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 당(黨)문화]제2장 체계적인 사상개조(하)

2007년 2월 21일 업데이트: 2019년 11월 6일

상편:당문화는 어떻게 건립되었는가 

【당문화 해체】제2장: 체계적인 사상개조(하) 

 

목차

4. 진화론과 현대과학을 주입

1)진화론을 주입한 진실한 목적──무신론과 투쟁철학 보급 

2)진화론: 입증되지 않은 가설 
(1)취약한 논리적 기초
(2)진화론의 핵심인 유전자 돌연변이 메커니즘을 부정하는 확률계산
(3)진화론의 약점──진화 시간표 관련 각종 의문들

3)진화론을 주입한 후과(後果) 

4) 현대과학을 주입한 진실한 목적──신앙 압제(壓制) 

5)”과학”을 중시하지 않는 중공, 마르크스주의는 반자연적 

6) 과학자의 신앙, 과학기술성취에 방해되지 않아 

7)실증과학은 우주법칙을 탐구하는 유일한 방식이 아니다 

8)실증과학의 제한성 


4. 진화론과 현대과학을 주입 

1)진화론을 주입한 진실한 목적──무신론과 투쟁철학 보급 

1968년 여름, 윌리엄 마이스터라는 미국의 아마추어 화석전문가가 삼엽충으로 유명한 유타 주 부근의 델타에서 화석을 찾아냈다. 화석을 깨보니 놀랍게도 완전한 신발 자국이 삼엽충 위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삼엽충은 6억 년 전에서 2억여 년 전까지 존재했던 생물이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 이렇게 아득히 먼 유사 이전에 우리와 같은 인류문명이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

삼엽충을 밟고 있는 아주 오래 전 신발 자국 | 에포크타임스
신발 자국을 확대해 보면 좌측 상단부에 삼엽충이 보인다. | 에포크타임스

빛의 반사에 관한 “브루스터 법칙 [Brewster”s law]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브루스터 경이 1884년 영국과학발전협회에 낸 보고서(Report of Meeting of the British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Vol. 14.)는 아주 큰 반향을 얻었다. 보고서에는 영국 북부 Inchyra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Kindgoodie 채석장에서 발굴한 사암 속에 절반쯤 묻혀있던 못을 하나 발견했다고 했다. 못은 비록 부식되긴 했으나 여전히 형태를 알아볼 수 있었다. 1985년에 이 사암을 측정한 결과 적어도 4천만 년 전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렇다면 누가 이 오래된 암석에 못을 남겨 놓았을까?

지난 2001년, 미국인들 천 명을 상대로 인류기원과 발전에 대해 갤럽이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다. 자신의 견해와 가장 근접한 관점을 선택하라고 한 결과 45%의 사람들이 “만 년쯤 전에 하느님이 오늘날의 인류를 창조했다”고 선택했고 37%는 “인류는 비교적 원시적인 형태에서부터 백만 년이 넘게 변화되어 왔으며 이 과정은 하느님과 무관하다”고 선택했으며 나머지 6%는 아무런 관점과 경향이 없다고 응답했다. 또한 미국의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에서 2005년 7월에 한 조사에서는 미국인들 63%가 학교에서 진화론과 더불어 종교의 창조론도 가르쳐야 한다고 응답했고 38%는 대담하게도 창조론만 가르쳐야 하며 진화론은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대륙의 많은 독자들은 위의 조사 결과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사실 신앙이 자유로운 서방 국가에는 진화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중공 당문화(黨文化)의 고정적 사유와는 달리 이 나라들은 낙후하거나 우매하지 않다. 사실 이 나라들의 문명발전은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자유사상 분위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진화론은 서양에서 나왔으나 진화론을 믿는 사람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중국, 구(舊) 소련과 이전에 공산국가였던 동유럽 사람들이었다. 이런 나라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국가 권력으로 신(神)에 대한 신앙을 금지하고 무신론을 주입한 것이다. 중공은 1949년부터 줄곧 각종 종교 신앙을 지속적으로 압제하고 박해함과 동시에 “진화론”을 강제로 주입했다. 이리하여 수많은 중국인들은 스스로 “진화론”을 보배처럼 받들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연히 온 세상이 전부 이렇다고 여기게 만들었다.

중공이 민중들에게 진화론을 주입한 것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극권(極權)통치를 수호하려는 목적이었다. 이래야만 무신론(無神論)을 강제로 주입하기 위한 탄탄대로를 닦아 공산당을 지고무상(至高無上)한 인간세상의 구세주로 변장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진화론이 “계급투쟁(階級鬪爭)” 이론을 지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진화론과 신앙의 관계를 아주 똑똑히 설명했다. “지금 우리는 진화의 개념으로 우주를 보며, 더는 어느 창조자나 통치자도 용납할 공간이 없다.”(마르크스―엥겔스의 종교를 논함) 마르크스는 또 “다윈의 저작은 몹시 중요하며, 그것은 자연과학의 각도에서 인류역사상의 계급투쟁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의 관점과 완전히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엥겔스도 “(진화론은) 19세기 3대 과학 발견의 하나이다-우수한 무산계급(無産階級)이 이번 생존투쟁에서 승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류는 이성적인 사고가 존재한 후로 줄곧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하는 영원한 근본문제를 추구해 왔다. 각종 종교 신앙을 소멸시킨 후 진화론은 중공이 생명의 기원을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학설이었다. 중문 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면 종종 많은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생물교재 중 “생명의 기원과 생물진화” 부분에 대해 “학생들에게 생물진화의 관점을 형성시키는 것은 변증유물주의 자연관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라고 분석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중공은 천명(天命)을 경외(敬畏)하는 중국의 전통문화를 제거한 동시에 진화론을 생명기원을 해석하는 “유일한 진리”로 삼고 “과학”이란 명분으로 중국에 강제로 주입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중국인들은 신앙문제를 이야기할 때면 아무 생각도 없이 “나는 무신론을 신앙하고 진화론을 믿는다.”라고 대답한다. 무신론과 진화론 자체의 옳고 그름의 논쟁에서 벗어나 사실상 절대 다수 중국인을 놓고 볼 때 무신론에 대한 “신앙”은 진정하게 의의가 있는 신앙이 아니다. 신앙이란 자유로운 마음의 선택으로 “신앙이 없다”는 것에 대해 상대적으로 하는 말이다. 하지만 중공의 강요 하에 어느 누가 무신론을 신앙하지 않고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면 “봉건미신”, “우매(愚昧)”, “나라를 망치고 인민을 망친다”, “과학을 반대한다”는 등 무서운 정치 모자를 뒤집어쓰게 되고 “광대한 인민군중”과 격리되어 “한 줌”도 안 되는 “개조대상”이 된다. 이런 환경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는 전혀 언급할 나위도 없는데 또 무슨 신앙을 말할 수 있겠는가?

2)진화론: 입증되지 않은 가설 

1859년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얼마 되지도 않는 일부 사례에 근거해 생물진화라는 가설을 당돌하게 제기했다. 즉 오늘날의 복잡한 생물계는 간단한 원시생물에서 한 걸음씩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의 폭넓고 깊이 있는 발전에 따라 수많은 사실들을 발견함으로써 진화론에 대한 준엄한 도전이 제기되었다.

(1)취약한 논리적 기초

많은 사람들은 아마 “계통발생(返祖現象)”이란 단어에 아주 익숙할 것이다. 인민교육출판사 사이트에 올려 있는 “중학교 생물 교학자료”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인류에게는 우연히 짧은 꼬리가 달린 아이, 긴 털이 난 사람, 유두가 두개 이상인 여자 등이 있다. 이런 현상은 인류의 조상은 아마 꼬리가 달렸고 긴 털이 자랐으며 유두가 여러 개인 동물이었음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반조현상도 생물진화의 일종 증거이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머리가 없는 갓난아이와 같은 기형은 더욱 많은데 그럼 사람의 조상은 머리가 없었단 말인가? 선천적으로 사지가 모자라거나 손가락과 발가락이 많은 사람들도 늘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사람의 사지는 각종 기형에서 진화해 왔단 말인가? 진화론의 사상 틀에서 벗어나 생각해 보면 소위 “계통발생”은 다만 기형이나 일부가 모자란 것에 불과할 뿐 유전자 돌연변이의 반영이자 인류조상과 연계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과학에서는 만일 어떤 이론에 논리적인 모순이 있다는 것이 입증되면 이 이론은 성립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진화론의 논리적인 착오에 대해 깊이 연구하지 않는데 이는 또한 연구해 봤자 증거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아주 놀랄 것이다. 사실 문제를 밝히고 나면 더 놀라울 것이다.

