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 당(黨)문화]제3장 주입수단 (하)

2007년 3월 4일 업데이트: 2019년 11월 6일

상편:당문화는 어떻게 건립되었는가 

【당문화 해체】3:주입수단(하) 


< 목 차 >

5. 각종 문예형식을 이용한 당문화 주입 

1)영화를 이용한 당문화 주입 

(1)”영화는 가장 중요한 예술”
(2)주선율(主旋律)과 다양화

2)연극·가무·곡예(曲藝) 등 각종 문예형식을 이용한 당문화 주입

(1) 민족문화에 달라붙어
(2) 8억 인구에 8가지 모범극
(3)낙후된 심미(?美) 습관
(4)이정(移情)작용을 이용
(5)만담·곡예(曲藝)·코메디(小品)의 독특한 작용
(6)강렬한 격정과 전투성이 스며든 중공 문예작품

결론 


5. 각종 문예형식을 이용한 당문화 주입 

공산당은 문예란 상부구조의 일부분으로 오직 통치계급의 이익을 위해서만 복무한다고 여긴다. 중공이 정권을 탈취한 후 경제적으로 문예단체를 국유로 귀속시키고, 조직에서 문예계 인사들을 “체제 내 인사”로 개변시켰다. 아울러 그들의 사상개조를 실행해 문예창작에서 간곡하며 엄밀하게 통제했다. 이로써 짧은 시간 내에 모든 문예형식, 예를 들어 영화, 연극, 가무, 곡예 등을 모두 국가기구의 일부분이자 당문화(黨文化)를 주입하는 도구로 변화시켰다.

1)영화를 이용한 당문화(黨文化) 주입 

(1)”영화는 가장 중요한 예술”

20세기 초, 흥성하기 시작한 영화는 일종 완전히 새로운 예술과 오락형식으로 전통예술형식과 비교했을 때 아주 큰 우세를 보여 신속하게 사회에 보급되었다. 후각이 예민한 공산당은 아주 일찍부터 영화에 주의를 기울였다. 레닌은 “영화는 군중들을 교육시키는 가장 강력한 도구의 하나이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모든 예술 중에서 영화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1949년 8월 중공 선전부는 《영화사업 강화에 관한 결정》을 발표했다. 그 중에서 “영화 예술은 가장 광대한 군중성과 가장 광대한 선전 효과가 있으므로 반드시 이 사업을 강화하여 전국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우리 당과 신민주주의 혁명과 건설 사업을 선전하는 더욱 힘 있는 사업이 되도록 해야 한다.”라고 했다.

1951년 중공이 정권을 탈취한 후 행한 최초의 사상개조 운동은 영화 《우쉰전(武??)》을 비판하면서 시작되었다. 마오쩌둥은 직접 칼을 들고 《우쉰전(武??)》을 대대적으로 비판했다. 마오쩌둥의 이런 행동은 앞으로 중공의 역대 당 두목들이 모두 영화라는 이 예술 형식을 각별히 중시하게 될 것을 예시했다. 1953년 영화산업에 대한 “사회주의 개조”를 전부 완성했다. 이것은 다른 민족공업에 대한 개조보다도 더 일렀다. 소련 전문가들의 도움 하에 중공은 제1차 5개년 계획에 영화제작을 넣어 영화에 대한 행정명령식 관리를 시행했다.

1949년에서 1966년 사이 중공은 총 700여 편의 영화를 제작해 “역사가 중공을 선택했다.”는 거짓말을 전면적으로 날조하고 중공의 각 시기의 정책을 해설했으며, 당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키고 전통문화와 전통인물을 폄하했다. 이 시기의 대표작들로는 《백모녀(白毛女)》, 《강철전사(鋼鐵戰士)》, 《남정북전(南征北戰)》, 《청춘의 노래(?春之歌)》, 《홍기보(紅旗譜)》, 《지뢰전(地雷戰)》, 《지도전(地道戰)》, 《이쌍쌍(李雙雙)》, 《붉은 태양(紅日)》, 《소병장가(小兵張?)》, 《영웅자녀(英雄兒女)》, 《들불과 봄바람이 옛 도시와 싸우다 (野火春風鬪古城)》, 《네온 싸인 아래의 보초병(霓虹?下的哨兵)》 등이다.

이들 영화 속에서 중공 지도자, 중공의 소위 “영웅모범인물”, 심지어 음침하고 행실이 천박한 중공 특무마저도 찬양 대상이 되었다. 영화라는 이런 매체 형식은 중공으로 하여금 “진짜처럼 날조”할 수 있게 했으며 멋진 남·여 배우, 시적인 정취와 그림 같은 정취, 로맨틱하거나 혹은 서사시 같은 줄거리 설정은 최대한도로 당 대표인물을 부각시키는 역할에 도달했다.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예술작품 속의 인물 형상이 더욱 “본질”적이고 더욱 보편성을 지녔으며 더욱 “당”을 대표할 자격이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들이 본 것이 단지 “당”의 가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몰랐을 뿐이다.

겉으로는 중화민국 정부에 충성을 떠들면서 뒤로는 중공 중앙 특무과에 정보를 제공하는 중공 특무 | 에포크타임스

1949년 이전에 영화는 도시 예술이었다. 영화의 선전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중공은 행정구역 단위로 영화 상영을 실행했다. 체계적으로 영화 상영팀을 구성해 선전의 촉각을 농촌과 탄광에까지 뻗쳤다. 1949년 중국 전체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곳은 646개였지만, 1957년에 이르러서는 9965개로 증가했다. 그 중 영화관이 1030개였으며 영화 상영팀이 6692개였다. 노동조합 상영팀은 1954년 1년간 11만 4000여 차례나 상영했으며 관람객 수는 1억1천만 명에 이르렀다. 이런 영화 상영팀은 줄곧 80년대 중반까지 활약했으며 당문화를 보급하는데 극히 큰 작용을 일으켰다.

