 언어에 힘이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되어 필연적으로 더 자극적인 언어를 찾는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욱 마비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

(4) 투쟁의식을 제거하고 언어를 순화하자

솔직하고 선량하며 너그럽고 자신감 있는 사람은 걸핏하면 때리고 죽이라고 하지 않을 것이며, 더구나 말로 상대방을 압도하거나 심한 말이나 이치가 삐뚤어진 말을 하거나 온갖 수단을 이용해 말로 남을 궁지에 몰아 상대방의 처지를 어렵게 만들고 그 속에서 심리적인 만족을 얻지는 않을 것이다. 투쟁적인 언어의 배후에는 중공 투쟁철학이 조성한 과대망상과 자기 비하가 한데 섞인 일종의 왜곡된 심태와 기형적인 인격이 있다.

정상적인 사회에서 사람들은 동등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예절 바르게 대하며, 자신보다 약하거나 불행한 사람을 대할 때면 가급적 말투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하며, 부부 사이에도 손님을 대하듯 서로 존중하며 어린이를 교육할 때면 차근차근 잘 타일러 가르치고, 이치를 말할 때면 사실에 따라 말해야 하며 냉정하고 이지적이며 잘못을 했으면 솔직하게 승인한다. 군자의 풍모 뒤에는 평화적이고 자신감에 넘치며, 사람을 선량하게 대하는 건강한 심태가 있다.

언어속의 투쟁의식을 깨끗이 제거하는 것은 언어적인 노력에만 의지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당문화의 투쟁사유를 개변할 것이 필요하다.

2) 당을 떠나지 못하는 창작 내용 

일찍이 옌안 시기에 중공은 문예창작을 위한 기조를 정했다. 바로 문예는 정치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공은 정권을 건립한 후 여전히 이 “문예의 지도방침”을 신봉해 왔다. 중공에는 선전부가 있어 그것의 “문예방침”에 대한 강제적인 집행을 보증하고 있는데 이는 문예창작의 내용에서 당의 요구를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중공 중앙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매년 개최하는 춘절(春節) 갈라에는 전국적으로 가장 우수한 배우와 예술가, 창작팀이 집중되며, 수백 개에 달하는 전국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중계방송 할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해외에 까지 마수를 뻗친다. 매년 춘절 갈라는 바로 지난 일 년 동안의 정치, 사회와 예술창작의 축소판으로 당문화가 집중적으로 두드러지게 표현되는 것이라 할 만하다. 21세기 “춘절 갈라”에 이르러서는 아예 중공 통치의 암흑에 대해서는 털끝 만한 풍자도 하지 못하게 하고 주제를 미리 정하여 전문적으로 “춘절갈라”를 위한 전용 가사를 썼다. “좋은 나날”, “점점 더 좋아지네”, “5복(五福)이 문 앞에 왔네”, “갈라의 즐거움”, “태평성세의 대 친목회” 등으로 공산당의 축제로 민족의 기쁨을 대체했고, 당문화로 전통문화를 단속했다. 백성들의 고통, 민족의 위기는 곳곳에 자욱한 짙은 정치 분위기 속에서 증발되어 버렸다.

평으로 야기된 탈당열조 속에 곧 붕괴될 위기에 처한 중공이 당문화를 이용해 형세가 좋다는 가상을 만들고 있다. | 에포크타임스

“당”이 문예작품의 기조를 엄격히 규정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요구와 규정을 준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작품이 봉쇄당할 것이다.