비교해부학적인 증거는 진화론의 3대 주요 논거 중 하나이다. 비교 해부학에 따르면 포유류 중 쥐의 발가락, 박쥐의 날개, 돌고래의 지느러미와 사람의 손은 모두 비슷한 골격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다윈은 그들이 모두 한 조상에서 유전되어 왔으며, 다만 진화과정에서 기능이 달라 서로 다른 외형으로 분화되었다고 추측했다. 분명한 것은 비교해부학적인 논거로 진화론을 논증하자면 논리적인 오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동일한 조상을 가졌다는 가설에 근거해 사지골격구조가 비슷하다는 결론을 논리적으로 추론한 것이지만 반대로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냉장고는 물을 얼음으로 얼릴 수 있으나 얼음은 반드시 냉장고로만 얼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대 생물의 화석도 진화론의 3대 증거 중 하나이다. 하지만 진화론 지지자들은 고생물 화석으로 진화의 과정을 논증했으나 오히려 진화라는 격식에 의존해야 했다. 예를 들면 중국의 유명한 원인(猿人)인 “원모인(元謨人)”의 확정은 겨우 3개밖에 없는 인류의 치아로 추론한 것이고 남전원인(藍田猿人)의 확정은 단지 아랫턱 뼈로, 정촌인(丁村人)은 치아 3개와 두개골 일부로, 마패인(馬?人)은 완전하지 않은 두개골로 확정했다…. 이런 식으로 무엇을 확정하려면 진화라는 격식이 필요했다. 여기서 하나의 논리적인 결함이 폭로되는데, 진화해온 것을 다시 진화론으로 증명했으니 순환논증이 분명한 것이다. 소위 말하는 서양고대원인(네브라스카 인)의 발견은 이런 논증의 논리적 결함을 충분히 폭로했다. 1922년 뉴욕 자연사 박물관(New York”s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의 고인류학 책임자였던 오스본(Henry Fairfield Osborn) 박사가 이빨 하나를 발견했다. 이 이빨은 오랑우탄, 원인(猿人)과 유인원의 특징을 동시에 구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 이빨의 주인에게 네브라스카 인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그리고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에게, 단지 이빨 하나에 근거해 이 원시인의 상상도를 그려주었다. 하지만 1927년에 더 깊게 연구한 후 발견한 데 따르면 이 이빨의 주인은 이미 멸종된 야생 돼지의 일종이었다.

그렇다면 진화론은 귀납법이 아닌가? 아니다. 너무나 많은 사실들을 귀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에 어떤 사람은 진화론이 귀납법이라고 말했다. 이런 종류의 논리적 사고는 좀 어렵긴 하지만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귀납법이란 바로 한 가지 명제를 통해 포함되는 모든 문제를 다 귀납시킬 수 있다면 그럼 이 명제가 곧 진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진화론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사실들을 귀납할 수 없다. 앞에서 언급한 사전문명(史前文明)의 증거로 볼 때 진화의 속도, 생물 종(種)의 폭발적인 발생, 진화의 확률 등 너무나도 많은 것은 귀납할 수 없으며 아울러 모두 진화론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진화론의 논증을 귀납법이라고 하는 것은 성립될 수 없으며, 사실 이 역시 순환논증이다.

얼핏 보면 옳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순환논증”은 진화론 전반에 깔려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이에 익숙해져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엄격하게 분석해 본다면 모두들 깜짝 놀랄 것이다.

중학교 생물교과서에는 배아발육 그림이 실려 있다. 어류, 도롱뇽, 거북, 닭, 돼지, 소, 토끼, 사람 등의 동물이 배아발육의 서로 다른 단계의 측면 그림으로 원판은 런던 대학 Bodleian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것을 만든 사람은 19세기 독일 예나(Jena) 대학의 생물학교수인 헤켈(Ernst Heinrich Haeckel)이다. 이 그림에서 내린 결론은 이런 동물들이 다 성장한 후에는 형태가 완전히 달라지지만 배아 발육과정에 형태가 비슷한 단계가 있는데 인류를 포함한 여러 가지 동물이 배아가 발육하는 어느 단계에서는 어류의 형태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로 볼 때 그들의 공통 조상은 수생(水生)동물이며 공통 조상의 특징이 배아발육 과정에서 재연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진화론의 3대 증거 중 하나인 “발생반복설(胚胎重演律 진화재연론)”이다

헤켈의 배아발육도 | 에포크타임스

사실 재연을 통해 진화론을 증명한다는 것을 형식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만약 진화론이 성립한다면 배아발육은 진화의 과정을 재연한다. 왜냐하면 관찰 결과 배아발육은 진화의 과정을 재연한다는 것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말할 때 이 역시 가설로 가설을 증명하는 “순환논증”이다.

1997년, 영국의 과학자 리차드는 여러 실험실과 합동으로 더욱 많은 종계의 동물을 수집해 동물들의 배아발육형태를 관찰했다. 그들은 헤켈의 도표는 사실에 기초한 기술이 아님을 발견했다. “우리의 연구는 헤켈 도표의 신뢰성을 심각하게 떨어뜨렸다. 헤켈의 도표와 그 학설은 척추동물의 배아발육과정 중에서 하나의 비슷한 시기가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기보다는 고정적인 프로그래밍에 따르는 배아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낫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과학 잡지 “사이언스”는 1997년 전문적으로 이에 대한 종합 논술(Science 1997, 277:5331)을 발표했다. 그럼 왜 헤켈과 리차드의 연구 결론은 이처럼 큰 차이가 나는가? 원래 헤켈은 의식적으로 형태가 비슷한 동물의 배아를 선택했다. 예를 들면 그는 양서류의 대표로 청개구리를 선택하지 않고 도룡뇽을 선택했는데 도롱뇽이 물고기와 더 흡사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예로 닭의 초기 배아 안구는 색소가 없었으나 헤겔은 안구를 새까맣게 칠하여 닭의 배아와 다른 동물의 배아가 더 흡사한 것처럼 조작했다. 헤켈은 특히 사람의 배아 도표에도 예술적인 가공을 해 사람 배아의 내장부분과 다리를 그려 넣지 않아 꼬리달린 물고기와 비슷한 배아를 만들었던 것이다.

리차드 등이 그린 동물의 배아 발육도 | 에포크타임스
예술적인 가공을 통해 내장과 다리를 제거한 헤켈의 사람 배아 그림(왼쪽)과 실제 사람의 배아 그림(오른 쪽) | 에포크타임스

유전학의 출현과 분자생물학의 발전에 따라 특히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깊어짐에 따라 재연론은 전례 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현재 유전자 돌연변이는 진화의 원인으로 공인받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의 유전자가 이미 돌연변이 되어 새로운 유전자로 변했다면 왜 다시 과거의 특징을 재연한단 말인가?

(2)진화론의 핵심인 유전자 돌연변이 메커니즘을 부정하는 확률계산 

다윈 시대는 근대 서양과학이 기초단계에 있을 때로 생명현상에 대한 인식이 아주 낮았다. 당시 사람들은 집에서 기르는 많은 동물들이 잡종으로 변이(變異)되는 것을 보고 생물의 종도 이렇게 다른 종으로 변할 것이며 이것을 진화(進化)라고 여겼다. 나중에 유전자가 발견되었고 연구가 깊어짐에 따라 학자들은 만약 유전자에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후대에 표면상 조상과 어떤 구별이 있든지 상관없이 진화라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유전자는 또 극히 안정적이어서 비정상적인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을 때만 변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전자 돌연변이”는 현대 진화론의 핵심이 되었다. 이는 현대의 모든 진화론자들이 공인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 핵심이론을 집중적으로 분석해 보자.