문화 대혁명이 시작된 후, 90% 이상의 “17년”(1949년-1966년) 영화들을 독초(毒草)로 비판했고 문예영역은 모범극의 천하가 되었다. 1979년에 이르러서는 “17년” 영화들의 상영금지를 풀어줌으로써 그 해 전 국민의 평균 영화 관람 횟수가 28차례나 되어 전국의 총 영화 관람객수가 293억에 달했다. 이런 현상은 사실 중공의 통치책략을 반영한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인민들의 모든 것을 박탈하여 오직 경제 상황이 조금만 호전되어도 중공에게 감지덕지 하게 만들었으며, 문예영역에서도 인민들의 모든 것을 박탈한 후 사람들은 당문화를 주입하는 선전 작품을 가뭄에 단비처럼 여기게 되었다.

매스컴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한 가지 매체가 사람의 여러 가지 감각을 만족시킬수록 더욱 쉽게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영화는 문학·음악·미술·공연 등을 종합한 예술로서 사람의 각종 감각기관을 전면적으로 자극하는 매우 강력한 선전 형식이다. 중공이 영화 속에서 만들어 낸 당의 대표 인물들, 그들의 억양, 얼굴 표정, 바디 랭귀지 등은 사람들, 청소년들이 모방하는 대상이 되었다. 예를 들어 마오쩌둥이 지도를 앞에 두고 “지휘하는 모습”, 소련 영화에 나오는 레닌의 연설동작 등이다. 많은 영화 속 어휘들이 사람들의 일상 언어 속으로 들어왔다. 《영웅자녀(英雄兒女)》 중 왕청(王成)의 대사 “승리를 위해 나에게 대포를 쏴라.”는 말은 오늘날까지도 유행하고 있다. 영화는 이렇게 “조용한 변화” 방식으로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양식을 개조하며 그 효과는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

중공의 영화에 대한 중시는 문학을 초월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더 심해졌다. 1989년 이후 중공은 이데올로기를 더욱 조여 1990년부터 1992년도 사이에 영화에서는 뚜렷한 “주선율(主旋律)”의 고조가 나타났다.

(2)주선율(主旋律)과 다양화

80년대 이래, 중공의 경제 개혁에 따라 영화계에도 기업식 관리와 경쟁방식을 도입하고자 시도했다. 현재 중공이 대륙에서 상영하는 국산 영화 중 약 25%는 소위 “주선율(主旋律)” 영화고, 70%는 오락영화이며 5%는 예술영화이다. 하지만 영화의 선전기능은 결코 약화되지 않았고 단지 더 복잡하고 정교한 형식을 취했을 뿐이다.

우선 주선율 영화는 여전히 당문화(黨文化)를 주입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중공은 정책적으로 주선율 영화에 대한 높은 투자, 대규모 제작, 최고 당정(黨政)기관에서 서류 발행, 각급 조직의 관람을 보장한다. 영화《대결전(大??)》에는 수천 만 위안을 투자했으며 촬영장소가 13개 성(省)에 이르며 촬영에 참여한 군중만 해도 15만이 넘어 이 영화에 대한 중공의 중시 정도를 엿볼 수 있다. 중공 중앙선전부, 조직부, 국가교육위원회, 라디오영화TV부, 문화부, 전국노조, 전국부녀연합회, 공청단(共靑團) 중앙 등 기관에서는 주선율 영화의 상영에 대한 연합통지를 내보내 각 급 기관에서 단체관람을 요구했다. 영화 《개국 대전(開國大典)》, 《초유록(焦裕?)》, 《마오쩌둥과 그의 아들》을 관람한 관객의 숫자는 모두 대단히 많다.

그 다음, 주선율 영화는 하이테크화, 정교화, 인정화(人情化)로 발전하였다. 80년대 이후 문호를 개방하면서 관객들의 식별능력도 높아져 예전처럼 중공의 적나라하게 날조된 거짓말이 더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중공의 어용 영화인들은 관객의 심리를 연구하여 일련의 복잡한 주선율 책략을 발전시켰다. 소위 “혁명역사 소재”의 영화 속에 창작자는 의도적으로 거짓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역사에 대한 경향적인 진술을 마치 객관적인 역사인 것처럼 둔갑시켰다. 전쟁 영화 속에서는 큰 장면의 표현을 중시하여 진짜 같은 전쟁의 환상으로 관객의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여 역사인지, 서사인지 분별하지 못하게 했다. 영화 속에서 “혁명지도자”는 생동감 있게 표현하여 그들의 가족애, 애정, 우정 등을 보여줌으로써 관객과 거리를 좁혔다. “당의 적”도 예전의 영화처럼 무능한 모습이 아닌 일정한 재능과 인격이 높은 사람으로 표현했다. 그럼에도 역사의 대결 속에서 중공에 패배함으로써 중공 지도자가 그들보다 더 높다는 것을 부각시켰다.

《장쩌민 그 사람》중에 중공의 주선율 영화수법의 정교함을 증명할 수 있는 한 가지 기록이 있다. 장쩌민이 일찍이 영화 《개국 대전》을 초청받아 관람한 적이 있다. 영화 속의 일부 장면들이 그의 호기심을 유발했다. 왜냐하면 그 장면들이 보기에는 극히 진귀한 다큐멘터리 같았기 때문이다. 장쩌민은 감독에게 그런 장면들을 어디에서 찾아냈냐고 물었다. 감독은 “그런 장면들은 전혀 찾아낸 것이 아니라 방금 촬영한 것입니다. 기술적으로 특수한 처리를 하면 다큐멘터리처럼 보입니다.”라고 했다. 장쩌민은 이 말을 듣고 매우 만족해하면서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진짜와 가짜를 뒤섞어 놓으니 나마저도 속아 넘어갔다.”고 말했다.

