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한국인이 가장 즐겨먹는 고기가 돼지고기인 것 같습니다. 연말이 되면서 모임이 많아지면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곁들이며 일 년을 마무리하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돼지라는 동물은 상징성이 큽니다. 12지에서 12번째 동물(亥)입니다. 음(陰)을 상징하며 탁월한 식욕과 번식력으로 이름값을 해냅니다. 돼지와 반대되는 것이 12지 여섯 번째 동물인 뱀(巳)입니다. 돼지가 뱀의 상극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실제로 돼지가 뱀을 잡아먹는다거나, 뱀의 독이 돼지에게 통하지 않는 사례를 저도 직접 본 적이 몇 번 있습니다.
돼지의 두꺼운 비계와 음기는 뱀독의 강렬한 열과 독을 이겨낼 정도입니다. 뱀은 양기가 부족한 사람에게 좋고 돼지는 음기가 부족한 사람에게 좋은 것도 관련이 있습니다.
젖을 돌게 하는 돼지족
동의보감에서도 돼지를 상세히 다뤘습니다. 약으로 쓰는 돼지 관련 부위만 해도, 돼지 간, 돼지털, 돼지 쓸개, 위장, 똥, 족발, 콩팥, 심장, 젖, 기름, 창자, 방광, 고기 등입니다. 단일 품종으로는 돼지가 아마도 가장 다양하게 쓰이는 것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 중에 하나가 돼지족발이 젖을 잘 돌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구절입니다. 젖이 잘 돌게 하고, 산모의 기혈이 쇠약해 젖이 없을 때 쓴다고 되어 있습니다.
통초라는 약재와 돼지족을 넣고 달여서 먹는데, 먹고 나서는 가슴 부위를 문질러 줘야 합니다. 허해서 젖이 돌지 않는 경우에 적절한 마사지와 함께 작용을 나타냅니다. 허하지 않고 다른 이유로 젖이 돌지 않는 경우에는 효과가 덜합니다.
이외에 돼지의 간, 심장, 폐, 창자, 방광도 각각 해당 부위를 튼튼하게 하는 작용이 있는데 돼지간은 설사를 멎게 하고, 눈을 밝게 해서 야맹증에 좋습니다. 간의 피로와 열이 있을 때 눈이 침침하고 어두워지기 쉬운데 이럴 때 돼지간이 좋습니다.
돼지 폐는 기침이 나고 숨이 차면서 피를 토할 때 씁니다. 다른 부분은 실제로 구하기 힘들어서 순대와 함께 자주 먹을 수 있는 간과 폐에 대해서만 간략히 다뤘습니다.
이외에도 다른 서적에서 다룬 돼지고기의 효능은 음이 허한 것을 보충해주고, 열병을 앓고 나서 몸이 마르고 대변을 쉽게 보지 못할 때 씁니다. 또 콩팥과 간을 건강하게 한다는 구절도 몇몇 서적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때는 주로 간과 콩팥의 정혈을 보충해주는 작용을 말합니다. 돼지는 주로 물질의 근간이 되는 음을 보충해 주는 작용이 강합니다.
넉넉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돼지 고기는 가장 기름진 고기로서 많이 먹게 되면 결국 몸 안에서 습과 열을 만들어냅니다. 습열은 일종의 노폐물이라고 이해하면 좋습니다. 또 성질이 차기 때문에 속이 냉하거나 소화가 더디 되는 경우, 특히 소음인은 돼지 고기를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돼지고기는 음이 허해지기 쉬운 소양인에게 가장 좋으며, 그 다음이 태음인에게 좋습니다.
무엇인가를 취하면 무엇인가를 닮게 됩니다. 좋지 않은 생각과 말을 자꾸 접하다보면 실제로 그리 변하게 되고, 좋은 말과 옳은 생각을 늘 접하면 좋게 변합니다. 마찬가지로 돼지고기를 자주 먹으면 돼지가 가진 성질을 닮게 된다고 이해하면 좋습니다.
내게 돼지가 가진 풍족함과 넉넉함이 필요하다 싶을 때 먹으면 가장 좋고, 내가 이미 몸도 풍족하고 마음도 느릿느릿한 데 돼지고기를 더 먹는다면 한 쪽으로 더욱 치우치게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