생물의 유전자는 극히 안정적이라 변하기 어려워 

유전자의 안정성은 생물 종이 자신의 안정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것으로 동일한 종에서 서로 다른 개체의 유전자 교류로는 다른 종으로 변하지 않는다. 동식물 육종 전문가들은 한 종이 변화할 수 있는 범위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최종적으로 키워 낸 품종은 육성할 수 없거나 아니면 원래 어미의 것으로 변하고 만다. 하버드 대학의 멜 교수는 이를 유전자 체내평형이라고 부른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개를 아무리 잡종 교배시켜도 여전히 개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진화론에 뛰어넘을 수 없는 장애가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론적으로 이 장애를 돌파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가능성이 바로 유전자 돌연변이이다.

유전자 돌연변이로 더 고급적인 것을 만들 확률은 거의 제로 

유전자 돌연변이는 유전자의 복제 혹은 손상복구 등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작위적인 착오 때문에 발생하며 때문에 무작위 돌연변이(Random Mutation) 라고도 하며 이 자체가 일종 병리적인 현상이다. 이것이 발생할 확률은 아주 낮은데 약 1만분의 1에서 10억 분의 1 정도이다. 하등한 원핵생물의 돌연변이 확률은 좀 더 높아서 약 1천분의 1정도이며 고등생물에서 대부분 유전자의 돌연변이율은 10만 분의 1에서 1억 분의 1 사이이다.

그렇다면 유전자 돌연변이로 생존에 이로운 고급특징(성능)을 만들 수 있을까? 현재 알려진 바로는 한 유전자의 핵심은 몇 백에서 몇 천개의 염기배열로 이루어진 것이다. 마치 복잡하고 정밀한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임의로 한두 개의 부호를 고친다고 하여 더 고급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전자 돌연변이도 마찬가지이다. 한 염기의 변화결과는 종종 각종 결함, 기형, 사망을 초래하는데 자연조건하에서 생존에 이로운 돌연변이는 발견된 사례가 없다.

DNA 분자모델과 이중나선 구조 | 에포크타임스

생물진화는 절대 불가능할 정도로 확률이 낮아

현대 진화론에서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핵심으로 보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전자 돌연변이는 일종 무작위적인 착오이다. 그러므로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가는 진화 과정을 개괄적으로 말하자면 사실상 일부 원시인들이 수백만 년에 걸쳐 한 세트의 유전자에 “착오적인” 돌연변이가 발생해 원시인의 앞이마가 점차 높아지고 미골(眉骨)이 작아지며 입은 작아지고 뇌 용량이 증가하며 척추가 곧게 변하여…. 최종적으로 오늘의 인류로 되었다는 것이다.

원인(猿人)과 지금의 인류 | 에포크타임스

분명한 것은 자연선택의 과정은 단지 최종적으로 어느 생물 종을 남길 것인가를 결정할 뿐 전반 과정이 발생할 확률을 증가시켜 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학자들이 진일보로 추산한 데 따르면 이런 한 세트의 “착오”가 매번 발생할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미국의 생화학자인 베시는 혈액응고에 관련된 일련의 생화학 기제를 예로 들어, 이처럼 복잡하고 정밀한 생명현상으로 진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 중 하나의 단백질인 TPA가 생길 확률은 10의 18승 분의 1로 적어도 100억년이 지나야 발생할 수 있다(현재 과학자들은 태양계의 연령을 50억 년으로 보고 있다). 만일 같은 시간에 그것과 상호작용할 단백질을 진화해 낼 확률은 10의 36승 분의 1이다. 그는 “애석하게도 우주는 이렇게 오랜 시간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생명의 탄생에 대해, 현대 진화론은 역시 하나의 자연과정으로 본다. 즉, 간단한 유기물과 무기물이 어떤 특수한 조건하에서 부딪혀 복잡한 큰 분자의 생명을 형성했고 각종 큰 분자가 더 나아가 원시생명으로 조합되고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많이 연결된 “이상화(理想化)” 과정을 읽고 나면 독자들은 아마 그 속의 확률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영국의 과학자 호일은 일찍이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마치 온 폐기물 공장을 삼켜버릴 듯한 태풍으로 보잉 747의 엔진을 다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3)진화론의 약점──진화 시간표 관련 각종 의문들

진화론의 개념에 근거하면 인류는 가장 원시적인 수생(水生)동물에서 서서히 육지로 기어 올라와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를 거쳐 나중에 원숭이로 진화했다. 더 지나 땅으로 내려와 인류로 되었는데 이 과정에 몇 억 년이 소요되었다. 생물학자들은 생명이 간단한 데서 복잡한 데로, 저등한 것에서 고등한 것에 이르는 과정을 진화시간표에 따라 그렸다.

그러나 수많은 고고학자들의 발견은 진화론을 지지하는 이들의 논점을 직접적으로 반박한다. 여기에는 세계 각지에서 잇달아 발견한 같지 않은 사전 시기 인류의 직접적인 증거를 포함한다. 몇 만 년에서 수억 년 전의 인류의 발자국에서 인체의 골격화석에 이르기까지 모두 진화시간표에 귀납시킬 방법이 없다. 예를 들면 1997년 11월 6일 『중국지질광산보(中國地質鑛産報)』에는 중국 윈난(雲南)성 푸위안(富源)현 싼뎨지(三迭紀) 암석에서는 네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하였다. 감정 결과 이 암석은 2억 3500만년의 역사가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1851년 6월 『Scientific American』에 기재된 문장에는 도체스터(Dorchester)에서 폭파 작업을 하던 도중 금속제 꽃병이 폭발로 두 동강 난 것을 발견했다. 두 동강 난 꽃병을 합치자 종 모양이었는데 합금으로 만들어졌고 지하 15피트에서 돌을 깨는 과정에 나왔다. 약 10만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십만 년 전의 금속 꽃병 | 에포크타임스

고고학 발견을 말하자면, 진화론자들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진화과정에서 중간형의 존재문제로 엄격하게 말하면 확실한 증거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원숭이에서 인간에 이르는 문제에서 과학자들은 일부 화석을 발견하고는 “고대 원숭이(古猿)”, “유인원(類人猿)”, “원인(猿人)”, “호모 사피엔스(智人)”로 분류하지만 유독 “원인과 유사한 사람(?猿人)”은 찾지 못했다. 이렇게 원인과 유사한 사람을 찾는 것이 과학의 “10대 현안”으로 남아 있다. 인류 시조(始祖)로 선포했던 여러 차례 발견은 모두 아주 빨리 부정되었다. 예를 들면 1892년에 발견한 사람과 원숭이 사이의 중간 화석으로 알려진 “자바인”은 원숭이의 두개골에서 40피트 떨어져 있던 사람의 다리뼈를 짜 맞춘 것이다. 학술계에서는 “자바인”을 부정하고 있으나 과학교육 방면에서는 여전히 선전하고 있다. 1984년에 이르러 “자바인”은 새로 발견한 “루시”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검증한 결과 루시 역시 대부분의 학자들이 부정하였다. 과학자들은 그것을 이미 멸종된 남방의 고대 원숭이로 인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확정했다.

과학의 10대 현안 : 원인(猿人)과 유사한 중간 종은 어디에? | 에포크타임스

만약 진화론이 정말이라면 중간형의 화석을 마땅히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왜 중간형은 존재하지 않는가? 사람들은 “화석기록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다윈의 해석을 되풀이할 뿐이다. 깊이 생각해 보면 거시적으로 볼 때 화석의 형성은 보편적이고 무작위적인데 왜 하필 중간형에 해당하는 것만 빠뜨렸겠는가?