중국 각지에는 곡조가 아름다운 민요들이 아주 많으며 줄곧 민간에서 전해져왔다. 그러나 민요의 내용은 대개 애정을 위주로 한 것이다. 비록 어떤 것은 고향 산천을 노래한 것이긴 하지만 그러나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중공의 문예는 정치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기조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때문에 1980년대 이전에 이런 가곡들은 원래 대부분 중공이 허락하는 범위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민요들을 당문화에 독해된 예술계 인사들이 직접 훔쳐다가 당의 공덕을 노래하는 데 이용하거나 혹은 당문화의 요구에 따라 고쳐서 정치적인 내용을 부여한 “재창작”이 되어 거짓에 미혹된 민중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중공도 새롭게 고친 “민요”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를 테면, 산베이(陝北) 민요에서 탈바꿈해 나온 “동방홍”, “번신도정(?身道情)”, “산단 단화 붉게 피었네”, 몽골민요에서 나온 “초원에 지지 않는 태양이 솟네”, “나는 말을 타고 초원을 지나네”, 티베트족 민요에서 나온 “북경의 금산위에서”, ” 마오 주석께 하다를 드리네”, 허저(赫哲)족 민요에서 유래한 “우쑤리강 뱃노래” 하니(哈尼)족 민요에서 유래한 “아보(阿波) 마오 주석” 등이다. 이런 가곡들이 “재창작”을 거쳐 민간으로 전해간 후 사람들에게 마치 각 민족 민중들이 모두 열광적으로 중공이나 그 당두목을 옹호하는 것과 같은 일종의 가상을 준다. 그런데 중공은 파렴치하게도 민족 음악에 달라붙은 이런 부체(附體) 작품을 “민족 음악을 발전”시킨 이른바 “공헌”이라고 떠들어 댄다 .

2005년 후난(湖南) 유선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제작한 “슈퍼 여자가수(超級女聲)” 프로그램은 전국을 풍미하여 젊은 사람들의 폭넓은 환영을 받았다. 이 프로의 인기는 중공의 가장 중요 매체인 중앙 텔레비전 방송국을 직접적으로 위협했다. 그리하여 순 오락적인 이 프로그램은 곧 매체의 비난을 받기 시작했고, 도처에서 모두 없애라는 함성이 들려왔다. 금년에는 이 프로그램에서 주최측이 특별히 당의 찬가를 불러 인기가 올라간 소위 “원로 예술가”를 초청하여 시합에서 일등을 차지한 가수와 함께 “공산당 경전” 가곡 “말아, 너 좀 천천히 걸어다오”, “산 노래를 친인에게 드리네” 등을 불렀고, 아울러 “원로 예술가”에게 젊은이들을 가르쳐 주길 청했다. 당을 떠나지 못하는 이런 “창조적인 구상”은 상당부분 중공이 유지하고 있는 기조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승인하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창작 내용에서 당의 사유습관을 벗어나지 못하는 또 하나의 표현은 당이 부정하는 것이면 따라서 부정하는 것에서 표현된다. 신불(神佛)에 대한 신앙이 봉건 미신으로 부정되었고, 전통문화는 독재와 전제(專制)의 동의어가 되었으며, 중공 이전의 역사인물들은 반드시 “역사적 제한” 속에 존재해야 하며, “봉건”이란 한 마디로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충효인의(忠孝仁義) 등의 전통미덕, 제왕장상(帝王將相), 재자가인(才子佳人), 성현충양(聖賢忠良) 등 인물들을 별책에 몰아넣었다. 십년 문화혁명의 파괴는 “4인방”의 착오로 귀결되었고 몇천 만 명이 굶어죽은 인위적인 기근은 3년 “자연재해”로 변했으며 “6.4” 학살은 정부의 행위가 이해할 만한 것으로 학생들에게 큰 책임이 있다고 한다. 파룬궁에 대한 비방은 천지를 뒤덮을 지경이다. 중공과 견해가 다른 정당이나 단체에 폄하하는 색채를 띠지 않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중공의 말을 들으면 애국이고 중공을 비평하면 반(反) 중국이 된다. 중공에 의해 부정된 이런 대상들은 대개 예술 작품에서 비판받고, 추악하게 표현되며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형상으로 왜곡된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생활 가운데 중공의 어두운 면과 중공의 공격대상은 창작의 금지지역이 되어 사람들은 멀리 피한다. 중공의 금지지역을 우연하게 건드린(이를테면 민주, 헌정, 인권 등의 화제) 기자, 작가는 분분히 체포되기에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단속한다. 간혹 민감한 화제가 제기되긴 하지만 역시 진실한 면모와는 거리가 멀고 중공의 “휘황한 형상”에는 별로 영향이 없으며, 중공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창작범위가 아주 넓어 작품도 매우 풍부해졌다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 몇 년래 정보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문예창작에 참여하는 민중이 점점 더 많아지고 창작의 제재도 더욱 넓어졌거니와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창작 주제들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이른바 음란한 성(性) 문학이 횡행하는 것이다. 이는 민중들의 창작이 완전히 자유롭고 당을 벗어났기 때문이 결코 아니고 도리어 사람들은 이런 주제가 중공의 이데올로기에 위협을 주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비로소 거리낌 없게 된 것이다. 중공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당의 금지구역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튼튼히 박혀있기 때문이다. 금지구역을 에돌아 공을 치는 것은 습관적인 창작 사유의 일부분으로 이는 사실 중공이 제정한 창작 규칙에 대한 복종을 대표한다.