에포크타임스 시리즈 사설 《장쩌민 그 사람》| 에포크타임스

중공의 경전(經典) 선전영화의 기본 바탕은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정확한 것으로 인물의 형상은 모든 것을 갖춘 훌륭한 사람이다. 하지만 중공이 역사에서 저지른 죄악들이 갈수록 많이 폭로됨에 따라 또 현실적으로 여러 차례 곤경에 처하면서 중공은 각기 다른 선전 책략을 취해 자신을 변호해야만 했다. 일부 영화 속에서 중공지도자가 비록 숭고한 인격을 갖추었지만 무정하고 필연적인 역사의 흐름 앞에서 어쩔 수 없는 비극적인 인물을 만들어 관객들이 그들이 역사상에서 범한 죄를 용서하게끔 이끌어 내는 동시에 관객들로 하여금 보통사람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여 현존 사회질서에 더 만족하게 한다.

그 밖에 광범하게 채용하는 수단은 “선정(煽情)”이다. 영화 《덩샤오핑(鄧小平)》의 감독은 “우리는 반드시 덩샤오핑의 위대한 혁명 사업을 거대한 감정의 파문으로 변화시켜 일체 이성적인 사건을 감성적인 정서로 변화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영화 《초유록(焦裕?)》, 《공번삼(孔繁森)》에는 많은 군중들이 장례식에 참여 하는 장면이 있는데 스크린에 나오는 군중들의 애도는 극장에 있는 관객들을 감동시켜 관객들로 하여금 주인공의 “고상한 도덕”에 감동된 나머지 그들이 대표하는 “당의 형상”을 인정하게 한다.

세 번째, 오락영화도 마찬가지로 당문화를 주입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영화통신(電影通訊)》 1991년 제5기 평론 문장에서 “일종의 창작 정신으로서 그것(주선율)은 양적인 개념이 아니고 다수 작품과 소수 작품의 관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이 소재와 저 소재의 관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창작이든 배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체 작품의 창작을 지도하는데 침투할 것을 요구한다.”라고 했다.

일부 영화는 오락적인 겉포장 때문에 그 속의 당문화는 매우 잘 은폐되어 있다. 관객들은 역사전기, 사랑이야기, 혹은 시각적인 기이한 광경에 감탄하면서 부지불식간에 당문화의 관념과 흥취를 주입 당한다. 영화 《영웅(英雄)》은 2억 5천만 위안(약 200억 원에 해당)을 들여 아름답기 그지없는 영화언어로 독재 권력과 폭력정복을 찬양했다. 그리고 《예쁜 엄마(漂亮??)》에서는 실직자의 비참한 처지를 신체적인 원인(여 주인공의 아들이 청각장애) 탓으로 돌려 간접적으로 중공의 정책 잘못으로 인한 도시 근로자들의 심각한 실업 사실을 은폐했다. 더 많은 영화들은 이야기를 날조하여 중공 대신 민족주의를 선동한다.

네 번째, 중공은 영화를 이용하여 전통문화와 전통인물을 낮게 평가했다. 장기간 당문화의 선전과 주입으로 인해 대다수 중국인들은 이미 원래의 전통문화와 전통사회의 모습을 모르고 있다. 80년대 이후 많은 영화인들이 비록 당문화에 반항하려고 시도했으나 그들 자체도 이미 공산당 통치하에서 자랐기 때문에 단지 당문화의 논리로 전통사회의 진실한 모습을 추리할 뿐이었다. 그래서 많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전통 중국 사회는 봉폐되고 억압적이며 야만스럽게 표현되어 마치 중공이 통치한 후에 사회가 진보하고 개화된 것보다 못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사실 이 역시 진화론의 논리에 따라 추리한 것으로 다른 일종의 방식으로 당문화를 반복한 것이다.

다섯 번째,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는 당문화는 이미 영화의 심미품격의 요소가 되어 일체 영화, TV작품 속에 침투하였고, 옛 향수를 그리워하는 관객들의 정서를 이용하여 사람 마음에 대한 당문화의 질곡을 공고히 한다.

다른 예술 형식과 비교할 때 영화는 자신만의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문학·미술·음악은 무엇을 표현하고, 하지 않고는 아주 많은 자유공간이 있다. 하지만 영화는 반드시 전면적으로 이야기가 발생하는 시기의 물질 환경을 표현해야 한다. 그래서 영화의 배경과 소품들은 전부 다 세심하게 만들어 이야기가 발생한 시대의 전형적인 환경을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문화대혁명 시기의 환경을 표현하려면 마오쩌둥의 사진, 대자보, 녹색 군복, 홍보서(紅寶書, 즉 마오쩌둥의 어록이나 선집) 등이 있어야 한다. 1949년 이후 중국은 공산당의 천하다. 만약 이 한 시기의 전형적인 환경을 표현하려면 당문화 색채가 농후한 물품, 소리와 장면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장면들은 흔히 관객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데 관객으로 하여금 그 시대에 비록 많은 단점이 있긴 했지만 필경 자신들이 노력했다고 느끼게 하여 푸시킨이 말한 것처럼 “지나간 것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된다.” 지나간 세월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황당무계하든지 막론하고 사람들은 그때는 그래도 젊었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되돌아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낭만적인 느낌이 드는 것이다.

설교적인 의미로 가득 찬 영화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반감을 초래한다. 그래서 이런 “하는 김에 조금 더 곁들이는” 방식이 영화·TV 작품 속에서 객관적으로 중공을 도와 당문화를 주입하는 주요 형식중 하나가 되었다. 사람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들은 흔히 영화가 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배경이다. 오로지 이렇게 해야만 이런 부호들이 지닌 정보가 비로소 사람들의 경계 심리를 불러일으키지 않고 순조롭게 관객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영화(《격정이 타오르는 세월(激情燃燒的歲月)》), 가무(歌舞), 문학, 패션, 심지어 광고(전에 북경 중관촌에 거대한 광고가 하나 있었는데 문화대혁명 선전화의 특징을 모방해서 “Internet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여행(“붉은 색 여행”) 등등 모두 이런 “향수를 그립게” 만드는 거대한 합주곡이다. 사실은 모두 중공을 도와 중국인들의 마음의 대한 당문화의 질곡(桎梏)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다.