관찰, 가설, 검증이라는 “3부곡”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자연법칙을 발견하고 과학정리를 추상화하는 원칙으로 많은 과학자들이 떠받드는 것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앞의 두 부분만 완성했다. 몇 세대의 사람과 백년이 넘는 노력으로도 가장 중요한 최후의 한 걸음인 “검증”은 아직까지도 설득력 있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또한 현재 각 학문의 발전추세와 진화론 자신의 제한성으로 볼 때 진화론이 마지막 한 걸음까지 걸어가는 것은 갈수록 아득해지고 있다.

3)진화론을 주입한 후과(後果) 

중공이 진화론을 주입하고 무신론을 보급한 목표는 동일한 것이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볼 때 사람은 자연계에서 임의로 생겨난 것으로 사람의 탄생은 아무런 목적이 없는 것으로 존재 역시 아무런 목적이 없다. 그렇다면 신(神)에 대한 일체 신앙은 “허무맹랑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사람은 다만 원숭이에서 진화해 온 것으로 다른 동물과 본질적인 구별이 없다. 동물과 식물,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 넘지 못할 경계선이 없다. 엥겔스의 관점대로라면 생명은 다만 “단백질이 존재하는 일종의 형식”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 따른다면 중국 전통문화 중의 생명에 대한 존중은 불필요한 “미신(迷信)”이 되는 것이다. 확실히 진화론의 관점으로 볼 때 나무를 베는 것과 개를 잡는 것, 원숭이를 죽이는 것이나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인 구별이 없다. 모두 일부 단백질 존재의 형식이 바뀐 것에 불과할 뿐이다.

2003년 3월 사스가 홍콩에까지 만연되었을 때의 일이다. 홍콩의 각 매체에서 사스 상황을 잇달아 보도했다. 보아오(博鰲) 포럼 비서장이자 전 중공 대외무역부 부부장 룽융투(龍永圖)는 이에 대해 “홍콩 신문에서 연속으로 10일, 20일, 30일에 걸쳐 1면에 급성폐렴사건을 보도하는데 누가 감히 오겠는가?” “만약 600만 명 중에 50만 명이 이 병에 걸렸다면 당황할 수 있다. 하지만 300명밖에 안되는데 이런 상황이니 내가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생명에 대해 극히 멸시하는 태도는 중공 고위층에 보편적으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그 피해를 심각하게 받고 있으나 그들 자신은 모르고 있다. 중공 정권이 수립한 이래 비정상적으로 사망한 중국인의 숫자는 약 8천만 명이다. 하지만 많은 중국인들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고도 죽은 생명들은 다만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길 뿐이다. 생명을 멸시하는 이런 태도는 중공이 진화론을 주입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중공이 끊임없이 진화론을 주입한 또 다른 사악한 결과[惡果]는 사람들에게 “적자생존 약육강식”을 당연한 원칙인 양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 “민족”이란 아름다운 구호 아래 약자에 대한 약탈이 정당화되었다. 소위 말하는 “발전”과 “안정”을 위해서는 희생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허(何) 원사(院士)의 “누가 당신에게 불행하게도 중국에서 태어나라고 했는가?”라는 말이나, 덩샤오핑이 6.4 민주화 운동 때 “20만 명을 죽여 20년간의 안정을 도모하자.”는 구호가 곧 이런 것들이다. 이런 법칙이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때 인심(人心)은 사회정의에 대한 희망을 저버릴 것이고 뒤따르는 것은 사회 도덕수준의 전반적인 추락이다.

89년 6.4 천안문 운동 무력 진압 | 에포크타임스

4) 현대과학을 주입한 진실한 목적──신앙 압제(壓制) 

막 정권을 잡자마자 중공은 전국적으로 소위 “봉건미신을 타파”하는 운동을 벌였고 최근에는 “과학을 숭상”한다는 구호를 덧붙였다. 수십 년 동안 학교 교재는 중공이 제정한 교학 강령에 따라 편집되어 교과지식은 단지 중공의 “사회 발전사”, “변증유물주의”의 증거로만 만들어 충돌이 없도록 했다. 중공은 또 전문적으로 “과학기술보급법”을 제정하여 거의 모든 도시에 정부가 출자한 “과학기술관(科技館)”, “과학보급소(科普站)”를 설립했다. 이것들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바로 “당 중앙”에 협조해 최하층부터 “과학보급” 운동을 진행해 “미신을 타파하고” “사교(邪敎)를 반대”하는 전시회 등을 진행하는 것이다. 수십 년 간의 주입으로 대다수 중국 사람들의 머리에는 과학이 최우선이란 단단한 관념이 만들어졌고 정치적인 높이에까지 상승되었다. 그리하여 “반과학(反科學)”과 “봉건미신을 하는” 것은 개인 신앙의 선택문제만이 아니라 나라를 망치고 백성을 망치는 것으로 전 국민이 함께 주살해야 할 “범죄 행위”가 되었다.

사실상 현대과학이 발달한 서방국가에서는 지금까지 정부가 과학이라는 몽둥이로 어떠한 신앙이든 비판한 적이 없다. 각 대학에서 학생들은 자유롭게 각종 종교단체를 조직할 수 있고 정부와 학교 측에서는 간섭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원적인 문화의 번영을 적극 장려한다. 비록 서방국가에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지하는 과학보급 활동이 있긴 하지만 “미신”을 타파하고 “사이비 과학”을 반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대개 이런 활동들은 재난 시 피해방지 요령 등으로 유치원부터 초등학교까지 재난피해 방지대책 등 과목을 늘 연습해 개인이 화재, 태풍, 지진, 해일 등의 비상상황이 발생할 때 대처하는 기능을 익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공의 교학강령에는 이런 내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재해가 빈번한 지역에서도 이런 내용은 현지 과학기술관, 과학보급소의 중점 활동이 아니다. 이는 중공이 현대과학을 주입하는 목적이 나라를 튼튼히 하고 백성을 잘 살게 하게 위한 것이 아니라 신앙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본래 한 사람의 신앙은 완전히 개인의 행위로 중공이 제정한 헌법에도 공민(公民)의 신앙자유를 부득불 승인하고 있다. 하지만 중공이 “과학”이란 커다란 기치를 내건 것은 바로 각종 종교와 신앙에 “미신”, “반 과학”이란 모자를 씌워 인민들을 “우매”하게 만들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중공은 이런 식으로 신앙을 제거하기 위해 과학을 “수호”한다는 외투를 걸쳤고 심지어 애국주의와 연계시켜 “미신” 때문에 국가가 “낙후”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선전한다.

중공이 정권을 잡은 초반인 1950년부터 시작해 전국 각지에서는 기독교, 천주교, 도교, 불교 등의 “미신” 조직을 해산하는 운동을 대규모로 펼쳤다. 이런 교회와 사찰, 방파(幇派)의 구성원들은 정부에 등록하거나 아니면 회개하고 새로 시작할 것을 요구받았다. 만약 등록하지 않으면 조사해서 밝혀질 경우 엄벌에 처한다고 했다. 1951년 정부에서는 명문으로 계속해서 회도문(會道門) 활동을 하는 자는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는 규정을 반포했다. 불완전한 통계의 의하면 적어도 3백만 명의 신도들이 체포되거나 피살되었다.

