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뻗은 중국 지도부의 긴 팔 ‘중국학생연합(CSSA)’

한동훈
2020년 9월 16일
업데이트: 2020년 9월 16일

“본 협회는 대한민국 주재 중화인민공화국 대사관 교육처의 승인으로 설립됐다.”

“본 협회는 대한민국 주재 중화인민공화국 대사관 교육처의 지도를 받는다.”

국내 한 대학 중국인 유학생 모임 회칙 제1조와 제9조의 내용이다. 중화인민공화국(중공)과의 연결을 명확히 밝히고 있는 부분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스스로를 그냥 ‘OO대 유학생 모임’이라고 하지만, 정식 명칭은 ‘중국학생학자연합회’(中國學人學者聯誼會·이하 중국학생연합)이다. 영어 약칭은 CSSA다.

중국학생연합은 중국인 유학생 친목 단체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중공이 전 세계에 진출한 수십 만명의 중국인 유학생을 통제·관리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 단체를 중공 지도부의 ‘해외로 뻗은 긴 팔’로 부른다.

폼페이오 장관은 올해 2월 8일(현지 시각) 전미주지사협회 연례대회에서 “베이징은 중국학생연합 등의 단체를 통해 긴 팔을 움직인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한 대학 중국어 홈페이지에 개설된 중국학생연합 페이지. 하단에 중화인민공화국 주대한민국 대사관 교육처의 승인을 받아 설립됐다는 내용이 기재됐다. | 화면 캡처

외국 대학으로 뻗은 중공의 긴 팔 ‘중국학생연합’

중국학생연합이 각국 대학에서 벌이는 행태는 국내에서도 몇 차례 목격된 바 있다.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11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에서는 학생들이 붙인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가 갈갈이 찢긴 채 인근 쓰레기통에서 발견됐다.

학문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대학가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학생들의 주목을 끌었고, “중국인 유학생들이 저지른 일”이라는 목격담이 제기됐다.

그러나 ‘고려대 중국 유학생 모임’은 해명 대신 “홍콩 시위는 폭동” “국가통일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모든 중국 공민의 책임”이라는 이라는 반박 대자보를 써붙였다.

지난해 11월 고려대 게시판에 붙은 홍콩시위 지지 대자보(왼쪽)와 해당 대자보가 훼손된 모습.(고파스) /뉴스1

13일 한양대에서는 한국 학생들이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를 붙이자, 중국인 유학생 수십명이 몰려들어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도 벌어졌다.

서울대, 연세대 등 여러 대학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줄이었다.

모든 중국인 학생들이 중국학생연합에 동원되는 것은 아니다. 홍콩 시위 지지의사를 밝힌 중국인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나 중국학생연합 운영진이 중공 영사관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움직이는 것은 분명하다.

양측은 자주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받는다. 중국학생연합 모임이 아예 영사관에서 열리기도 한다. 영사관에서 행사를 열면 중국학생연합 회원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선다.

각 대학 홈페이지 중국어판에서는 중국학생연합 지부 페이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회칙이나 활동 내역에는 이 단체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내용이 많다.

“뉴욕 주재 중국 영사관이 승인한 노스이스턴대학의 유일한 중국인 학생 단체” (미 노스이스턴대 중국학생연합·UKCSSA)

“영국 주재 대사관 교육처의 지도하에 설립”(전(全) 영국 중국학생연합·CSSAUK)

“프랑스 주재 대사관 교육처 지도하에 독자적으로 사업을 진행, 대사관 교육처에 등록된 중국 유학생∙학자는 본회 회원 자격을 자동으로 취득…”(전(全) 프랑스중국 학생연합)

미국 국가방첩안보센터(NCSC)가 정리한 중국 당국의 미국 대학 침투 설명도 | NSCS

중공 영사관, 중국인 유학생 조직 교육·통제

중공 영사관과 현지 중국학생연합 사이의 밀착관계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지난 2017년 2월 2일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캠퍼스는 그해 6월 졸업식에 “달라이 라마 14세를 초청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해당 대학 중국학생연합에서는 “우리는 사건 발생 직후 로스앤젤레스 주재 (중공) 영사관에 해당 사실을 알렸고, 현재 영사관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고 즉각 항의 성명을 냈다.

학생들은 대학에 강력하게 항의한다는 의미였겠지만, 영사관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실토한 꼴이 됐다.

호주 수도권(ACT) 중국학생연합 홈페이지의 ‘활동 내역’ 게시판에는 지난 2013년 11월 호주 주재 중공 대사관 교육처가 개최한 ‘호주 중국학생연합 실무회의’가 기록됐다.

이에 따르면, 회의에는 호주 주재 중공 대사관 리종샹 참사관이 참석해 “우리 교육처의 직접적인 지도 아래 호주의 대학별, 지역별 중국학생연합이 건실하게 발전해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했다.