2)연극·가무·곡예(曲藝) 등 각종 문예형식을 이용한 당문화 주입 

중공의 문예선전 형식은 대개 소련에서 억지로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당문화를 주입할 대상은 모든 중국인이었기 때문에 중공은 반드시 일체 민족 문화 자원을 이용해 서로 다른 군중들의 구미에 맞춰 주입 효과를 최대화해야 했다. 가무, 경극(京劇), 화극(話劇), 평극(評劇), 예극(豫劇), 여극(?劇), 월극(越劇), 월극(?劇), 진강(秦腔), 앙가(秧歌), 황매희(?梅?), 화고희(花鼓?), 이인전(二人轉), 경운대고(京?大鼓), 하북방자(河北?子), 산동쾌서(山東快書), 상성(相聲), 평서(評書) 등, 중공이 도용하지 않은 것이 없다. 당문화는 이런 전통 문예형식을 이용했으며 그 여독은 넓고도 깊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관련된 몇 가지만 중점적으로 연구 토론해 보고자 한다.

(1) 민족문화에 달라붙어(附體)

기왕 중공이 인민들에게 이렇게 많은 재난을 안겨 주었다면 왜 그렇게 많은 “민요”에서 공산당을 칭송하고 마오쩌둥을 칭송하는가? 이것은 중공이 민심을 얻은 표현이 아닌가? 사실 그렇지 않다.

“참기름, 배추 속, 콩깍지를 먹으려면 실을 빼야 하네. 삼일을 보지 않으면 보고 싶어 죽겠네. 후얼하이요(呼???), 아 내 사랑 오빠.”

1943년 산베이(陝北) 고원에서 수백 년 간 불러려온 사랑가의 가사를 바꿔 《동방홍(東方紅)》이 되었다. 참깨와 배추 그리고 콩깍지를 동방과 태양 그리고 마오쩌둥으로 바꾸어 버렸는데 이때부터 이 노래는 중국 대지에서 히트하여 당문화 “주요 가곡”의 하나가 되었다.

이런 유사한 예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비교적 유명한 것으로는 악을 징벌하고 선을 발양하며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제하는 백모선녀(白毛仙姑)를 고생이 심하고 원한이 깊은 백모녀(白毛女)로 변화시켜 “낡은 사회는 사람을 귀신으로 만들고, 새 사회는 귀신을 사람으로 만든다.”는 주제를 표현했다. 민요 “유삼저(劉三姐)” 중의 가사 “연못가에서 손을 씻으면 물고기가 죽고 길을 지나가면 푸른 나무도 죽어버린다.”는 이것은 원래 입은 은덕을 저버리는 배은망덕한 사람을 풍자한 것인데 “부잣집이 잘 산다고 칭찬하지 말라. 부자의 마음씨는 독사보다도 독하다네. 연못가에서 손을 씻으면 물고기가 죽고 길을 지나가면 푸른 나무도 죽어버린다.”라고 바꾸어 유삼저를 계급투쟁의 선구자로 변화시켰다. 각양각색의 “새로 편찬한 역사극”은 옛 사람들의 입을 이용해 중공의 세계관과 역사관을 선양했다. 예를 들어《핍박에 의해 양산박에 가다(逼上梁山)》에서 임충(林沖)은 “고구(高?)란 개인을 증오하던 데서부터 전반 착취계급을 증오”하고 “이 세계를 뒤엎자면 반드시 창칼로 대해야 한다.”고 했다.

30년간의 문화말살 운동을 통해 우수한 민족문화를 깡그리 파괴한 후, 중공은 인민과 세계에 중공이 정통 중화문화를 대표한다고 자칭하면서 더욱 거리낌 없이 전통문화의 허울을 쓰고 당문화의 사악한 것들을 팔았다. 중공이 감히 함부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가 아직 중국을 잘 알지 못하고 중국 인민들 대다수가 전통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신을 공경하고 선을 향하는 내포를 잃은 가짜 비천(飛天), 가짜 천수관음보살과 가짜 민요와 민악(民樂)은 사당(邪黨) 문인들의 감언이설과 그럴듯한 해석으로 중공의 암흑 통치에 화려한 레이스를 장식해 주었으며 동시에 더욱 은밀하고 철저하게 사람들의 신불(神佛)에 대한 바른 믿음을 파괴했고 사람들의 도덕관념과 예술을 변이시켰다.

(2) 8억 인구에 8가지 모범극

전통 희곡(戱曲)은 충효(忠孝), 절개와 의리 등 아름다운 정서를해 형상적으로 해설함으로써 사회의 도덕수준을 유지하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했다. 20세기 이후 급진적인 지식분자들은 소위 “봉건예교(封建禮敎)”라고 하면서 함부로 비판했고 전통 희곡도 대대적으로 비판당했다. 루쉰(魯迅)은 희곡 개혁을 논할 때 “(개혁은) 얼마가지 않아 조용히 가라앉고 희극은 여전히 그렇게 낡았으며 낡은 보루는 여전히 그렇게 견고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오히려 희곡의 형식과 내용이 하나의 정체(整體)이며 전통사회의 유기적인 구성 부분이라는 것을 반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만약 제멋대로 무작정 고친다면 그것은 이미 희곡이 아니다.

“의(義)”를 대표하는 삼국지의 관우와 “충(忠)”을 대표하는 악비(岳飛).| 에포크타임스

1949년 이후 중공은 “제도 개혁, 인적 개혁, 희곡 개혁”을 하여 희곡계는 마구 짓밟혀 시들어갔다. 재주꾼과 아름다운 사람, 제왕과 장상, 인과응보는 비판당했고 오로지 개편을 거친 중공의 당문화를 주입하는 기능을 실행할 수 있는 희극만이 존재할 수 있었다. 극작가 우쭈광(吳祖光)은 분개하며 중공이 “몇 만개의 극을 갖고 있는 고전 희곡을 억지로 밀어내 단지 몇 개만 무대에 남아 잔명을 부지하고 있다.” “당(黨)은 일찌감치 예술 지도 사업에서 손을 떼라.”고 지적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내놓은 “모범극”은 중공이 문예형식을 이용해 당문화를 주입하는 데에서 절정에 이른 작품이다.