1999년 중공은 민간의 수련법인 파룬궁(法輪功)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때에도 역시 “과학을 숭상하고 미신을 타파”한다는 구호를 바탕으로 하고 “사교(邪敎)에 반대”한다는 구실로 파룬궁을 탄압했다. 나중에는 또 다른 기공 문파와 지하교회에 대해서도 탄압을 진행했다. 경찰이 기독교 지하교회 신도를 체포하는 이유는 종종 직접적으로 “신을 믿는 것이 곧바로 당에 반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근본적인 원인을 따지자면 무신론을 기초로 하는 중공 독재정권은 확실히 민간의 신앙을 용납할 수 없으며 “당중앙(黨中央)” 위에 지고무상(至高無上)한 신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파룬궁 수련생들이 평화롭게 연공하는 모습 | 에포크타임스
“무슨 근거로 나를 체포하는가?”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이 바로 죄이다!” | 에포크타임스

비록 중공은 진화론과 현대과학을 주입하는 것을 통해 그 이론적인 근거인 무신론을 확립했고 심지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과학무신론(科學無神論)”이란 단어를 만들기까지 했다. 그러나 과학발전 자체를 놓고 말할 때 그것으로는 무신론을 입증하지 못한다. 정통 종교의 관점에 따르면 사람은 신이 만든 것으로 사람이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바로 실험실에서 배양하는 세균이 사람의 존재를 부인하려고 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쓸모없는 짓이다. 왜냐하면 현대과학의 실증방법으로 무신론을 실증하자면 반드시 전 우주의 모든 공간과 시간 범위에서 신의 존재를 부인해야 하지만 여기에는 당연히 인류가 아직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공간과 시간의 범위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우주는 이렇게 크고 다양하며 복잡한데, 누가 이 호한(浩澣)한 거시적인 데서부터 무한히 미시적인 데에 이르기까지 고급생명은 오직 사람만 존재한다고 보증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생명의 존재형식이 단지 우리가 알고 있는 단백질, 아미노산의 형식에만 의지할 뿐이라고 누가 보증할 수 있겠는가?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 우주천문학에서는 인류가 관측할 수 없는 암흑물질이 우주의 3분의 2를 점유하고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설령 인류의 현존 관측기술을 총동원할지라도 여전히 우주의 3분의 2는 미지에 속한다는 말이다. 현대 이론물리학에서 제기된 “막(膜) 우주론”에 따르면 우리 우주는 단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3차원 공간에 불과한 것이 아니며 수많은 공간이 여러 층의 막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일종의 다층 초공간(多層超空間) 위에 있다고 여긴다. 다시 말해 다른 공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공간에 고급생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누가 보증할 수 있겠는가? 만약 다른 공간에 고급생명이 존재하고, 그들이 인류를 훨씬 뛰어넘는 대자비를 갖고 있고 우주 진리를 깨달은 큰 지혜와 초상적인 능력을 구비하고 있다면 그럼 인류에 대해 말하자면 바로 불(佛), 도(道), 신(神)이 아니겠는가? 논리적으로나 기술적으로는 물론 과학적인 각도에서도 무신론을 입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지적할 것은 개인이 “무신론”을 신봉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신을 믿건 믿지 않건 그것은 모두 논쟁할 필요도 없는 자유로운 선택이다. 정상적인 사회에서라면 유신론과 무신론 신앙은 완전히 병존가능하며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가 강제적인 수단으로 전 사회에 무신론을 주입하고 신에 대한 신앙을 탄압하며 전체 사회의 신앙을 잃게 한다면 반드시 원래 있었던 전통사회의 가치체계가 의지할 곳을 잃고 전 사회를 물질주의, 방임주의의 수렁 속으로 빠지게 할 것이다.

5) “과학”을 중시하지 않는 중공, 마르크스주의는 반자연적 

비록 중공이 자신을 과학의 전도사로 자처하고 있고 아울러 특히 한 무리의 “사이비 과학에 반대”하는 어용 전문가들을 비호하고, “미신에 반대하고 사이비 과학에 반대”한다고 정부에서 대량의 자금을 들여 선전하고 있으며 심지어 과학이 발달한 그 어떤 서방국가보다 많은 선전을 하고 있다. 하지만 중공은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모두 곳곳에서 자연법칙에 위반된 실질을 감출 방법이 없다.

2006년 탕산(唐山) 대지진 30주년을 맞아 『탕산경세록(唐山警世錄)』이라는 장편 조사보고서가 나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중공 선전부가 조용히 봉쇄하였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대지진이 발생하기 전에 중국 과학기술자들이 정확하게 장차 도래할 재난을 예측했다는 것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공황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지진예보를 발표하지 말라.” | 에포크타임스

그러나 당시 중공 정국이 혼란하여 정치적인 안정이 급선무일 때라 누구도 감히 지진예보를 신문에 싣거나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못했다. 유일한 예외는 허베이(河北) 청룽(?龍)현 과학위원회의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비공식적인 장소에서 국가 지진국 과학자의 지진상황 예측을 전해 듣고 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진이 일어날 것을 통지한 것이다. 이 때문에 탕산에서 불과 115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청룽 현에서는 1976년 대지진때 단 한명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 기적과 같은 사례는 유엔 공중관리와 재해(災害) 과학 전 세계 조정계획에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까지도 중공은 정치를 우선으로 자연법칙을 위배하고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주는 범죄행위를 여전히 저지르고 있다. 2003년 전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한 사스(SARS)는 2002년 11월 중국 광둥(廣東)성에서 가장 먼저 발생했다. 하지만 당시 중공 내부는 마침 장쩌민의 16대 퇴위(退位)문제로 쟁론을 벌이고 있었고 정권 안정을 위해 전염병 상황을 은폐했다. 결국 봄이 지나면서 전염병 확산을 통제할 기회를 놓쳐 전 세계적인 사스 폭발을 초래했던 것이다. 여기에 어디 과학적 태도의 그림자라도 있는가?

수십 년 동안 중공은 큰 공훈을 세우고 열광적인 정치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연법칙을 위해하는 어리석은 짓들을 저질러왔다. 결국 재앙을 당한 것은 모두 무고한 중국 백성들이었다. 가령 싼샤공정(三峽工程)을 예로 들면, 곧바로 중공이 연기한 정치가 일체 “과학적인 정책결정”보다 높다는 것의 표상이다. 1986년 중공은 싼샤공정에 대해 “논증”을 결정했다. 중공은 세기를 뛰어넘는 이 거대한 공정을 통해 “개혁개방의 성과를 전면적으로 전시”하고 자연을 통제하는 능력을 과시하며 자신의 집권합법성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공정에 반대한 저명한 수리(水利)전문가 황완리(黃萬里) 교수를 일부러 공정 논증에 참여시켰다. 황완리 교수는 여러 차례 중공 지도부에 서한을 보내 싼샤공정이 초래한 위해성을 알렸다. 그는 또 발표된 논증 보고서는 오류투성이로 반드시 작업을 중단하고 새로 심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중공은 이에 대답하지 않았다. 싼샤공정의 가능성에 대한 “논증”이 끝나갈 무렵 마침 1989년 6.4사건이 발생했고 공정에 반대한 인사들은 일부는 연루되어 투옥되었고 일부는 탄압을 받았다.

당시 생태환경논증 팀의 보고서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싼샤공정은 생태환경에 대해 “이익보다는 폐단이 훨씬 크다.” 이외에 중국 과학원 환경과학위원회 싼샤지도소조 판공실에서는 또 일단의 전문가들이 싼샤공정의 시행에 반대했다. 이것은 물론 중공이 좋아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에 실행성 논증 지도소조의 기술책임을 맡은 판자정(潘家錚)은 1990년 7월 6일 국무원에서 소집한 싼샤공정 논증보고회에서 생태환경논증 팀의 보고서 결론을 “이익보다는 폐단이 훨씬 크다”에서 “싼샤공정은 생태환경에 광범위하고 심원(深遠)한 영향을 끼친다”라고 뜯어 고쳤다. 나중에 장강(長江) 수리위원회에서는 또 원래 생태환경논증 팀의 보고서가 국가환경보호국의 비준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절차상의 하자를 이유로 이 보고서를 부정했다. 겨우 6개월 후 새로 편집된 보고서의 결론에는 “이익이 폐단보다 훨씬 크다”로 변했다. 1991년 3월 중공 두목 장쩌민의 싼샤공정에 대한 적극적인 선전과 공사개시를 준비하라는 지시가 나온 후 1991년 연말부터 1992년 연초까지 중국 매체에서 싼샤공정에 대한 대량의 보도를 통해 반대하는 목소리는 완전히 제압 당했다.