2008년 4월 27일 서울 올림픽 공원에서 벌어진 중국인 유학생 난동 | Chung Sung-Jun/Getty Images

중공의 해외 행동부대 역할

중공이 중국인 유학생을 관리하는 것은 현지 행동부대로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폭력 시위 사건이다. 당시 세계 곳곳 성화가 봉송되는 곳마다 티베트, 위구르족, 기타 반체제 인사들이 중공에 항의시위를 벌였다.

그해 4월 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이들의 시위가 벌어졌는데, 이에 맞서 캘리포니아 주재 중국 영사관은 중국인 유학생 약 7천명을 동원해 이들의 기세를 억눌렀다.

4월 10일 베이징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에는 “샌프란시스코 성화 봉송을 따라 약 3만 명 이상의 중국인들이 성화봉송을 지지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티베트 독립분자 및 다양한 반동세력과 충돌이 예상된다”며 전했다.

4월 27일에는 대한민국 서울 올림픽 공원에서 열린 성화봉송 행사에서 중국인 유학생 약 6천5백명이 집결했고, 중공의 티베트 억압과 다른 인권탄압에 항의하는 200여명 가량의 한국 시민단체 회원들을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2019년 홍콩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전 세계에서 지지 활동이 이어지자 중국학생연합은 또 다시 10년 전의 활동을 반복했다.

작년 8월 16~18일 호주 멜버른, 일본 도쿄,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프랑스 파리, 캐나다 토론토 등 세계 각국 도시에서는 친 공산당 유학생과 중국인들이 ‘자발적으로’ 48시간 연속집회인 ‘나라 사랑, 홍콩 보호’ 캠페인을 벌였다.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현지인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게 캠페인 내용이었다. 현지인에 대한 욕설과 모욕이 수반됐다.

홍콩의 과학기술대학 사회학부 한 교수는 ABC와 인터뷰에 “조직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면, 이런 사건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중공 지도자들의 방문을 환영해 ‘성대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도 중국학생연합의 주된 임무다.

2005년 호주로 정치 망명한 천융린 전 시드니 주재 중국 영사관 일등비서관은 2014년 언론 인터뷰에서 “외국에 방문한 중공 지도자를 환영하거나 항의 단체를 저지하고, 현지의 정보를 수집하는 데 중국인 유학생들이 유용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호주 수도권(ACT) 중국학생연합은 2012년, 2014년, 2017년 각각 시진핑 중공 총서기, 리커창 총리, 리우옌동 당시 부총리, 왕이(王毅) 외교부장 등이 호주를 방문하자 거리 환영행사를 진행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환영하는 모임”이라고 소개했다.

청주시 청원구 그랜드플라자호텔에서 추궈홍 당시 주한 중국대사가 ‘중국인 유학생 페스티벌 환영 만찬’에 참석해 감사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7년 9월 29일 | 연합뉴스

정보 수집원으로 활용, 통일전선 수행

중공은 해외에 진출한 수십만명의 중국인 유학생들을 정보원으로 활용한다. 그 실행기관이 중국학생연합이다.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은 약 36만명이다. 이들의 규모에 따라 중국유학연합은 지난해까지 최소 142곳으로 늘어났다. 영국의 중국학생연합 측은 회원수를 22만명이라고 밝혔다.

한국 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가 집계한 지난 2월 한국내 중국인 유학생은 7만1천명으로 전체 외국인 유학생의 44%를 차지했다.

전 세계에 뻗어있는 중국학생연합 조직망은 중공이 수십만 명의 유학생과 접촉하고, 다시 이들을 움직여 각국 중국인과 현지 주요인사들까지 접점을 확대하는 기반이다.

이밖에 해외 인재·연구성적 탈취 공작인 ‘천인계획’을 위한 교두보로서의 역할도 있다.

따라서 중공은 유학생들간 친목 및 정보 제공, 권익 보호라는 중국학생연합 본연의 서비스 기능 보다는 정보와 인재 확보 창구로서의 기능을 중시한다.

중공 국가안전부 간첩이었다가 2009년 미국으로 망명한 리펑즈(李鳳智)는 중국학생연합이 중공의 선전과 정보 수집을 위한 조직이라고 폭로했다.

또한 이러한 모든 활동을 통해 중국인 유학생을 사상적으로 통제하고 이들이 민주주의와 자유 속에 녹아드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의 중국 담당 기자 베서니 앨런-에브라히미안은 2019년 중공의 해외 영향력 확대를 분석한 기사에서 “(중공) 영사관은 시위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교통편, 도시락, 티셔츠를 무료 제공했고, 일부 국비유학생들에게는 행사 불참시 장학금을 끊겠다고 위협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끌려나온 학생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중국 전문기자 쑹위안은 “중공은 권위주의 정권이다. 본질적으로 구성원들이 정권과 다른 의견을 지니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자유세계에 나와서도 감시와 통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중국인 학생들도 어찌보면 피해자인 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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