모범극은 일반적으로 현대 경극 《홍등기(紅燈記)》, 《사가빈(沙家濱)》, 《지혜로 위호산을 치다(智取威虎山)》, 《백호단 기습(奇襲白虎團)》, 《항구(海港)》와 발레 무용극《홍색 여자군대(紅色娘子軍)》, 《백모녀(白毛女)》가 있고 그리고 피아노 반주 노래《홍등기(紅燈記)》, 피아노 협주곡 《황하(?河)》, 교향음악 《사가빈(沙家濱)》이 있다. 이런 경극과 무용극 중에서 일부는 문화대혁명 전에 이미 창작된 것이다. 장칭(江靑)의 직접적인 지휘 하에 “3부각(三突出, 3부각이란 모든 등장인물 중에서 바른 인물을 부각시키고, 바른 인물 중에서 영웅인물을 부각시키며, 영웅인물 중에서 주요 영웅인물을 부각시키는 것을 말함)”을 지도 원칙으로 삼고 이런 극들을 개조하고 제련하여 중공의 이데올로기적인 필요에 더 부합되게 했다. 문화혁명 중에 절대 다수의 영화와 희극작품을 독초(毒草)로 간주하고 상영과 공연을 금지하고 모범극과 모범극으로 찍은 영화만이 거의 유일한 합법적인 문예형식이었다. 10년 동안 그것들을 반복적으로 상영하고 방송함으로써 군중들로 하여금 강제로 청취하고 관람하게 하였다. 오늘날 40세가 넘은 사람들은 모범극에 대해 모두 뼈에 사무칠 정도로 마음속 깊이 기억이 남아 있다.

모범극은 창작에서 공연까지 그 당시 희극계의 가장 우수한 인재들을 모았기 때문에 기술적인 면에서는 확실히 인정할 만한 것이 있다. 하지만 모범극은 제멋대로 역사를 왜곡하고 폭력을 과장하며 증오를 찬양하며 전통가치관을 전복시키고 중공 지도자와 소위 “영웅인물”에 대해 끝없이 신격화하며 치켜세웠다. 이 일체는 그것들이 사악한 목적을 위해 복무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그 기술이 정교할수록 피해가 크게 마련이다.

문화대혁명 후 모범극은 무대에서 한동안 사라졌다. 하지만 모범극에 익숙해진 8억 인민들은 모범극의 부활에 토양을 제공해 주었다. 오늘에 이르러서도 모범극의 일부 아리아에 대해 사람들은 여전히 흥미진진하게 말하고 있으며 일부 모범극을 “경전”으로 치켜세워 다시 무대에 등장하거나 드라마로 개편하여 공개적으로 방송하고 있다. 모범극의 혼이 없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는데 모범극이 주입한 당(黨)문화는 이미 몇 세대에 걸쳐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싹을 틔웠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이런 모범극의 선전방식이 아주 간단하고 조잡하다고 느낄 것이며 사람마다 한눈에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심리에 그리 큰 영향을 조성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공의 선전도 실제 상황에 맞춰 변화한다. 80년대 이전에 중국인들은 생활과 사상이 상대적으로 매우 단순했다. 절대 다수 사람들이 양쯔룽(楊子榮), 아칭싸오(阿慶嫂), 리위허(李玉和), 거샹(柯湘) 등 사람의 형상이 예술적인 과장을 거쳤다고 의식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반영한 것은 완전히 역사를 전도하고 왜곡한 것이라는 것을 대부분 사람들은 오히려 생각하지 못한다.

문화대혁명 이후 희곡 인재와 희곡 관객들은 잇따라 늙어버렸다. 새로운 매스컴 형식과 심미(審美)습관이 흥성함에 따라 희곡은 점차 변두리로 밀려났고 중공 선전부에서도 희곡을 더는 예전처럼 그렇게 중시하지 않게 되었다.

(3)낙후된 심미(審美) 습관

사람의 심미(審美) 습관이 낙후성을 띤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일종의 심미 습관을 형성하거나 개변하는 것이 흔히 일종의 이성적인 사유를 형성하거나 개변하기보다 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공은 문예형식을 이용하여 당문화를 주입하는데, 비록 효과가 비교적 느려 보이고, 살인하고 정치운동을 하는 것처럼 즉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여론 선전처럼 아주 빨리 사상을 통일시키는 목적에 도달할 수는 없으나, 문예 선전은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기 때문에 일종 독특한 심미(審美)습관을 배양하며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파고들어 피해를 끼치는 것이 은밀하면서도 오랜 시간 지속된다.

2004년 “7월 1일” 이전에 중공은 전국 각지에서 소위 “홍색 경전(紅色經典)”이란 시리즈 공연을 내놓았다. 프로그램은 오페라《홍호 적위대(洪湖赤?隊)》, 발레무용극 《홍색 낭자군(紅色娘子軍)》, 오페라《장저(江姐)》그리고 가무 등이 포함되어 있다. 들리는 말로는 “군중들의 환영을 많이 받았다.”고 하며 “티켓이 잘 팔린다.”고 한다. 한 관객은 인터뷰에서 “이런 작품들은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대를 같이 지내왔다. 우리는 “홍호의 물은 물보라가 물보라를 친다.”는 노래를 부르며 지내왔다. 7월 1일이란 특별한 날에 이런 경전 오페라를 보니 마치 과거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이 관객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과 심미(審美)는 결코 진공(眞空)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공산 중국과 같은 이런 고도로 정치화된 사회에서 대량의 가곡에는 모두 강렬한 당문화 색채를 지니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왜 “당(黨)”이 각종 프로그램과 기념일에 “노래 자랑”과 “문예 공연”을 개최하는데 그렇게 열심인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에 사람들은 입만 벌리면 “공산당이 없으면 신(新)중국이 없다”, “해방구의 하늘은 명랑한 하늘”, “봉화가 활활 타올라 영웅을 노래하고”, “큰 강의 파도 넓고도 넓다”고 노래 불렀다. 지금은 “남해 해변에서 원을 그린 노인”, “이전 사업을 계승 발전시키는 지도자가 우리를 이끌고 신시대로 진입한다”고 노래 부른다. 《동방홍(東方紅)》, 《조국을 노래하다(歌唱祖國)》, 《장정노래 시리즈(長征?歌)》, 《당에게 들려주는 노래 한 곡(唱支山歌給黨廳)》, 《당(黨)이여,사랑하는 어머니여(黨?,親愛的??)》, 《큰 바다를 항해하자면 조타수에 의지해야 한다(大海航行?舵手)》, 《마오 주석이 우리 마을에 오셨다(毛主席來到?農莊)》, 《태양은 가장 붉고 마오 주석은 가장 친근하다(太?最紅,毛主席最親)》, 《마오 주석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자》등, 이런 노래들은 대부분 민요가락을 사용하여 곡이 아름답고 부르기 좋아 사람들이 아무리 불러도 질리지 않는다. 지도자에 대한 충성, “당(黨)”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바로 이렇게 사람들이 고개를 흔들며 노래 부르는 사이에 그들의 잠재의식 속으로 몰래 짓눌려 들어갔다. 당문화(黨文化)를 주입하는 효과를 말한다면 이런 노래들이 일으킨 역할은 《마오쩌둥 선집》보다 절대 못하지 않다.