2000년 5월 17일 공정을 주도했던 장광더우(張光斗)가 싼샤공정의 실제 홍수방어 용량이 설계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오류를 발견하고는 싼샤건설위원회 판공실 주임에게 “이 일은 사회적으로 공개해서는 절대 안 된다.”(『싼샤탐색(三?探索)』27호)고 거듭 부탁했다.

이외에 국내외 전문가들의 지적에 따르면 싼샤공정의 생태환경에 대한 파괴는 싼샤공정의 경제적인 이익을 훨씬 능가하며 단지 싼샤댐에서 물을 저장해 유량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수질오염에도 손실을 주어 댐건설로 인한 발전수입을 초과한다고 지적했다. 싼샤공정 논증 중에서 환경보호 책임을 맡은 장광더우는 공정이 시작된 후인 2000년 갑자기 싼샤댐의 오염문제가 아주 심각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정부교부금으로 빨리 처리할 것을 건의했다. 그가 추산한 바로는 약 3000억 위안이 필요하다고 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싼샤공정에 들어가는 총투자 비용이 1800억 위안이라는 점이다. 공정에 문제가 너무 많아지자 나중에 중공에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았고 2006년 5월 이 대공정이 준공되었으나 현 지도자는 끝내 준공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좌측: CCTV 보도―”당의 현명한 지도하에 2천억 위안을 투입해 충칭지역의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하게 만들었다!” 우측: 충칭 지역 주민들이 이상고온과 가뭄으로 고생하는 모습. | 에포크타임스

중공에게 “과학”과 “과학자”란 모두 정치적인 필요에 의한 노비에 불과하며 쓸모가 없어지면 타도하고 마구

짓밟는다. 필요할 때는 중공과 다른 견해를 지닌 사람들을 공격하는 몽둥이로 사용한다. 한편으로는 진실을 말하거나 독립적인 인격을 지닌 황완리와 같은 과학자들은 중공 치하에서 유감스럽게 생을 마칠 수밖에 없고 다른 한편 앞서 언급한 판자정이나 장광더우와 같이 중공의 비위를 잘 맞춰 순종하며 중용되는 “과학자”들이 있다. 중공이 “과학계”에서 파룬궁 등 민간 신앙을 탄압할 필요가 생기자 이 두 사람은 소위 “중국 반사교(反邪敎)협회” 발기인으로 변모했다.

중공 중앙선전부에는 과학처(科學處)가 있어 과학영역에서 이데올로기 문제를 주관한다. 오늘날 중공의 “사이비 과학에 반대”하는 기수인 허춰슈(何祚?)는 1950년대에 이미 이 부처의 “대장” 중 한 명이었다. 지난 세기 중공 중앙선전부에서 과학처에서 발기한 소위 “사이비 과학” 비판운동이 연달아 펼쳐지면서 거의 모든 자연과학 학과에 파급되었다. 예를 들면, 모건(Thomas Hunt Morgan)의 유전학설 비판, 멘델의 유전학 비판, 량쓰청(梁思成)의 건축학 비판, 마인추(馬寅初;맬더스)의 인구학설 비판, 양자역학의 일부 이론에 대한 비판, 상대성 이론에 대한 비판,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에 대한 비판 등이다. 전형적인 것을 예로 들자면 사이버네틱스는 “순전히 기술적인 관점에서 사회현상을 해석하고 이를 통해 자산계급사회의 부패와 몰락의 근본원인을 덮어 감춘다.”라고 비판받았다. 아인슈타인은 “자연과학 중 최대의 자산계급 반동학술권위”로 비판받았고 상대성 이론은 “철두철미 형이상학과 유심론적인 것”으로 비판받았다. 대폭발(Big Bang)이론과 현대 우주론은 “학술영역에서 유심주의의 전형”이자 “종교와 과학에 새로운 논증을 공급한” 사이비과학으로 비판받은 등이다.

중공이 수십 년 간 살인과 운동을 함에는 모두 하나의 황당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소위 공산주의 “인간 천당”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공에 의해 “과학”의 경전으로 손꼽혔던 “공산주의 이론”은 사실상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왜곡되고 사악한 학설이다. 공산주의 이론에 따르면 소위 공산주의는 인류사회의 “최고형태”로서 그 이론적인 기초는 생산력의 고도의 발전을 통해 물질적인 재부가 극히 풍부해져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대동(大同)사회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고 자연 자원은 도리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간 씽크 탱크인 로마클럽에서 1972년에 발표한 유명한 『성장의 한계』라는 연구보고에서는 인류의 생산은 무제한적으로 증가할 수 없음을 지적했다. 또한 처음으로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환경과 발전문제에 대해 인류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일찍이 1980년대에 유엔 “세계 환경과 발전위원회”에서 발표한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우리 공동의 미래』라는 보고에서는 “환경 위기, 에너지 위기와 발전위기는 뗄 수 없다. 지구의 자원과 에너지는 인류의 발전을 충족시킬 만큼 충분하지 못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보고에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개념을 제출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인류 발전의 수요와 지구의 유한한 자원 사이의 모순 때문에 공산주의의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극히 풍요로운 사회에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공산주의 이론을 제출했을 때는 인류가 마침 공업화의 초기시대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인류와 환경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공산당은 100여 년 전에 마르크스가 제출한 “공산주의” 이론을 보편타당한 진리로 간주하고 있다. 이 자체가 바로 우매(愚昧)하고 맹종(盲從)하는 태도가 아닌가.

6)과학자의 신앙은 과학기술성취에 방해되지 않아

장쩌민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 대통령 클린턴에게 “미국은 과학이 이렇게 발달했으면서 왜 또 이렇게 많은 종교와 신앙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것은 중공 당 두목 자체가 우매하고 무지함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사실 중국인들 역시 마땅히 중공에 물어보아야 한다. 중공이 정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현대과학을 주입하고 소위 “과학무신론”을 수십 년 동안 선전해 왔으면서도 왜 13억 인구의 대국에서 아직까지 단 한 사람 노벨상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하는가? 하지만 해외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그런 화인(華人)들은 도리어 모두 중공의 세뇌를 받지 않은 것이 아닌가? 사실 이것은 바로 중공이 현대과학을 주입한 목적이 중국 과학기술의 발전을 가져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신앙을 탄압하고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창조에 필요한 것은 바로 자유로운 사상환경이다. 하지만 중공의 주입방식은 도리어 극력 과학과 신앙을 대립시키고 민중들의 머릿속에 다음과 같은 고정관념을 형성하게 했다. 즉, 신에 대한 신앙은 반드시 “우매(愚昧)”와 “반과학(反科學)”을 초래하며 종교 신도들은 모두 아무런 교양도 없으면서 단지 마음의 위로만을 얻으려는 어리석은 사람들로 묘사했다.

사실 역사를 살펴보면 과학이 발전하던 시기의 위대한 과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데카르트(Ren? Descartes), 갈릴레이(Galileo Galilei), 뉴턴(Isaac Newton)을 포함하여 모두 자신들이 절대적으로 신을 신앙한다고 인정했으며 이 세계는 신의 걸작이기에 법칙이 있으며 단지 과학자들이 발견하고 실증하기만 하면 된다고 보았다. 과학연구와 개인의 신앙은 공산당에서 선전하는 것처럼 물과 불같이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관계가 전혀 아니다.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상당수의 위대한 과학자들이 종교를 신앙하는 “유신론(有神論)”자라는 점이다. 가령 현대 과학의 초석을 다진 케플러(Johannes Kepler), 근대화학을 창립한 보일(Robert Boyle), 전기분해의 원리를 발견한 패러데이(Michael Faraday), 전보를 발견한 모오스(Morse), 열당량을 발견한 줄(James Prescort Joule), 전자기학 이론을 집대성한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원자 이론의 아버지로 불리는 돌턴(John Dalton), 현대 유전학의 기초를 다진 멘델(Gregor Johann Mendel),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Alexander Fleming), 미생물학을 창시한 파스퇴르(Louis Pasteur) 등은 모두 독실한 종교 신자였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 | 에포크타임스