3) 당을 떠나지 못하는 창작 사유 과정 

문예창작에 대한 당문화의 가장 큰 영향은 사람들의 사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유행하는 많은 사극 가운데 고대 궁중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는 전부 서로 물고 뜯는 것으로 관료 사회는 예전부터 그래왔고 모두 검은 것으로 표현된다. 이런 창작 사유는 당문화 역사관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결과이며, 전통 관념을 말살하고 현대인의 관념으로 옛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몇천 년 동안의 전통 중국사회를 온통 암흑으로, 사람마다 서로 투쟁하고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사회로 묘사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중공의 “광명”을 돌출시키려는 것이다. 부패는 고금중외에 걸쳐 관리사회의 일반적인 폐해라는 것으로 중공의 부패를 희석시키려는 것이며, 중국인들을 기만하여 중공 악정(?政)의 원인을 전통 문화에 귀결시키려는 것이다.

실화문학작품을 창작함에는 흔히 이런 형식이 있다. 만약 천재인화가 발생하면, 이를테면 본 절의 첫 부분에 든 예처럼 당이 어떻게 인민에게 관심을 가졌는가를 말해야 한다. 만약 관리라면 곧 어떻게 당의 지도하에 인민을 위해 봉사했는가, 이를테면 《쿵판선》 따위를 쓴다. 만약 관리가 제멋대로 나쁜 짓을 했다면 마지막에는 당이 최종적으로 정의를 유지한다. 만약 정책이 잘못된 것이면 끝내 당이 어떠어떠하게 착오를 시정한다. 만약 어두운 면이 있다면 관리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며 최후엔 여전히 당의 “위대하고 광명하며 정확함”을 부각시킨다. 경제방면의 어떤 성과이든 기필코 당의 “영명한 정책”의 인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떠한 기업의 발전이든 반드시 당과 정부의 “간절한 배려”를 떠날 수 없다. 교육, 과학기술상의 어떠한 성과든지 “당중앙”의 “정확한 영도”와 “친절한 배려”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인재가 나오거나, 개인이 어떤 성과를 올려도 기필코 당의 “배양”을 벗어나지 못한다. 군대는 더욱 “승리는 당의 지도를 떠날 수 없다.” 샤강(下? 사실은 실업)한 노동자마저 약간이라도 상황이 개선되면 역시 당의 “배려와 지지”를 떠날 수 없다. 종교마저도 “모든 성과는 전부 당과 정부의 지도, 배려와 지지를 떠날 수 없으며 오직 당의 지도를 옹호하고 사회주의의 길을 걸어야만 광명한 전도가 있다.”는 등이다.

중공의 부패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으며 민중들의 원망은 발설할 곳이 없다. 최근 들어 “반(反)부패 영화”들이 민중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전형적인 것들로는 이를테면 《생사 선택》, 《신중국 가장 큰 안건》 등이다. 사실 이런 작품과 “문화혁명”이 막 끝났을 시기의 상흔(傷痕)문학이나 상응하는 영화들 이를테면 《천운산 전기》, 《수갑을 찬 여객》, 《해외 동포》 등과 같이, 그들이 어떻게 주제를 발굴하든지, 역사와 현실에 대해 어떻게 사고하고, 어떻게 일부 사상의 금지구역를 돌파하려 시도하든지, 어떻게 사람의 생존상태에 관심을 갖고 예술의 표현형식을 확장하든지 간에 모두 당문화의 사유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작품의 결말은 또 조직을 믿고 당을 믿으며 당은 잘못을 바로잡을 결심이 있다는 데로 귀결된다. 그러나 중공이 조성한 사회 병폐, 민중의 고난은 두루뭉술하게 “시대의 비극” 탓으로 돌렸고 중공의 죄책(罪責)을 가볍게 했다.