해외 출국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음식 습관을 고치고 싶어도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해 본다면, 공산당이 배양한 사악한 심미(審美) 심리를 깨끗이 제거하기란 얼마나 쉽지 않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4)이정(移情)작용을 이용

“이정(移情)작용”이란 간단하게 말해서 바로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도 절을 한다는 것이다. 갑(甲)이라는 사물을 좋아하면 그것과 관련된 사물 을(乙)·병(丙)·정(丁)도 좋아한다는 것이다. 상업 광고에서는 늘 인기 스타들을 청해 브랜드 상품을 추천하게 한다. 그럼 그를 추종하는 팬들은 이 스타를 숭배하기 때문에 그(그녀)가 추천하는 상품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인다. 이것이 바로 이정(移情)작용의 효과이다.

“홍호(洪湖)의 물은 파도가 파도를 치고, 홍호 물가에는 고향이 있다. 이른 아침 배를 타고 그물을 치면 저녁에 물고기를 배에 가득 채워서 집으로 돌아온다. 사계절 들오리와 마름, 연근, 추수한 쌀이 창고에 가득 차서 향기를 뿜는다네.

사람마다 천당이 아름답다하지만 어찌 우리 홍호의 어미(魚米) 고향과 비할 수 있으랴! 홍호는 길고도 길어 태양이 떠오르면 금빛으로 반짝이네. 공산당의 은혜는 동해(東海)보다 깊고 어민의 광경은 해마다 더 좋아지네.”라고 노래 부른다.

사실 중화대지의 수려한 산천과 풍요로운 산물은 공산당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만약 있다고 한다면 파괴당하는 관계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노래를 불러 논리관계가 전혀 없는 두 가지 사물을 강제로 연계했다. 사람들은 조국의 자연을 사랑하기 때문에 마치 공산당에 대해 호감과 감사의 정서로 충만해진 것 같다. 이런 예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5)만담·곡예(曲藝)·코메디(小品)의 독특한 작용

중공은 정치운동을 시작할 때 사실을 나열하고 도리를 따지면서 시작한 것이 아니고(만약 사실을 나열하고 도리를 따질 수 있다면 정치 운동을 시작할 필요도 없다), 흔히 우선 인신공격부터 시작한다. 저속한 상상으로 사람들의 음산한 심리에 영합해 마녀사냥식의 이야기를 날조하고 이를 통해 증오를 도발하는 목적에 도달한다. 실천이 증명한바, 훔친 물건을 남의 집에 몰래 두고 죄를 뒤집어씌우는 이런 수법은 매우 효과적이며 매번 틀림이 없었다.

예를 들어 문화대혁명 때 많은 사람들은 왜 류사오치(劉少奇)가 배신자, 간첩, 노동자의 적인지 전혀 몰랐다. 그러자 중공은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류사오치의 아내 왕광메이(王光美)가 자신의 피부미용을 위해 우유로 목욕을 했다고 퍼뜨렸다. 물자가 극히 부족한 시대에 우유를 마실 수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인데 류사오치의 가족이 오히려 우유로 목욕을 하다니! 그래서 사람들은 왜 류사오치가 배신자, 간첩, 노동자의 적인지 전혀 알 필요도 없이 그에 대해 이를 갈며 증오하고 경멸하게 되었다.

같은 이치로 희곡·만담과 코메디 등의 문예형식은 전통인물과 전통문화를 폄하하고 중공의 적을 타격하는 방면에서 독특한 작용을 일으켰다.

50년대의 많은 만담들은 모두 “봉건 미신”을 타파함을 말했다. 많은 전통문화 속의 관념과 풍습들이 모두 풍자와 조롱을 당하게 되었다. 예들 들어 결혼 풍속, 음양(陰陽) 관념, 종교 신앙 등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다 기억할 것이다. 널리 전해진 어느 만담에서 한 할머니가 신상(神像)을 모셔오자 이웃에 살던 젊은이가 “할머니 얼마주고 사셨습니까?”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그를 훈계하며 “샀다고 하면 안 되고 모셔왔다고 해야지.”라고 말했다. 젊은이는 고쳐서 다시 “할머니 그럼 얼마주고 모셔왔어요?”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아까워하면서 “아, 제기랄 이런 물건들이 80전이라네!”라고 말했다. 이렇게 선남신녀(善男信女)들을 저속하고 이익만 따지는 우매한 사람으로 추하게 만들었다.

2001년 CCTV의 “춘절(春節) 갈라”에 《매괴(賣拐)》라는 코미디 작품이 있었는데 바로 간접적으로 파룬궁(法輪功)을 비방한 것이다. 이 작품이 공연된 후 이 기회를 이용해 각지의 신문에서 잇따라 파룬궁을 타격하는 문장을 발표했다. 예를 들어, 《검사일보(檢査日報)》에서 《춘절 갈라의 코미디 <매괴>를 통해 “파룬궁”의 수단을 보다》를 발표했고, 《운남(雲南)일보》에서는 갈라를 평론하면서 중간에 《매괴》를 언급하며 “파룬궁을 질타했는데 연기를 아주 잘했다.”라고 말했다. 대량으로 전재된 인터넷 문장 《자오번산(趙本山)의 <매괴>에서 심리적 암시를 보다》도 파룬궁 비판을 위한 것이다.