여기서 특별히 언급할 만한 사람은 고전 물리학의 거장인 뉴턴(Isaac Newton)이다. 뉴턴은 아주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중공은 온 세상이 공인하는 이 사실을 감출 방법이 없자 교과서에서 일부러 뉴턴이 만년에 종교에 입문하여 이 때문에 창조가 없었다고 사람들을 오도하였다. 젊어서는 많은 과학적 발견을 한 것은 “무신론”적 세계관의 지도하에 한 것이며 만년에는 종교 때문에 과학적 창조에 장애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뉴턴이 경건한 기독교 신자가 된 것은 과학연구에 종사하기 훨씬 이전부터였고 아울러 그의 신앙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뉴턴이 캠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할 때 이미 경건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는 늘 노트나 교과서 여백에 자신의 기도를 적곤 했다. 지금도 대영박물관에 많은 것이 보존되어 있다. 더욱이 대학에 재학하던 시절 그는 늘 자신의 룸메이트와 함께 학교 밖에 나가 가난한 사람들에게『성경』책을 나눠주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때문에 방세와 식료품비용을 제외하고, 학생시절 뉴턴이 가장 많은 돈을 지출한 것은 성경책을 구입하는 비용이었다. 심지어 뉴턴은 과학에 대한 사색에서도 자신의 기도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그는 늘 신앙의 사색 속에서 과학을 생각했으며 과학의 사색 속에서 신앙을 생각했다. 나중에 뉴욕 대학 역사학부 교수가 된 메이슨이 저술한 『뉴턴 전기』에서는 “근대 과학은 하느님에 대한 뉴턴의 묵상에서 나왔다.”라고 서술할 정도였다.

아이작 뉴턴 | 에포크타임스

미국 컬럼비아 대학 교수인 해리어트 주커만(Harriet Zuckerman) 교수가 1977년 저술한 『과학엘리트 :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들(Scientific Elite; Nobel Laureates in the United States)』이란 책의 통계를 보면 1901년 노벨재단이 설립된 이후 미국에서 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수상한 286명 중에서 73%가 기독교 신자였으며 19%는 유태교 신자였다. 저명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파인만은 일찍이 “수많은 과학자들이 과학을 믿지만 또 하느님도 믿는다. 양자 사이는 완벽하게 일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현대 항공우주과학의 아버지로 통하는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은 일찍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우주의 끝없는 신기는 조물주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신앙을 실증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우주의 존재 배후에 초월적 합리성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과학자는, 과학의 진보를 인정하지 않는 신학자와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없다.”

7)실증과학은 우주법칙을 탐구하는 유일한 방식이 아니다

1994년 3월 1일 진시황의 병마용 2호 갱을 정식으로 발굴하였다. 고고학자들은 2호 갱 안에서 8개의 모서리가 있는 청동 검을 발견했다. 그런데 고고학자들이 슬라이드 캘리퍼스로 8개 모서리의 오차를 측정한 결과 놀랍게도 머리카락 한 올보다도 작았다. 이미 출토된 19개의 청동 검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이것들이 황토 속에서 잠든 지 2000여 년이 지났음에도 출토 당시 완전히 새것과 같았으며 칼날도 예리하기 그지없었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이 측정해 보니 검의 표면에는 10mm 두께의 크롬화합물이 있었다. 이 발견은 전 세계를 진동시켰는데, 왜냐하면 “크롬산화물”을 처리하는 방법은 최근에야 나타난 아주 선진적인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1937년, 미국에서는 1950년 이후에 발명한 것으로 아울러 특허를 신청한 것이다.

이것뿐만 아니라 고고학자들이 진시황 1호 갱을 정리하던 중에 150kg에 달하는 도용(陶俑 흙으로 만든 사람 모양의 인형)에 눌린 청동 검을 하나 발견했다. 그 휘어진 정도는 45도를 넘었다. 사람들이 도용을 옮긴 후에 놀라운 기적이 나타났다. 바로 가늘고 얇은 청동 검이 단번에 곧게 펴졌으며 자연스럽게 원래 모양을 회복했다. 현대 금속학자들이 꿈에도 그리던 “형상기억합금”이 2000여 년 전의 고대 묘 안에서 나타난 것이다. “형상기억합금”은 현재 용도가 아주 넓어 심지어 여성들의 브라지어에까지 사용한다. 하지만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1980년대의 과학기술문명이 무려 기원전 200여 년에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을.

진(秦)나라 시대의 청동 검 | 에포크타임스

우리 한번 가정해 보자. 만약 상술한 신기한 주조기술이 실물로 남겨지지 않았고 단지 중국의 고서 중에 기록만 남아있고 아울러 20세기 초의 인류처럼 이와 유사한 기술을 발명하지 못한 상황에서 고서의 기록만을 보았다고 가정해 보자. 중공 당문화의 소위 중국 고대문명을 ‘비판적으로 계승’한다는 관점에 따른다면 현대인들도 발명할 수 없는 기술이 고서 중에 나온다면 그럼 틀림없이 ‘미신’이나 ‘예술적인 상상’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동시에 어용 ‘사이비에 반대’하고 ‘거짓을 타격’한다는 어용학자들은 고서의 문장을 인용하며 황당한 오류라고 논증할 것이다.

사실 이것은 바로 중공이 장기간 주입한 현대과학이 사람들로 하여금 현대 실증과학만을 유일한 진리로 떠받들게 하여 굳어진 사유표현으로 만든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현대과학이 아직 탐구하지 못한 영역이나 해석하지 못하는 현상에 대해 일률적으로 배척하거나 심지어 ‘사이비 과학’, ‘미신’의 모자를 씌워 심하게 공격한다.

중국 고대의 과학기술은 서양 실증과학의 길을 걸어가진 않았지만 이 때문에 그것이 황당무계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앞에서 한 가정 중에서 우리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은 것은 중국인의 선조들이 수천 년 동안 남겨온 문화유산 중 ‘미신’으로 여겨졌던 수많은 부분들 가운데에는 분명 현대과학이 인식할 수 없는 고대문명의 정수가 있다. 고대 한의학에서 경락(經絡)의 발견, 침구(鍼灸)의 발명은 현대 과학에서도 이미 피부 전기저항 등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경락과 혈위(穴位)의 객관적인 존재를 실증했고 중의학의 역할 역시 이미 세계보건기구의 승인과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인체의 경락과 혈위는 사실상 일종의 생명 특징으로 단지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서만 체현되며 경락의 운행은 사람의 정신작용의 영향을 받는다. 아울러 해부학적인 구조의 특징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실증과학의 길에 따라 서양의학의 해부학 방법을 채용한다면 아예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중국 고대의 경락도 ― 족양명위경 | 에포크타임스

 

특히 옛사람들이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의 오행상생과 상극을 이용해 발견한 혈위의 개합(開合)과 에너지가 시간에 따라 흐르는 법칙은 임상 치료에 응용하여 현저한 효과를 보았다. 이것은 해부학을 기초로 하는 서양의학에서는 더욱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사실상 중국 고대인들은 가부좌 수련을 통해 경락의 운행을 직접 관찰한 것이다. 명대(明代) 이시진이 저술한 『기경팔맥고(奇經八脉考)』에서는 “내경(内景)의 수도(隧道)는 오직 반관자(返觀者)만이 밝게 관찰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중국 고대과학에서는 천인합일을 중시했으며 사람의 물질신체, 사람의 정신과 전반 우주를 유기적인 일체(一體)로 보았으며 직접적으로 정체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분명한 것은 일단 인류 자체의 정신활동 역시 연구대상의 전체적인 환경 속에 들어가게 되면 실증과학에서 요구하는 반복실험과정과 분해화원 등의 수단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한 점에서 본다면 실증과학이란 몽둥이를 휘둘러 중국 전통수련문화의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은 자신은 진리를 장악하고 있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사실상 정반대로 당문화라는 편협한 시각으로 현대과학을 종교화, 권위화, 심지어 정치화하는 것이다.

