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시행령 개정해 범죄 재분류…검찰 수사 범위 확대

이윤정
2022년 08월 12일 오전 6:07 업데이트: 2022년 08월 12일 오전 9:25

직권남용은 부패범죄, 조폭은 경제범죄
마약류 유통 범죄·무고·위증죄 등도 수사 대상
‘검수완박’으로 제외됐던 공직자·선거·방산, 중요범죄로 재규정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대폭 축소하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 시행을 한 달 앞두고 법무부가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사실상 확대하는 내용으로 하위 시행령을 개정하기로 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8월 11일 이 같은 내용의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은 검수완박 시행 이후에도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부패·경제 범죄의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검수완박법’은 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을 가리킨다. 앞서 국회는 지난 4월 30일 ‘검수완박’ 법안 중 검찰청법 개정안을, 5월 3일에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이른바 ‘검수완박 입법’을 마무리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 없이 해당 법안을 의결·공포함으로써 오는 9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현행 6대 범죄(공직자·부패·선거·경제·방위사업·대형참사 범죄)에서 4대 범죄 수사권을 폐지하고 2대(부패·경제) 범죄로 대폭 축소하는 것이 ‘검수완박법’의 핵심이다. 이를 두고 공직자·선거 범죄에 대한 국가범죄 대응 역량이 약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한동훈 장관은 장관 후보 시절이던 지난 5월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검수완박 입법을 두고 “부패한 정치인과 공직자의 처벌을 어렵게 한다”며 “합리적인 이유 없이 검사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거나 과도하게 제한할 경우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 연합뉴스

법무부가 오는 29일까지 입법 예고하겠다고 밝힌 시행령 개정안은 공직자·선거·방위사업 범죄 중 상당수를 부패·경제 범죄로 분류하는 등 중요 범죄를 구체화했다. 예를 들어 기존 공직자 범죄로 분류됐던 ‘직권남용’ , 선거범죄에 속했던 ‘매수 및 이해 유도’ 등을 부패범죄로 규정해 검찰이 계속 수사할 수 있게 바꿨다.

금권선거는 부패범죄로, 방위산업 범죄와 마약류 유통 범죄, 폭력조직이나 보이스피싱 범죄는 경제범죄로 분류했다. 아울러 ‘4급 이상 공무원’이나 ‘3천만 원 이상 뇌물’ 등 수사 범위를 세세하게 제한한 규정들은 폐지하기로 했다.

그간 경제범죄로 분류됐던 자금세탁 관련 범죄는 부패범죄로 다시 규정했다. 아울러 의료법·약사법·병역법 등이 규정한 불법 금품수수 관련 부패범죄, 보조금관리법·사립학교법 등이 규정한 보조금·학교회계 관련 부패범죄, 범죄수익·자금세탁 관련 부패범죄를 추가했다.

경찰 송치 사건은 ‘범인·범죄사실·증거가 공통되는 사건’에 대해 검사가 계속 수사할 수 있도록 수정했다. 사건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경찰 송치사건에 대해 직접 관련성이 있는 범죄만 수사할 수 있도록 한 개정 검찰청법의 모호성을 보완한다는 취지다. 다만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별건 수사 제한 조항에 따라 수사권 남용을 방지하도록 개선할 방침이다.

부패·경제 범죄 이외에도 무고·위증죄는 ‘사법질서 저해범죄’로 정의하고 국가 기관이 검사에게 고발·수사 의뢰하도록 한 범죄도 직접 수사할 수 있는 중요 범죄로 규정했다.

이 밖에 뇌물 등 부패범죄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금액 기준도 없앴다. 검사의 수사 개시 범위 축소를 최소화하고, 당초 수사 개시 규정에 없던 범죄도 포함해 검찰 수사 범위를 확대했다.

법무부는 8월 11일,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개정안에서 ‘검수완박법’이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로 명시한 ‘부패·경제 범죄’를 재정의했다. | 연합뉴스

법무부의 이러한 하위 시행령 개정안을 두고 사실상 ‘검수완박법’을 무력화하고 검찰 수사 범위를 지금보다 확대하는 개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법 개정 취지를 넘어선 지나친 확장이란 지적에 한 장관은 “시행령 개정은 법률의 집행을 투명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하겠다는 의지”라며 “법 문언 해석을 넘어서지 않았기 때문에 법률이 위임한 범위를 넘어섰다는 지적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4월 검수완박 첫 발의 과정에서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던 검찰청법 개정안 원안은 검사 수사 범위를 ‘부패와 경제 범죄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한정했다. 그러나 이후 여·야 합의 과정에서 ‘부패범죄·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수정됐다. ‘중’이라는 글자가 ‘등’으로 바뀌어 통과된 것이다. 법무부는 이를 검수완박법에 열거된 ‘부패·경제’ 범죄 외에 다른 범죄 유형도 대통령령으로 정하면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에 포함할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했다.

법무부는 이번 개정안을 오는 29일까지 입법 예고한 뒤, 9월 10일 대통령령 개정안을 시행하고 법무부령을 폐지할 방침이다.

한편, 해당 개정안을 두고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국회와의 전면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하는 등 더불어민주당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