이런 수법이 주는 해악은 그것이 어느 한 사물이나 관점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황당하게 만들고 희화화함으로써 사람들이 이지적으로 이 사물의 옳고 그름을 사고할 기회를 아예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비방당한 사람의 해명은 장내가 떠들썩하게 크게 웃는 관객들의 소리에 파묻혀버리고 만다.

(6)강렬한 격정과 전투성이 스며든 중공 문예작품

공자는 “정나라의 소리가 음란하다(鄭聲淫)”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정(鄭)나라의 음악이 사람의 정서가 풍겨져 나오는 외에 일종 과장된 허위 예술이기에 사람의 도덕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옛사람들은 세상의 도의와 사람들의 마음에 대한 예술의 작용을 중시하여 이성(理性)으로 정욕(情慾)을 절제하고 예술로 인생을 조화롭게 보완하는 것을 중시했다.

중공의 이론 선전과 문예 작품 속에는 강렬한 격정과 전투성이 스며들어 있다. 모범극의 원칙은 “세 가지 돌출”이다. 창작된 인물은 “높고(高), 크며(大), 전면적(全)”이어야 한다. 혁명 가곡의 풍격은 “높고(高), 빠르고(快), 소리가 울려 퍼져(響)”야 한다. 그래도 부족해서 악보에는 또 “기백 있게”, “격앙되게”, “기세 높게”라는 등의 언급이 있다. 마치 늘 독한 술을 마시는 사람이 차의 심오하고 은은한 맛을 체험해 낼 수 없는 것과 같고, 헤비메탈이나 재즈 음악에 익숙한 사람이 우아한 고금(古琴) 연주를 감상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중공 예술에 습관이 된 사람들은 예술에 대한 정상적인 이해를 잃어버렸다. 중공 예술 속의 그런 강렬한 격정과 전투성을 인류 예술의 정상적인 상태로 간주하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 마성(魔性)의 체현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 밖에 또 다른 하나의 예는 색깔을 사용하는 문제다. 붉은 색은 피의 색이다. 전통예술이나 생활 속에서 붉은 색은 단지 장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 뿐 큰 면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붉은 색은 다른 색깔이 드러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공 무대예술에는 붉은 색 복장, 붉은 색 배경, 붉은 깃발, 붉은 등, 붉은 도구 등 무대가 온통 붉다. 사실 중공은 사람의 마성(魔性)을 불러일으키고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마성의 상태에 적응시키려는 것이다.

이런 비이성적인 상태가 바로 중공이 생존할 수 있는 사회 심리적 조건이다. 중공은 비록 지금 “끊임없는 혁명” 이론을 언급하고 있진 않지만 그것의 본질은 그것이 투쟁을 통해 에너지를 흡수하도록 결정했다. 중공은 혁명을 정상적인 상태로 여기며, 운동을 밥 먹듯이 하며, 마구 괴롭히는 것을 삶으로 여기고, 일단 위기에 봉착하면 우선 생각하는 것이 적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을 선동하여 이 가상의 적과 투쟁하게 한다. 만약 중국인들이 모두 평온하고 이성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 결정한다면 중공을 따라 무턱대고 날뛰는 사람이 없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중공도 가망이 없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관객들로 하여금 피를 들끓게 하고 격정에 들끓게 하는 것이야말로 당문화(黨文化)의 중요한 기능 중 일부이다.

이상으로 중공이 여러 가지 예술 형식을 이용하여 당문화를 주입한 것과 관련된 일부 문제들을 간단히 분석하였다. 독자마다 이 한 가지 일에서 많은 것을 유추하고 이해하며 스스로 많은 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에포크타임스

결론

위에서 논술한 것을 종합해 보면 중공의 당문화 주입은 강제성, 제도성(制度性), 계통성, 위선성(僞善性)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중공 주입수단의 3가지 주요 특징을 분석해 보자.

첫째, 당문화는 중공이 총체적으로 장악하고 통제하고 있는 자체조절 체계이다. 그러므로 중공의 주입수단도 자체조절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중공은 오로지 정권을 쥐고 있고 극히 적은 초기조건만 설정해 놓으면 당문화 선전 작품은 질서 있게 순서대로 자동적으로 생겨나온다.

마오쩌둥은 1964년 이런 말을 했다. “연극인, 시인, 문학가, 희곡작가를 도시에서 쫓아내야 한다. 전부다 쫓아내 버려야 한다…. 내려가지 않으면 작품을 써낼 수 없다. 누가 내려가지 않으면 그에게 밥을 주지 말라. 내려간 다음에 밥을 줘라.”고 했다. 중공의 문예이론서는 매우 많지만 어느 한 권도 “누가 말을 듣지 않으면 그에게 밥을 주지 말라”라는 이 말처럼 가혹하게 한 말이 없다. 중공은 일체 생산과 생활 물자를 장악했으며 중국 인민을 죽이고 살리는 대권을 장악했으므로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다소곳하게 명령에 복종해야 했다.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은 중국문학예술계연합회(文聯), 작가 협회, 극작가 협회, 곡예가 협회, 미술가 협회, 음악가 협회로 편성되어 있다. 이들은 얹혀사는 신세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당(黨)’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당문화를 만들 필요가 없다. 오로지 당(黨)이 “모모를 견지하고 모모를 반대한다.”고 결정만 하면 당(黨)문화 선전품은 끊임없이 만들어져 나온다. 같은 이치로 매 차례 국내외 형세 변동이 있을 때마다 중공이 어쩔 수 없이 정책을 조정해야 할 때 선전부에 일부 간단한 명령한 내리면 선전부에서는 ‘창조성 있게’ 장관의 의도를 실현시킨다. 대학교의 전파(傳播)대학, 신문대학, 예술대학 등은 더욱 대량적으로 ‘사회주의 신문학’, ‘마르크스레닌주의 여론학’, ‘중국특색의 문예학’ 등을 만들어 중공중앙 선전부를 위해 노력하며 변호한다.