중국 민간에는 “악고(惡?)” 창작이 상당히 유행하였다. 예를 들면 모 공장의 상인은 레이펑(雷鋒)과 마오쩌둥의 어록을 콘돔 박스에 인쇄했다. 보기에는 이것이 몇 년래 중공 당문화 주입에 대한 일종의 배반인 것 같지만, 사실상 여전히 중공이 수립한 우상의 권위에 대한 인정으로 여전히 당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당문화는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오늘날 중국인들의 생활은 일체 방면에서 모두 “당”에 점령되었다. 이는 곧 사람들의 사유가 당문화의 언어요소를 벗어날 수 없게 했으며 이런 요소로 사고하고 표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일부 이른바 특수한 창조적 구상이 있는 광고어 “××를 끝까지 진행하자”, “××를 꼭 실현하고야 말겠다”는 것 역시 창작 사유 과정이 당문화의 언어 요소를 떠나지 못한 예들이다.

1980년대 말부터 시작하여 아주 많은 중국인들은 이른바 “옛노래 다시 부르기”에 몰두하였다. 즉 적나라하게 중공을 찬양하는 이른바 “홍색경전”을 현대악기로 새롭게 연주하거나, 혹은 현대 창법으로 부른다는 의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 것은 순전히 옛날을 회고하기 위해서이며 “위대한 수령에 대한 열애”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떤 학자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1945년 이후 독일 민중들은 히틀러를 노래하는 형식으로 옛날을 그리워했으며, 소련 공산당 제20차 당대표대회 이후 구(舊) 소련 민중들도 2천만 명이 넘는 소련인들을 학살한 스탈린을 찬양하는 가곡을 통해 옛날을 그리워했다. 사람들이 지나간 노래에 열중하는 것은 사실상 당의 유전자가 일찍부터 사람들의 문화세포에 스며들었기 때문인데 사람들은 이것을 자신의 일부분으로 여긴다.

창작 습관이 당의 사유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런 표현은 당문화로 뒤덮인 거대한 사회 환경에 장기적으로 물들었기 때문인데 자각적으로 형성된 습관이 있고 또 장기적인 압력 하에 강요당해 이렇게 된 상황도 있으며, 개인 이익, 정치자본을 긁어모으기 위해 의식적으로 이렇게 한 것도 있다. 또는 당문화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도리어 벗어나지 못하고 창작 사유습관이 비자각적으로 여전히 당을 떠나지 못하는 상황이다(이를테면 “악고” 작품은 여전히 당문화 중에서 맴돌고 있다). 전체적으로 말해서 당은 강제적인 수단을 통해 당문화를 민중이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정신적 양식”이 되게 했으며 한 세대 또 한 세대에 걸쳐 문예 창작자들을 양성했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은 또 되돌아와 대중과 그들 자신에게 영향을 끼쳐 결국에는 당문화를 사람들이 창작하는 사유습관의 고정적인 추세로 되게 했으며 사람들의 창작이 습관적으로 당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여기서 특별히 제기할 것은 문예는 단지 창작 중에서 아주 전형적인 한 방면일 뿐이라는 점이다. 창작이 습관적으로 당의 사유방식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각 업종에 고루 스며들어 있다. 구체적으로 창작한 것은 아마 같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러나 사람들은 당문화의 영향을 받아 소재 선택에서부터 사고, 구체적인 창작에 이르기까지 매 과정마다 모두 당문화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진정으로 자유롭게 창작하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려면 우선 당문화 사유 속에서 뛰쳐나와야 한다.

(판권은 에포크타임스에 있고 전재를 환영하지만 내용을 고칠 순 없습니다.)

중문 :http://www.epochtimes.com/gb/6/11/14/n152063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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