8)실증과학의 제한성

현대과학은 이미 인류 생활과 관련된 거의 모든 영역에 침투해 들어왔다. 이것은 중공으로 하여금 아주 쉽사리 경직된 사유방식을 이용해 현대과학을 주입하고 심지어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현대과학만이 진리이며 ‘비과학’적인 것은 오류의 대명사로 느끼게 만들었다. 사실상 과학(Science)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Scientia’에서 온 것으로 원래는 ‘학문’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며 진리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말하자면 과학은 탐색과 우주법칙에 대해 끊임없이 접근하는 방법 및 이를 통해 형성된 지식체계이다. 현대과학은 형식논리와 실증적인 방법을 기초적인 인식으로 물질세계의 법칙을 탐색하는 일련의 방법과 지식체계이며 여기서 우리가 실증과학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말한다면 실증과학 역시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며 그것은 마땅히 수시로 새로운 사실의 검증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하며 아울러 사람들의 인식능력과 사물 자체의 발전에 따라 발전해 나간다. 동시에 우리는 또한 현대 실증과학의 탐구방법이 우주 진리를 탐색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는 보증할 수 없다.

현대과학은 고속으로 발전하는 동시에 이미 점차적으로 인류에게 수많은 골치 아픈 난제들을 가져왔다. 멀리 내다보는 일부 과학자들은 이미 현대과학의 제한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서양에서 유래한 실증과학의 철학적 기초는 완정한 세계를 두 개의 독립적인 범주로 구분하는데 바로 물질과 정신이다. 이를 통해 건립된 자연관은 사람과 자연, 사람과 세계, 마음과 물질을 분할한다. 그 후과는 바로 정신활동의 본질, 정신과 물질의 관계, 물질에 대한 정신의 작용을 실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은 정신과 물질이 일체로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신활동이 현대 실증과학의 시야 밖으로 벗어난 후 도덕은 아무런 물질적 기초가 없는 순수한 설교로 변했고 사람과 자연 역시 더는 완정한 일체가 아니었다. 그 후과 중 하나가 바로 사람과 자연의 대립이다. 사람이 주도하는 과학의 발전은 도리어 아주 큰 맹목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과 이를 통해 초래된 산업혁명이 가져온 대규모 화석연료를 에너지원으로 이용하는 시대는 200년 후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온실효과를 초래해 인류를 곤경에 처하게 했다. 또한 살충제 DDT의 인공적인 합성은 작물을 병충해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기에 일찍이 인류의 행복으로 여겼다. 그러나 인류가 생각하지 못한 것은 몇 년 후 살충제에 저항력을 지닌 벌레가 나타났고 인류의 음식 중에서 DDT가 발견되었으며 더욱 놀라운 것은 청소년들의 인체 내에 심지어 모유 속에서도 DDT가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코카인은 임상적으로 국소마취제로 사용되는 약인데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더 많은 생명들을 구할 수 있는 좋은 약이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를 흡입하는 사람의 숫자가 천만에 달한다. 심지어 코카인으로 훼멸시킨 생명이 그것이 구한 생명보다 많다는 말이 전혀 과장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이다. 아인슈타인이 E=MC2이란 공식을 발견했을 때 몇십 년 후에 ‘핵위협’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다모클레스의 칼(Sword of Damokles)이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은 일종 강력한 도구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가 아니면 재난을 가져다 줄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린 것이지 도구 자체에 달린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인슈타인이 보기에 과학은 인류에게 행복인지 아니면 재앙인지는 과학 자체로서는 해결할 수 없고 오직 사람 자신이 해결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점에서 그가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은 전통 종교 외에는 비교할 만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만약 우리가 선지자들이 만든 유대교나 예수의 가르침에서 나온 기독교 중에서 나중에 더해진 모든 것들, 특히 전도사들이 견강부회한 그런 것들을 전부 제거해 버린다면, 그럼 남는 것이야말로 인류사회의 모든 폐단들을 치유할 수 있는 가르침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을 보면, 아인슈타인은 이미 정신과 물질의 분리로 초래된 현대 과학의 제한성을 인식하고 있다.

아인슈타인 | 에포크타임스

 

비록 일반 민중들, 특히 중공 당문화의 주입을 받아 현대과학은 불가능한 것이 없음을 믿는 수많은 대중들은 아직도 현대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가져다 준 각종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이미 이 문제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1992년 브라질의 리오데 자네이로에서 열린 92년의 국제연합 환경개발회의에는 각국 대표단이 참가했다. 120여 노벨상 수상자들이 서명한 편지가 회의장에 전해져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편지의 내용 중에는 “인류와 자연은 이미 강렬한 충돌 중에 있다. 인류의 활동은 환경과 주요 자원에 심각한 파괴를 초래했고 이런 파괴는 대개 회복 불가능하다. 만약 이에 대한 검토를 진행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많은 활동들은 장차 우리가 희망하는 인류사회와 동식물 왕국의 장래를 극히 위험한 경지에 처하게 할 것이다. 아울러 이런 생명세계의 변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방식의 세계를 유지할 수 없게 할 것이다. 장차 도래할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인류의 활동을) 개변할 것이 이미 당면현안으로 되었다.”

여기서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것은 우리는 현대과학을 비난할 의도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제출한 것은 현대과학의 제한성으로 이는 당문화가 조성한 오류를 분명히 하고 중공이 현대과학을 주입한 진실한 목적이 신앙을 압제하고 무신론을 주입하며 최종적으로 사상을 개조하려는 목적에 도달하려는 것임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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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오천년 문화는 천지, 신명(神明)과 사람의 관계에서 위에서 아래에 이르기까지 가치체계를 확립하고 신명을 경외(敬畏)하며 천명을 믿고 선악에는 보응이 있음을 믿으며 천도(天道)에 순응해 반본귀진(返本歸眞)하는 것이 전통문화의 핵심적인 가치이다. 중공은 ‘과학을 숭상’하고 ‘봉건미신을 타파’한다는 큰 깃발을 치켜들고 이런 핵심가치들을 일률적으로 ‘봉건 찌꺼기’로 폄하해 버렸다. 동시에 아직 입증하지도 못한 진화론을 주입하고 단편적이고 종교화된 현대 실증과학을 수단으로 하여 폭력에 의지한 잔혹한 정치투쟁으로 무신론과 투쟁철학을 널리 보급하려는 중공의 목적에 도달하고자 했다. 비록 오늘날 중공이 겉으로는 외관을 꾸며 어쩔 수 없이 전통문화를 보급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무신론의 기초를 중국에 확립했기 때문에 신에 대한 신앙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우매한 미신’으로 조소하는 대상이 되었다. 중공이 아무리 많은 사찰을 짓고 아무리 많은 ‘공자학원(孔子學院)’을 세울지라도, 아무리 ‘8영8치(八榮八耻)’와 ‘조화사회 건설’ 등의 솔깃한 구호를 외칠지라도 중국문화의 신운(神韻)은 이미 중공에 의해 말살되었다. 이렇게 내재적인 핵심가치를 상실한 문화형식은 단지 뿌리 없는 나무에 불과하다.

중공은 폭력의 의협에 의지해 ‘무신론’으로 사람들의 사상을 강제로 개조하여 하늘과 신을 존경하고 자연을 본받는 전통문화의 뿌리를 뽑아놓고 말았다. 지금의 사회질서는 겨우겨우 노인들이 남겨놓은 극소수가 전통 도덕관념에 의지해 유지되는 것 외에 신앙이 없는 도덕과 문화는 분명히 창백하고 나약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언제든지 횡행하는 물질주의, 공리주의와 방임주의에 의해 철저히 훼멸될 수 있다. 중국의 아름다운 덕은 모조리 씻겨나가 텅 비어 버렸고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신앙은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폄하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생명의 가치를 찾지 않고 인격의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으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그 어떤 거리낌도 없어 남은 것은 오직 ‘당장 폼 나게 살고’, 감각을 만족시키며 끝없이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다. 중공이 사상을 개조한 결과 중국인들의 마음은 돌아갈 곳이 없어져 버렸고 중화 민족은 입명(立命)의 토대를 상실해 버렸다.

에포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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