둘째, 중공의 당문화 주입은 폭력에 의존하고 이익을 미끼로 삼는다. 순종하는 사람에게 중공은 툭 하면 사람을 구슬리기 위해 약간의 호의를 베푼다. 하지만 사상이 독립적이고 ‘당(黨)’과 일치를 유지하기 싫어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중공의 정책은 ‘잔혹하게 투쟁하고 무정하게 타격한다.’ 중공 통치하에서 사람들은 시시각각 ‘무산계급의 무쇠 주먹’이란 거대한 위협을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만약 중공의 선전 내용과 다른 말을 듣거나 믿는 사람은 거대한 심리적 압력을 감당해야 한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어떤 사람이 진상을 받아 들였을 때 틀림없이 무엇인가를 좀 해서 현재 상황을 개변시키려고 하지만 흔히 또 그렇게 큰 용기가 없기 때문에 이런 갈등 심리는 그로 하여금 매우 고통스럽게 한다. 중공이 호의와 위협을 동시에 가하는 상황에서 자아를 보전하고 심리적 평형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은 진상에서 물러나 능동적으로 자신을 중공의 거짓말 범위내로 가두어버린다. 그래서 늘 사람들은 중공의 거짓말을 간파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진상을 알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니라 감히 진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중공의 거짓말을 믿고 중공에 협력하여 자신의 양심을 속이면서 가련하게 자그마한 안전과 허위적인 양심의 안정을 바꿔오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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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당문화는 일종 부체(附體)문화다. 그러므로 중공의 주입수단도 민족문화의 일부 표면 형식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앞에서 이미 당문화가 어떻게 민족문화에 달라붙어 기만성과 선전효과를 강화했는지 설명했다. 부체의 또 다른 효과는 중공의 죄악이 갈수록 많이 폭로되었을 때 중공은 책임을 단번에 전통문화에 편하게 전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위 ‘봉건 유독(遺毒)’이 문화대혁명을 위해 책임을 뒤집어썼다. 이것은 마치 김 아무개가 박 아무개를 죽였는데 나중에 박 아무개의 옷을 입고 범죄행위를 했다.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나쁜 일을 한 사람이 박 아무개라고 오해하고 박 아무개의 무덤까지 파내 시체마저도 질타하는데 오히려 진짜 나쁜 사람은 법 밖에서 자유자적하고 있다.

우리는 유감스럽게도 중공의 당문화 주입의 거대한 공정이 매우 성공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첫째, 중공의 주입은 폭력수단을 뒤에 놓고 한 소위 사상개조가 사상만 개조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은 경우 사람의 육체(비판, 투쟁, 노동개조, 징역, 심지어 살해)를 개조시켰기 때문이다. 둘째, 중공은 일체 사회 자원을 독차지했으므로 중공 통치하에서 출세하고 성공하려면 중공의 명령에 다소곳이 순종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각 업종의 우수한 인재들이 거의 다 중공에게 끌려가 그것의 통치를 위해 복무하였다. 셋째, 중공이 몇십 년 시간을 들여 봉폐된 환경[현재는 반(半)봉폐상태]을 만들었기에 사람들은 완벽한 외부정보를 얻을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넷째, 그것의 ‘사상정치공작’은 서류상으로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혁명의 대 용광로’ 로 밀어 넣고 빈번한 정치 운동으로 그들에게 뼛속 깊이 각인하도록 했다. 다섯째, 중공은 마르크스, 레닌, 마오쩌둥의 그 한 세트에 따라 사회 현실을 만들었고 마치 이 이론이 맞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예를 들어 투쟁의 관념은 몇십 년간 거의 끊임없는 잔혹한 투쟁을 통해 건립된 것으로, 투쟁은 이미 중국 백성들의 생활현실이 되었으므로 투쟁철학이 마치 맞는 것처럼 되었다.

사람이 사람으로 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도덕 준칙과 행위 규범 그리고 사상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전 국가의 역량을 약탈하여 천방백계로 선천적인 순진과 선량을 말살하고 사람들에게 변이되고 사악한 사상 감정을 주입했다. 만약 한 사람의 사상을 하나의 병으로 본다면 병의 성질은 내용물에 따라 결정된다. 꿀을 담는다면 꿀단지가 되고 독약을 담으면 독약 병이다. 모든 중국인들이여, 한번 반성해 보자. 인생의 중대한 문제에서 당신의 선택을 결정한 것이 당신의 본성인지, 아니면 공산당이 주입한 관념인지. 사당(邪黨)이 주입한 그런 관념이 당신을 어떤 미래로 끌고 가겠는가?

‘고향은 떠나기 어렵다.’는 속담이 있다. 한 환경에서 오랫동안 생활해 온 사람은 그 환경에 대해 일종 그리워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같은 이치로 장기간 당문화 속에 젖어있던 사람들은 이런 문화에 대해서도 일종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마음과 감정적으로 의지하는 상태가 생긴다. 우리가 이런 문화의 허구와 거짓, 사악함을 지적하고 그것을 제거하기 시작할 때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실의에 빠져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당문화는 중공이 생존할 수 있는 인문(人文) 환경이다. 오늘날 우리가 역사적으로 중공이 중화 민족에 대해 저지른 하늘에 사무친 큰 죄를 똑똑히 보았고, 중공이 지금 막 전 민족을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수렁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럼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의 양심에 물어보자. 어떤 약점이 우리로 하여금 중공이 중국에서 함부로 이런 잔혹한 짓을 하도록 용인했는가? 현재의 상황은 우리가 아직도 계속 용인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이 문제는 우리 민족의 미래에 대해, 우리 매 사람의 미래에 대해 지극히 중요한 것이다.

당문화를 반성하고 당문화를 해체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아름다운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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